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울감에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풍요롭기에 빈곤하다. 하지만 세상이 어떻든 알빠인가? 중요한건 내가 누구인가 아는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첫 단추는 내면의 아이를 아는 법이다.
내면의 아이를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까? 조금은 낯간지러울 수 있지만... 부모를 알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을 알 필요가 있다...
당신이 울음을 터뜨렸는데 아무도 대응해주 지 않았다면 어린 당신은 위로받지 못한 불행 한 상태가 부모님이 바라는 최상의 상태라고 믿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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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외로움,불행)을 방치 당하면, 그것이 부모가 원하는 본인의 최상의 상태라고 믿었다.
불행함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되는건가? 끝없는 우울은 오히려 행복해지려는 것이다. 엄청 어린시절 사랑을 알기 전 부터 슬프게 운다면. 아이는 그것이 부모가 바라는 최상의 상태라고 착각한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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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관종이냐?"
9년지기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들은 말이다.
나는 관종이 맞다.
어린 시절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사랑의 부재를 느낀 아이(나)는 계속 관심을 받으려고한다. 하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는다.
그러다 중학교 시절 SNS 세상에서 인스턴트 사랑을 느낀다. 음식으로 따지면 블량식품이라 표현하는게 좋겠다. 잠깐은 맛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몸에도 안 좋고, 금방 질리니깐. 하지만 계속 찾게되는 간식처럼 말이다.
현실에서도 내가 광대처럼 시선을 끄는 짓으로 모두가 웃으면 기분이 좋았다. 초등학교 시절 음악 시간에 앞에 나서 춤추는 기억, 국어시간 문학을 읽으며 상황극에 몰입하는 모습,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기억이 난다.
전부 사랑을 받아서 그런거 같다. 원시적으로 보면 초등학교 무리에 속하는 안정감을 느낀거니깐. 하지만 이모습 그대로 어른이 되었다.
우울에 빠지는 이유는 사랑받고 싶은 시절을 생각하면서 다시 퇴행하는 것이다. 내가 우울의 원인을 찾고 있었지만... 사실은 사랑받고 싶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또 그 문제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느라 답에서 더 멀어졌다.
내가 왜 우울한지 알았다. 그걸 부정할 일도 없다. 고민할 필요도 사라졌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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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면서 적은 궁금사항이다.
요즘 성인들은 왜 아직 자신이 애기라고 생각할까?
내면아이를 인식하지 못한걸까?
어른스러운 롤모델이 없어서인가?
알렝드 보통의 [불안] 이라는 책에서 사랑에 대해 말한게 있는데요~.
지위와 관련된 사랑을 받는 사람 역시 낭만적인 사랑을 받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호의적인 눈길을 받으며편안함을 느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이야기 입니다.~
저는 그 글에 대해서 무릎을 탁 치는 통찰을 얻었었어요~
일순간에 사람들의 행동과 우리의 삶이 어우러진 사회에서의 현상들이 다 퍼즐처럼 맞춰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책읽그실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니, 이 책도 생각나고, 또 얼마전 읽었던..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 도 생각나네요~. 물론 그런 폐인이라는 뜻은 아니고, 요조의 그런 광대짓이나 웃음 거리를 만들었던 이유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털어놓은 것이었는데, 작가의 어린 시절의 삶에서나 작품에서의 맥락을 보면 그 두려움은 '사랑의 결핍'(하지만 주변인이나 가족은 전혀 당사자가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걸 모르는 상황) 때문에 느낀 걸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부모님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돈을 버신거고 최선을 다 하신다고 생각하셨겠지만요..
이래서 부모가 되는 것도 어렵고, 너무나 되고 싶었지만 막상 되고 보니 제가 지금 맞게 하고 있는건지 막연한 두려움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글 감사합니다!
ㅎㅎ 왜 그런지 반갑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