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노트북 입니다.
3월 2주 후기가 이렇게 늦어지게 된 점 정말 죄송합니다.
지난주 초에 시작한 일이 있었는데, 3일을 잡고 시작한 건데 끝나지가 않았네요,,
끝을 안 맺고 중간에 쉬면 다 날아갈 것 같은 일이어서 계속 이어서 하다 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주말도 결국 연장선상이었네요.
그래도 이번엔 14권 완독은 하고 써야 할 것 같아서 더 늦어졌는데, 정말 무거운 마음이었습니다.
요즘 같은 때는 진득하니 책을 집중해서 읽기가 힘들어서 더 그랬던 것 같네요.
14권은 앞의 두 후기에서 썼던 주제 외에 큰 주제는 없었습니다. 여기서는 제가 자잘하게 느꼈던 감정에 대해 털어놓고 싶습니다.
비단 14권에서 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내내 느꼈던 서희의 인품이 돋보였었습니다.
저도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잘 그러지 못해서 그런지, 서희의 사무적인 태도. 필요한 말 이외의 말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살아가는데 유리하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최상급인 두 여인에 비추어 호의적인 말을 들어도 기분 나빠하고 일체의 동요가 없는 것에서 서희의 단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희가 가진 무기이자 장점으로 보였지만, 이후 조용하가 인실을 대면하는 장면에서 혼자 옛 선배가 했던 말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반대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흔히 침착하고 냉정한 사람 앞에서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승복하고 경의를 표하게 되지만, 실제로는 상대적 자기 방어도 함께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침착하고 냉정한 사람은 자신의 패(약점)도 전해주지 않지만, 남의 패도 놓치기 쉽고,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단순하고 필요한 말 몇 마디 이후 상황 파악이 미흡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또한 자연스럽게 사교적이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자신을 어쩔 수 없이 잘 드러내기도 하지만, 또 그 와중에 자연스레 얻는 것도 생기고 이 경우는 득과 실 중에 실은 (편해 보여) 대접을 잘 못 받는다는 것, 그렇지만 반드시 얻는 '득'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러면서도 상대는 이러한 (편해 보이는) 사람들을 휘어잡았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휘어잡지 않았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저도 거의 두 번째와 같은 캐릭터인데, 그렇게 지내면 좋은 것은 '정말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외로 예의 바르고 호의적인 사람을 그 정도로만 간 보고 은연중 본색이 나오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알게 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정말 좋은 분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이고요. 정말 와닿았던 말이 '휘어잡았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휘어잡지 않았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것이었는데, 저는 상대의 그런 저자세로 자신이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놀랍기도 하고, 또 결정적으로 경우가 아닌 경우에 매우 냉정하게 말하면 바로 또 저자세로 바뀌는 사람들을 보며.. '왜 좋을 때 서로 잘하고 좋을 순 없었던 것일까?!'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과 안타까움이 드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양 극의 캐릭터들에 대해 책의 중간중간 묘사하는데, 모두 맞는 말이고 결국 정답은 없다 생각이 들었네요.
그리고 전에 후기에서 쓴 적이 있지만, 토지에서는 참 신분을 넘나드는 사랑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 이전의 신분제도가 와해되는 과도기가 아니라면, 그런 사랑이 훨씬 드물었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그런 시대일수록 자신과 다른 신분을 (사랑할 수 있는) 상대로 여기지 않았을 테니까요. 자신도 모르는 고정관념이 무의식적으로 생기는 그 사랑이란 감정자체를 자라게 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토지]에서도 나오는 '종첩'제도는.. 이런 순수한 정신적 사랑이라기보다는 육욕에 가까웠던 일이 더 많았을 것 같습니다. 모든 건 저의 추측이고 생각일 뿐이겠지만요.
윤국과 숙이도 서로 좋아하는 듯합니다. 저는 맨 처음 윤국이 개울가에서 숙이를 발견한 그때부터 사랑을 예감(?) 했습니다. ^^: 둘이 순수하고 이쁜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 같은 게 생겼었는데요. 항상 단정하고 말없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본때, 인간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많았다는 윤국이었습니다. 거짓이 없고 착한 마음이 가슴에 와닿아서 즐거웠다고요. 그리고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슬픔이 자신에게도 아픔으로 다가왔다고 하죠. 이 모든 것은 사랑하는 감정이고, 숙이는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존재라 생각합니다. 윤국은 그런 감정을 느끼며, "왜 다 같은 비둘기로 태어나서 누군가는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나." 하고 어머니께 되묻습니다.
