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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5년 4월 12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홍이가 임이네때문에 힘들어서 석이한테 찾아갑니다. 누구에게라도 위안을 얻고 싶은 심정인가봅니다. 짐승보다 못한 친모때문에 너무나 괴로운 홍이. 홍이의 심적 고통을 석이도 이해합니다. 누구보다 사랑을 주고 세상살이에 힘들때 격려해 줘야하는 자리인 엄마라는 존재가 홍이는 세상에서 가장 악독하고 미운 존재이니 그 마음이 얼마나 스산할까요. 월선이 살았을 적에는 월선을 엄마로 삼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는데, 이제 월선이 없으니 홍이의 방황은 끝없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홍이를 보며 석이는 가난해도 심성좋은 엄마가 있어 큰복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임이네 같은 엄마도 월선 같은 엄마도 존재합니다. 어떤 성품의 엄마를 두었느냐에 따라 자식의 인생은 너무나 달라지는데요. 홍이가 부모의 굴레를 벗어나서 자신의 인생을 잘 찾아가길 바랄뿐입니다. 서희는 조준구에게 5천원을 주고 평사리 옛 최참판댁 집을 샀는데, 그 집에 가보지 않습니다. 평사리는 서희에게는 좋은 추억의 고향이 아니었지요. 친모는 서희가 다섯살때 집을 나갔고, 친부는 딸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고, 겨우 할머니만 의지하고 살았으나 할머니 조차도 자기 엄마와 도망간 남자가 할머니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에 놀란 나머지 평사리 집은 더 이상 가고싶지 않은 고향이었습니다. 그래서 서희는 그 집에 용이가 가서 지내게 합니다. 용이에게는 평사리가 젊은 시절을 상기시키는 젊음의 고향 처럼 푸근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강청댁 월선 임이네 세 여인과 얽히고 설키며 지내온 세월들이 돌아봐지면서 자신의 마지막을 보낼 안식처 처럼 느낍니다. 홍이에게 자신이 죽은후 월선의 무덤을 용정에서 이곳으로 옮겨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오래 살지 못할 자신의 앞날을 예견이라도 하듯이요. 고향이란 단어가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고향을 떠올리면 어린시절 부모 형제 이웃간의 정을 느끼는 곳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고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곳으로 끔찍한 곳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고향이 전자에 속해서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작년에 제가 지금 사는곳으로 이사오기전에 살았던 곳을 가봤습니다. 그곳에서 저의 20대와 30대를 보낸곳이어서 부모님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장소지요. 그리고 결혼하고 아들이 초딩을 다니기 전까지 살았어서 아들과 부모님과 함께 했던 장소들을 가보면서 옛추억에 잠시 잠겨봤었습니다. 내가 살았었던 장소는 그냥 장소로서가 아닌 인생의 한페이지를 함께한 의미가 있기에 살다가 마음이 허전할때면 소싯적 살던곳을 방문해 보는것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살아온 길을 다시 돌아보고 그곳 추억을 상기시키는 일은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마음을 다잡게 하는 역할도 해 주는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사는곳도 먼훗날에 좋은 추억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좋은 시간들 많이 만들어야겠구나 생각하며 돌아왔습니다. 9권 후반에는 한복이 독립자금을 전달하러 용정에 갑니다. 한복이 살면서 고향을 벗어나 이렇게 먼곳까지 가본것은 처음입니다. 한복도 홍이처럼 부모의 죄를 자신이 떠 안고 사는 처지입니다. 살인죄를 지은 아버지로 인해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큰 짐을 자신의 인생이라 생각하고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늘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갖고 삽니다. 그러다가 용정오는 길에 여러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에는 갖가지 사람들이 갖가지 의미를 품고 살아가고 있다는것을 알게 됩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용정에서 공노인을 만나 부담스럽게 들고온 독립자금을 무사히 전달 하고, 길상도 만나게 됩니다. 길상은 한복에게 이런말을 해 줍니다. '너의 가난과 너에 대한 핍박을 너의 아버지 너의 형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네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네가 없다는 것은 죽은거다. 아니면 풀잎으로  사는 거다. 너는 너 자신을 살아야 하는 게야. 