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치악산 입니다.
토요일에 가족 모임이 있어 후기가 조금 늦었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읽은 책은 2025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으로 수상자 김지연의 좋아하는 마음 없이 외 수상작가의 자선작 우리가 바닷속을 지날 때 를 비롯하여 수상후보작 구병모/엄마의 완성 ,권여선/헛꽃, 송지현/유령이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주혜/괄호 박은 안녕, 최진영/울루루-카타추타 까지 해서 총 일곱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단편이라는 특성 때문에 사용된 소재나 제시하고 있는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지 못하지만, 이것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의 모습을 알려 주는 소중한 편린이 된다. 그리고 이 시공간의 조각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시대의 이미지는 지금 여기 한국인이 가진 삶의 정념을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희원 심사평중
제가 일년에 한권은 문학상 수상 소설집을 읽는 이유를 심사위원께서 멋진 말로 잘 표현 해 놓으셔서 옮겨 보았습니다. 더불어 잘 알지 못했지만 단편을 읽고 잘 모르던 작가를 알게 되어 그 작가의 다른 글들로 찾아 보며 새로운 작가를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몇년은 젊은 작가 수상 소설집을 읽다가 작년에 현대문학상 소설집을 읽고 제 취향에는 현대 문학상 소설집이 더 맞는 것 같아 올해도 읽게 되었습니다.
수상작인 '좋아하는 마음 없이'의 작가인 김지연 작가는 작년 젊은 작가상 수상 소설집에도 반려빚 이라는 작품으로 만났었던 작가 였습니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 작품 내용은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주인공 안지는 자신의 호불호 보다는 사람들의 평판을 신경쓰며 자신의 호불호를 쉽게 바꿀수 있는 사람으로 전 남편과 서로 좋아 죽는 것만 빼면 썩 괜찮은 연애를 했고 혼전 임신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일년동안 키웠습니다. 그러다 전 남편이 바람을 피웠고 그로 인해 이혼을 하고 좋아 죽을 것 같은 현재의 남편을 만나 살고 있는 여성 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전남편이 사망을 하고 왠일인지 사망 보험금의 수익자가 안지로 되어 있어 사망 보험금 문제로 전 남편의 내연녀 이자 현재 안지 아이의 새엄마인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 여자는 남편이 죽었지만 안지의 아이를 계속 키우고 싶어하고 안지 역시 자신의 친아들을 키우고 싶은 생각이 없어 합니다.
그리고 전 남편의 사망 보험금의 대부분을 안지의 친아들 양육비로 주기로 합니다.
두 여자는 이야기를 마치고 그 여자가 먼저 자리를 뜬후 안지는 그 여자가 지갑을 두고 간것을 알게 되고 지갑속에서 안지의 전 남편, 그여자 그리고 안지의 아들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보게 되고 그것을 꺼내어 자신이 간직합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마음없이 전 남편의 가족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안지의 이야기는 안지 지인들과 함께 하고 있는 가장 해괴한 에피소드 대회에서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됩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주인공 안지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이혼을 원했을때도 그렇게 화를 내지 않았고 도리어 자신이 불청객인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친 아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 이었습니다.
남편은 그렇다 쳐도 내가 열달을 배속에서 품고 있다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낳고 일년이라는 시간을 키운 아이에게 정이 없다는 것이 선뜻 이해 되지 않았습니다.
문득 첫 아이를 출산 했을때가 생각 났습니다.
저는 첫 아이를 종합병원에서 낳았는데 출산 후에 아이를 바로 못 보고 뒷 마무리를 다 하고 병실에 돌아가서 몸을 추스린후에 아이를 만났었습니다.
둘째는 개인병원에서 낳았는데 세상에서 나오자 모자 얼굴을 보여주었 것과는 달랐습니다.
어쨌든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잠시 후에 깨끗하게 씻겨서 포대기에 쌓여있는 갓 태어난 아이가 제 아이라고 하며 간호사가 데리고 왔습니다.
그때 처음 든 생각이 이 아이가 정말 내 아이가 맞을까 였습니다. 병원의 실수로 혹시 바뀐다고 해도 내가 알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핏줄의 당긴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물론 아주 잠깐 든 생각이었고 저와 남편을 닮은 외모에서 내 아임을 부정 할수가 없었습니다.
소설속의 안지의 감정과 제가 느꼈던 감정은 아마 다른 것이겠이겠죠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것 사실이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에서 그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 했다. 그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게 가까운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첫 도입부입니다. 제가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이지만 안지를 응원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 첫 시작 때문이었습니다. 좋아하지 하는 마음 없이 가족과 사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꼭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좋아해야 하는 걸까요?
자신의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마음은 비난 받아야 하는 걸까요?
사실은 지금도 좀 혼란 스러운 마음입니다. 기존에 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부정을 당했지만 불쾌하지만은 않은 이해가 되는 것 같은 마음은 무엇일까요?
책을 읽고 제 생각을 정리하고 어느 정도의 결론을 내리고 후기를 썼어야 하겠지만 이번에는 쉽게 결론을 내릴수가 없었던 것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수상 후보작 중에 권여선의 헛꽃이라는 작품 하나만 더 소개 할까 합니다.
주인공 혜영은 30여년의 교직생활을 명예퇴직하고 이혼녀로 홀로 살고 있는 중년의 여성입니다.
혜영이에게는 여동생 혜진이 있고 홀로 살고 있는 엄마 신숙이 있습니다.
혜영은 신숙이 아플때 마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간호를 합니다. 신숙을 간호할 때 마다 방광염, 우울증, 불면증을 달고 나오는 혜영을 두고 혜진은 주두성자 같다고 하며 너무 자학적인 효도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혜영은 그런 혜진을 이해 할수 없습니다.
