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이전에 읽었던 토지에서 서희의 개인적 감정이 드러난 부분이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아직 어린 이유도 있었겠지만 서희의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전에 주변 인물들의 서사를 충분히 보여주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있는것이 아닌가하는 생각과 어쩌면 주인공이 서희가 아닌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어쩌면 길상이 이 책의 주인공이 아닐까.. 서희는 길상의 눈에 비춰진 모습이 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것은 다섯 권의 책을 읽으면서 제 마음에 서희가 없어서였습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왜 그런 결정을 내리는지 설명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후의 토지에서의 서희가 모습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제 마음의 주인공은 길상이 입니다.
간도로 넘어온 서희는 윤씨부인이 농받침에 금은을 숨겨놓은 덕에 그것을 자본으로 백두를 매점하여 물건이 귀해지면 되파는 방식으로 자본을 2배로 불립니다. 그녀의 대범하면서 결단력있는 성격은 최씨집안 여자들의 내력을 그대로 물러받은듯 합니다.
물론 월선의 큰아버지인 공노인의 정보력과 길상의 도움없이는 할수없는 일이었죠.
집이 불타버리고 그 집을 짓기 위한 목재를 사러다니는 일은 길상의 몫이었습니다. 사실 길상은 이집 하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서희도 그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듯 합니다. 길상은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하지는 않습니다. 타버린 집을 다시 지으려고 목재를 구입하는데 있어서 여분의 재목을 구입하여 장사하려는 서희의 명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제 서로 의지할 사람이 별로 없는 서희로서는 길상의 존재는 결코 무시할수 없는 존재감인거죠. 토를 달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이래라 저래라 타박이도 많고 성질을 있는대로 부리지만 그녀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거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길상이 없는 자신의 삶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상현이 길상이 서희에게 맘이 있는지 떠보려는 부분이 나오면서 이들이 양반과 상놈의 관계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긴 간도로 오면서 조선에서의 신분의 차이는 이미 물건너간 상황이었습니다. 이제는 서희도 다른 삶을 살아야한다는 뜻이기도 하죠. 하지만 여전히 사평리에서의 서희를 버리기는 어려운가 봅니다. 이 부분이 안타깝고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자신의 삶에 반전이 일어났으니 서희의 마음이 어떨지 쉬이 짐작되기도 합니다.
여전히 길상의 마음을 모르겠습니다. 봉순이를 좋아했던 마음이 있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과연 길상은 서희를 여자로서 생각하기는 한걸까요. 사람이니까 생각을 해볼수 있었겠죠.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까지 했을까요. 그리고 한번이라도 서희를 여자로 진지하게 생각해봤을까요. 이건 길상이 자신만 아는 얘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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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로 함께 온 용이, 월선, 임이네를 보면서 사람 사는건 이런건가 싶어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사랑으로 몸이 달지만 그럴수 없는 처지의 애닳아하는용이와 월선이의 사랑 이야기가 그렇고,
시기 질투로 범벅된 삶을 살다가 강청댁의 뒤를 이어 동정조차 할수없는 인간의 미움덩어리의 임이네가 그렇습니다. 간도에 와서 여자의 돈으로 사는 남정네의 별거없는 자존심(그 당시엔 그럴수 있음)으로 삶이 피폐해지는 용이와 돈에 환장하며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임이네의 행태. 이들의 끝이 궁금하지 않을 지경입니다. 그끝이 아름답지 않을거 같아서요.
우리안의 어딘가에 조금씩은 있을지 모르는 인간의 찌꺼기 같은 감정들. 이들을 보면 우리 스스로도 애써 피하고 싶은 인간의 밑바닥을 보는 듯 해서 마음이 그렇습니다.
송장환이 길상과 술을 마시며 하는 얘기에 주목했습니다.
'자결을 했다는 대부분의 유생들이 육순, 칠순의 고령이라니, 허 참,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나는 본시 옹졸하고 편협한 유생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라를 이 지경으로 이끌어 온 그네들 책임을 용서할 수도 없거니와... 유교적 윤리관 속에는 확실히 무슨 비밀이 있긴 있는 모양이요. 나는 어디까지나 그런 행위를 퇴영으로밖엔 생각지 않습니다만..'
(퇴영: 뒤로 물러나서 가만히 틀어박혀 있음.)
송장환이 한 말이 모두 맞는 말은 아니지만 한번쯤 생각해볼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전 후기에도 썼던 기억이 있지만 유교는 종교적 측면보다는 교육적 목적으로 인식되었던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당시엔 유교적 교육을 받고 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도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교육 받고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요. 하지만 현세의 관점에서 우리의 과거사를 되돌려보면 그런 유교적 사고가 우리를 있는 자리에 머물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더 나아가 조선의 답답한 상황을 만들었던 기초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더욱 마음이 답답해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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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에서 임펙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서희의 결혼말이 나오기 때문이죠. 그것도 서희 스스로 상현에게 오라버니가 되어달라는 말과 함께 길상이와의 혼인말을 꺼내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상현 입장에서 이게 달가울리 없죠.