너의 자손을 위해서도, 너의 아버지의 망령을 평생 짊어지고 다니다가 너의 자손에게 물려줄 작정이냐 말이야' 이 말을 해 주며 부모의 굴레를 벗어나서 네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해 줍니다. 이 말이 한복에게는 큰 용기를 주는 말일듯 싶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아버지와 형의 십자가를 지고 사는 한복을 그 십자가는 네가 질것이 아니라고 말 해 주는듯 했습니다. 그리고 한복의 아버지나 형 같이  누구 한 사람의 인생뿐만 아니라 수천만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런 사람들을 없애는 일에 한몫을 하는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크게는 독립운동이 그런 의미를 지닌다고 말합니다. 한복이 길상과 그 주위 독립 운동가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변화가 생길지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한복이 용정에 온 목적은 독립자금 전달이지만 겉으로는 형을 만나러 온것 처럼 가장해야했기에 결국 형을 만나게 됩니다. 피는 물보다는 진한듯 형 거복이도 동생 한복이가 하나밖에 없는 핏줄이라 서로에 대한 정이 남보다는 다른듯 합니다. '잔인무도한 악인이 선량하고 정직한 아우를 껴안고서 눈물을 흘린다.' 이들의 상봉이후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10권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이상 9권 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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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5년 4월 06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2주마다 토지 한권 완독하여 후기를 쓰고자 했었는데, 요즘은 제 머리속에 여러 잡념들이 많아서 진득하게 책읽기 하기가 잘 안되네요. 그래도 중반까지 읽었으니 후기 짧게라도 올리겠습니다. 9권에는 서희가 간도에서 돌아와서 조준구에게 복수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벼르던 조준구는 너무나 하찮은 인간쓰레기가 되어 있어서 서희가 앙심을 품고 복수할 상대로는 어이없을 지경입니다. 서희의 옛 집을 조준구는 서희에게 5천원을 받고 집문서를 내어줍니다. 그 과정이 원래의 서희집을 서희가 찾는 것이니 굳이 돈을 후하게 쳐줄 필요도 없지만, 궁색한 조준구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가 살아갈 밑천이라도 받고 싶어서 서희가 내민 5천원을 비굴하게라도 받아갑니다. 토지에 인간쓰레기를 담당하는 몇몇인물이 있는데 조준구 외에 임이네가 또 있습니다. 용이가 아파서 쓰러졌을때 관수가 용이 몸보신으로 먹이라고 올골계를 가져와서 홍이가 아버지 먹이겠다고 오지솥에 고는데, 이것을 본 임이네가 몰래 고아둔 국물을 자기 마시겠다고 덜어내고 맹물을 다시 부어둡니다. 이것을 본 홍이가 화가나서 오지솥을 부엌바닥에 냅다 던집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인간쓰레기들의 모습입니다. 관수는 백정의 사위라 하여 상인에게 까지 천대를 당합니다. 임이네 조차도 '백정 주제에 오골계를 어디서 구했나' 라고 빈정대기도 하고, 주막에서 일반 상인들과 양반들이 술을 마시는데 백정이 함께 마셨다고 천대와 구박을 당합니다. 관수가 원래 신분이 백정 천민이 아닌데도 백정 딸에게 장가들어서 사위가 된것 만으로도 이렇게 괄시를 받는 세상에서 어찌 관수같은 의기 충천한 인물이 동학운동과 독립운동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사회적인 차별로 이렇게 한 인간이 인간이 아닌 짐승 취급을 당하니 모두가 평등한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이념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는것 같습니다. 웃기게도 양반이 상인이나 천민들을 괄시하듯 상인은 그 아래 천민들을 양반 못지 않게 천대시 했다고 합니다. 양반들에게 차별 받는 설움을 아는데도 차별 받은 만큼 자기 아래 신분인 사람들을 이렇게 모질게 차별하다니... 인간은 원래가 받은 만큼 돌려주는 습성이 있는걸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관수는 한복을 찾아가서 형 거복이야기를 하며 독립군이 쓸 군자금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거복을 방패삼기에서 한복이가 최적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독립운동가로서의 관수가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인간쓰레기 거복은 또 어떻게 나타날지? 앞으로 남은 부분에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상 이책 중반까지 후기였습니다. 요즘 날씨가 포근해져서 여기저기 봄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어제는 남편과 부천 원미산 진달래를 보러갔습니다. 진달래 축제를 할만큼 많은 진달래 꽃들이 만발했고 또 그 만큼 많은 인파가 꽃을 보러 나왔더군요. 