윤국은 사춘기의 남녀가 빠지기 쉬운 위험을 근심했다기보다, 상대(숙이)의 신분을 염려한다는 것에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길상; 최 씨 집안의 종이 되었지만, 최서희와 결혼한 인물) 이야기를 서희에게 합니다. 아버지와 그 자식들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 그것에 대한 아픔이 숙이를 보며 더 느껴졌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자신도 몰랐던 그 숙이에 대한 감정의 원천을 그것을 계기로 깨닫게 됩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20~30대)에는 그렇게도 저희 아버지 같은 사람이 좋았었네요. 그냥 좋은 환경에서 잘 자란 사람도 멋지고 좋지만,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멋져 보였습니다. 환경이 열악하면 열악할수록, 짊어진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그 사람이 더 고귀하게 느껴지고 끌렸던 것은 그 사람 자체가 가진 매력을 넘어 아마 아버지께서 제게 심어주신 무의식적 심리의 작용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런 사람을 만났고, 그 당시에 제가 세상에서 가장 행운아인 줄 알고 살았네요.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크는 내내 그런 사람들을 높이 사시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더더더 그렇게 믿고 살게 되었었네요. 지금 돌이켜 보면, 아버지는 그냥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하시고,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사시는 엄마도 가장 고귀한 '사랑'을 택한 것이 맞았다는 말씀을 우회적으로 하신 건 아닐지. 그런 잔인한 생각도 하게 됩니다.
아버지와 참 좋은 추억도 많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감정들이 훨씬 컸지만, 지금껏 말하지 못했던 제 가슴 속의 원망이자 응어리 같은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원망'이라는 말은 좀 무색하기도 하지만요.
말없이 응원하시는 줄 알았고, 지지해 주실 거라 생각했던 아버지를 시간이 다시 지나고 나니 객관적으로 보게 된 일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엔 아버지 역시 그렇게 해주시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것이 다가오자, 그것이 안 될 어떤 이유라도 찾고 싶고 잡고 싶으셨던 게 아닌지.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당시의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 시기만큼은, 그것에 대해서 만큼은 참 나쁜 마음들이 올라옵니다.
지금 저의 삶에 감사하고, 평생 이 삶을 지키기 위해 (남편과) 함께 노력하고 의지하며 살겠지만, 아버지께는 참 잔인한 글이 되겠지만,, 제 마음속에서 느꼈던 그 감정들 이후 그때를 돌이켜 보며,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된 그 후의 감정들을 털어놓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글은 남편이 두려워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과 저는 이제는 도저히 떨어트릴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굳건해졌거든요..! 인생의 동지이자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남편도 저희의 이 가정이 깨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소중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남편에게 가장 높이 사는 것. 넓은 마음입니다. 한없이 넓고, 저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포용해 줄 것 같은 사람입니다. 제가 진심을 말하면, 다른 것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제 진심 하나만을 믿고 받아줄 사람이라는 걸 잘 압니다. 남편도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고, 그것으로 저는 오히려 이 사람도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오히려 사람 자체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같은 추억을 가진 저로서는 미안함이 덜해지는 안도를 하기도 했었으니까요.
이것에 만큼은 글로써 털어놓을 수 있다면, 어떤 심리상담보다도 후련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글을 쓸 수가 없네요. 부모님이 상처받으실게 두렵기 때문입니다.
파울로코엘료가 너무나 자신의 아픈 시기에 대해 글로 쓰고 싶었는데, 그 글을 쓸 수 없었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상처받으시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그 이야기는 반드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쓰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셨고,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 그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다행히, 자신의 이야기처럼 고백하지 않아도 쓸 수 있는 어느 한 여성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소설화했고, 아버지께서 살아계셔도 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파울로 코엘료는 자신의 아픔과 사연은 그 여성의 남자친구에 대입해서 독자들의 주목을 우회적으로 피하면서도 털어놓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 같습니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가 그 책입니다. 저는 파울로 코엘료의 그 사연을 읽고 너무 공감했거든요. 저도 다양한 주제, 전혀 상반된 주제의 분위기의 이야기들 모두를 저의 야기로 들려줄 자신이 없기 때문에,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본래 이 이야기는 제가 후기를 쓸 때 쓰려고 했던 글은 아닙니다. 하지만 [토지]에서 둘의 애틋한 사랑에도 주변의 어떠한 이유로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참 사랑이 왜 이리 쉽지 않을까.. 안타까우면서도 그냥 좀 그런 것 생각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말하고픈. 그런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매 후기를 쓸 때마다 이 이야기로 흘러들어 가는 걸 의식적으로 컷 하고 지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좀 쓰고 싶네요. (이전의 인간실격 후기 때처럼.. 실컷 써놓고, 숨김을 할 수도 있겠고요.)