혜진은 어릴적에는 외할머니 유재에게 행맹이 빠진 년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고 결혼을 하고 나서는 남편에게 헛꽃이라는 이유로 일주일만에 이혼을 하자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숙을 간호하면서 읽었던 소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에필로그에서 헛꽃이라는 단어를 만나게 됩니다. 소설속의 소냐는 고아로 로스토프 백작 집에 얹혀 살면서 그 집 딸인 나타샤와 같이 자라고 그 집 아들인 니콜라이와 결혼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서른살이 된 소냐는 여전히 그집에서 살고 있으면서 니콜라이와 결혼을 하지 못하고 그집에서 묵묵히 도맡아 하고 있었고 그런 소냐를 나타샤는 헛꽃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서 혜진은 자신이 어렸을때 들었던 행맹과 헛꽃, 그리고 주두성자에 관한 뜻을 찾아 보게 됩니다.
행맹은 반쪽이라는 뜻으로 행맹이 없다는 말은 반푼이라는 말이고 헛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을 말한 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두성자는 높은 기둥 위에 올라가서 수행하는 성자를 이르는 말로 점점 도를 넘어 강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혜진은 엄마인 신숙이 길에서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당장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전화를 받게 되고 서둘러 짐을 챙기다가 예전에 길에서 넘어졌던 자신의 모습이 신숙의 모습과 겹치면서 멈칫하게 되고 자신이 어릴때 들었던 "하이고! 이 헹맹이 빠진 년아!' 소리내어 말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나쁜 말을 쉴새 없이 쏟아 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고 나쁜 말들의 사슬로 부터 풀려나 자유러워 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그순간 혜영이에게 전화가 오고 엄마의 소식을 전하면서 자신을 헛꽃으로 대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 자신이 헛꽃이 될까봐 걱정해준 유일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때닫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작가는 질문합니다.
한 사람을 놓고 , 그녀는 없는 사람이라고, 그녀의 소망과 욕망을 무시해도 된다고, 그녀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녀는 헛꽃일 뿐이라고, 그녀의 내부는 헛꽃 속처럼 텅 비어 있다고, 감히 인간이 인간에게 그런 참혹한 판단을 내려도 되는가
라고...
이 책에 실린 인물 들 중에 가장 안타까운 인물이 혜영이였고 감정 이입이 많이 되는 인물도 혜영이었습니다.
벌을 받고도 마음이 편안해 했던 혜진에게서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릴적 사랑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고 사랑을 받지 못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지냈던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일찍 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 어머니 밑에서 남동생과 자라면서 어머니는 저에게 희생(딸이라서 대학을 보내줄수 없다 취직해서 돈을 벌어라)을 강요하기도 했고 한 풀이(술 취한 모습으로 신세한탄, 딱히 기준이 없던 체벌을 가장한 신체적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엄마의 정서적 학대가 아주 심하지는 않았지만 자존감은 낮았고 그래서 엄마에게 동생에 비해 하찮은 취급을 당해도 그렇게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도 저는 저를 헛꽃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껴주고 생각해 주는 좋은 사람을 만나 낮은 자존감도 많이 회복하고 나 스스를 많이 아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장기 요양 등급을 받은 어르신들에게 요양 보호사를 보내드리는 일을 하고 있는데 타인 요양 뿐 아니라 가족 요양을 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딸이 친 부모님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요양 서비스를 제공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같이 살고 있으면서 자녀들이 서비스를 제공 하는 경우도 있고 매일 방문하여 서비스를 제공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족 요양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는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부모님을 찾아 뵙고 보살펴 드리다가 가족 요양을 시작하게 되면 점차 부모님 보살피는데 소홀해 지고 가족 요양 서비스를 제공 하는 자녀가 부모님을 전적으로 보살피면서 수발의 부담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아져 고충을 호소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동생이 언니의 과도한 효도를 말리고 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각자의 여러 이유로 누군가(형제 자매, 아내 등 대부분이 여성들이라는 사실은 가슴 아픈 현실 입니다)의 희생을 모른척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습니다.
여하튼 혜진이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계속 바랬습니다. 효도를 하되 과도한 희생을 하지 말고 자신의 몸도 보살피면서 살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희생을 고마워 하는 사람들이 많아 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외에도 완경을 맞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 일년전 죽은 사람에 대한 남겨진 이들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 번역을 하며 소진된 자신의 내면을 채우기 위해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 여성의 이야기, 어린아이를 구하고 죽은 남자의 아내와 아들의 이야기 등
모두 기존의 소설에서는 쉽게 보기 힘들었던 전개 방식, 인물표현이 기억에 오래 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소설을 읽기 힘들어 하는 이유가 소설 특성상 독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이해할수 밖에 없는데 저는 그걸 힘들어 사람이었습니다. 이해 수준이 낮아서 일수도 있고 어릴적 자라온 환경 으로 인해 사회적 공감 능력이 결여된 탓도 있고
여튼 소설 보다는 결론이 명확하게 나와있는 비문학을 즐겨 읽었던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익명을 방패 삼아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감추고 싶던 저의 모습을 털어 놓았는데 부디 읽는 분들이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저녁 시간 잘 보내시고
2월의 마지막주 잘 마무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딸기산 님 안녕하세요
네 저에게도 굴레가 있었고 잊은게 아니라
이렇게 무언가를 통해 불쑥불쑥 나타나더라구요
어린 시절의 힘들었던 시간들이
어떤 면에서는 나를 초라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대신 독립적인 인간이 될수 있기도 했어요
어린시절부터 기댈곳이 없었던 터라 ㅎㅎ
그래서 어린시절 트라우마를 다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이정도면 잘 자랐다 충분히 잘 살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책 이야기에 그리고 저의 인생 이야기에
귀기울려 주시고 공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월의 마지막 한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