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라는 말
손택수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뭐냐면 있는 그대로더라
나이테를 보면서 연못의 파문을, 지문을,
턴테이블을, 높은음자리표와 자전거 바퀴를
연상하는 것도 좋으나
그도 결국은
나이테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만은 못하더라
누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평화 없이는 비둘기를 보지 못한다면
그보다 슬픈 일도 없지
나무와 풀과 새의 있는 그대로로부터 나는
얼마나 멀어졌나
세상에서 제일 아픈 게 뭐냐면,
너의 눈망울을 있는 그대로 더는
바라볼 수 없게 된 것이더라
나의 공부는 모두 외면을 위한 것이었는지
있는 그대로, 참으로
아득하기만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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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남편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신작 영화 <괴물>을 보았어요. 영화 취향이 비슷한 저와 남편은 지극히 주관적으로 고레에다 감독을 최고의 영화 감독으로 꼽는답니다 ㅎㅎ
고레에다 감독은 <아무도 모른다>로 처음 알게 되서 영화들을 다는 아니어도 여러 작품 보아왔는데 그의 영화를 참 좋아하면서도 한 번 보면 두 번 다시 보기는 힘들었어요. 너무 사실적이어서 보고 나면 정말 괴롭거든요.(잔인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어요. 인간사와 사회상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괴로워요)
근데 몇 년 전에 송강호, 아이유, 강동원 등 한국 배우들과 한국 자본으로 만든 영화 <브로커>를 보고, 어랏? 이 감독이 이렇게 희망적으로 영화를 마무리 지었던 적이 있나? 싶어서 깜짝 놀랐었어요. 마지막에 눈물을 줄줄 흘리긴 했지만 결코 예전 영화처럼 참담한 느낌을 주며 끝나지 않더라구요.
그러다 이번에 뒤늦게 <괴물>을 보았는데, 이건 정말 최고의 명작이구나! 싶을 정도로 감탄하면서 보았답니다. 이 영화 대체 무슨 내용을 말하려는 거지? 생각하면서 따라가다보니 나중엔 엄청난 '진실'에 가닿게 돼요. 근데 그 과정에서 모두 제각기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선이 담긴 스토리들이 흘러갑니다. 일어난 사건은 동일한데 그걸 보고 겪는 사람이 바뀔 때마다 영화에 엄청난 반전이 일어납니다. 영화는 내내 질문을 해요. "괴물은 누구일까?"
영화를 보고 나면 괴물이 결코 이상하고 무서운 명명백백한 악인이라기보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어쩌면 가장 가까운 가족, 엄마, 선생님, 친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 나 자신도 포함해서요.
손택수 시인의 이 시를 읽으며 영화 <괴물>을 떠올렸습니다.
있는 그대로, 누군가를 본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
저도 시인처럼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아이를 바라볼 때, 나의 관점이 아니라
아이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대부분은 실패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차라리 "나는 모른다"의 자세가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다 알아, 하면 그때부터 관계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말이에요.
차라리 모른다고 생각하면 물어보면 되니까 최소한 소통이 끊기지는 않게되는 것 같아요.
오늘은 시를 읽다 본의 아니게 영화 리뷰(?)까지 했네요 ㅎㅎ
오늘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저도 눈에 뭔갈 씌우고 사람과 세상을 보고 있어서 움찔 했어요
과연 괴물은 누구인가...
흠... 고민하게 만드는 문장이네요
아무도 모른다 부터 봐야겠어요
나의 공부는 모두 외면을 위한 것이었는지 -> 요 구절이 마음을 먹먹히 만드네요 ㅠㅠ
같은 상황도 각자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데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없지만 최대한 얄린사고를 하기위해 노력해야 겠습니다 😊
요안나님,,! 저도 좋아하는 영화가 있긴 하나, 특별히 좋아하는 감독이 있을 만큼 매니아는 아닌가 보네요 ^^:
오늘 말씀해 주신 이 감독님도 처음 들어봤습니다. ^^:
(여기서 이렇게 문화 생활에 차이가 나네요.. ㅎㅎ)
인간사와 사회상에 너무 괴로워서 다시 보기 힘들다는 말씀이 무슨 감정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저도.. 흉악 범죄나,, 아이에 대한 범죄로 세사이 떠들썩 해도, 막상 그 뉴스를 클릭하는 것이 두려워서 보지 못한 까닭에 그 사건에 대한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ㅜ 볼 수가 없네요..
유튜브에서 나오는.. 희귀질환 아이들에 대한 캠페인 광고도 클릭을 할 수 없는이유네요.. ㅜ
외면하는 힘없는 제 모습이 속상하지만.. 클릭해도 원없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다는걸 알아서 괴로운 그런 마음입니다.
말씀 하신 것처럼, '괴물'이 누구라도 될 수 있단느 사실이 너무 무섭네요.
특히나..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말 의도치 않게 괴물이 되어 버린다면 너무나 힘들 것 같습니다.
오늘도 책는 시간에는, 아이와 함께 할 미래가 왜이리 벅찬지, 참 우리 아이가 이런 세상을 알아갈 때 얼마나 신기하고 설렐까! 하며 읽었는데요,,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며, 세상 살면서 중요한게 많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비극이 찾아오지 않게.. 계속 해서 저를 돌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을 수록 그게 가장 두렵네요..! )
"세상에서 제일 아픈 게 뭐냐면,
너의 눈망울을 있는 그대로 더는
바라볼 수 없게 된 것이더라"
이 구절이 특히 슬펐네요..!
오늘도 생각할 수 있게 해주신 글 감사드립니다.!
너무나 화창한 금요일 입니다.~^^!
오늘 하루 즐거운 날이었으면 좋겠네요.
노트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