그러면서도 언젠가 제가 제 아들에게 이중적으로 비춰질 그런 순간이 올까?! 지금의 저로서는 그렇지 않길 바라는 그런 상황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 마음을 이해를 못할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오가타와 인실의 사랑도 다른 것 상관 안 하고 둘의 감정만 생각하면 좋겠고, 명희는 조찬하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못 박지만, 저는 차라리 명희와 조찬하가 사랑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상현은 정말 안중에도 없이 잊혔을 텐데요.
그런가 하면, 조용하가 오히려 인실에게 진심으로 끌리는 것에 대해서, 처음으로 조용하에게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명희에게도 반했었겠지만, 명희에 대한 감정은 찬하에 대한 견제심, 본보기 같은 소유욕 같은 것이 함께 작용했기 때문에 그토록 빨리 이혼을 마무리 짓고 매파를 통해 결혼을 했던 것 같고요. 이렇게 인간적으로 권력, 돈으로 못할 것이 없다고 믿었던 자신이, 결국 아무리 해도 얻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작아지는 감정을 느끼는 조용하에게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동생 찬하가 느끼는 감정을 저도 느꼈습니다.
"왜 다 같은 비둘기로 태어나서 누군가는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나."
위에서 윤국이 했던 말입니다.
윤국의 고뇌와 함께, 등장하는 많은 명문 지식인층에서 이는 평등사상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책에서도 나왔던, 초기 사회주의자들이 명문가의 자제들이었다는 것에서, 일명 배부르고, 몸 따시고, 생존에 대한 불안이 모두 해소된 상태에서 오는 정신적 고뇌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 중에 고귀한 양심과 인격을 가진 인물들이 그들이었을 거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풍족하다 하여 모두가 그런 정신적 고뇌에 빠지는 것은 아닐 것이고, 그중에서도 지적 사색을 즐기고, 또 그중에서도 극히 양심적인 박애주의자들 사이에서 그런 사상이 꽃피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관수처럼 자신의 신분에 대한 현실을 깨닫고 타파하려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 틀에 갇힌 신분보다는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그들의 특권을 위해 사상을 만들고 제도를 만든 층이 깨어나는 것이 현실적 실현 가능성이 높았을 것 같습니다.
독자의 이러한 감정조차도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남자 제일주의. 뽐내는 남자들은 여자를 소유물로, 종으로, 아이 낳는 존재로 생각하며 사사건건 여자가. 여자 주제에, 그런 남자치고 잘난 남자 없다."....
"남녀동등을 부르짖는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남자로서 자신이 없고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그런 남성에게 있어서 여자의 존재야말로 자존심의 마지막 보루 같은 거래요. 해서 그거나마 허물어질까 봐서 전전긍긍 필사적이며...".....
이러한 대화 내용이 이 책 중간중간 등장 합니다.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살아보니, 저 말에는 일리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냥 주변에서 제가 봐왔던 모든 분들의 경험으로요.. 멋있고, 능력 있는 남자가 자신의 아내나 여성을 더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본 분들 중에 그냥 (제 기준) 참 별로다.. 하는 분들이 유독 남성우월주의 사상을 많이 가지고 계신 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
이 책에서는 '약자니까 나보다 약한 자가 있어주기를 바라는 심리'라고 표현했는데 그게 참 와닿았네요.
