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노트북 입니다.
드디어 11권 후기를 쓰네요.
11권을 읽으면서는 먼저 읽고 남겨주신 딸기님의 후기가 많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현재 읽는 책에서는 환이의 죽음을 그리는 소 제목이 '환의 죽음'으로 나와 있는데, 딸기님께서 읽으신 버전에서는 '김환 장군'으로 나와 있다 하시니, 책이 본래 출간되면서부터 작가님께서 소제목을 지으신 건 아니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11권까지 읽고 느낀 부분은, 이 책에서 당시 많은 지식인들과 독립지사들이 자연스레 사회주의 활동에 빠지게 되었던 과정을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맨 처음에 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활약했던 독립운동 1세대가 러시아 혁명과 더불어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논할 때는 이렇게 시작이 되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소설에서 정을 붙였던 관수나 서의돈(이상현)과 같은 인물이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에서는 가슴 철렁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 이었습니다. 맘이 아프다는 표현이 더 맞겠네요. 소설 [파친코]에서 경희를 남몰래 사랑했던 김(?)창호라는 인물도 생각났고요. 그는 결국 멀리 일본에 있으면서조차 사회주의를 동경하여, 평양으로 떠났습니다. 당시에도 사회주의 사상은 위험한 것으로 치부되었던지, 한수(창호의 두목)는 창호에게 북쪽으로 가면 살해되고, 남쪽으로 가면 굶어 죽는다는 말 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도 황태수, 조용하(명희 남편)과 같은 자본가들이 사회주의를 상당히 경계하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황태수는 자본가이지만 또 대부분의 심복과 죽마고우들이 모두 사회주의운동으로 구금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재판비용을 남몰래 댑니다. 아무튼 소설에서 내내 정든 젊은이들이 모두 사회주의자가 되면서, 그동안 생각했던 사회주의자에 대한 공포나 거리감은 자연스레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특징 같습니다.
이전의 이야기들은 그냥 시대상 인가 하고 읽었는데, 11권을 읽으면서는 왠지 작가님께서 아픈 가족사를 계기로 그들이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 시대적 배경과 순수한 마음도 이 소설에서 함께 전하려고 하셨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회주의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민단체와 파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시기의 소설이라도, 이광수의 소설에서는 한 번도 '사회주의'가 등장한 적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이광수의 소설들은 모두 '계몽사상'과 '사랑'에 관한 것이었지요. 작가마다 주목하는 주제(소재)가 달랐다고 느껴집니다. 정말이지.. 책을 읽다가 이런 추측이 생길 때마다, 작가님들께 여쭤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할머니께 하듯이요. 참 아쉽습니다.
분량이 어마어마한 대하소설이다 보니, 몇 권을 읽었다고 소설로 전하고자 했던 '맥'이 무엇일까가 쉽게 잡히진 않지만, 현재까지는 독립운동, 사회주의, 시민운동(단체), 그리고 '신분타파'와 같은 사회 대 변혁에 대한 인식 변화들을 어느 것 하나 튀지 않으면서도 등장인물들이 겪었던 삶의 애환과 함께 자연스럽게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신분타파'에 대해서는
주종과의 혼인(서희와 길상),
같은 맥락으로 양반과 상놈과의 혼인(혼외 관계)
(윤씨 부인과 김개주, 별당아씨와 구천, 홍이와 보연(상놈이어도 당자만 괜찮다면 상관없다는 보연의 어미 점아기), 양소림의 혼처로 길상(상놈?)의 아들 환이를 탐내는 그 부모.),
주종간 형제의 정(서희와 기화, 양현(기화 딸)과 환국, 윤국 형제),
주종간 조부모/부모의 정(억쇠, 유월 부부와 상현, 상현의 아들들)
과 같이 '시대가 변했다.', '당자가 우선이다.'와 같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11권에서 강하게 남는 것은 환이의 죽음과 박의사의 보조였던 정윤과 숙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먼저, 환이 석포와 함께 감옥으로 끌려갔고, 병이 있던 석포가 마지막 고문에 못 이겨 진주의 관수이름을 대고 죽은 뒤 환이의 생각에 너무나 공감이 갔습니다.
