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깊이
좋은 예술 작품은 그것을 보고난 후 사유를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항상 긴장을 하고 살수 없는 것처럼 가끔은 가볍운 마음으로 책을 읽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럴 때 에세이를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 것이 이 아무튼 시리즈입니다.
요즘은 컴퓨터 게임을 잘 하지 않고 캐주얼 게임이나 퍼즐 게임정도만 하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빛의 속도를 갈 수 없다면]을 쓴 김초엽 작가가 썼다길래 냉큼 읽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하더니 나중엔 행위의 예술과 전쟁에 대해 풀어내는 방식을 보고 놀랐습니다. 게임을 가지고도 생각이 깊어지면 이런 글들을 써낼 수 있다는 것에.
우리는 허구를 만들고 있다고. 어차리 이 모든 것은 다 거짓말이라고. 그래도 이 세계는 선명하게 아름답고, 우리가 초대한 이들이 여기서 행복했다면, 이것은 가치있다고. 마치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물론 그 허구 속 행복은 짧고 허망하다. 언젠가 덧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어차피 삶도 그렇것 아닌가.
우리는 모두 죽음으로 가지만 지금 행복할 수 있는 것 처럼. 행복해서 가치있는 일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전쟁 게임. 사람을 죽이는 게임을 해도 되는 것인가? 에 대한 물음을 던집니다. 어렴풋히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을 명확하게 표현해주니 더 고민을 하게 됩니다.
루도내러티브 부조화 ludonarrative dissonance라고 부르는 상황의 일종인데, 게임이나 전쟁이나 폭력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전쟁이나 폭력을 즐기기 만들기 때문에 플레이(루도)와 주제(내러티브)가 서로 상충하는 것이다.
이런 단어가 있다는 것도 몰랐네요.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행복했다면 가치있는 것이라는 것도 정도가 있어서 도를 지나치면 안된다는 점을 생각하게 해주네요.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스텔라리스]라는 게임에 대해 설명했을 때입니다.
심지어 [스텔라리스]의 통합 패치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게이머들의 상실감과 분노를 실제로 이끌어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저는 원래 SF를 좋아했지만 김초엽의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딱딱한 SF에 감성MSG를 듬뿍 뿌려줬기 때문이니다. [우리가 빛의..] 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상실감을 잘 표현했는데, 현실 세계의 게임에서 실제 사람들이 느꼈다는 점이 현실을 대변하는 예술이 된 점이라고 할까요..
가볍게 시작한 책이었지만 깊은 생각을 또 한번 하게 해줘서 좋았던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