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노트북 입니다.
"명문거족의 딸들은 기왕의 누려온 그 특권으로 해서 새로운 학문도 시집가는 혼수같이 되어 전과 다름없는 며느리 아내로 낙착이 되었지만 그럴 수 없는 계층의 여자들은 오히려 신분이 떨어져 버린 느낌이야."
명희에게 여옥이 하던 말입니다.
저는 토지를 읽으면서 놀란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일제치하에서 친일파를 제외하더라도 조선인 모두가 못살았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시절에조차도 명문귀족의 자제들, 경제력이 있는 자제들은 해외유학을 포함한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 시절에 조차도 명문귀족(부유한 집안)의 딸들은 시집갈 때 친정으로부터 밑천을 받았으며, 자신의 배경(집안, 재력, 교육정도)에 맞는 상대를 만나 그 생활을 영위하는 풍토는 동일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시절에는 (일부 친일파를 제외하면) 모두가 못 사는 줄 알았고, 여성인권이 신장되기 전이기 때문에 소위 있는 집안에서도 딸들은 교육의 기회나 재산에 대한 권리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았습니다.
아마도 제가 듣고 자란 말들에 따라 고정관념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 이라며 말씀해 주신 저희 부모님의 말씀에서만 봐도, 딸들은 교육의 기회나 재산상속의 기회가 없는 그런 시대였다고 들었습니다. 다 자라고 보니,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고.. 저희 부모님 두 분이 자라오신 환경이 그것이었던 거구나. 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런 사례가 그렇지 않았던 사례보다는 많았을 것 같습니다.
토지에서는 제 할머니, 부모님께 전해 들은 이야기. 없이 살던 시절이 너무 애틋하게 나와서 가슴이 절절합니다.
그런 시절 사람 간의 정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꼭 향수(?)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어떠면..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인지하게 된 것은, 제가 이런 이야기에서 '향수'를 느낀다는 것 자체가.. 저희 부모님, 특히 친가 친척분들과 아버지께 듣고 자란 그런 시절의 애틋함과 비슷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평사리 주민들의 그런 감동스런 이야기들을 읽다가 이렇게 명문 거족의 집안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라가 망한 속에서도 잘 먹고 잘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것인가? 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굳이 친일을 하지 않더라도요. 서희가 재산을 다시 축적한 과정에서 서희는 사재기와 장사를 했었고요. 조선 상류층은 누구라도 알고 있던 조용하, 친구들의 옥바라지와 재판과정을 도운 황태수는 사업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먹고살만한 재산이 있다면 최대한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자식교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도, 자식 교육을 위해 미국과 일본으로 유학을 보낸 분들이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런 분들이 선구자가 되어 나라 경제의 초석이 되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비단 토지나 이광수의 소설이 아니더라도 어떤 책들을 읽더라도 자본을 축적한 사람들의 공통된 습성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은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그것이 가장 쉬운 부의 대물림이자 보존하는 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 겁니다.
지난 후기에서 말씀드렸던 계층 상승자와, 부와 지위의 상속자들 모두 자신들과 윗세대의 경험으로 '교육'이 가지고 있는 힘을 알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언뜻, 교육을 받은 것은 분명 값진 것이고, 맨 위의 여옥의 말이나 명희의 사례와 같이 자신들의 특수함을 증명하듯 혼수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학문한 여성이 그렇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어려운 환경에서 성공한 스포츠 선수의 아버지 인터뷰 방송이 있었습니다.
월드스타급이었던 그 선수의 아버지께서 며느리감으로는 꼭 순대국집 딸을 맞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이유를 물어보니, 순대국집은 항상 바쁘기 때문에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을 테니 그런 여자를 며느리로 맞고 싶다고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분의 그 며느리 취향(?)은 당시 그 선수가 특히 인기가 있던 시절 공공연히 유명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 만으로도 그 선수 아버님의 가치관과 살아오신 방향이 어느 정도 가늠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평생을 성실,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배워 왔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가 그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처럼요.
일을 해서 먹고사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고,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충격을 받은 사실 중에 하나가, 제가 가진 그 가치관과 사고 모두가 특정 층(전형적인 중산층 계층)의 아비투스였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업무 성과에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소모적이라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는 또 그렇게(열심히) 살지 않는 것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0,30대에는 몰랐지만, 40을 넘기며 이 모든 것에 눈을 다시 떴습니다. 삶에 있어서, 어떠한 것도 옳다 말할 수 없고 가치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요.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는 이질감으로 시작하는 적대감은 그냥 개인이 추구하는 목표, 살아온 경험,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물론 모든 것은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 한해서 허용되겠지만요.)
