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노트북 입니다.
이번 주는 본격적인 봄을 맞아 매일 달리기를 했는데요,
하루에 1시간~ 1시간 30분씩 달리기를 했습니다.
거의 매일 근육 운동을 하고, 근육을 푸는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워밍업까지 하면, 달리기는 총 1시간 30분~ 2시간 정도는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의 저의 산만함을 정리하기에는 운동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서 의도적으로 더 열심히 했습니다.
지난주는 지난 4개월 반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기력을 쏟은 결과가 무엇인가?
남은 게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동안 정착할 집을 정하게 되었지만,
금융시장에서는 그 노력 끝에 결국 딱 제자리걸음인 것입니다.
가장 아까운 저의 이 시기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보냈다는 것도 반성하게 되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잃은 저의 집중력이 제일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 아래 다시 집중을 해보려고 해도, 잡념들로 가득해 여전히 쉽지 않았습니다.
왜 이전으로 돌아가기가 힘들까?
고민하며, 시도를 해본 게 운동이었습니다.
최소한 운동을 하는 시간만큼은 집중을 하게 되니까, 그것 만으로도 너무 다행이었습니다.
투자도 이 시기가 제게는 맞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고요.
트럼프가 뭐라 하든 이제는 그냥 이 늙은이(?) 혼자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고,
우리나라는 대선이라는 변수도 있고요.
이런 회오리가 지나간 다음 평안한 시기에 다시 돌아오자 하는 마음을 가지니 훨씬 쉬워졌습니다.
부모님께도 일부러 연락을 덜 드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 영역 밖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냥 부모님 두 분이 알아서 결정하시는 것이 맞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요.
나중을 자꾸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대비가 안되면 안 되는 대로 그냥 그것이 부모님의 인생이거니. 하고 이제는 놓아야지 제가 살겠다는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모든 걸 다 제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냥 사람들 사는 것처럼 안되면 안 되는 대로 그냥 살자.
제 부모님의 노후는 꼭 이렇게 해드리고 싶다. 그런 욕심을 이제는 정말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부모님인데 제가 엄마만 안타까워하는 것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것도 노력이 필요해서, 이제 적당히.. 각자의 삶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는 연락도 적당히 드려야겠다는 그런 마음입니다. 오히려.. 나이에 비해 철이 거꾸로 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제 마음이 힘들어서 내려놓을 수밖에 없네요.
어쨌든 운동을 하고 나니, 이전보다는 책을 읽을 시간은 줄었지만, 더 잘 읽히는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태풍이 지나간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네요.
항상 그렇듯, 어떤 것이든지.. 헛된 시간이 없긴 합니다.
뭐든 몰입했으면 그만큼 그것에 대해서만큼은 조금이라도 시야가 트이거나,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이 효과가 있을지는 앞으로의 저의 삶을 봐야 알 수 있는 것이겠지만요.
한편으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루틴 하게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내공이 아니었던 게 몹시 아쉽고,
그것이 다 드러난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합니다.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이번에 여러모로 많이 깨달았습니다.
너무너무 사설이 길었습니다.
이제 책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지난주 후기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저의 감정도 절정에 달해서, 영광과 민우의 감정을 들어 저의 내면의 갈등을 토로했었는데요.
그 이후 이번 주는 단념하는 시간을 가지다 보니, 유독 그런 글귀들이 또 눈에 들어왔습니다.
서희는 박의원이 죽고서야 비로소 자신도 그런 박의원을 굳이 거부하지 않고 계속 그 병원을 다녔던 것에서, 무의식 속에서 자신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길상이 10년 넘게 옥에 있는 시간 동안, 자신도 박의원의 정신적 사랑에 의지했던 것이지요. ㅜ
서희와 박의원이 끝까지 자신들의 본분을 지켰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용이 강청댁이 있는 상황에서 어린 길상과 봉순이를 데리고 오감대 구경을 시켜주는 그날, 월선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 것에 저는 실망을 했었습니다.. 소설 속에 그려지는 용이는 그러지 않을 사람으로 보였거든요.
그만큼 제가 사회가 만들어놓은 형식과 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겠지요.
