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무심하게 산다 – 가쿠타 미쓰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계신가요? 저는 집순이라 밖에 돌아다니는 걸 그닥 즐기지 않고, 특히 궂은 날씨에는 더더욱 외출을 꺼려하는 편입니다.
오늘은 오후내내 비가 왔지만, 친척 결혼식으로 꼭 참석을 해야 했기에 그나마 가까운 거리에 위안 삼아 다녀왔습니다.
내일은 비 온뒤라 날씨가 쌀쌀 할것 같은데,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 견학이 예정되어 있어 집순이의 에너지가 충전될 틈 없이 탈탈 털리는 주말이 될 것 같습니다. 😭
이번 책은 예전에 치악산님의 여행에세이 후기를 본 뒤 에세이를 도전해야겠다고 벼르던 중 도서관에서 빌려온 에세이 책입니다. 제목은 뭔가 복잡한 세상살이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골랐는데,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중년 여성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찾아오는 신체적, 심적 변화를 유쾌하고 가볍게 적어 놓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이제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기도 해서 의심(?)반 호기심 반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비슷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웃기기도 하고,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일이라 생각하니 대비책을 생각해보기도 하며 읽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에피소드가 있기는 했지만,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골라 풀어보려고 합니다 ^^
- 만약의 미래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은 자신’과 ‘그것을 하지 않았을 경우의 지금’이라는 것은 몇 번이고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늘 ‘만약’의 유혹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내렸을 경우, 다른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만약’의 발생 지점으로 되돌아가더라도 ‘만약’이 아닌 쪽을 몇 번이고 선택하게 될 것이다’
책에서는 후회의 만약은 하지 말고, 자신이 한 선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라고 합니다.
저는 현실적이고 계획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면이 강하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반면 저의 짝꿍은 과거를 후회하고, 만약을 가정하고, 즉흥적이며, 이상적인 꿈을 꾸는 사람이라 저와는 많이 달라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가끔은 어쩌면 이렇게 반대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서로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될 때가 있기에 버티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만약이라는 전제가 미래의 무엇이라면 희망과 기대가 되고, 만약이라는 전제가 과거의 무엇이라면 회상과 추억으로써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지요.
후회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그것을 발판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 영혼을 닮은 무언가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서로 ‘하나도 안 변했다’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게 됩니다. 변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들 여전히 한결같아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했다. 다 같이 늙었기 때문에 모르는 게 아니라, 우리는 얼굴 말고 다른 곳을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하고. 그것은 아마도 그 사람의 본질이나 핵심과 같은 것이 틀림없다. 나이도 경험도 그 무엇도 건드릴 수 없는, 늘지도 줄지도 않는 불변의 무언가’
어릴 적 친구들을 여전히 만나고 있지만, 그저 그들이 안변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건 20년이란 세월이 흐를 동안 시간을 거스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하면 더 정확할까요? 많은 인연들과 수많은 세월을 함께 하면서 고유의 특성이나 성향과 같은 본질을 공유하고 인생을 나누면서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깊은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었고, 이렇게 생각하니 소중한 인연들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 의자와 세월
산을 올랐다가 다치는 바람에 엉치뼈에 골절상을 당하게 됩니다. 매일 작업할 때 쓰는 의자는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진 훌륭한 의자로 3년 전 허리를 다쳤을 때 장만했던 것인데, 이번 엉치뼈 골절상으로 도넛쿠션을 추가하게 됩니다.
‘그런 물건들이 쌓이고 쌓여서 자신의 취향과는 정반대인 실용적인 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나이를 먹는 일, 세월이 지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원래는 어떤 물건이었을지도 알 수 없을 만큼 맞춤 제작된 그 의자를 보고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온 전우여..‘라고 생각하지 않으려나’
의자에 설치된 허리받침대와 담요 등을 보면서 공감 가는 대목이었습니다.
거울 앞 화장품의 효능도 어느새 주름개선, 미백으로 바뀌었고, 색조보다는 기본케어에 집중된 제품들, 옷장에는 사이즈가 점점 늘어가는 편한 옷들과, 신발장에 구두는 찾아볼 수 없고, 약통에 각종 비타민 등 저의 전우들도 많이 생기고, 바뀌어 있는 모습이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 변화된 것들인데 스며들 듯 차곡차곡 어느새 쌓여가고 있었네요.