인실이 조선의 문화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조백자를 말하는데, 그윽함, 따스함, 이조 백자가 서양의 가옥, 중국 가옥에 놓여도 역시 그러할 거라 합니다. 그의 말을 읽고 있는데, 문득 그동안 전혀 안중에 없던 이조백자가 저 역시 너무 따듯하게 그려지고, 밝고 햇살 가득한 집을 꾸미게 된다면, 이제는 (아이도 컸으니) 이조 백자를 한편에 놓고 싶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절제된 아름다움을 두고두고 음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끝으로, 명희가 찬하가 아닌 조용하와 혼인하게 된 이유로 오가타는 찬하의 내성적인 성격 탓이라 하고, 인실은 명희의 성격 탓도 있다 합니다. 인실이 명희를 두고, 사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양면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무엇이든 보호를 받을 때는 쉽게, 그 보호가 없을 때는 힘들게 사는. 너무 착하고 더러운 것을 모르고 소극적이고. 그것이 정말 제가 보아왔던 명희를 한 줄로 요약해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이상현을 찾아가기도 하고, 정말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기도를 하기도 했지만, 왜 그런지 명희에게서는 대담함 보다는 소극적이고 숨는 삶이 느껴집니다. 긴 이야기로 읽을 때는 미쳐 명희를 보며 무언가 다짐을 할 계기는 없었는데, 인실의 정리로 다시 한번 너무 여리고 더러운 것을 모르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삶이 굉장히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회원님들. 후기가 늦어져서 정말 너무나 송구한 마음입니다.
주말을 넘기다니요 ㅜㅜ
다시 주말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
노트북님
바쁘신 와중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노트북님의 후기글 잘 읽었습니다.
그사람의 본성을 알려면 자신 보다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 지 보면 알수있다는 말을 들은적 있습니다.
그리고 한 없이 잘 해 주었을때 그 사람의 반응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약자니까 나보다 약한 자가 있어주기를 바라는 심리' 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많이 공감이 가는 말 이었습니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내면이 단단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론 나도 그런 이유로 누군가에게 정리를 당했던 적도 있지 않을까
제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노트북님의 후기글을 읽고 있으면 한번 읽었음에도
토지를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싶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말에 다시 뵙겠습니다.
노트북님, 후기 글 잘 읽었습니다^^
급한 일은 잘 마무리 되셨나요?
누구에게나 사정은 생길 수 있으니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서희 이야기에서 많이 공감이 되었고, 저는 오히려 서희의 그런 모습이 부럽기도 합니다.
인간관계에 많이 지치기도 했고,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과정도 번거롭다고 생각이 드는 요즘인데요,
성격상 계산적이고 사무적이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안되는 사람이라, 사회생활 하는 것이 조금 힘들기도 합니다. 어렸을때 처럼 계산없이 마음을 열고 대하는 게 훨씬 편한데, 요즘에는 작은 말이라도 와전되어 퍼지고, 말을 과장해서 전달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더 조심스러워지더라구요. 결국 사람 사이에는 서로의 진심이 통해야 진정한 인연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진심에 숨은 의도까지 파악 해야 되는 현실에서는 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 힘이 듭니다. 😂
또 관계라는 것이 일방적이면 유효 기간이 짧듯이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를 찾는 것도 쉽지 않죠. 그래서 인생을 살면서 필요한 내 사람은 몇 안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을 때면 씁쓸하기도 합니다.
조금 둔하고 눈치도 없어서 그런지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더라구요.
누군가의 말이 진심 어린 말인지 자신의 이익을 위한 말인지 ....
요즘은 죽이 잘 맞는 동료 한 명이 곁에서 조언을 많이 해주는 편이라 이제 조금 눈이 틔였다고 할까요? 예전보다는 조금 할 줄 알게 되었는데, 알게 되어도 상대방을 가식적으로 대해야 되는 제 모습이 너무 싫어지더라구요.
저보다 조금 어린 친구가 예전에 저처럼 모든 걸 호의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고 사는 게 더 나은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뭐하나 쉬운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님 이야기에서
'결정적인 것이 다가오자, 그것이 안 될 어떤 이유라도 찾고 싶고 잡고 싶으셨던 게 아닌지' 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상황을 다 알 순 없지만)그럴 수 밖에 없으셨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보았어요. 저도 아이들에게 거짓말은 해선 안된다고 가르쳐 놓고, 방과 후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어 학원을 가야 되는데 학원 차량이 학교나 집까지 운행이 안되는 상황이라 스쿨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되거든요. 그로 인해 아이들이 거짓말을 해야 되는 상황이 되 버린겁니다ㅠ
저도 마음이 매우 불편하지만,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 아이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부모 자식도 사람인지라 관계가 특별하더라도 그 속에서 상처를 주고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상황이 많이 다르실 수는 있겠지만, 가족에 대한 아버님의 깊은 마음은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을 거에요.
파울로 코엘료가 그런 마음으로 그 책을 썼다는 사실도 매우 놀랍고, 노트북님도 쓰신다면 어떤 이야기로 승화 시킬지 너무 궁금해집니다.