물론 그 이후에는 용이와 월선이 너무 애틋하고 가슴이 아팠지만요.. 적어도 당시에 부모님 뜻을 따라 멀리서 시집온 강청댁은 몰라도, 임이네 만큼은 월선을 위해 재껴도 되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도 있고요.
어쨌든 박의원의 그 서희에 대한 사랑은 서희의 아들 환국까지도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그 숭고한 사랑을 존중할 정도였으니까요..
서희는 박의원이 죽은 후에 마음이 괴로워 남편 길상의 관음탱화를 장엄하는 의식도 참석하지 못합니다. 하루 늦게 가지요.
그 시간 서희는 평사리 최참판댁의 별당아씨(서희 어마)가 거처하던 별당에 앉아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5살 난 딸과 그 대단한 집안을 두고, 하인 구천과 도망갔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됩니다.
어머니는 불행한 여인이었던가? 행복한 여인이었던가?
어머니는 불행했지만(도망 다녔지만) 사랑을 성취했다..
나는 행복한 여인인가? 불행한 여인인가?
서희는 눈물을 흘립니다.
왜 이렇게 먹먹한지 모르겠습니다.
전혀 결은 다르지만, 왜인지 모르게 아버지의 딸인 저도 먼 훗날, 아버지와 같은 삶을 원할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예감이 있어서인 걸까요,,
제가 결혼 전인 2~30대에 아버지께서 저보고, "너는 꼭 농사 많이 짓는 집으로 시집가거라. 그러면 좋겠다."
하셨습니다.
왜냐면.. 제가 그런 걸 너무 좋아해서 아버지한테 하듯이 시아버지 따라다니면, 이쁨 많이 받을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회사 다니면서도 아버지 하우스에 유기농으로 심으신 딸기 풀 뽑는 일손이 부족하다 하시어 휴가를 내면서 까지 같이 풀을 뽑으러 다녔습니다. (은근히해본 사람만 아는.. 노동입니다.)
제 하루 휴가비를 돈으로 받는다면, 그 하루 노동의 가치를 돈으로만 따진다면 그렇게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혼자 하시는 것보다, 제가 따라다니면서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한 것이었네요,,
잘 가꾸어 놓은 명품 하우스를 갈 때마다 제 마음이 얼마나 정화되고 신선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모내기를 하고 아직은 차갑듯 시원한 봄바람을 맞으며 들판에 앉아 점심을 먹는 그 기분. 그 힐링.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지요..
제 아들도 무척이나 그런 걸 좋아합니다.
저는 아버지 - 저 - 아들에게 있어서 그 자연을 유독 사랑하는 그 정서가 내려왔다고 생각합니다.
아들만 봐도 그것은 타고난 것이고 인위적으로 바꾸긴 힘들다는 것도 압니다.
그 정서를 이해하면서도, 여기를 떠나면 병이 날 것 같다 하시는 아버지를 설득했던 저지만, 왜인지 모르게 먼 훗날 저 역시.. 저만의 그런 정신적 즐거움을 주는 것을 위해 경제적인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 훗날 지금의 아버지를 서희처럼 다시 떠올리는 날이 올 것 같았습니다.
한 개인의 삶은 객관적인 것으로 판단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불행이나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모호한가. 가령 땀 흘리고 일을 하다가 시장해진 사람이 우거짓국에 밥 한술 말아먹는 순간 혀끝에서 느껴지는 것은 바로 황홀한 행복감이다.
산해진미를 눈앞에 두고도 입맛이 없는 사람은 혀끝에 느껴지는 황홀감을 체험할 수 없다.
결국 객관적 척도는 대부분 하잘것없는 우거짓국과 맛 좋은 고기반찬과의 비교에서 이루어지며 남에게 보여지는 것. 보일 수 있는 것이 대부분 객관의 기준이 된다.
사실 보여주고 보여지는 것은 엄격히 따져보면 삶의 낭비이며 진실과 별반 관계가 없다.
삶의 진실은 전시되고 정체하는 것이 아니며 가는 것이요 움직이는 것이며 그리하여 유형무형의 질량으로 충족되며 남는 것이다.
제게 예전 추억이 너무나 떠오르게 한 글귀여서 따로 폰에 적어둔 글입니다.
길상이 자기 삶이 얼마나 낭비였는지를 깨닫는 장면에서의 글입니다.