자리를 박차고 나간 상현은 그대로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향합니다. 분명 상현도 서희에게 마음이 있었던게 맞는거 같습니다.
참 서희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미 서희는 양반의 체통은 멀리 떠나보내는듯합니다. 사실 서희 옆에서 누가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까요.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한다는 생각이 안쓰럽고 또 비장해 보입니다. 역시 서희였습니다.
정말 이 결혼이 성사될까요. 그런다면 너무 충격적이지만 멋진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ㅎ
이 책에서 용이의 복잡한 심경이 전 너무 신경이 쓰였습니다.
서희가 월선에게 가게자리를 하나 내어주고 임이네를 함께 하지 못하게하겠다는 결정이 용이에게 어떤 생각을 하게 해준것이었을까요. 그의 마음이 무척 복잡해보입니다. 임이네는 미워하지만 내 자식을 낳아준, 내가 책임져야할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일까요. 뭔가 서희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어 보입니다. 월선을 두고도 마음에도 없는 임이네를 범하고 아이를 낳아 책임지는 용이의 삶도 참 기구합니다. 누구보다 복잡한 심경으로 살아가는 용이의 행동이 다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사람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구분 짓는다는 것이 또 얼마나 부질없는 일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인물이 전 용이였습니다. 언젠가 용이의 마음도 알게 되는 날이 오겠죠. 전 용이를 이해하고 싶습니다.
자격지심과 누구에게랄껏도 없이, 대상도 분명찮은 분노 같은 것 때문이고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 아니었다. 임이네 문제가 거론되었더라는 그간의 사정은 능히 있음직한 것이다. 그럼에도 등에 붙어다니는 혹덩어리같은 흉한 임이네 과거사가 좀더 명료하게 떠올려졌으리라는 상상은 견디기 어려웠다....
자격지심이 격해지면 그럴수록 등에 붙은 흉한 혹처럼 험했던 이력을 짊어진 임이네를 진심으로, 온 심장으로 가려주고 싶은 증오와 연민이 격렬하게 갈등하는 그 숙명적인 감정을 용이는 가눌 만한 여유를 못 가진다. 서희의 처사를 가혹하다 생각지는 않으면서, 원망하는 마음도 아니면서 그러나 처음부터 남정네가 죄를 졌으면 남정네가 받을 것이요, 이미 벌을 받아 죽은 사람인데 어째 계집이 그 죄를 또 받아 짊어져야겠느냐, 그런 항변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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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분한테 슬픔 같은 것, 그렇습니다. 한이라 하는 게 좋겠지요. 이 세상 아무도 믿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님도, 그 어른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러러 뵙고 싶은 분이었습니다. 나에게 글을 배우게 하시고.. 어릴 적에는 나는 그것을 크나큰 은혜로 알았지요. 그러나 그건 정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보내는 정 말입니다. 상전이 하인에게 베푸는 은혜,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 어른은 웃으신 일이 없었지만 웃음보다 더 정을 느끼게 하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그 어른 눈에는 자기 자신을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빛이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슬퍼할 줄 모르고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이 어찌 남을 위해 슬퍼하겠습니다....나도 그렇습니다. 그분을 불쌍히 여기고 정을 느낀 겁니다...'
길상이가 용이와 앉아서 혼자 읖조리듯 했던 말 속에 길상이가 최치수와 윤씨부인에게 느꼈던 감정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그 감정이 너무 깊어서 전 너무 놀라웠습니다. 길상이 달리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역시 뭔가가 있는 사람일줄 알았습니다. 그런 길상을 알게 되어 전 너무 기쁩니다. 이젠 길상이 제게 최애가 되었답니다. ㅎ
길상이는 물론 그집 하인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었죠. 조금은 특별한 자신의 위치와 그런 자신을 보아주는 두 어른에 대한 회상 속에 저는 토지에서 제가 느끼고 있는 중요한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건 바로 '정' 이었습니다. 토지를 읽으면서 왜 다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지, 틈만 나면 자꾸 토지를 들춰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지 알았다는 말입니다. 저도 정이 고팠나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느낄수 없는 정을 저는 토지 안에서 발견하고 그 정에 묻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나봅니다. 그래서 토지를 읽는 요즘 전 마음이 참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겨울이 주는 환경과 이런 책을 함께 할 수 있다는 행복감에 전 요즘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합니다.