"어느 경우든 무혐의로 낙착 짓지 않는 한 그것은 견디기 어려운 궁지임은 뻔한 것이다. 입을 열게 하기 위하여 살려두는 것이나, 연루를 찾기 위해 놓아주는 것이나 다 마찬가지로 환이에게는 진퇴양난이다."
저는 바로 이 부분에서 환이가 만약 죽는다면 이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환에게는 목표가 하나였던 것입니다.
살고자 한다면 그것은 살아남아서 끝까지 독립과 동학을 위해 싸우겠다는 의지였을 것이고,
그것은 어찌 보면, 서희가 아버지의 투옥에 때문에 일본을 증오하는 환국에게
"그러나 무모하게 칼을 뽑으면 안 되느니라. 개죽음은 우리의 손실이고 그들의 이득이 된다."
라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죽음을 선택한다면 (취조에 대한) 입을 열게 하기 위해 살려두는 것이나, 살아나가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몇 년 동안 잘 은둔하다 환의 등장으로 갑자기 함께 체포된) 석포와 같은 일을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살아나가서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동학과 독립운동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은 그것을 떠나야 하는 것인데, 그건 환이에게는 의미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죽음에는, 슬프지만 그 고귀한 선택에 숙연한 애도를 보내게 되네요.
또한 환이가 먼저 죽은 석포에 대해 사무치는 슬픔으로 그를 애도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자신보다 먼저 죽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 점도 이해가 갔습니다. 석포를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사건이 심상찮음을 저들에게 입증하는 것이며, 따라서 남은 석포에게는 주사를 찔러가면서도 살아남게 하여 기름 짜듯 짤 것이요, 피해는 확대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환이의 헤아림이 매우 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노년의 부부가 훗날을 생각하며, 서로가 서로를 먼저 보내길 바라는 마음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잘 살았던 사람도, 가장 마지막은 나약하고 힘들고 외로울 수 있는데.. 그런 감정은 함께 하다가 상대를 보내고 남은 사람이 몇 곱절 더 많이 느끼게 될 거니까요. 그 이치를 알기 때문에, 진정으로 배우자를 생각하는 노부부들은 서로를 자신보다 먼저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마지막 김환의 이 생각을 읽으며 그런 노부부들이 떠올랐습니다.
지금까지는 환이라는 인물에 대해 큰 애착을 느껴지 못했지만, 마지막 그의 죽음에서 비로소 그의 그릇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잠깐 언급된 서희가 말한 '개죽음'이 허탈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말도 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보다는 더 단단하게 힘을 기르고, 더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게 교육시키는 것이 핵심이라 생각하지만,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만 갈 순 없으니까요.
누군가는 더 급진적으로 일본을 공격하고 난을 일으킬 수 있고, 설령 그것이 실패한다 하더라도 훗날을 기약하며 힘을 기르는 이들에게는 그것 자체가 마음의 불씨가 될 테니까요.
애국하는 마음의 조선인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사건들로 마음에 불을 지피며 그 정신을 이어갈 수 있겠지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조국을 위한 희생은 어떤 형태로든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한때 우리에게 이런 아픔이 있었다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11권 끝에서 진주의 명의 박의사의 보조노릇을 하다, 고학으로 의대생이 된 정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숙희는 정윤과 함께 박의사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인물입니다.
그 둘은 연인사이였고, 항상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는 정윤을 안쓰러워하며 뒷바라지합니다.
형편이 어려우니 정윤도 숙희와 박의사가 댄 학자금을 받고 공부를 했습니다.
정윤만 원하던 의대생이 된다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고 숙희는 생각했겠지만, 막상 의대생이 되고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정윤은 혼인에 대해서는 숙희에게 어떤 언약도 없습니다.