부모님이 연로하시게 되면서,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할 그 시기로 저의 초점이 쏠렸었습니다.
한 주 내내 정신 수양을 하듯 그것을 비우는 연습을 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의도적으로요.
갑자기, 아버지와의 농사 추억과 그리고 우리가 느꼈던 그 행복을 그대로 떠올려주게 하는 저 글귀가 꼭 눈물이 나올 것 같이 울렁이게 만들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께서는 은퇴 전까지, 자아와 가족을 위한 선택에서 가족을 위한 선택을 하셨고,
그 이후에.. 자아를 찾아 떠나신 것일 수도 있었겠지요.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네요..!
17권에서는 보연의 실수로 금붙이를 밀수해서 홍이와 보연이 잡혀 들어가는 일이 나오고, 그 와중에 딱 도둑질을 하려다 들켜버린 임이가 의심을 받는 일이 생깁니다. 알고 보면 임이는 오해를 받은 것인데도, 왜 저는 임이가 미운지 모르겠네요,, 어쩜 너무 죽은 엄마랑 똑같아서, 후기에서도 모르고 '임이네'로 쓸 뻔하기도 합니다. ^^:
양현의 혼처이야기를 가지고 홍성숙과 배설자가 갑자기 서희를 찾아옵니다.
너무나 비대해지고 덕지덕지 느낌이 나는 홍성숙을 묘사한 글을 보고, 얼마 전 제가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은데, 아무리 봐도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아쉽지만, 그 이야기는 17권 완독 후기 때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우연히 하얼빈에서 유인실이 봐주는 심운회의 딸 수앵이 운영하는 운회약국에 조찬하가 들립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잠깐잠깐 등장한 유인실은 하얼빈에서 새로이 태어나길 바랐다 하며 비교적 잘 지내는 모습이었습니다.
찬하를 만나고, 유인실과 오가타 사이에서 낳은 아들 쇼지가 고아원을 간 것도 아니고,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양자로 보내진 것도 아니고, 조찬하 부부가 잘 기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이냐 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이 순간 인실이 불쌍하거나 이해가 가기보다는, 화가 날 정도로 인실이 미웠습니다.
그렇다면, 찬하가 받아들일 거라 생각을 못했을 때는, 그 아이가, 한 생명체가 앞으로 겪을 일들이 그런 길이라는 것을 알고도..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아이를 버리고, 끝까지 배신하지 않은 조선인으로 살려고 했던 것인지? 그것이 고귀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얼마나 무책임한 이기주의였는지?!라는 생각이 들며 화가 났습니다. 10달 동안 품은 아이를 낳자마자, 다시 태어나기를 마음먹고 하얼빈으로 가서 물론 시간이 지나서였겠지만, 사람들과 저녁식사하고 파티에 참여하고, 다른 사람의 약국을 봐주는 등..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독립운동을 직접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 그런 삶을 살면서, 자신의 양심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지키기 위해? 아들을 버리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제 그릇이 인실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겠고, 제가 너무 모성을 우선시하는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겠지만요,, 그러했습니다.
오가타는 처음 아들의 이야기를 인실에게 듣고, 인실의 뺨을 때립니다.
그리고 곧이어 혼자 걸어 나오면서 가슴 아파합니다. 그 힘든 시간, 아픈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자신 때문이지요.. 그 마음은 또 너무 이해가 갔습니다.
그 시절, 한 남녀이기 이전에 서로를 조선인, 일본인의 틀에 가둬놓고 이렇게 안타까운 결정을 했던 사람들이 실제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저를 돌아보면서도 느끼지만 관념은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17권 딱 반을 읽고 후기를 씁니다.
17권 완독을 하게 되면 마저 후기를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
노트북님 후기 잘 읽었습니다.
매일 달리기를 하신다니 대단하십니다.
달리기와 더불어 노트북님의 생각도 많이 정리 되시고
편안하게 어느정도 순리에 따라 가기로 하신 것 처럼 보입니다.