이런 말을 한참동안 중얼거리는 길상이. 그의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깊어서 전 참 좋았습니다. 자신을 귀히 여겨주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길상이 좋았습니다. 어쩌면 길상이가 서희의 부군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 서희도 그런 길상을 안 것이겠죠. 그들의 부부의 연이 부디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ㅎ
딸기님 항상 성실하게 잘쓰시는것같아요
용이 얘기를 보니 정우성혼외자얘기가 생각나네요
토지는 다양한 세상살이를 다루어 많은 인물들이 개성이 강하고 재미를 더하는것 같습니다 !!
딸기님,,!! ㅎㅎ 정성스러운 후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저도 길상이 참 멋있고 넘 좋네요,,! 요즘 시대 같았으면 제 아무리 서희라고 해도,, 이렇게나 멋진 청년을 계속 자기 사람으로 묶어두고 부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아무튼 딸기님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스포를 하고 싶진 않지만,, 5권 맨 뒤의 인물관계도를 보니, 서희와 길상의 미래에 대해 짐작을 하고 읽다보니, 아 이제 그 때가 온거구나,,! 싶었습니다. ^^: (곧 더 구체적으로 나오게 될 거 같아서요,,)
저 역시.. [토지]를 읽으면서 이렇게 마음이 충만할 수 있는 것이.. 인지상정이 너무나 잘 느껴지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ㅜㅜ 정이 넘치다 못해 시대상과 맞물려 아픈 삶들을 보게 될때는 애틋하고 마음이 시리기도 하고요,,!
살면서 타인과 그런 감정을 교류할 때마다 마음에 감동이 참 컸던 것 같은데, 언제 부턴가.. 그게 이전같지 않다는 생각이 저도 드네요,,! 점점 더 많이 개인화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용이에 대한 생각도 비슷합니다. 임이네를 범한것이 조금 이해가 안가기도 하지만.. ㅜ (제가 남자가 아니라서요,,)
어찌 되었든, 임이네를 버리지 않는 것, 제가 용이의 사람됨을 또 한번 높이 평가하게 된 것은, 임이네가 어려운 시기 몸을 팔아서라도 끼니를 해결하던 그 시기의 임이네의 과거를 전혀 책잡지 않고 오히려 묻어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인간됨을 알 수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유교교육은 저 또한 아버지의 성향상 너무 치우칠 정도로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지금도 주자학을 읽으시고,, 서양 철학 보다는 [설원] 같은 책을 좋아하시고, 매우 열심히 공부하신 흔적이 보입니다. 그래서 저의 기본 정서에는 깊숙히는 유교정신이 많이 깔려 있지만, (그래서.. 아버지를 보며 과하다 생각한것과 별개로 저 역시.. 그런 도리에 대해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성장과정을 무시할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아버지께 전혀 없어 보이는데 제게는 어느새 점점 커지게 된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참 한 사람의 삶도 잘 들여다 보면,, 너무나 재밌고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그 안에 모든 심리학과 사회 과학이 다 그대로 들어 있는 느낌입니다.
서희의 생각이 드러나면서는 서희를 응원한다는 마음 보다는..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고, 그 도도함이 조금 과하다?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성장배경에서 온 자부심과 외로움의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관련해서 저도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여기에 쓰고, 제 후기에 쓰면 딸기님께서 두 번 읽으시는 결과가 될 것 같아서, 제 이야기에서 마져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길상의 이야기가 참 따뜻하게 들립니다.
'정'
토지가 사람간의 정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소설이라니...
읽는 동안 행복할듯 하네요.
저는 이번주 뉴스에서
여의도 집회현장 근처에서
커피와 빵 따뜻한 먹거리를
선결제 하시고 추위에 나온 사람들을 격려해
주시는 이들이 많다는 내용을 듣고
사람간의 정을 느꼈습니다.
순수한 사람들의 마음이 통한것 같았지요.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이유가 없을 수도 있고 그냥 사는거 일수도 있지만,
그냥 사는 그 안에서 우리는 사랑 또는 정을
느끼며 살고 싶어합니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조금만 더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본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합니다.
한강 작가도 인간의 폭력과 잔인함을 통해
그 밑바탕에 흐르는 사랑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합니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진흙탕 싸움과 동시에
국회 앞에서 나누는 국민들의 정을 보니
이세상은 살 만한 세상 같았습니다.
자꾸 책에서 벗어나는 글들을 쓰게되어
미안한 생각도 드는데요.
차츰 마음이 차분해지면 책으로 돌아와
책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을것 같네요.
서희와 길상.
두 사람 앞으로의 이야기가 기대되며
먼저 읽으시는 딸기님의 후기에서
접할수 있는 기쁨을 누릴수 있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