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읽는 소설입니다. 언제부턴가 소설은 잘 읽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후기를 쓰려다보니 소설이 잘 읽히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다른 장르에 비해 가장 직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메세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독자 스스로 생각할 여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대부분 두괄식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식으로 서술돼 있는 최근의 여러 비문학 글들은 상대적으로 직접적인 메세지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라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자주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독서를 하면서도 생각을 최대한 안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좀 웃프네요. ㅎㅎ
애플TV에서 재밌게 봤던 드라마라 소설로 읽으면 분명 더 재밌겠지 생각했었지만, 혼자서 읽을 엄두도 못냈던 터인데 독서 모임 덕분에 안 하던 행동을 하게 되네요. 소소한 챌린지가 일상의 활력이 되길 바라며 천천히 읽어보려고 합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세기가 바뀔 무렵 나이 든 어부와 그 아내는 돈을 더 벌어 보려고 하숙을 치기로 했다."
이 소설의 첫번째, 그리도 두 번째 문장입니다. 작가는 이 두 문장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울였을까 궁금합니다. 달랑 두 문장을 읽고 마음이 먹먹(?) 해졌달까요, 멜랑꼴리해졌달까요, 잠시 멈춰서 생각에 빠졌습니다. 1930년대로부터 어언 10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소설의 노부부나 지금 나와 내 남편의 모습이나 뭐가 다른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문제, 돈을 더 벌어 자식을 조금 더 풍요로운 환경에서 먹이고 입히고 키우고 싶은 부모 마음도 똑같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역사적으로 가장 비참하고 불행한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건만, 보통 사람들의 삶은 어쩌면 이전이나 그때나 똑같이 먹고 살아야 하는 대명제 앞에 서 있다는 점에서 매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첫 문장의 의미에 골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다"는 결국 "그래도 살아야 한다"라는 말로 읽혔습니다.
"선자는 잘 웃고 밝은 보통 아이였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천하 제일의 미인이었다. 훈이는 선자의 완벽한 모습에 감탄했다. 이 세상에서 자기만큼 딸아이를 보물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아버지는 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딸아이의 웃는 모습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제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훈이는 선자의 완벽한 모습에 감탄했다"는 문장을 대충 넘기고 지나갔을 겁니다. 너무 진부하고 뻔한 문장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매일 아이와 부대끼며 살고 있는 엄마가 되고보니 매일 매일 순간 순간 아이를 보며 감탄하고 찬탄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아이가 내뿜는 "완벽함"이란 게 어떤 것인지 잘 알기에 저 문장이 피부로 절절히 와닿았습니다. 하루의 대부분은 육아를 하며 지치고 피곤하지만, 아주 짧은 몇 초(?)간 아이가 보여주는 천사 미소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지요 ㅎㅎ 어머니와 아버지의 온건한 사랑을 듬뿍 받은 선자가 어떤 여자로 자라나 어떤 삶을 살아갈지 궁금합니다.
책은 쪼금 읽고 후기가 길다는 생각이 드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어린 시절 매일 사랑이 가득 담긴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바라보셨을 때 어린 노트북님의 마음은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하고 사랑이 가득 했을까요^^ 그래서인지 노트북님이 달아주시는 댓글에서도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정성과 애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후기를 쓰는 것도 어렵지만 시간내어 읽고, 댓글을 쓰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말이죠. 많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요안나님은 넘 멋진 분이시네요..^^! 정말 정말 멋지십니다.! 저는 소설이 잘 읽히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네요..^^:
그리고 말씀 하신 이유에 감탄을 했는데요,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도 줄곧 이야기의 재미나 문학적 표현의 감동으로 소설을 읽다가,
어느 순간 부터 너무나 깔끔하고 명료한 지식을 전달하는 책으로 옮겨 갔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말씀 하신 대로 그런 책들은 대부분 읽기가 편한거에요.. ㅎㅎ
전달하려는 내용이 너무 명확하니까요!
물론 그걸 잘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응용하려면 생각을 안 할 순 없지만,
소설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음미하고 생각하고, 다시 찾아보고 또 음미하고 할 때의 과정이랑은 다른 것 같아요.
정말 정말 공감했던게, 소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이해하려면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서 모임을 하면서 소설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그나마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은 조금은 읽기가 쉬운 것 같았습니다. 전달하려고 하는 메세지가 글에서 표현이 되고,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파친코는 작가는 어떤 이야기, 무엇을 말해주고 싶어서 이 소설을 썼을까..?!
단순히 소설에 나와 있는 그 시절 일본에 사는 조선인, 그 시절의 우려움 들을 전달해 주려고만 썼을까?
소설에 나와 있는 여자의 일생은 어렵다는 말을 전하려고 썼을까?
책 제목이 파친코니까. .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길을 선택하든지 결국 최종적으로 한 곳으로 모인 그들의 삶(결국 그 시대의 굴레를 벗어 날 수 없었던 일본에 사는 조선인)의 서글픔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런 메세지 여러개를 전달하려고 했을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녀가 이책을 떠올렸을 때 가장 떠오르는 맥락은 무엇이었을까..?!
(완전한 혼자만의 추측인데..) 좀 생뚱 맞게 엮는 걸수도 있지만,, 노아와 하나의 끝이 다른 이유는 그들의 자아 인식이 애초부터 달랐으니까 그렇게 되었다는 것일까?! 부터 작가의 의도를 알고 싶어서 많이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데미안 같은 경우는 읽고 나서 후기를 쓰고 나서도 헤르만 헤세의 삶과 책이 하루종일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제 후기도 다시 읽고, 또 읽고, 다시 책을 보고..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더라고요.
이전이랑 다르게 소설의 묘미를 알게 된 느낌이어서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요안나님의 후기를 읽고, 제가 명확히 정리하지 못했지만 최근 소슬을 접하면 느꼈던 점에 대해 말씀 하신 통찰에 놀라서 글을 길게 남기게 되었네요..^^..!
더불어, 훈이가 선자를 사랑하는 모습은, 저희 아버지께서 어린시절 저를 그렇게 매일 바라보셨던 기억과, 제가 제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 등을 느낄 수 있어서 저도 그 자체로 미소가 띄어졌습니다. 그시절의 부모나 지금의 우리나 먹고 살 궁리를 하는 모습도 같고요..! 전체 후기에서 다 전하지 못했지만, 소소하게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도 많이 공감이 되네요. ^^
후기 넘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