세상이 참 얄궂은게 그렇게 노력해도 안되던 것이
정말 어이 없게 이루어지기도 하고 지금은 차선이라고 선택했던 것들이
후에 좋은 결과로 돌아 오기도 하더라구요
노트북님께서는 저보다는 계획적으로 미래를 준비하시는 분 같아
배울점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느 노트북님 이미지는 차도녀였는데
아버지와 함께 농사일을 즐기셨다니 반전 매력입니다. ^^
아이와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과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하는 마음이 잘 보이는 후기글이었습니다.
토지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노트북님의 사는 이야기 역시 읽는 재미가 좋습니다.
딸기님 댓글에 쓰다가 지워버리셨다는 안전자산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하구요
저는 경제에 관해서는 일자 무식이라
좀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하루 경제기사 하나 읽는것도 안되네요
오늘도 좋은 후기글 잘 읽고 갑니다.^^
노트북님, 후기 글 잘 읽었습니다 ^^
뭐든지 꾸준히 하는 것은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매일 달리기 운동을 하신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이후로 달려본 적이 학교 지각할 때 빼곤 없는 것 같은데 참 부끄럽네요 ㅎ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체력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운동을 해야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중고등 학생들 사이에서 주짓수가 유행이고, 헬스를 하는 아이들도 많이 늘었다고 하는데 그 원인이 단순 유행이든, 공부를 위한 체력 관리이든, 자기 관리의 중요성이든 점차 연령이 줄어들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노트북님의 마음이 혼란한 시기를 지나 이제 안정기에 접어 든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것이든 헛된 시간은 없다는 말에 공감하면서 노트북님의 앞날을 응원하겠습니다!
어르신들은 농사를 하는데 진심인 것 같아요.
첫째를 낳으면서 친정과 함께 밭이 있는 주택에서 산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면서 로망만 품고 이사 와서 몇 해는 잘 되지도 않는 농사를 짓겠다고 부산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저희 엄마께서도 의욕이 넘치셨는지 새벽부터 나가셔서 끼니도 먹는 둥 마는 둥 온종일 밭에 있던 것을 생각하면...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도 우비 하나 달랑 입고 밭에 나가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저는 좀 쉬셨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게 들더라구요 ^^
농사라고 하기도 우수운 일이지만 저도 잡초 제거와 고구마 수확을 한 적이 있는데,
너무 힘이 들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서 노트북님이 휴가까지 내고 오셔서 하셨다니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아마도 아버지를 위하신 마음이 더 크지 않으셨을까 짐작해 봅니다.
'정신적 즐거움을 주는 것을 위해 경제적인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부분을 읽고 정신적인 즐거움은 왠지 삶을 더 풍요롭고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노트북님이 왠지 그러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객관적 척도는 대부분 하잘 것 없는 우거짓국과 맛 좋은 고기 반찬과의 비교에서 이루어지며 남에게 보여지는 것. 보일 수 있는 것이 대부분 객관의 기준이 된다. 사실 보여주고 보여지는 것은 엄격히 따져보면 삶의 낭비이며 진실과 별반 관계가 없다'
따로 적어 놓으신 글이라니 정말 욕심 나는 글입니다.
제가 이해한 것이 맞고, 같은 맥락의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옛날에 엄마가 끓여줬던 동태탕 맛이 다시는 먹어 볼 수 없는 맛인 것처럼
결국 순간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들과 그 의미로 채워나가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트북님 후기를 읽으며 지난 4개월간 얼마나
많은 고심이 있었을까 느껴집니다.
우선 아들 초딩이후 정착할 집을 결정하시고
이사를 정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결정하시기 까지 어떤 고민이 있었을지 가히 짐작이 조금 갑니다.
저도 아들 초딩 입학즈음에 지역을 옮겨서 이사해
봤기에 향후 10년 20년을 내다본 결정이었을것
같아서 힘든 결정하셨다 생각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 나라의 부동산 가격변동과 인플레이션의 문제점 그리고 돈의 가치 등등을
따져보게 되고 또한 부모님의 노후 까지 걱정하시게 되었을것 같습니다.
저라도 노트북님 상황이라면 머리 복잡하게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했을겁니다.
