설 연휴는 다들 잘 보내셨는지요? 연휴 후에는 항상 그 여파가 남는 것 같습니다. 양가가 멀지 않은 곳에 사는데도 연휴 기간 동안 이쪽 저쪽 온갖 친척집을 방문하고 새배하고 인사를 나누는 일은 참 고단한 일이네요. 연휴가 끝난 주말에도 가족 모임이 있어 바쁘게 보내고 아주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 같습니다. 이 시간이 있음에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넋두리가 길었습니다 ㅎ_ㅎ;
그래도 연휴 기간 동안 한 가지 저를 위해 한 일은 이 책을 끝까지 완독한 것이었습니다. 다 읽고 난 지금은 제 삶, 제가 삶을 대하는 태도, 앞으로의 관심사에 하나의 큰 전환점을 마련해준, 운명의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책은 '듣기'와 관련해 인디언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던 문화, 사라져가고 있는 유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비슷한 문화를 가진 아프리카 부족민 이야기, 그리고 불교, 기독교 등의 종교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듣기'에 대한 이해로 뻗어나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알프레 토마티 라는 박사가 '귀'와 '듣기', '소리'가 엄마 뱃속의 태아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다릅니다.
침묵과 듣기는 우주와 자연속에서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관계를 맺는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침묵과 듣기를 잃는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물질에 이끌리고 나를 앞세우고 남을 지배하려고 한다. 상대방 말을 듣기보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 곳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그런 자리에는 주장만 있을 뿐 지혜가 들어설 틈이 없다. 지혜가 없는 문화는 죽은 문화다. 바로 여기에 현대문명의 비극이 있다.
정말 공감이 많이 되는 대목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더더욱 이같은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듣는 사람은 없구나'. 예를들면 아이를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저는 아이를 대하는 어른들이 대부분 가르치고 지시하길 좋아하고, 아이가 그대로 따라주면 무척 기뻐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합니다. 가족과 친척, 주변에서 오고가며 스치는 이웃들을 포함해서 말이죠. 그런데 정작 '아이가 지금 뭘 보고 있지? 뭐에 관심을 갖고 있지? 뭘 하고 싶어하지?' 를 궁금해 하고, 관찰하며 기다리는 어른은 거의 없습니다. 아직 어린 아기를 데리고 어른과 함께 만난 장면에서 정말로 아이를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존중하며 다가가는 어른은 딱 한 명 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것이 종종 저를 슬프게 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살면서 정말 '듣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밖에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잘 '듣는 사람'은 못되었구요. 잘 들으려면 먼저 제 마음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그리고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는 그것을 텅 비울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목소리와 귀를 기울여 들어주는 귀를 필요로 한다. 우리 다가라 마을에서 모든 사람은 그대의 아버지나 어머니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 누구에게나 어리광을 부려도 괜찮다. 많은 사람이 아이의 아버지일 때, 아이는 그게 누구이든 그의 옆에 가서 말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의 삶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안다. 그들에게 비밀은 없다. 마을은 그들의 귀가 되어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며 그들이 진실을 말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늘 그곳에 있다. 만약 아이들에게 배출구가 없으면 다시 말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그들은 입을 꾹 다물게 되고 그들의 재능마저 썩어버릴 수 있다. 우리가 아이들로 하여금 말을 하고, 그들의 가슴을 열도록 격려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발산할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고, 이 에너지는 그들을 파괴할 것이다. 아이들은 말함으로써 자유로워진다. 그것은 내부의 독소를 방출하고 새로운 에너지가 들어오게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지 않으면 생각과 감정, 경험은 내부에만 고이게 되고 삶을 오염시킨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는 말하지 못해 병든 아동, 청소년, 성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저 또한 그랬었구요. 사람들이 자기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주변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연인이 있더라도 말이죠. 때로는 우리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아파 지치고 흔들리게 되면, 우리는 들어줄 귀를 하나 잃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어른들은 이런 일이 생길 때 일에 몰두하든, 아니면 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든 어떻게든 살아가지만, 아이들은, 특히 어린 아이들은 그런 면에서 어른들에 비해 가지고 있는 대처 전략이 매우 협소하기 때문에 그만큼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의 말을, 지나가는 사소해 보이는 말이라도, 어른들이 그 말을 잘 들어줘야 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그들의 경험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 다. 부모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치료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관계된 모든 사람이 노력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가 의미하는 것이다. 선의로 뭉쳐진 공동체의 '통합된 관여'만이 촘촘한 관계의 그물망을 짜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관계망을 통해 아이들의 세계관과 지식은 확장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알게 된다.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결국 아이들을 돕는 길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어른들의 지지를 받고 사랑받고 격려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을
나는 할머니가 우리에게 마을 의례를 함께 준비하자고 하셨던 일을 기억한다. 그녀는 오직 의례의 목적과 의도만을 설명해주 셨다. 나머지 일들은 모두 우리가 알아서 하도록 맡기셨다. 때때로 우리는 기적과 같은 것을 해내곤 했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 니지만. 할머니는 우리가 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으셨고, 좋지 않다느니 또는 뭐가 잘못됐다니 하는 말씀도 전혀 하지 않으셨 다. 대신 할머니는 잘한다, 참 좋다는 말씀만 하셨으며 다음에 우리가 다시 의례를 준비할 때 고려해야 할 점들에 대해서만 말씀하셨다. 다시 의례를 준비한다면 어떤 점을 바꾸었으면 하는지, 또는 어떤 요소를 더 추가하면 좋을지 말씀하셨다.