얕은 산자락에 핀 진달래 꽃들이 장관이었습니다. 이 꽃들을 보고 있자니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우리 국민들의 모습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송이씩 보면 귀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수수하고 평범하지만 모여있으니 큰 장관을 이루며 아름답고 이 강산을 이끌어가는 힘이 있는 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토지에 나오는 평민들 모습도 생각나고, 지난 겨울 비상계엄 이후 곳곳에서 탄핵찬성 집회에 나온 시민들의 모습도 생각났습니다. 작은 힘이 모여 큰 뜻을 이루고 국가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저희 아들은 훈련소에서 훈련 3주차가 지났는데, 앞으로의 보직이 정해졌다고 전화왔네요. 갑판병. 해군으로서는 가장 많은 인원일 수 있는 배타고 배에 관한 잡다한 일을 하는 보직인가 봅니다. 3지망까지 써 내는 보직중 아들은 갑판병을 1지망으로 썼는데, 1지망이 되어서 좋아하네요. 해군으로 왔으면 배는 타야겠나 봅니다. 엄마는 배타는것도 걱정스럽지만 어쨌든 원하는 보직이 되었다니 축하해 주었습니다. 보직이 정해지면 어디로 자대배치가 될지가 이제 남은 과제인데, 아마 자대는 배가 되겠네요. 동해, 서해, 남해 세군데 바다중 한군데가 정해지고, 또 그 한군데에 큰배 작은배 중에 정해 지겠지요. 주말마다 건강하고 밝게 전화주는 아들이 고맙고 대견합니다. 동료 훈련병들과 잘 지내고 식사도 아주 만족해 해서 안심입니다. 이번주는 벚꽃이 만발할듯 합니다. 이번주도 벚꽃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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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5년 3월 23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8권 중반 이후에는 월선의 죽음이 나옵니다. 월선이 죽음이 임박하자 홍이는 애가 탑니다. 아버지 용이가 벌목을 하러 가서 오지않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월선의 임종을 아버지가 지켜주었으면 했던거지요. 친엄마 임이네보다 더 큰 모정을 준 월선의 이른 죽음이 안타깝습니다. 월선은 가까스로 용이가 올때까지 버티다가 용이를 보고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조정할 수는 없겠지만, 용이가 빨리 월선에게 가지 않은 까닭이 조금이라도 자기를 기다리며 살아있어 달라는 뜻이 있었을까? 저 혼자서 짐작해 봅니다. 월선이 죽으면서 홍이를 위해 쓰달라고 길상에게 돈을 맡깁니다. 용이에게 돈을 보내고 싶었으나 용이가 받지 않을것을 알기에 이웃 믿음직한 길상에게 맡긴겁니다. 월선이 죽은후 이 돈을 용이에게 전해주려 했는데, 이 이야기를 옂듣던 임이네가 자기 아들한테 준돈이니 자신이 받아도 된다고 우기며 그 돈을 가로채려고 했습니다. 이런 추하고 더러운 임이네 모습을 보고 용이는 이 돈을 받고 자신과 홍이를 떠나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잘못된 인연을 여기까지로 끝내고 싶었던 거지요. 그러나 임이네는 떠나지 않겠다고 해서 결국 용이는 월선이 홍이에게 남긴 돈을 독립운동에 쓸 수 있게 합니다. 홍이가 직접 쓰는것은 아니었지만 국가를 위해 쓴다면 결국 홍이를 위한 길일 수 있고 월선이 남긴 돈이 좀 더 값지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월선이 남긴 재산에 눈독을 들이는 임이네를 더이상 두고 보지 못한 용이는 월선의 집도 힘든 이웃들이 쓸수 있게 하여 임이네의 욕심을 단칼에 막아버립니다. 모든 사람들이 임이네를 보고 이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라 생각할 정도로 임이네는 자식보다 돈이 먼저인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인물이 소설에만 있는것은 아니겠지요. 부모 자식 간에 돈으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이 부지기 수로 있으니까요. 돈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생각됩니다. 없어서는 안될 것이지만 또 많다고 다 좋은것도 아닌것이 재산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부모의 자식들이 재산을 많이 남긴 부모의 자식들 보다 더 잘 지내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재산이나 돈의 탐욕은 천륜도 가끔 저버리니...  안타깝습니다. 환이와 길상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공노인의 집에 환이가 찾아오고 공노인은 길상을 불러들입니다. 두사람은 최참판댁의 머슴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사람의 대면자리에서 길상은 환이가 김개주와 윤씨부인 사이의 아들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됩니다. 길상은 환이의 웃음이 자신의 아들 윤국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환이도 양반과 상놈 사이의 자식이고 윤국도 양반가문 서희와 상놈인 길상의 사이에서 난 자식이지요. 