- 변화의 속도
2-3년 전부터 식사를 할 때 위화감을 느낍니다. 음식을 흘리거나 티슈의 사용빈도가 늘어난 모습을 보며 반사 신경이 둔해졌나, 입주변의 근육이 저하되었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식후에 이쑤시개를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을 때면 쯥쯥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백이면 백 중년이상이다. 무언가를 먹는데 서툴러진다든지 윗니와 아랫니가 잘 맞물리지 않는다는지, 즉 역시 나이로 인한 것이 아닐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나도 참 어렸구나 싶어서 왠지 모르게 감회가 깊다’
막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부터 최고참 선배와 16살이나 차이가 났습니다. 종종 선배가 음식을 흘리곤 했는데 그때 제가 비슷하게 생각했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 후로 몇 살이 더 먹은 후에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가 그러고 있는 모습을 책에서 적나라하게 집어주니 뜨끔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역시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게 직접적이고도 충격적이며 효과가 크다는 생각도 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 에필로그
‘변화는 천천히 일어난다. 그만큼 내 나이가 쌓이는 방식과 ’나의 그릇‘을 사용한 세월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고 최근 들어 몸소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다지 낡지 않았는데 몸은 내 생각과 다르게 세월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나를 담는 그릇인 몸과 더불어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오늘 결혼식을 다녀오면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 것이 생각이 납니다.
시아버지께서 곧 팔순이신데, 소변 조절이 어려워 화장실을 자주 다니시다보니 외국여행은 힘들어 국내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고 하니, 엄마가 크게 공감을 하시면서 자신은 아직 그렇게 늙었다는 생각이 안드는데 가끔 생리적으로 조절이 안될때가 있으니 정말 이상하다고요.
자신의 정신과 영혼은 아직 젊을 때의 모습 그대로인 반면 몸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 다양한 기분이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엄마가 그점을 이상하고 낯설게 여기시는 것과 같이요.
채기성의 장편소설 「부암동 랑데부 미술관」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미술관은 단 하나의 사연을 바탕으로 미술작품으로 만들어 전시하는 곳이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남은 젊음이 있는지, 잃어버린 생기와 젊음을 다시보고 싶다고 그려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전시된 작품은 20대부터 현재까지 세대별 할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6점의 그림이었습니다. 외면의 형태와 색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이 변했지만, 어떤 그림이든 할아버지 눈빛 속에는 변하지 않는 열정과 단단함이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할아버지에게 남아있지 않을 것 같던 열정이 자신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가끔 연세가 있으신 분들 중에서도 젊은 시절과 같이 소녀 같으신 분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열정이 넘치시는 분도 계실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그릇을 잘 관리하면서 더불어 살고 계신 분들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엊그제 대학생이었던 것 같고, 어제 결혼을 한 것 같은데, 어느새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제가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다니... 시간은 빨리 흐른다는 말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 강하게 공감됩니다.
어디서 들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은 그 순간순간을 기억하는 것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건망증도 심해지는 것 같고, 여기저기 아픈 곳도 생겨나 관심도 없던 운동의 중요성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을 보니, 여느 보통의 사람과 같이 순차적으로 잘 늙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저의 그릇을 잘 관리하면서 내면의 열정과 의지는 불태울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가다쿵님 후기 글 잘 읽었습니다.
먼저 무심하게 산다 라는 제목이 참 마음에 듭니다.
저도 무심하게 살고 싶은데 생각만큼 쉽지가 않습니다.
무언가에 매달리고 미련을 갖고 후회를 하고 무심해 지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더라구요
저도 어느순간 식사를 할때 음식물을 흘리거나 떨어뜨리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더라구요
예전에 어른들과 식사 할때 왜 어른들이 손수건을 항사아 들고 다니시면서
입가와 눈가를 닦으셨는지 요새 제가 몸소 알아 가고 있는 중입니다.
참 슬픈게
마음은 아직 그렇게 늙지 않았고 예전처럼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쇠약해지고 고장이 나버리니 그 사이 간극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오늘 우연히 sns사이트에서
나이 90에 아이패드로 디지털 그림을 그리는 분을 팔로우 했습니다.
혼자서 아이패드를 구입해서 유트브와 각종 매체를 통해 독학으로 그림을 배우셨다고 하더라구요
내 그릇이 변해가는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겠지만
나이때문에 할 수 없다고 지레 나를 가두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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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는 생각했다. 다 같이 늙었기 때문에 모르는 게 아니라, 우리는 얼굴 말고 다른 곳을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하고. 그것은 아마도 그 사람의 본질이나 핵심과 같은 것이 틀림없다.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나이가 들어도 누군가의 본질이나 핵심은 쉽게 변하는게 아니라서
주름살 사이에도 그것은 남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문장이었습니다.
후기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