고민의 시간들이 나중에는 인생의 방향을 잘
정하는 시간이 될것이니 충분히 고민하는건 꼭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인생을 좀더 현실적인 입장에서 편안하게 보내게 해 드리고 싶어하시는 노트북님의 효심이 엿보여서 너무 이쁘고 사랑스런 따님을 두신 부모님이 참 뿌듯해 하셨을것 같습니다.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부모님은 행복하실것 같고
실제 부모님의 삶은 부모님께서 정하신 방향대로
사시는것이 그분들의 삶의 만족도에서 더 좋을것 같습니다. 아버님께서 자연과 더불어 행복을 느끼시는것은 저도 이해가 됩니다. 인간이 해결 할 수 없는 어떤 교훈을 자연이 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버님도 땅의 기운과 자연으로 부터 받는 행복감으로 앞으로 남은 삶의 터전을 삼아서 그 어떤
금전전 행복으로도 대체되지 않은 좋은 인생을
사실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식은 한발 뒤에서
부모님의 노후를 응원해 드리면 되지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들이 언젠가 성장해서 한발 뒤에서 자식의
인생을 응원하듯이요.
각자 자신의 인생이 있는것이니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정하고
그 결정에 서로 응원하고 격려해 주면 되는거라
생각됩니다.
시장한 사람에게 소박한 한끼 식사의 가치와
입맛없는 사람에게 산해진미의 가치를 비교할
수 없을듯 합니다.
우거지국밥과 산해진미를 비교하기보다
시장한 사람과 입맛없는 사람이 느끼는 한끼의
가치에 중점을 두는 시각으로 살아야 하겠다 생각됩니다.
"삶의 진실은 전시되고 정체하는 것이 아니며
가는 것이요 움직이는 것이며 그리하여 유형무형의 질량으로 충족되며 남는것이다."
노트북님과 딸기님께서 와 닿으신 문구가
저또한 많이 와 닿습니다.
삶은 결과가 아닌 과정인듯 합니다.
지금 보내고 이 시간은 결과를 위한 시간이 아닌
과정을 위한 시간임을 잊지 않고 결과에 연연하기
보다 내가 보낸 시간들의 과정을 잘 남길수 있게
살고 싶네요.
오늘도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후기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노트북님.
노트북님의 마라톤이 이런 매일의 달리기로 완성되었던것이었군요. 그러네요. 이런 노력이 쌓여 마라톤이 가능해진것이겠죠. 당연한 것을 미처 떠올리지 못했네요. 제가ㅜㅜ 전 하루 30분 런닝머신 위에서 걷기를 하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하는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한편 너무 부럽습니다. 막연하게 마라톤하는 분들을 경외하곤 했었는데 이게 결코 쉽게 되는 것이 아님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그리고 노트북님 너무 멋집니다. ㅎ
아버님 얘기와 이사 얘기가 요즘 노트북님이 어수선하셨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사는 정말 생각할것이 너무 많고 또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나의 가치관과 욕심이 떠오르며 자괴감이 들기도 하는 일인것같습니다. 어쨌든 그 결정을 하셨다니 이제는 좀 후련해지지 않으셨을까 싶기도 하고요.
이나이에 되니 부모님의 존재는 마냥 우리가 의지하던 존재가 아닌 보살핌과 걱정의 대상이 되는 듯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를때 답답할때가 많고 그게 쌓이면 화가 날때고 있죠.
하지만 결국 부모님의 인생은 부모님의 것이니 당신들의 뜻대로 하시는게 답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내 뜻대로 하는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만의 욕심이라는 생각을 이제는 합니다.
당신이 편한대로 두는것이 그동안 내가 받았던 보살핌을 돌려드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어렵지만 말입니다.
이제는 좀 마음을 내려놓으신다는 결정에 전 응원을 보냅니다. ㅎ
삶의 진실은 전시되고 정체하는 것이 아니며 가는 것이요 움직이는 것이며 그리하여 유형무형의 질량으로 충족되며 남는 것이다.
써주신 이말이 마음이 남습니다. 삶은 그런것 같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다는 걸요. 진실은 모두의 마음속에 나만이 아는 정의로 정의되는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인실을 좋아했지만 저도 아이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인실만의 방식이라고 그렇게 말할수 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모질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애국심을 그렇게도 표현하고 싶으셨나보다 (박경리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노트북님의 개인적 삶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후기 못지않게 재미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도 하게 되구요.
오늘도 후기 감사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