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노트북 입니다.
드디어 토지 2권 후기를 남기네요,,!
새벽에 2권을 읽고 후기를 바로 써야 하는데,, 너무 재밌어서 3권을 이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
그 바람에 정신이 몽롱해질 때까지 가서.. 후기는 아침에 남기게 되었네요.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는 조선 개화기 동학농민 운동 시절부터 일제 강점기에서 광복이 되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쓰인 대하소설입니다. 우리 시간으로는 박경리 선생님께서 1969년부터 시작해서 1부 만 3년 연재, 2부 만 3년 연재, 3부는 2년의 공백기 이후 만 3년 연재, 4부는 연재 중 공백을 갖기도 하면서 총 5부가 1994년 8월 30일까지 총 26년간 집필된 대작입니다.
저는 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어린 시절 정말 순수하게 책을 이야기보따리로 생각해서 빨려 들어갔던 초등학교 저학년시절의 기쁨을 다시 누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책이 너무 좋아서 계속 방에 박혀서 읽었던 것은 다름 아닌 전래동화 전집이었는데요, 초등학교 저학년 용은 아니었어서 한 권당 페이지도 많고 당시 제가 읽던 책보도 활자도 많이 작았던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단편 이야기로 이루어진 그 책들은 호기심과 재미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모든 이야기가 교훈을 전해주고 있어서 책 읽고 가슴 뜨겁게 느껴지는 바도 컸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에 필요한 인성 교육에도 톡톡히 한몫을 했던 책입니다.
그 시절 그 책이 너무 좋아서 당시 고모께서 보내주신 책더미들 (전래동화전집을 비롯한 위윈전 등 각종 전집)에 파묻혀서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주 오래 전의 그 감정이 지금 딱 [토지]를 읽는데 그대로 느껴져서 향수 같은 기분이 느껴집니다.
정말이지, 주변에 책에 재미를 붙이시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누구라도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네요.
문학적, 시적 표현, 논리적 사고, 통찰력 이런 것들을 떠나서 순수하게 책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빠져들고 계속 읽고 싶은 이 기분. 정말 오랜만입니다.
19금 같은 내용들이 있어서 어린 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으나, 정말이지 제 아들이 초등학교 저 학년 때 이 책을 읽으면, 책이란 이렇게 재밌는 것이구나! 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어떻게 박경리 선생님께서는 이 대작을,, 연재로 쓰셨는지가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냥 저의 머리로 생각해 보자면.. 어떤 소설을 연재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집필을 끝낸 다음에야 나눠서 연재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몇 편의 서편을 읽어보면 정말이지 당시에 박경리 선생님은 글을 연재하셨다는 느낌이 듭니다.
흔들리지 않을 구상이 이미 짜여 있고, 그것을 연재로 이어가신 건지.. 아마 그러셨겠지만, 읽으면서 그런 것이 많이 궁금했습니다.
아이가 아팠던 관계로 친정 부모님께서 김장김치를 가지고 병문안을 오셨습니다.
아버지께 [토지]를 읽어보셨는지 여쭤봤는데, 당시에 너무나 재밌게 읽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바로.. "평사리!" 하시더라고요,,!
참 재밌게 읽었고, 당시에 박경리 작가님이 참 위대하게 느껴졌었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서 아버지께는 세세한 내용보다는 아웃라인과 그때의 감동정도만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점점 모든 기억이 흐릿해지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어찌 되었든, 함께 같은 책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책의 1부는 경상남도 하동의 평사리에서 100년 넘게 유지해 온 평사리 지주 최참반댁과 마을 주민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솔직히 2권 (3부 중간)까지 읽은 지금까지는 책에서 느꼈던 주관적 관점의 작가의 메시지, 제가 뚜렷이 이 책으로 느낀 바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등장인물이 많은 소설에서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데일카네기의 인관 관계론의 교훈들이 여기서도 느껴지고, 또한 사람들의 진실된 감정에 많이 공감이 가는 소설입니다.
지난주 후기를 쓸 때만 해도, 아무리 그러하더라도.. 용이 특유의 뚝심으로 아무 일 없던 듯이 살면서 혼례를 치른 이후에 월선과의 관계가 이어지지 않길 바랐었는데요, 당시에는 오광대 구경한 날 술 취한 용이가 월선을 찾아가 하룻밤을 보내는 것에 조금은 실망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렸던 용이의 캐릭터에 반하는 일 같아서 실망을 했던 것 같지만요.. 그래도 용이와 월선이 밉거나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습니다.
이후에 1권의 나머지 후반부와 2권을 읽으며.. 용이와 월선이가 너무 불쌍해 눈물이 나왔습니다.
