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뒤로 갈수록 얘기가 정리되어가는 느낌입니다.
초반에 젊었던 인물들이 나이가 들고 생을 정리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살아온 세월에 대한 넋두리가 많아지면서 토지가 의도했던 인간의 삶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 되는것 같습니다.
아들의 성공을 위해 애썼던 송관수의 삶. 그리고 그의 아들 송영광.
하지만 영광은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주지 못했습니다.
영광은 외할아버지가 백정이라는 이유로 학생때 좋아하던 강혜숙과의 연예는 반대에 부딪혔고 그로 인해 퇴학까지 당하면서 출신에 대한 증오심,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가출을 합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갔지만 학교를 나와 노동자의 삶을 살고 결국엔 극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며 전국을 떠돕니다.
영광의 친구 환국을 통해 영광의 소식을 전해들은 송관수의 가슴은 미어집니다.
자신도 겪었던 출신의 아픔이 아들의 삶에도 남아있다는 사실에 그렇습니다.
전국을 떠돌다가 아버지가 계신 신경에 오지만 정리되지 못한 마음으로 만나지 못하고 떠납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호열자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홍이도 그렇고 강포수도 그렇고 이들의 출신에 대한 한은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인가 봅니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죄밖에 없는 이들의 삶은 너무 고달픕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다니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싶습니다.
무슨 예감이 있었던 걸까요. 영광의 아버지 송관수가 집을 떠나 호열자를 앓으면서 홍이에게 남긴 유서가 있습니다. 전 왜 유서를 가족이 아닌 홍이에게 남긴걸까 의문이 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보고서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죽기전에 자신의 마음을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마음을 홍이는 이해해줄거라 믿었던거죠. 털어놓는 대상이 가족이 아닌 남이었다는 사실이 이상했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족은 내가 보호해주어야할 존재로 인식이 되었던건 아닐까 하구요. 그 당시 가장들은 그런 마음으로 살아갔던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죠.
그의 유서입니다.
'내가 아무래도 심상찮은 병에 걸린 것 겉다....와 이렇게 맴이 담담한지 참 내가 생각해도 이상타. 내가 죽으믄 모두 고생만 하다가 갔다 할 기고 특히 영광이 가심에는 못이 박힐 기다. 그러나 나는 안 그리 생각한다. 그라고 후회도 없다. 이만하믄 괜찮기 살았다는 생각이고, 장돌뱅이로 장바닥을 돌믄서 투전판이나 기웃거릴 놈이, 하늘 밑의 헐헐단신 계집이나 어디 하나 얻어걸리겄나. 그렇다믄 많이 출세한 거 아닌가. 새삼시럽게 지나온 길을 돌아보이 정말 괜찮기 살았구나 싶다...여한이 없다... 그라고 내 내자가 불쌍할 뿐이다. 그러나 본시 심성이 착하고 가는베 재놓은 듯키 말이 없는 사람이니 크게 남한테 폐가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 사람을 당부한다고 전해주라. 홍이 니한테는 신세 많이 졌다. 고향 산천이 보고 싶고 작별하고 싶은 얼굴도 많다마는 어차피 사람은 혼자 가는 거 아니겄나.'
유서가 편안해 보여서 다행이었습니다.
생을 마감할 때 이정도의 마음이면 됐지 싶습니다. 가족을 부탁할 사람도 있고 스스로 잘 살았다 생각하는 마음이면 이 생은 충분했지 싶습니다. 영광이와의 마음의 고리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다 싶은 그 마음이 너무 짠해 마음이 그랬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모두 그렇게 생을 마감할 날이 오겠죠. 저도 저 정도의 유서를 남길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지 싶습니다.
다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누군가에게 우리 가족을 지켜달라 말할수는 없겠지만 자식들은 이만큼 키워놨으니 스스로도 잘 살아갈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글여행님 후기에서 길상이 얘기가 나오는 것을 읽었습니다.
서희와 결혼을 했지만 자신의 길에 대한 갈피를 못 잡는 길상의 불안한 마음을 써주셨죠.
그 이후에도 길상의 마음이 계속 궁금했었습니다.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길상이의 마음을 쫓아가며 막연히 안쓰러웠던 그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애써 서희와의 혼인을 회피했으며 회피하기 위하여 가스댁 옥이네와 동거까지 했던 길상은 잠든 작은 새와도 같은 서희에게 꺽이고 말았다. 결국 길상은 헌신할 것은 맹세하였건만 다 이루어진 서희에게 더 이상 헌신할 필요가 없게 되고 오히려 그에게 무거운 짐만 지게 했다...'
