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가 요상합니다
추웠다가 더웠다가 비가 왔다가 우박도 내렸다가 해가 났다가 좀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다가 제대로 봄을 즐기지도 못하고 여름을 맞이 할 것 같은 생각이듭니다.
따뜻한 봄을 좀더 즐기고 싶은데 자연이 허락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책은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이 퇴임후 어디 강연에서 이책을 언급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읽게 되었습니다.
주인공 이름은 이영초롱으로 부모님의 파산으로 당분간 고모와 함께 살게 됩니다.
고모 이정희는 고고리섬 보건지소에서 의사로 생활 하고 있으며 친구 이규정에게 매일 부치지도 못할 안부 편지를 씁니다.
이규정과 이정희는 대학 동기인데 어떤 사건으로 인해 이규정이 피의자가 되고 그 장면을 유일하게 목격한 이정희의 진술을 증거로 감옥에 가게 됩니다. 사실 만을 말했는데 친구가 감옥에 가게 되어 이정희는 여러방면으로 노력을 했으나 끝내 감옥에 가게 되고 이정희와는 사이가 멀어지게 됩니다. 그 이후 이정희는 친구 이규정에게 보내지 못하는 안부 편지를 매일 씁니다.
주인공은 그 섬에서 복자라는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게 복자를 통해 섬을 배우고 소통을 하며 복자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린 마음에 자신의 몇 마디가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몰랐던 주인공은 복자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을 주민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 하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는 사람이 생기고 복자와도 거리가 멀어 집니다. 이영초롱 역시 복자의 안부를 물어 보는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다행이도 고모 이정희도 이영초롱도 이규정과 복자에게 용서를 받고 다시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고 각자의 방법으로 이규정과 복자를 도우려고 합니다 .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게 누군가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 그것도 소중한 친구를 힘들게 만들었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죄책감이 있을 거라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둘다 보내지도 못한 안부 편지를 계속 썼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상처를 준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하면서도 차마 물어볼수가 없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누구의 잘 못 일까요? 그들의 말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을 못하고 사실 그대로를 말한 이정희와 이영초롱의 잘못일까요?
저는 그 사실을 자신들의 목적 수단으로 사용한 사람들이 잘 못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편의대로 믿고 싶은 대로 그렇게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갖게 만든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얀 거짓말이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사실을 말하는게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야 할 큰 잘 못인지
고고리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간 이영초롱은 열심히 공부해서 판사가 됩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잘 하지 못했던 이영초롱은 다시 제주도로 내려가서 복자를 만나게 됩니다. 복자는 산재문제로 병원과 소송중에 있었습니다. 누가봐도 불리한 싸움에서 이영초롱은 판사로 복자를 위해 노력을 하지만 결국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소송에서도 물러나게 됩니다. 다행이게도 복자는 끝까지 포기 하지 않고 증거를 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재판에서 이기게 됩니다.
이정희는 이규정이 출소후 죽기 2년전에 사이가 회복되고 이규정이 병으로 죽고 난후 이규정의 아들을 돌보며 살아갑니다.
이제 나는 슬픔에 대해 완전히 아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슬픔은 차갑고 마음을 얼얼하게 하는, 아이스크림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그만한 선택이 없었다.
주인공 이영초롱은 부모님의 파산으로 본인은 제주도에서 좀더 배를 타고 가야 있는 고고리 섬에서 보건지소 의사로 있는 고모에게 동생은 삼촌 집에서 생활하며 간혹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합니다. 동생이 웃지 않기를 하고있다고 말하자 영초롱은 반대로 웃기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하며 방법을 동생에게 알려 줍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슬픔이 무엇인지
내가 과거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 딱히 그리운 시절도 없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건 다 잊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무거워서 어딘가에 높고 왔을 뿐이었다. 어느 계절의 시간 속에, 기억 어딘가에 넣어 놓고 열어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다 오늘처럼 잠들 수 없을 때면 밀려 왔다. 모든 것들이.
감당하기 버거웠던 시절의 추억들을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으려고 했던 마음이 들어나 있는 구절 이었습니다.
좋았던 시절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끝에 따라오는 잊고 싶었던 순간들이 더 많아서 기억해봤자 아프기만 한 기억이라
외면하고 지우려 했던 기억들도 어느 순간 밀물 처럼 밀려 들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한없이 약해지기도 하고 깊은 어둠속으로 가라 앉는 기분을 알 것 같은 문장이었습니다.