위의 스포츠선수 아버지 이야기에서처럼, 누군가는 음악을 하거나 미술을 배웠던 여성을 며느리나 배우자로 좋아하는 반면, 또 누군가는 그런 부류의 여성들을 혐오에 가깝게 눈살을 찌푸린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가지는 모든 취향 하나하나가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아비투스가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재력으로 딸이 고상한(?) 교육을 받고, 또 그런 생각이 통하는 상대 집안의 배우자를 만나 자신이 딸에게 제공한 그 삶을 그대로 누리길 바라는 부모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쩌면, 능히 그런 여성이라면.. 이 정도는 바랄 것이다.라는 무의식적인 부담으로, 누군가는 너무 좋아할 그 혼처를 먼저 손사래 치며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부모가 자신에게 제공했던 그 교육의 혜택으로 자신이 이만큼 살고 있고, 또 그 삶이 대체로 만족스럽고 자신의 자식도 그런 방식으로 살길 바라는 사람들은 똑같이 교육에 열을 올릴 것입니다. 또 누군가는 그런 소모적인(?) 교육 없이도 성취했던 경험, 또는 그것이 다가 아닌 소중한 가치들을 경험한 사람들은 교육에 극성인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을 테고요..!
누군가는 직장에서 업무 외의 인간관계 또는 적당히 업무 하며 개인의 삶에 치중하는 사람들을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고 충돌할 수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업무에 기를 쓰는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몰두하는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또 반대로 인간관계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업무에만 기를 쓰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생각합니다. 서로가 생각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물론 승자는 업무와 인간관계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이겠지요. 그래서 직장에서는 그 사람의 (업무와 사람에 대한) 태도 만으로도 그들의 인성뿐 아니라 야망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아비투스들은 살아가는 방식이 되고, 우리의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삐에르 부르디외는 특정 계층들은 그 계층만의 아비투스를 가지며 그 간극이 클수록 서로 다른 아비투스는 서로가 서로를 싫어한다는 것을 잘 정리해 준 분입니다.
일명 '극혐'에 대해 누군가에게 극혐의 감정을 느끼는 일이 있다면, 잠시 이성을 가다듬고 왜 내가 그를, 또는 이 부분을 받아들이기 힘든가? 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성향차이가 존재할 것이라는 것과, 또 그 성향 차이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성장과정의 경험과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게 비판적 수용을 못하고 절대적으로 수용한 어떤 가치와 자세에서 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에게 호와 불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고, 아마 내가 극혐인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도 극혐으로 생각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또 그렇게 온통 외톨이일 것 같은 사람도, 주변에 멀리나마 짝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두 사람, 계층 간이 갖는 특성이 물과 기름처럼 나뉘는 것일 것입니다.
토지를 읽으며 평사리 주민부터 서울의 또 다른 지식인, 자본가 층에서 이루어지는 혼사부터 삶의 모든 형태에서 이러한 아비투스를 느끼게 하는 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정리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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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장의 양아들이 낳은 손자 김범석은 어려운 환경에서 공식적인 교육은 못했지만, 책과 사색을 좋아하는 그만의 논리와 깊이로 서희의 아들 윤국도 그를 존경합니다. 오히려 서울의 지식인들과의 대화에서도 채우지 못했던 통찰을 김범석을 통해서 느끼는 것이지요. 그래서 소설에서는 김범석의 말에 신뢰를 더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잘 들어보면, 김범석의 가르침조차도 사회주의 사상이 심어져 있습니다. (아마도.. 소설이 더 진행되다 보면, 초야에 묻혀있는 지식인 김범석도 결국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농촌이 수호되기 위해서는 경작이나 수확의 균등을 실현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농민들이 상업적 제반요소가 농촌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면 그것들이 농민들의 자존심과 존엄성 그것을 훼손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범석과 같은 생각들, 그런 관념들이 실제로 오랜 세월 동안 농민들을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을 편들고 싶진 않지만, 냉정히.. 일본은 농보다 상이 위에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우리보다 더 빨리 잘 살게 될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서희나 조용하, 황태수 등의 인물들이 자산을 축적하기 위해 '상'을 선택한 것처럼요.)
그것은 현실인 것이니까요. 농은 한 사람의 노동력으로 이루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농을 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고용의 형태로 한 생산업체에서 노동집약적인 작업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고서는 막대한 자본을 들여서 규모의 경제로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형태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농업인은 상업과 다이렉트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통에 후려침만 당하는 것이 아닌, 자체적인 판매구조(상업)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노동집약적인 고용이나 자동화설비를 꾸준히 감당하기 힘들 수 있으니까요. 아마 토지의 시절 그 과거에도 다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특정 계층은 이래야만 하고,, 하는 사상은 어쩌면 굴레를 만드는 것일 수 있겠단 생각입니다. 여성은 남성이 잘 되게 하기 위해 성심성의껏 내조를 해야 한다. 또는 부모와 상전(양반), 임금에 충성해야 한다. 농민은 상업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막아야 한다. 설령 그들의 존엄성을 생각한 선의의 굴레라 해도 그런 굴레가 누군가의 가능성을 펴보지도 못하고 나락으로 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범석의 긴 가르침을 듣고 이 말을 듣고 혼자 생각하는 윤국은 '지주는 나쁜 것이다.'라고 외칩니다.