아이들과 이런 식으로 일할 때, 우리는 아이들이 어떤 재능들을 가졌는지 알게 된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창조성이 샘솟도록 격려할 때, 각자의 재능들-다른 누구도 갖지 않 은-이 꽃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우리가 아이들의 재능을 알아봐줄 때 아이들은 그대로 피어난다. 재능은 정체성의 일부이며, 삶의 목적 또한 그것을 통해서 나타난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단지 생물학적 탄생만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인정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을 일컬어 '성원권'(membership)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저는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비로소 이 성원권의 개념에 대해 마음으로 와닿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이와 산책하다 마주치는 어른들, 또는 큰 아이들이 아이에게 예쁘네 귀엽네 하며 눈인사를 하거나 손을 흔들고 가는 모습, 말을 걸어주는 모습 등에서 이것이 바로 사회적인 '환대'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따뜻한 환대 속에서 갓 태어난 아기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저는 한 아이의 엄마로 인정받았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귀의 기본 기능은 말을 이미지로 바꾸고, 우리가 직립했을 때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귀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는 알프레 토마티에 의하면, 귀의 첫 번째 목표는 태아의 뇌 성장을 돕는 것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영양을 공급하는 탯줄만큼이나 중요하다.
아이가 탄생하면 귀는 뇌의 신피질을 충전하며 그로부터 뇌신경 전체가 활성화된다. 토마티 박사가 볼 때 소리는 일종의 '영양분'인 셈이다. 우리가 소리 주파수의 완전한 스펙트럼을 소화하지 못할 때, 위가 음식물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과 유사한 결과를 초래한다. 양자의 차이라면, 음식은 신체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음파는 뇌를 충전하는 전기적 자극을 공급하는 것이다.
관절과 근육, 그리고 몸의 자세- 우리가 중력과 맞서 싸우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것-는 귀의 미로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 몸의 균형을 통제하는 것은 내이의 평형고리관의 미로다. 나는 이 메커니즘이 뇌의 신피질 충전의 60%를 담당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대략 30% 정도는 달팽이관에서 처리되는 소리가 가진 그 자체의 에너지에 의해서 충전된다. 이처럼 귀는 뇌에 필요한 충전에너지 90% 내지 95%를 담당하고 있다.
아마도 사람들 중에는 척추와 골반, 즉 뼈를 통해서 어떻게 소리가 (태아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설명하면 이렇다. 빛은 완전히 빈 우주 공간 속에서도 전달되지만, 소리는 진동을 전달하는 미립자나 분자 등의 물체가 있어야만 전달된다. 이것을 매질이라고 하는데, 매질의 밀도가 높을수록 전달 속도가 빠르다.
이런 이유로 소리는 공기 중에서보다 물속에서 4배나 빠른 속도로 전달되며, 금속에서는 무려 15배의 빠른 속도로 전달된다. 인디언들이 멀리서 오는 이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땅에 귀를 갖다 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공기보다 밀도가 높은 땅속에서 훨씬 더 빨리 전달 되기 때문이다. 기차가 오는지 알아보기 위해 철로에 귀를 갖다 대는 것도 마찬가지. 공기 중에서는 기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철로를 통해서는 멀리서 오는 소리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 몸의 뼈를 통해서 전달되는 소리는 공기 중에서보다10배가량이나 빠르다.
외부의 소리는 어머니의 배를 통과하여 양수를 지나 태아에게 전달되는 동안 줄어들지만, 어머니의 목소리는 척추를 지나 골반에 전해지는 동안 오히려 증폭된다. 첼로의 공명통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골반이 척추를 통해서 전해진 소리를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아에게 전달되는 소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어머니의 목소리다.
태아와 귀, 소리에 관한 연구 부분을 읽고 제가 임신 전에 이 책을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많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출산 한 달 전까지 오로지 일만 했기 때문입니다. 태교라고 특별히 신경 써서 한 것도 없었습니다. 집에 있는 시간에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 정도였을까요.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게 태교지 뭐, 하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온 시간이 지금 아이를 키우며 가장 후회되는 순간들 중에 하나입니다. 인디언과 아프리카 주민들이 아이를 임신할 생각을 할 때부터 임신 기간 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태교를 하고 아이를 기다리는지 그 이야기를 읽다 너무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고결했기 때문입니다. 한 생명이 엄마 뱃속에 잉태되어 한 사람으로 세상 밖에 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우며 기적적인 일인지..출산 전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그것도 한참 키우고 나서야 느끼게 된 지금은, 책의 그 대목을 읽으며 큰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도 한 가지 기쁜 것은, 제가 이 책을 딱 다 읽은 찰나,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제 친한 친구가 임신 소식을 전했고, 그 친구에게 축하를 전하며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너에게 이 책을 소개해주기 위해 내가 이 책을 먼저 만났나 보다고 말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후기를 쓰고 나니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느낀 벅찬 감동이 다시 느껴집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안나님,! 넘 반갑습니다~^^@
저 정말 다 너무 공감이 되네요,,! 제가 무엇을 하느라 아이가 하는 말을 제대로 못 들어주면 아이도 그렇게 서운해 하더라고요,,! ㅠ 꼭 자신의 눈을 마주치고 함께 교감하고 대화하길 원합니다. 저도 그런 때가 젤 행복하기도 하고요,,!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귀에 대해서는 오늘 참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아이가 태어나서 한 몇일 동안 엄청 율다가도 제가 뱃속에 있는 아이를 부르듯이 같은 톤으로 아이를 부르먼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그 어린 신생아가 제쪽으로 귀를 기울이는 득한기 느껴져서 남편과 제가 넘 깜짝 놀랐다는게 느껴지네요,,@@ ㅠㅠ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또 뭉클하네요,,!
연휴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다니시며 책 한권을 다 끝내셨다니, 또 한번 감탄이 나옵니다.
왠지 요안니님께 호기심도 생기고 궁금해 지네요..^^!
오늘 좋은 글 넘 감사합니다~^^!
내일 부터 또 즐거운 한 주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