'절에 와서 관음탱화를 그린 것도 입적한 지 오래인 우관대사 뜻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귀소본능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길상은 자신과 동류였던 그 무리에 대한 그리움이 잊혀졌던 것은 아니었다. 아픔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심신을 저미듯 그렇게 살다간 김환, 우관이며 혜관 관수 석이 용이 영팔 노인 그 밖의 수많은 사람들, 용정촌 연해주의 그 끌끌한 사내들, 그 뜨거운 피를 잊지 못하는 것이며 그들로 인하여 끝없이 인내하고 협조하는 가족들마저 낯설어지는 일이었다.'
결국 서희를 사랑해서 결혼을 했다기 보다 해야할것 같아서 한건 아닐까 그래서 결혼 이후 서희가 더이상 자신의 존재의 의미가 희미해지면서 가슴에 구멍이 난것 같은 감정을 갖게 된건 아닐까 그래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그 그림은 아들 윤국이 보게 됩니다.
윤국은 "아버지는 참 외로운 분 같습니다." 라는 말을 합니다.
이에 소지감 말합니다.
'네 아버지 길상이 이 그림을 그린것은 종교적 의식이며 원력을 걸고 한 예불과 같은 의식이었다. '
그림으로 마무리되는 길상의 이야기를 듣고 뭔가 오랜 숙제를 해결한 느낌이었습니다.
타의에 의해 틀어졌던 인생이 결혼과 함께 방황이라는 터널을 통과하고 결국 자신에게 귀소하게 되는 길상의 모습을 본 듯했습니다. 이 그림으로 길상의 남은 삶이 덜 불안하고 조금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는 건 정답도 없고 의미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삶에 의미를 두려고 애쓰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뭔가를 무던히도 찾았던것 같습니다. 살아가는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거야 하고 말이죠. 그런데 그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끊임없이 뭔가를 찾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스스로가 만든 나의 굴레일 뿐이었습니다.
마음을 편안히 놓고 주어진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좋습니다.
남은 삶은 이렇게 살아가려 합니다. 책이 있어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참 다행입니다. ㅎ
딸기님, 후기 잘 읽었습니다 ^^
'끊임없이 뭔가를 찾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스스로가 만든 나의 굴레일 뿐'이라는 말이 현재 굴레 속에 있는 저의 상태를 말하는 것 같아 뜨끔했습니다.
사람은 욕심이 많아서 살아가는 동안 바라는 것,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세상을 등질 때는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되고, 마음을 비울 수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이 평안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좀 더 편하고 힘들지 않는 삶을 누리지 못한 부모에게 죄스러운 자식들이 입장에서 바라본 부모의 삶과 힘껏 세상을 살아온 부모의 눈에 비친 자신의 삶이 달리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송관수처럼 마지막에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도
삶이 끝나는 순간에 눈엣가시처럼(ex 장애를 가진) 밟히는 자식이 없다는 것도
우여곡절이 많은, 고달프기만 했던 삶일지라도 애쓰고 애써본 삶을 살 수 있었다는 것도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행운으로 불릴만한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삶의 끝에서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행복을 논할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완벽하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 그들은 삶의 마지막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어떤 삶이든, 어떤 순간이든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송관수처럼 마지막에 오는 행운을 다 잡았더라도,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지 않는다면 그처럼 담담하게 마침표를 찍지 못하지 않을까요.
어떠한 위치(딸, 아내, 엄마 등)에서 살아간다는 건 순차적인 것처럼 계단을 하나씩 오르다 보면 언젠가 생을 마감하는 우리 부모님들의 위치에 올라서야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직은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저로서는 과연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세로 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치열하게 살다 보면 언젠가 딸기님처럼 굴레를 벗어나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살아갈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트북님의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은 그동안의 글에서도 흠뻑 느낄수 있었지만 오늘 글을 읽고 정말 부러운 부녀간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듭니다.
아버님 말씀에서 송관수의 유서 내용이 중첩되는듯 합니다. 노트북님 아버님은 노트북님이 보시는 것과는 좀 다르게 이미 충분히 행복했다 생각하시나 봅니다. 그마음이 너무 멋지십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지 말고 아버님의 눈으로 그 삶을 바라보면 분명 더 깊은 뭔가가 있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아버님이 남기실 책들과 노트북님이 아드님에게 남기실 책들에는 공통적으로 사랑이 있습니다.
책에 대한 사랑 그리고 내 아이에 대한 애정 말입니다.
책으로 연결되는 이 관계들이 어찌 이리 사랑스러울까요.
노트북님은 이미 아버님께 소중한 유산을 물려받을 모양입니다.