그리고 윤국의 외조모와 환의 엄마가 같은 사람 즉 윤씨부인이니 닮았다면 피로서 엮인 사이이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길상은 환이가 최참판댁을 망하게 한 최초의 인물이라 생각되어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끼지만, 출생에서 부터 비운으로 태어난 환이의 인생에 자신도 공감이 가고 다소 닮음을 느끼며 연민의 정이 드는것 같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부모가 떳떳하지 않을때 오는 자괴감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환이는 부모가 불륜으로 맺어져서 나온 자식이니 세상에 내 놓고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존재가 늘 한탄스러웠을것 같습니다. 길상도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자신이 늘 뭔가 빠진 사람인듯 했고요. 온전한 부모 아래서 사랑으로 자라는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이 두사람을 보면서 느끼게 됩니다. 8권 끝부분에는 서희가 더디어 간도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떠납니다. 길상은 함께 가지 않고요. 고향에서 반겨줄 이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자신의 옛집을 되찾고 조준구와 홍씨부인에게 원수를 되갚고자 떠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아들들이 뿌리내리고 살도록 하는것이 자신의 임무인것 처럼요. 나고 자란 고향은 사람은 떠났어도 그 장소 하나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것 같습니다. 물론 그곳에 자신의 조상들이 묻혀있기도 하고요. 떠날때 간도에서 함께 했던 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모습을 보니, 요즘 우리네가 이사할 때는 이런 모습은 없을것 같네요.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떠남을 아쉬워 하는 사람이 몇 안될것 같거든요. 저희가 어린시절 살았던 동네를 떠날때는 그래도 동네사람들의 아쉬움을 많이 받으면서 떠나서 이웃사촌이 이런것이구나 알았는데, 세월이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변해서 예전 모습을 찾기는 어려운듯 합니다. 책 후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최근 저의 근황을 전해드립니다. 지난주 월요일에 아들이 군에 입대하고 첫 주말이 되어서 아들이 어제 첫전화를 해 주었습니다. 감기로 고생하지는 않은지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아들 목소리도 밝고 감기도 이제 나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ㅎ 훈련소 생활이 함께 입소한 동기들도 좋고 교관들도 크게 꾸중하지 않고 자신만 잘 하면 되는것 같다고 합니다. 밥도 넘 맛있다 하고요. 이렇게 조금씩 적응하고 성장하는 아들이 너무 뿌듯하게 느껴지네요. 요즘은 네이버 카페에 군대 보낸 부모들 카페가 있어서 군대소식도 함께 공유하고 좋습니다. 혼자 고민하던 것을 온라인상으로 함께 공유하며 서로 얼굴은 몰라도 정신적으로 의지가 많이 됩니다. 사람은 힘든것을 함께 나누면 힘듦이 좀 나아지는것 같습니다. 이곳 독서모임 공간도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함께 공감하며 힘들때 의지가 되는것 처럼요. 앞으로 저는 주말마다 군대보낸 아들의 전화 즉 '통신보약'을 받으며 생활을 할것 같습니다. (카페에서 아들의 군전화를 통신보약이라고 부르더군요.) 날씨가 확연한 봄날이네요. 담주도 활기찬 날들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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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5년 3월 15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토지 8권에서는 결혼한 길상의 고뇌가 엿보입니다. 서희는 어느듯 환국과 윤국 두아이를 낳고 유모 젖이 아닌 자신의 젖을 직접 먹이며 세상에서 유일한 자기의 피붙이를 아끼며 키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돌아갈 고향에서 예전 자신의 땅을 되찾고자 하는 바램으로 간도에서는 친일노릇까지 해 가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지의 부인을 보는 길상은 고국에 돌아갈 이유도 갚아야 할 원수도 없이 마냥 마음의 방황만을 합니다. 주위에 독립운동가들을 보면서도 자신은 왜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안생길까 이런 생각 마저도 하게 됩니다. 길상의 성장과정은 부모도 없이 홀로 외로이 자랐고 그 극진한 사랑을 받지못했기에 다른 이들이(서희같은 이) 갖고 있는 당찬 삶의 의지를 가지지 못하고 마음의 공허함만을 항상 확인합니다. 지금은 아내도 자식도 있는 가장이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 뻥뚤린 자괴감이 해소되지 않고 계속 지속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이시점에 생각나는 의문입니다. 