복자는 그런 제순이의 눈썹이 일종의 농담 같은 거라고 했다 그리고 농담은 우리에게 일종의 양말 같은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의 보잘것 없고 시시한 날들을 감추고 보온하는 포슬포슬한 것. 농담을 잘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 하루가 활기차다고도 했다.
복자는 키우는 개들에게 눈썹을 그려주곤 했는데 왜 그렇게 하는거냐고 묻는 이영초롱의 질문에 하는 일종의 농담 같은 거라고 대답합니다. 농담이 양말 같은 거라는 표현이 좋았습니다. 우리 몸 중에서 가장 험한 일을 담당하고 있는 발을 감싸주고 보호해주는 양말. 농담 한번으로 힘들고 보잘 것 없는 하루 중에 한번쯤은 실없이 웃을 수 있게 해 주는 것 그런 양말 같은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럭저럭 버틸 만 하겠다 싶었습니다.
열세살의 어린 아이들이 왜 그렇게 사는게 팍팍해서 애써 스스로 농담을 만들어 내야 했는지 안쓰러웠습니다.
"감사하지 말라니까. 준법은 감사나 죄송의 대상이 아니야"
"네?"
"나는 법을 대리할 뿐이고 법은 공동체의 규약일 뿐 감사할 필요도 죄송할 필요도 없어. 그런 건 사람이나 아니면 돌문어한테 하는 거야."
간혹 뉴스에서 보면 피의자들이 감형을 받기 위해 판사에게 반성문을 제출한다고 하고 그것을 이유로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판단하여 감형이 되기도 한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왜? 피해자에게 사과를 직접하지 않고 판사에게 할까 늘 의문이고 불만이었습니다. 피해자가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판사는 무슨 자격으로 감형을 하고 말고를 정하는 걸까? 이게 맞는 걸까 늘 궁금했습니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메스를 든 의사와 같다'는 말이었다. 의사들에게 인체를 찢는 용기가 필요한 것 처럼 우리 역시 타인의 삶을 찢고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자가 필연적으로 짊어지게 되는 무게와 끊임없이 유동하는 내면의 갈등과 번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법 집행으로 누군가의 삶을 찢고 들어간다는 표현이 법 집행의 무거움을 잘 보여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판사들의 판결문 몇 문장으로 누군가의 인생이 송두리째 파괴 될 수도 있고 정의 실현이 될수도 있고
그 무게와 고뇌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익숙해질 수 없는 것들이고 한편으로는 익숙해 지면 안되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결이란 선악의 분별이 아니라 그저 제도적 분리에 불과하다고 했던 말이 아프게 떠올랐다
과거 서울에 있을 때 선배 판사와 대화 중에 판사 생활이 그냥 쓰레기 분리 같은 선악의 분별이 아니라 제도적 분리라고 차갑게 말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주도에 와서 친구 복자의 소송에 관여 하게 되면서 그 속에서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예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보편적인 선과 악은 분명 존재하고 판사라고 하면 인간성이 결여된채 법에 의해서만 판결한다고 한다면 그 판결이 100% 동의를 받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책이 판사들의 실존적 고민을 가장 잘 표현한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판사는 일상에서도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과 법조계에서도 여성 법조인으로 살아가는건 쉽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모든 직업이 소명의식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특히 의사나 판사들 처럼 누군가의 인생을 파헤쳐야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과 말 한마디에 좀더 신중을 기하고 자신의 직업에 막중한 책임감과 소명감을 가지고 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책속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지도층이 될수 있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봄비가 내리는 주말 남은 시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 새벽에 들어왔는데 벌써 두분이 다녀가셨군요. ㅎ 그런데 일찍 일어나신걸까요.. 아님 늦게 주무시는 걸까요...궁금궁금 ㅎ
그래도 두분의 자취 덕에새벽에 들어왔는데 벌써 두분이 다녀가셨군요. ㅎ 그런데 일찍 일어나신걸까요.. 아님 늦게 주무시는 걸까요...궁금궁금 ㅎ
그래도 두분의 발자국 덕에 이 새벽이 따뜻합니다.