이보다 더 귀한 유산이 있을까 싶네요.
노트북님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사랑이 느껴져서요. ㅎ
딸기님 안녕하세요
남들이 보기에는 안타까운 삶도 자신은 그만하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있는 그 마음이 저에게 많은 위로가 되네요
최근에 큰 아이를 품 안에서 밖으로 내어 놓으면서 생긴 허전함과는 별개로 드는 생각이 내가 이제 서서히 늙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렇게 끝을 향해 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그 끝에서 저도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구요
글여행님의 후기에 있던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에대한 해답도 생각헤 보게 되고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도 고민하게 되고
그럼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반문하게 되고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나만의 해답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찾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
딸기님의 후기글 댓글에 제 넋두리만 늘어놓았네요
저도 딸기님 처럼 언젠가 많은 걸 내려놓고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리라 기대해 봅니다.
저에게 위안이 주는 후기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딸기님, 오늘 후기도 딸기님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무나 잘 읽었습니다.
관수의 유서에 마음이 뭉클하네요,,
용이가 뇌졸증으로 쓰러진 후 누워있던 시절, 관수가 토종닭을 가져와 홍이에게 준 적이 있었지요. 푹 고아서 아버지께 드리라고요,, 그때 관수가 용이를 보며 그 모습이 곧 자신의 미래의 모습 같아 씁쓸해 했던 장면이 생각닙니다.
딸기님 말씀대로.. 우리 모두가 겪을 미래인데요.
저희 부모님 생각도 나고요..! 많은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분을 물어보면 부모님을 꼽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저희 부모님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저는 절대로 살아내지 못할 삶을 사신 것 같아 위대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중년 가까운 나이가 되니 부모님은 살아오신것 만큼의 댓가를 못 누리셨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모든게 다 좋았던 삶이었지만 단 한가지를 간과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최근 몇 년 부모님을 설득하기도 하면서 제가 느끼는 아쉬움을 말씀드렸었지만, 아버지께서는 항상 니들은 그런 안타까움을 가질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정말 한 세상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맨손으로 시작해서 오남매를 잘 키워서 내보내고 이렇게 노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여생을 보내는데 무엇이 한스럽고 아쉬울게 있겠느냐 하셨습니다.
"이만하믄 괜찮기 살았다는 생각이고."
관수의 이 말이 너무나 마음에 와 닿네요,,! 아버지는 왜 이리 욕심이 없으실까,,! 왜 자신의 노력에 대해서는 목표도 있으시고 정말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시는 분이신데, 왜 그 외에 다른 욕심은 없으실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관수의 저 말을 읽는데, '그래..! (우리 아버지) 정말 잘 사셨지,,!' 하는 마음이 드네요.
그리고 저 역시, 마지막에는 '이만하면 잘 살았다.' 그거 하나 느끼고 가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길상의 그림을 보며 아버지의 외로움을 느끼는 윤국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그림을 볼 때면, 작가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 작가가 아버지 이고 외로움을 느꼈다면, 자식은 어떤 마음일까요.
부모가 남긴 무엇을 보며 훗날 자식이 느낄 그런 감정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아끼시는 책이 있는데, [설원] 입니다. 너무 두껍기도 하고 대부분이 한자라서 저는 읽기 힘든 책입니다.
자세히 본적은 없지만, 여러 색의 볼펜들, 형광펜, 메모가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아버지는 정치인이라면 오히려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읽고 읽고 또 읽고 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언젠가 그것 만큼은 제가 물려받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먼 훗날 아버지께서 남기신 메모들을 읽으며 진정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될 것 같고요.
저도 아들에게 책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책을 빌려주기는 힘듭니다.
저의 책은 일기장과 같기 때문이지요.
이 모든 걸 아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습니다.
엄마도 하나의 사람이었다는 것. 모든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엄마는 이 시기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언젠가 아들이 아무때나 책을 펴 들었을 때, 두고 두고 엄마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길상이 오랜 방황후에 자신에게로 귀소하는 것을 보며, 그것이 인생이구나.
부모님도 그러신 거고, 저도 그렇게 살게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60대 이후에 어떻게 살지도 진심 궁금해집니다.
딱 지금의 연장선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왠지 지금의 제 모습이 진짜 제 모습일 것 같아서요.
위에서 '이만하면 잘 살았다.' 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저는 요즘 속세에 찌든 고민을 많이 하고 삽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과 저희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요즘같은 때에 어찌해야하나 하는 고민들이 많이 생기네요.
저는 오늘 밤에나 후기를 올릴 것 같습니다,,
있다가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