저는 왜 그런 당돌한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제가 자서전을 쓸 거라는 가정을 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현실이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요..) 그렇게 생각하니, 살면서 '이 이야기는 훗날 나의 자서전에 반드시 쓰겠다.' 하고 결심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시간이 많이 지나서, '나의 남편과 자식조차 나의 그 회고록을 전혀 허물로 삼거나 서운하고 노여워하지 않을 그런 시기에 나의 이 이야기를 꼭 글로 남기고 싶다. 그렇게라도 (누군지 밝히지 않을) 상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렇게 간직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냥 제 인생에서는 오랜 시간 제 정서에 아주 소중한 영향을 미쳤다 생각되는 이야기니까요,, 문맥상 짐작은 하시겠지만, 사랑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문득문득, 노래를 들을 때, '내게 이런 어린 감성이 남아 있다니,, 왜 내가 꼭 대학생이 된 것 같지?' 하는 순간의 감정이 올라옵니다.
이번에 용이와 월선의 이야기에 눈물이 나왔고, 3권 초반에 나오는 강포수의 순정, 그리고 뒤늦은 귀녀의 후회에 또 눈물이 나왔습니다. 어쩌다 이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애틋하고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읽을 때면, 제 가슴에는 아주 이전의 아주 동일한 그 감정과 아픔? 같은 것이 그대로 느껴지는 느낌입니다.
물론 저는 지금 아들과 남편 모두에게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옛 추억으로 뇌에 새겨진 그 감정선을 머리가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토지로 초등학교 시절 전래동화의 그 설렘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처럼요..)
그리하여 지금 어엿한 가정을 꾸린 아내의 입장에서 강청댁의 그 속 타고 비틀어진 심사도 이해하면서도.. 용이와 월선의 그 아픔도 그렇게 딱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딸기님의 1권 후기도 생각이 났습니다.!)
최치수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있어도 자식이 될 수 없었던 그 단절감과 상처 때문인지 흔히 다른 사람들이 '독사'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최치수에게 또한 조금은 연민이 느껴졌습니다. 그러한 최치수를 사리사욕으로 죄책감 하나 없이 죽이려고 했고, 실제 죽였던 귀녀와 평산에 대해서 화가 많이 났었고, 윤씨 부인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밝혀낸 것에 안도가 되기도 했지만, 마지막 강포수의 애틋한 사랑과 귀녀의 후회에서는 너무나 안쓰럽고 딱해서 눈물이 찡긋 했었네요..
어제(일요일) 집에 오신 아버지께서 메모 가득한 제 책들을 보면서 어쩌면 책 보는 것도 이렇게 아버지랑 똑같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간,,! '그래! 나는 정말 아버지를 많이 닮았고 비슷한 점도 많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토지] 이야기에 이어서 자연스레 아버지의 말씀에서 사상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이것이 저희 둘의 생각을 갈라놓게 된다고 느껴졌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전체주의를 상당히 옹호하시고,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사상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이 점에서 항상 동의가 안되고 심지어 (아직도) 놀라기까지 합니다. 어찌 보면, 아버지는 전형적인 그 시대 분이셨던 것이고, 저는 전형적인 지금의 시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개인의 자유와 존엄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전체를 위해 개인과 가정들은 희생을 당하고 지배를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어쩌면 그것이 더 효율적이고 이롭다고 생각하시는 그 틀을 아직도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물론 아버지는 지금 우리나라의 특정 정당에 대한 그런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시진 않습니다. 이제는 그런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점은 마찬가지 이기도 하고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의 성향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곳곳에 등장하는 개화와 보수 세력에 대한 이야기에서 어린 시절에는 그토록 일본이 잘못한 것으로만 알았다면, (물론 지금도 용서는 안되지만..) 언젠가부터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서 세상이 눈뜨지 않길 바랐던 흥선대원군과 고관들부터 탓도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토지]를 읽기 훨씬 이전부터입니다. 이 책에서도 명분만 중시하는 양반을 야유하는 말, 특히 인격은 정말 닮고 싶지 않지만, 하는 말 족족 (그것이 그냥 겉만 알고 하는 말이라 할지라도..) 너무나 공감 가는 말이 조준구의 말들이었습니다. 거의 제가 생각하는 모든 것과 일치하는 말을 하필 조준구가 한다는 것이 그리 반갑지는 않았지만요, 또한 김훈장과 문의원의 대화에서는 문의원의 말씀에 기울어졌습니다.