저도 동서양의 노예제도만 생각하면 그 시절 노예들의 삶이 어떠했을지.. 정말 자신들의 안위를 유지하기 위해 극단이기주의의 제도를 만들었던 그들에 화가 납니다. 하지만, 만약 당시의 지주와 현대의 고용인들을 동일시하여, 고용인들을 혐오하는 사상으로 커지면 그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자본주의 세상에서 부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 '고용'인 것은 맞지만, 현재는 특정신분만 고용을 할 수 있는 세상이고, 모두가 서로의 상황과 니즈에 맞는 계약 관계니까요..! 물론 약자를 지키는 노동법도 중요하겠지만요. [토지]를 읽으며 곳곳에서 발견하는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도 14권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딸기님과 속도가 벌어지는 것은 죄송하지만, 한 권에서 여러 편의 후기를 쓰는 이점도 있네요 ^^: (죄송합니다..^^:)
저는 처음으로 원가족만 함께하는 여행을 떠납니다.
동생이 처음 결혼한 이후로 지금까지 쭉 하나 둘 배우자가 생기며 한 번도 저희 원 가족만 모여본 적이 없었네요.
어떨지 설레고 기대가 됩니다.^^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노트북 드림.
가족 여행 중이시군요 노트북님
제고향 (강릉)쪽으로 가셨네요 ㅎㅎ
저도 이번 주말에 강릉에 갈 예정인데
바다를 볼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집니다. ㅎㅎ
이번 여행이 노트북님께 의미 있는 여행이었길 바랍니다
지난주에 이어 아비투스에 관한 노트북님의 후기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무의식적 사회화 라고 하니
우리가 아비투스 라는 단어는 모르지만 아비투스가 의미하는 것은
삶 속에서 이미 깨우치고 알고 있기에
지금도 자녀들의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노트북님의 말씀 처럼 아비투스에 관련된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 보았더니
자기계발서로 많이 나와 있더라구요. 그래서 좀더 이론서 쪽으로 찾아 보려고 합니다.
예전에도 책을 읽고 북토크를 하긴 했지만 대화로 후기를 나누는 것과 다른게
글은 말과 다르게 좀더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있고 훨씬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후기글 잘 읽었습니다^^
노트북님, 후기 잘 읽었습니다^^
우연히 딸기님 후기 댓글에서 노트북님의 얘기를 읽게 되었는데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토지를 읽고 나서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간접적이지만 그 시대를 경험하신 분들의 모습을 전해 들었다니 신기 할 따름입니다.
친일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유한 집안이 있었다니😲
보통은 힘들고 억울하고 분통 터지고 헤쳐나가야 하는 독립을 위한 이야기들이 많았었기에
생소한 느낌마저 듭니다.
저는 솔직히 그 시절 사람들의 이야기도 토지 후기를 들으면서 알게 되었거든요.
특히, 직장에서의 이야기에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업무와 개인적 시간의 비율이 사람마다 다르고 우선순위도 다 다르기 때문에 오는
마찰을 지금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업무를 하는 방식이 FM이다 보니 주변 동료들이 조금 힘들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은 초반보다 많이 내려놓기는 했지만 위치가 올라갈수록 책임감이 커져 더 잘 해야 된다는
부담이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노트북님의 글을 읽고 있으니 자연스레 아비투스에 대해 찾아 보았습니다.
아비투스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교육이며 무의식적 산물이라고 하니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게 비판적 수용을 못하고 절대적으로 수용한 어떤 가치와 자세에서
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각자의 아비투스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것이 큰 의미를 갖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 간의 호불호와 극혐에 대해 읽고 있으니 갑자기 옛날 에피소드가 하나 떠오르네요.
제 친구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그의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지금 헤어지게 된 게 정말 다행이라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 사람이 너에게 있어서는 그런 사람 이였을지 모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행운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거든요.
보통 여자애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할 때는 공감해줘야 한다는 데
그때는 제가 왜 그렇게 냉철하게 반응했는지 나중에서야 작은 후회가 생기더라구요.
다행히 지금도 그 친구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ㅎ
같은 결인지 잘 모르겠는데 온통 외톨이일 것 같은 사람도,
주변에 멀리 나마 짝꿍이 있다는 부분을 읽고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주도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글이였습니다.