치악산님의 후기는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의도치 않게 자신의 소신적 발언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그 상처를 바라보는 마음에 스스로 괴로워하는 그 상황이 상상이 됩니다. 더군다나 그게 사실에 다르게 이용될때 그 괴로움은 말할수 없는 상황이 되겠죠. 소소하지만 살다보면 그런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하죠. 어디부터 정리를 해야할지 허둥대는 마음을 상상하니 무엇이 옳은 일일까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문형배 판사님이 왜 이런 소설을 읽으셨을까 상상이 됩니다. 판사로서 인간적인 면을 살피고자 하는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노트북님께서도 언급해주셨지만 문형배 판사님의 성향에 대한 얘기가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 그 성향 보다는 그 판사님이 언급한 김장하 선생님에 대해 더 관심이 갔습니다. 어른 김장하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다큐가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것 같습니다. 저도 보았습니다. 그런 어른이 있다는 건 너무 행복한 일입니다.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죠.
그런 삶을 살기는 어려워도 쫓아가려고 하는 마음이라도 갖는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피의자들의 편지에 대해서는 모두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군요. 피해자나 그 가족들에게 보내야할 편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
세상엔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참 많네요.
후기 쓰러 들어왔다가 두분의 글 읽으며 마음이 훈훈해지는 이시간이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ㅎ
치악산님..^^! 안녕하세요~!
벌써 일주일이 지났네요,,! 요즘은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만 가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저도 이 봄을 만끽하고 싶은데,, 변덕스런 날씨가 참 아쉽네요.
저는 어제(토) 경기도 광주에 있는 율봄 식물원을 갔었는데, 구경 하는 중에 비가 오기 시작해서 아쉬웠습니다.
다행히 다양한 체험들이 상시대기 하고 있어서 아들과 그곳에서 놀았지만요,,^^:!
문형배 재판관님께서 왜 이 책을 추천해주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전해주신 글귀가 참 와 닿는 것이 많네요.
주변 분들 중에 정치성향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저 끝부터 이 끝까지요,,^^:
그 중에 강경보수인 분께서 문형배 재판관님이 완전히 'ㅃㄱㅇ'라고 하시는거에요,,
(오해가 있을까봐 말씀 드리겠지만, 실제 그렇다기 보다는 아마도 그 분께서 극단의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임하신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만 해도 헌재 재판관님들의 정치적 성향(?)에 관심이 잘 없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이 분은 ㅃㄱㅇ 인 것이 아니고, 전형적인 '민주당(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민주당)'적 성향을 가지신 분이신 것 같았습니다. 나이가 들 수록 공화당(보수당) 과 민주당의 성향은 거의 어느 나라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지인 분께도 제가 찾아보니, 그 분은(문형배 재판관님) 전형적인 민주당적 성향을 가지신 분이신 것 같고, 그 분의 삶이 아마도 그러했던 것 같다고 말씀 드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책의 후기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문형배 재판관님께서 (이 책을 추천하셨다니,) 그 동안 법조계에서 어떤 마음 가짐으로 임하셨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네요.
아마도 모든 인간은 법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으로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심리를 하려고 노력하시면서도, 그 과정에서 너무나 당연한 그 보편적 도덕은 어디까지 배제해야하는지 고뇌를 많이 하셨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결과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막중한 무게감을 느끼셨을 것 같고요,,!
너무 어려운 문제이면서도, 일반인인 저희 역시 살아가면서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나의 이 작은 행동이 미칠 나비효과에 대해서 생각을 아니할 수 없으니까요,,! 말씀 하신 의사나 법조인들처럼 자신들의 행동과 선택이 한 사람의 생명과 인생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엄중한 직업에는 꼭 그 소명의식이 중요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을 말한 사람보다는, 그 사실을 자신의 의도와 목적에 맞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잘 못되었다는 것에 완전히 공감 합니다.
그리고 문득 그 전까지는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왜 피의자들이 판사님께 반성문을 쓰고 감형을 받을 수 있는건지가 저도 신기하네요. 용서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은 피해자일텐데요.. 정말이지, 이 부분은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언가 더 합당한 방법으로 법이 변해야 할 것 같은 부분이었습니다. 평소의 치악산님의 사려의 깊이를 알 수 있는 부분이네요.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