이 책의 등장인물 중에서 저는 어느 관점에 있는 사람인지 소설 속 대화를 통해서 보니 더 잘 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는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인관 관계론, 그리고 반대 사상을 가진 상대에게 느끼는 우월감, 나보다 못한 자가 교묘히 불쾌하기도 하지만 또 그런 사람을 질타하면서 가지는 개인의 우월감,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두 가지 관점. 하나는 죽음 자체를 '비'가 아닌 '희' 이자 유일한 탈출구로 보는 것, 또 하나는 끝없는 자부심의 훼손으로 죽음(끝)을 택하는 사람들, 여성을 남성의 삶을 보조해 주는 도구적 존재, 성적 욕구를 충족할 존재, 열등한 존재로 보는 세상에서는 유독 여자를 겁탈하는 일이 많이 일어났고, 또 그것을 지금과는 다른 잣대로 죄의 경중을 논했다는 것, 하지만 여성의 존엄이 보편화된 사회에서는 같은 상황 (여성이 밤길에 있든, 의상이 어떻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상대, 함부로 해하면 사회적 법적 엄격한 심판을 받는 사회에서는 과거에 여성이 겁탈을 당하던 똑같은 상황이어도 그런 범죄율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점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여성을 상대로 성적 범죄가 많이 일어난다는 나라들은, 그 나라가 특별히 남성들이 그 욕구가 주체할 수 없이 강하다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나라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여성의 지위와 존엄성의 사회적 인식에 비례해서 그러한 범죄 율도 상관성을 이루지 않았을까,,! 그렇게 직감적으로 추론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토지는 박경리 선생님의 출생지와 들어오셨던 이야기, 앞으로 이어질 주인공들의 옥사와 투옥 이야기는 박경리 선생님의 가족이 겪으셨던 경험이 녹아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민진 작가님의 파친코 역시, 작가님의 친가(평양) 이야기와 외가( 부산 영도)의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작가님 자신이 충격적으로 접한 일제 강점기 이야기를 소설화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집안이나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내려오던 외가와 친가 이야기가 교차해서 많이 생각났습니다. 특히.. 외가 생각이 많이 났는데 이전에 외할머니께 들은 이야기, 엄마께 들은 이야기, 저희 엄마라서가 아니고, 진정 엄마께는 '양반의 피'가 흐른다고 혼자서 느꼈던 부분들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한 번도 엄마께 그런 표현을 한 적이 없지만, 엄마성품 자체만으로도 엄마께는 (결국은 망했지만..) 몇 대에 걸쳐서 많은 걸 일구셨던 그 '우월한 유전자'가 남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나이 들어 세상을 알고 보니 더더욱 대단하시단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꼭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생각나서 더 재미가 있었습니다.
뚜렷한 문맥 없이 그냥 중간중간 느낀 글들로 후기를 쓸 수밖에 없네요.
이 책을 읽고, '기승전결'이 뚜렷한 후기를 쓸 수 있을지 저도 궁금하긴 합니다.
설사 그렇지 못할지라도,, 읽는 즐거움 만으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 같습니다.!
읽는 재미로 후기를 쓰기 전에 다음 책을 보게 되는 이 강렬한 끌림이 너무 좋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
노트북님의 후기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ㅎ 어린시절 전래동화를 읽던 그 시절을 기억하셨다는 말씀이 뭔지 어렴풋이 짐작할수 있을거 같습니다. 전 꼭 그 당시는 아니더라도 스토리에 푹 빠져서 푸근해진 그마음을 기억해요. 저도 그 느낌이 너무 좋거든요. 토지는 구수한 사투리와 더불어 우리에게 익숙한 (우리같은 나이대에) 옛날 정서들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몰입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우리네 조상들이 겪어왔던 시대상이 반영된 생활사가 너무 이해가 되고 그래서 그 감정을 오롯이 느낄수가 있어서 전 요즘 토지에 푹 빠져 지내고 있어요. 시간만 나면 책을 읽고 싶은 감정이 드는건 정말 오랜만이거든요.
각잡고 읽지 않아도 읽는 순간 그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자신을 느껴요. 요즘은 정말 또다른 책읽기의 행복입니다.
당분간 신랑 건강 때문에 여행을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요즘은 전혀 섭섭하지가 않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 덕분도 있지만 여행의 즐거움 만큼 독서의 즐거움이 제게는 무척 크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느낄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마음껏 독서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전 더 좋다는 생각마저 드는걸 보면 말이죠.
이런 즐거움은 함께 읽고 쓰고 나누는 이 모든 시간을 포함한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이 공감과 여러분들이 소중합니다 ㅎ
저도 용이와 월선이, 그리고 강포수와 귀녀 이야기에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강청댁이 안된것도 아니지만 그보다는 용이에게.. 아니 그보다는 월선이에게 더 마음이 가면서 월선이의 삶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용이와의 관계가 회복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게 뭐든 행복하긴 어려울순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요.
뒤늦게 강포수의 사랑도 못지않게 가슴 저리네요. 귀녀의 아이를 키우겠다는 마음이 너무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강포수가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도 놀라웠고 그당시에도 살인이 지금보다도 더 중하게 처벌된다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딱히 과학적인 증거가 있는것도 아닐텐데 실토를 하는 입장도 거짓을 부리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벌을 주는 입장도 아주 단호하다는 점도 놀랍다 생각했습니다.
또한 연좌제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사람들의 인식도 무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산의 처가 자살한것도 칠성이의 처 그리고 그 자식들의 입지가 불안정하고 비난을 받는 상황이 되는 것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의 감정적 베이스를 짐작할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스토리에 집중하는 소설을 오랜만에 읽다보니 그 재미가 너무 쏠쏠합니다.
저도 한권을 끝내기 바쁘게 다음 권을 들춰보는 재미있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토지 읽기입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