물론 숙희가 의사 남편덕을 볼 생각 그런 의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고,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도왔던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정윤에게 아주 좋은 혼처가 들어옵니다. 그것도 박의사를 통해서요.
박의사는 정윤의 현재 심리를 너무 잘 압니다. 혼자 고뇌합니다. 차라리 학자금을 내가 다 댈 것을.. 그러다 또 아니지. 그럴 필요 있었나. 하며 갈팡질팡 괴로운 감정을 갖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숙희가 참 안쓰러웠습니다.
숙희가 배신을 당해서가 아니고, 연인이 꿈을 가지고 고된 생활을 견디며 나아가는데, 왜 자신은 더 성장하려 하지 않았을까,,! 왜 그 젊음을 노동과 바꾼 소중한 돈을 정윤에게 모두 대어주며 헌신하려 했을까..?! 그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서로가 발전하는 만큼 함께 성장하고, 서로의 매력과 존재의 의미를 높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 시절 많은 여성들이 그렇게 희생을 하고, 버림을 받았을 것 같아 그것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관련해서는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글이 길어지니 다음 기회에 해야겠습니다. (^^:)
기화는 상현의 딸 양현을 낳고 처음으로 어떻게든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 커봐야 기생 딸년이 될 텐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점점 인생을 놓게 되고 자기 자신도 놓게 되고, 맘에도 없는 남자를 들여 아편 찌르는 법을 배워 아편쟁이가 됩니다.
기화는 타고난 재주가 있었는데, 창을 끝까지 하지 않고 새로운 남자를 만날 때마다 중도포기 합니다.
목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포기하고 되는 대로 살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왜 기화같이 착한 아이가 기생이 되어서.. 그렇게 살았을까. 좀 더 일찍 기생의 삶이 어떤 삶인가를 고민했더라면 그 길을 가려고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에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기화는 아주 어린 시절 엄마가 돌아가셨고, 중요한 시점인 간도 이주 시점에는 아무도 없이 홀로 떠돌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도 싶습니다. 문득 아주 옛날 봉순네가, 서희와 기화에게 수를 가르치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의외로 기화(봉순)이가 수를 잘 놓는데, 희한하게 조금만 하더니 금방 포기하고 접고 나가노는 반면, 참 소질 없던 서희는 이마에 땀이 나면서까지 수를 끝까지 하던 장면이요.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제 삶을 살고, 아이를 키우며 매번 생각하는데, '인내'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절제', '인내' 이런 단어들이 살아갈수록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망해서 고향 돌아온 사람은 우리가 청해야 겄지마는 잘 돼가지고 고향 온 사람은 그쪽에서 찾아야제.
만내서 씬 술 한잔이라도 나누어 묵는 기이 친구 된 우애 앙이겄나."
밭에서 거름 주던 친구가 오랜만에 평사리를 찾은 석이(물지게꾼에서 선생님이 된 사람)를 부르며 했던 말입니다. 정말, 이런 주옥같은 대사가 이 책에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 사는 이치가 아닌가 싶네요.
"온갖 잡것들이 농촌으로 들어가고 나오고 뿌리를 내리서 수백 년을 지킨 토지가 이놈 손 저놈 손, 빼앗기고.."
이런 문제를 막고자 맨 처음 '경자유전(농사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한다는 뜻)'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49년 농지개혁 이후 토지제도의 근간으로 삼아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에 명시되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이 제도의 폐단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농촌 지역은 경자유전만 되기 때문에, 농지는 인플레이션 방어가 전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값이 다 올라도.. 농지만은 정말 말도 안 되게 더디게 오르고 손바뀜이 잘 되지 못한다는 단점입니다. 이것이 도시와 농촌의 빈부 격차를 더 심하게 만들고,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제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지나가는 넋두리였지만, 저 문제를 여실히 느꼈기 때문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명희의 연적(?) 홍성숙이 등장할 때만 해도 '홍 씨'에 대한 느낌이 없었는데, 홍성숙의 언니(양소림의 모)와 함께 '홍 씨 부인들'이라고 칭해질 때는 저도 모르게 조준구의 처 '홍 씨'에 이어 홍 씨가 두 번이나 등장한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알고 보니 그들이 모두 먼 친척으로 같은 집안이었다는 것이 이 소설이 갖는 매력 같습니다. 한번 등장했던 인물이 한참 후에 다른데서 엮여서 등장하는데, 누군가의 사라짐이 아쉽다가도 어느새 다시 그(주갑이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이 소설이 재미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조준구와 명희의 남편 조용하의 집안은 관계가 없는 건지도 궁금해졌었네요.
