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노트북 입니다.
항상 한 주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이 되면 행복한 미소가 지어지네요,,!
이 책은 제가 읽은 헤르만 헤세의 4번째 책인데, 딸기님 덕분에 좋은 책을 읽게 되어 감사하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유달리 감수성이 예민하고, 또 재능과 반골 기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특히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보낸 헤세의 책들은 부모로서 읽어야 하는 필독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3편의 소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모두 그런 느낌이 들었고요. 저는 아들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으로, 가엾은 한스를 안고 한없이 등을 쓸어내리고 토닥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뭐라도 한스가 이야기를 한다면 계속 들어주고픈 심정이었네요. 부모자식 간에 무엇이라도 솔직히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유대 관계는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사춘기 때도 아버지께는 무엇 하나 비밀이 없을 정도로 아버지께서 저의 무한한 대화 상대셨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저를 믿고 지지해 주실 분으로 항상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창 예민할 수 있던 시기에도 저는 마음속에 항상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아버지께 저의 일상에 대해 털어놓는 일이 참 많았는데, 그 시절에 이어서 회사 생활할 때도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제가 보람되고 용기를 얻을 만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정말 제가 가장 믿고 사랑하는 존재가 제게 그렇게 대해주신 덕분에 실제 스스로 그런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 또 행동하고 그렇게 선순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 거기에 더하여 이 책을 읽으면서는 제 학창 시절 친구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건 정말 한동안은 잊고 있던 기억들인데요~. 운이 좋을 정도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특히 고등학교 시절에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난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저는 사회의 곳곳에서 일조하며 본받고 싶을 정도로 그 시절 제가 느낀 그 인격에 변함이 없는 친구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정말 바르고 착한 친구들 덕분에 더없이.. 행복하고 충만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한스가 어머니의 부재나 사람의 깊은 마음까지는 헤아리지 못하는 아버지를 만난 탓에 그 힘든 시기를 잘 견디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어느 순간 친구를 제대로 사귄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대목에서 학창 시절이 생각이 났었네요,, 제 글에서도 몇 번은 쓴 것 같지만 살면서 특히, 어른이 되고부터는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자존감과 자기 확신에는 부모가 주는 사랑만큼이나 타인이 주는 그 사랑과 확신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작가와 소설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나누어 보겠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3번째 읽게 되면서 느낀 점은, 헤세는.. 주로 자전적 소설을 쓰는 대신에, 자신을 투영시킬 인물을 소설의 주인공 외에 등장인물 하나에 나눠서 배정을 하여 그 두 인물의 이야기에 함께 담는 방식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데미안]에서는 헤세의 성장기를 보았을 때, 싱클레어가 헤세가 라틴어 학교를 다니던 시절과 고등학교 시절에 방황하던 이야기를 썼던 것 같고, 선교사의 집안에서 태어나 가문이 바라는 선교사가 되어야 했지만 기독교를 배운 그대로가 아닌 자신만의 비판적 시각을 겸비해서 이해한 덕분에.. 그 선교사가 되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는 소설 속 싱클레어의 스승 피스토리우스에 투영시킨 것 같았습니다.
[싯다르타]에서는 실제 헤세가 실제 불교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자 인도 수행을 떠났던 시기를 소설로 옮기면서 방랑적 성향이 강했던 자신을 싯다르타에도 투영시켰지만, 자신이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또 되고자 지향했던 모습은 바주데바에 투영시킨 느낌이었습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저는 한스만큼이나, 아니면 오히려 한스보다 더 하일 너라는 친구에게서 헤세가 많이 느껴졌습니다. 문학을 좋아하고, 시인이 되고 싶었던.. 한스보다는 더 당당하고 주체 적으로 신학교의 가르침을 오히려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자신의 의지(?)로 신학교를 나갔던 하일너라는 인물이 오히려 제가 생각하는 헤세의 모습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저는 책을 읽고 나서, 왜 그렇다면.. 하일너는 다른 사람이 자살을 했다고 오해를 했으나.. 결국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고 자발적으로 그곳을 떠난 친구로 묘사를 하면서.. 한스는 왜 자살인지, 타살인지 조차도 분명하지 않은 죽음으로 마무리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냥 제 혼자 생각으로는 헤세 역시도 많은 글 쓰는 분들이 그러하듯이 그 시절 자신의 아픔을 글로서 고백하고 스스로 치유를 얻고, 그때의 그 한스는 이제 자신의 정신세계에서는 죽고 없다는 뜻으로 털어버리는 의미는 아니었을지..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실제로 이후에 출간한 [데미안]에서는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자아와 세계, 종교에 대한 모순에 대한 글을 썼고, 피스토리우스를 통해 우회적으로 이야기 하긴 했지만, 더 이상 부모와의 갈등으로 인해 자살 시도까지 치닫는 그 어린 시절의 1차원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더하여 이후 출간한 [싯다르타]에서는 또 한 [데미안] 시절의 고뇌도 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뭔가 연대기 별로 보더라도 헤세는 작품에서도 계속 성장했던 대가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한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읽기 시작하면 그 작가의 스토리 구성 방식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유독 자전적 소설 느낌이 강했던 춘원 이광수의 작품들에서는 거의 주인공이 이광수의 삶을 그대로 살았던 것처럼 묘사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헤세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캐릭터를 양분해서 설정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의도로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저의 기억, 저의 생각을 쓴 건 참 많은데요.. 일일이 열거하지는 못하겠네요,,^^,,
이제 6월이 되었네요.
벌써 24년도 반이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시간이 빠르네요,,!
회원님들도 이 소중한 삶을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득 채우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
넓고 깊게 보는 노트북님의 독서력은 항상 감탄이네요~
소설 속으로 끌어 당기는 헤세의 문장력에 빨려들고, 노트북님 후기글에 한번더 빨려 들었어요
데이안도 궁금하네요~
감사합니다
언제나 노트북님의 후기는 제게 큰 자극이 됩니다. 책을 이렇게 자세히 읽으시고 인물들에 몰입하시는 자세는 어떻게 책을 읽어야할지에 대한 저의 어설픈 독서에 큰 배울점이 되어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헤세의 책 3권을 읽으시면서 헤세의 자전적 이야기의 발췌라던가 연대기에 빗대어 성장점을 발견하시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이곳에 와서 여러 분들의 글과 노트북님의 글을 통해 어떻게 책을 잘 읽을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어 여기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꾸준히 계속해 나가길 다짐하게 됩니다. 아직 못 읽어본 싯타르타를 저도 꼭 읽어보려 합니다. 그때 노트북님의 글도 다시 한번 떠올려보구요. 바쁘신 일정에도 책임감 있게 책읽고 후기를 쓰시는 열정과 책임감에 오늘도 감동하고 갑니다. ㅎ
바쁘신 와중에도 책을 집중해서 읽고
자신의 경험들을 녹여내어 후기에 잘
담아 주신 노트북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헤세의 책들에 나오는 인물들에게
헤세 본인의 모습을 나누어 투영해 주었는다는
말씀이 인상적이고 공감이 갑니다.
같은 책을 읽고도 저는 하일너가 헤세의 모습
일부분이었을 거라는 생각까지는 해
보지 못했었는데 노트북님의 후기를 보니
그를수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책 후기를 쓰기까지 들여야하는
시간과 노력이 얼마여야 하는지
알고있고, 또 제대로 책을 이해하고
작가를 알기까지 한번 읽고는 결코 안되겠구나
깨닫게 되는 후기였습니다.
노트북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