노트북님.
바쁘신데도 책을 읽고 긴 독후감을 남기시는
모습이 노트북님이 어떤 분이시라는걸
말해주는듯 합니다.
성실과 책임. 이 두단어가 생각나네요.
감동적인 글로 여러 생각들을 하게 해 주시는
노트북님이 고맙고 존경스럽기도 합니다.
저는 바쁘거나 정신없을때는
제 취미를 좀 포기하거나 잠시 내려놓고
쉬는편이라 모든것을 다 하지는 못해서 더
존경스럽네요.
딸기님처럼 저도 "휘어잡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휘어잡지 않았다는 사실도 모른다"
이 말이 제 뇌리에 꽂힙니다.
사람 관계에서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태도의
문제인데, 저는 내성적인 사람인것 같은데,
의외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는 잘 얘기를 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제 얘기를 오픈해서 제가
어떤 사람이란걸 알려주려고도 하고요.
이런 저라는 사람을 알려주었을때
관심이 가는 사람과 무관심한 사람 두 부류가
생기는데, 제게 관심을 두고 호기심을 갖는
사람에게 더 다가갈 용기도 나고, 저도 그 사람과
더 친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친해진 사람들중에 가끔은
저를 이용하거나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사람이 그렇다는것도 알고 가끔은
이용도 당해줍니다.
그러나 그때 그 사람과의 관계는 정리의
수순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결국 제곁에 남는 사람은
진짜 정말 좋은 사람만 남게 되는거지요.
저를 이용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에게는
저도 마음속으로는 꼭 그만큼만 대우하니까요.
저를 휘어잡은것 같지만, 휘어잡지 않았다는
사실도 모른채 서서히 멀어지는겁니다.
저는 이렇게 사람 관계를 하기로 하고 있고,
이런 생각을 굳이 안해도 모든사람이 비슷하게
관계 할거라 생각됩니다.
진짜 좋은사람이라 생각되면 서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계는 주고받는 관계가 오래 지속되고
건강한 관계니까요.
아침에 댓글을 쓰다보니
어느새 남편 식사준비 할 시간이네요.
오늘도 모두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긴 후기를 써주시니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ㅎ
휘어잡았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휘어잡지 않았다는 사실도 모른다'
이 말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ㅋ
저도 대부분 저를 내려놓고 떠드는 스타일인데 간혹 이래도 되나 하는 후회가 들 때가 있어요.
나의 패를 이리 다 보여주고 상대는 그렇지 않을때 왠지 내가 너무 손해보는 거 같기도 하고 내가 너무 가벼워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요.
그런데 노트북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게 꼭 손해는 아닌거군요. 너무 위안이 되기도 하고 정말 그런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재미있습니다. ㅋ
너무 털어놓는다 싶어서 새로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때론 조금은 절제하려고 하다보면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 정작 하고 싶은 얘기, 듣고 싶은 얘기를 못하고 들어올때가 있어요. 그게 바로 휘어잡지 못한 경우였나 봅니다.
이제는 그냥 나의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가져야할것 같습니다. ㅎ
노트북님이 글을 쓰시다가 글이 길을 벗어나는 글을 쓰셔도 전 좋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글이 노트북님의 찐 얘기일수 있어 좋습니다. 얼마든지 벗어나셔도 좋다는 말씀 드립니다. ㅎ
남자라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간혹 할때가 있어요.
소설 속이든 티비에 나오는 남자들, 그리고 길거리, 버스에서 마주치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여자와는 다른 뇌구조를 가진 사람이 맞구나 하는 걸 느껴요.
전 딸만 둘이라 더욱 남자들의 엉뜽한 행동이나 모습에 대해 이해가 안될때 공감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여자든 남자든 옳고 그른건 없죠. 다르기 때문에 신기하고 환상도 가지게 되니 꼭 나쁜것만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말씀해주신 남자들의 여자에 대한 자존심에 대한 부분이 스스로의 내면의 불안정함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걸 극복하신 남자분들이 더 멋져보이는 걸수도 있구요. 하고 느껴요.
다양한 글을 써주셨는데 일일이 답을 하긴 어려우나 모두 공감하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노트북님의 글을 여러번 읽고 또 많은 생각을 해주는 글입니다.
이곳에 다양한 글이 올라오는 것도 저의 재미있는 미션같아 재미있습니다.
이번 한주도 평안한 한주 되시길 바래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