아직 여행 중이신가요?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라며,
안전 귀가 하세요!😉
딸기님~^^ 오늘도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
방금 전에 딸기님의 댓글에서 토지 후기를 읽으며,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걸 알게된 것에 대해 실컷 썼네요.
저도 이런 저런 책을 읽으며, 제 삶과 세상을 다시 보게 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이전과 다른 것을 느낄때마다 그런 깨달음(?)을 또 느끼고 싶어서 그런 책을 찾는 것 같습니다.
토지는 진심.. 읽으면 읽을 수록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충분히 누구에게라도 추천할 수 있는 소설 인 것 같네요.
저 역시 이 소설 끝에 제가 어떻게 정리를 하게 될지가 궁금합니다. ^^ (이 이야기는 딸기님 후기에서 쓰신 말씀 입니다.)
재밌지만 혼자는 어려운 이 소설을 함께 읽을 수 있어서 넘 감사합니다.
있다가 강원도 사진 공유드려볼게요.!
감사합니다. ^^
노트북 드림.
오늘도 좋은 후기를 올려주셔서 여러모로 저도 생각을 많이 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긴글 쓰시느라 애쓰셨습니다. 노트북님^^
여러 이야기가 나와서 얘기 마다 저도 할 얘기가 많은데 다 하지는 못할것 같습니다. 말로 한다면 몇시간은 떠들수 있을 텐데 말이죠. ㅋ
저도 그랬습니다. 일제 치하에 있는 조선의 상황이라는 것이 어느 쪽에서는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고 돈만 있다면 유학도 자유로이 보낼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놀라웠었습니다.
우리가 교과서나 티비 영상을 통해 전해들었던 그 당시의 상황은 피박받는 불쌍한 조선인의 모습 그것 뿐이었으니까요. 그 편견을 이 토지가 깨뜨려주네요.
물론 역사를 더 공부했더라면 어디에서는 발견했을수 있는 사실들을 이 토지에서 통해서 저의 부족한 역사 지식을 확인했던 시간었기도 했습니다. 역사서를 좀 더 읽어야겠다는 결심도 함께 하게 됩니다.
여자들의 유학도 자녀교육의 일환이라기 보다는 시집가는 스펙으로 여기는 돈 많은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서 이러한 풍조가 지금도 어디에선가 분명히 있을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건 시대 불문 돈이 많으면 자녀도 그들의 부를 누리게 하고 싶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 또 그런 사람들과 연을 맺는 것이 자신들에게 가장 안전할거라는 본능같은 생각이 그런 행태를 낳은것이 아닐까... 또 돈으로 할수 있는것이 그들이 하기에 가장 쉬운 일이었을 테니 그런 행태는 지금도 이어진다 생각해요.
극혐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 일반화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눌려왔던 감정이나 생각들이 시대가 변하면서 폭발하듯 드러나면서 서로에 대한 생각들을 거침없이 밝히는 젊은이들(주로)의 행동이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반대 생각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 상대를 몰아붙이는 행위는 분명 폭력이니까요.
또 아비투스라는 말에 대해 정리도 해주셨는데요.. 아비투스라는 말의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교육을 통해 상속되는 무의식적인 사회화를 의미하는군요.
생각해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입니다. 사회학 관련 책은 잘 읽어보지 않아서 좀 생소하지만 어느정도 이해는 됩니다.
내가 속해있던 사회와 문화를 되짚어보게 되고 내 안에 교육되어진 것들을 들여다 보게 되네요.
막연히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할지를 결혼전에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비슷한 환경과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것은 그런 사람에게 이질감을 덜 느낄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것이 나를 안전하게 살도록 해줄거라는 안정장치처럼 느껴졌거든요.
나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의 결혼은 실제로 결혼이라는 것을 해서 살고 보니 정말 쉽지 않을거라는 걸 알겠더라구요. 그래서 부모들이 자식이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을 선호하게 되고 그 마음을 저도 공감하지만
어디까지나 자녀의 결혼은 본인들의 선택안에서 가능한 거라 제가 나서서 뭐라 할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감당할수 있다면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토지를 통해서 이렇게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다는게 놀랍기만 합니다. ㅎ
후기 공유의 선한 영향력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얘기는 앞으로도 그 끝을 볼 수 없을만큼 무궁무진할거라 생각이 드니 즐겁기 그지 없습니다. ㅎ
이런 시간이 일주일에 한번씩 있다는 것이 제 삶에 큰 즐거움입니다.
오늘도 너무 좋은 글 감사했습니다.
본 가족들과의 여행이라니...너무 기대가 되시겠네요.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