10,11권을 읽으며 참 토지가 점점 깊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12권도 완독이 목표지만, 토요일까지 완독을 못한다 해도 후기는 남겨보겠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이 은근 기대가 되네요,,!
새로이 함께하실 4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모두모두 풍성한 25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
노트북님 11권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는 지금 6권 읽는 중이라 11권의 내용을
보니 생소한 인물들도 많네요.
그 시절에 사회주의 이념을 접한 이들에게
그 이념이 얼마나 희망적으로 느껴졌을까
잠시 상상해 봅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차별이 있는 신분제도하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유토피아 같았을듯
합니다.
그리고 신분뿐만 아니라 성차별로 인해
여성이 사회에서 누릴수 있는 지위가 제한
되었으니 자연적으로 한 집안에서 여성은
항상 내조를 하거나 희생하는 쪽이었지요.
연인 사이에서도 그런 일들이 흔히 있으면서
출세한 남자에게 버림받는 일은 토지에서
뿐만 아니라 근현대 역사속에서도 많이 있었으니까요.
여권신장이 많이 되어서 사회 고위직에
여성이 점차 늘어나면서 부터 여성만 희생하는
쪽이 아닌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키워주는
쪽으로 이젠 사회도 바뀌었으니
그 시절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네요.
제가 회사다니던 시절에도 승진에서
여자는 많이 배제되었고,
그래서 저도 남자 동기들보다는 늦게 승진하게
되어서 속상했던적이 몇번 있었지요.
그러나 노트북님이 말씀하신 '인내'의 힘이
나중에는 더 큰 작용을 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저는 다음주 6권 완독후 후기 남기겠습니다.^^
이번 후기도 여러가지 주제로 얘기해주셔서 무지 풍성한 느낌입니다.
우선 사회주의에 관한 이야기는 사회주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저로서는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적대적으로 생각했던 사회주의라는 개념이 그 당시에는 어쩌면 합리적인 사상으로 느껴질수 있었을거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사실 사회주의 책을 읽어본적이 없지만 그 책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에게서 그 사상이 이론적으로는 꽤 합리적이고 평등하게 느껴져서 호감을 살수도 있는 측면이 있다는 말을 들었었습니다.
지금이야 자본주의와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지만 처음 그런 사상을 접해보는 사람에게는 홀릴수도 있는 부분이 있었을거란 생각이 들면서 이 책에서 그쪽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이해할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잘못된 인식으로 북과 남으로 갈라지는 우리 민족의 불행이 그렇게 시작되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숙희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것 같습니다.
가난한 연인의 학비를 대는것은 꽤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비춰질수있고 그 학비를 받은 자가 그 사랑을 깨면 욕을 먹는 수순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그 당시에는 꽤 많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랑은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일로 인식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사랑도 평등해야 안전하다는 인식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숙희의 사랑이 거짓이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 돈을 받은 정윤에게도 나름 이유와 정황이 있었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누가봐도 이루어지기 그리고 지속되기 어려운 사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이 온전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일이 참으로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할 얘기는 많지만 여기서 다 하기는 어려운것 같아 나중으로 미루겠습니다. ㅋ
저도 후기를 쓰면서 놓치는 부분이 많다는 걸 다른 분들의 후기를 보면서 느낍니다.
그런 부분을 써주시고 얘기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오늘 후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