톨스토이는 사랑으로서 살아간다고 했지요.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길상은 사랑하는 아내도 아들도 있는데... 사람이 처음 태어나서 받는 부모로 부터 받는 사랑이 이렇게 한 인간의 인생 전반에 걸쳐서 큰 영향을 주는 사랑인것입니다. 부모가 큰 사랑을 주지 않고 살았어도 부모 없이 크는것 보다는 부모가 있는것이 마음속 부모상을 그리며 살아갈 수 있기에... 제 역할을 잘 하든 못하든 부모는 존재로서도 큰 역할을 하는듯 합니다. 저는 부모 역할을 못하고 자식을 힘들게만 하는 부모라면 차라리 없는게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 본적도 있었는데, 사실은 미운정도 정이라고, 없는것 보다는 나은 것이구나 깨닫게 되네요. 월선이 암으로 얼마 못살게 되어 홍이가 무척 슬퍼합니다. 오히려 친엄마인 임이네 보다 더 큰 모정을 주는 월선이 홍이에게는 진정한 엄마라고 생각됩니다. 엄마라는 자리는 자식을 낳은정 보다 기른 정이 더 큰것이라고 느끼게 해 줍니다. 임이네와 월선. 두 인물을 볼때 사람은 타고나는 성정에 따라서 사는것 같습니다. 엄마로서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갈리는듯 합니다. 얼마전에 네플릭스에서 본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이 생각납니다. 이 영화는 1940년대 후반 세계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가난하고 궁핍한 이탈리아 나폴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가난과 굶주림에 어린아이들을 북부 위탁 가정으로 보내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주인공의 엄마는 북부 위탁가정의 엄마보다 엄마로서의 역할을 훨씬 못합니다. 모진  현실이 어렵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런 현실 보다는 마음의 사랑을 전하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아이는 두 가지 형태의 모성애를 보고 많은 감정의 혼란을 겪습니다. 월선이 꼭 위탁 가정의 엄마 같고 임이네가 이 영화의 친 엄마 같다고 느껴집니다. 물론 이 영화의 친 엄마가 임이네 보다는 훨씬 더 모정이 많긴 하지만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실제 이런 부모들도 많았을거 같습니다. 최근에 개인적으로 책을 집중해서 읽기가 어려워서 이번 8권은 다 읽지 못하고 반정도 읽고 후기를 씁니다. 남은 분량은 다음에 읽으면 천천히 후기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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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5년 3월 02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7권에서는 기생이 된 기화(봉순)가 혜관스님을 따라 간도에 가서 서희를 만나게 됩니다. 어린시절 추억을 자매처럼 간직하고 있던 두사람의 만남은 현실에서의 간극 차이로 처음에는 서로 어색해 합니다. 그리고 서희는 기화가 사모하는 길상과 혼인을 한 상태이고요. 서희는 확고부동한 권위의식을 지키려 하고, 반면 내면에서는 권위의식의 뿌리를 쓸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공동의 기억이란 순수한 것이다. 특히 어린 날의 그 공동의 기억 때문에 형제 자매 부모 자식이라는 의식의 유대가 지속되는지도 모를 일이라면, 이들이 비록 혈육이 아니요 신분의 도랑이 깊다 하여도, 서희가 남다른 아집의 여자라 하여도 이들의 해우가 슬프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어린시절의 공동의 기억. 이것을 나눌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내 뿌리가 든든해지는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도 일상은 이웃과 나누지만, 형제 자매와 만나면 주로 어렸을때 이야기들을 나누며 추억하고 다시 그때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친구도 어렸을때 친구는 늙어서 만나도 옛시절로 다시 돌아간듯 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고요. 길상이 서희와 부부가 되었네요. 그런데 길상에게는 이 결혼이 고독한 결혼이라고 합니다. '한 사나이로서 날갯죽지가 부러졌다. 사랑하면서, 살을 저미듯 짙은 애정이면서, 그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던 애기씨, 최서희가  지금 길상에게는 쓸쓸한 아내다.' 길상이 분명 서희를 사랑하지만, 신분의 격차를 늘 품에 안고 살수 밖에 없는 현실세계에서  벽을 느끼는 부부가 되었다는 것이겠지요. 서희나 길상은 제가 생각하기에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부부로 연을 맺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지금은 신분이 그 당시만큼 큰 작용이 없지만, 만약 집안이 서로 많이 차이가 나는 결혼을 했다면 이들은 남들이 보는 선입관념들을 다 무시하고 서로 당당하게 결혼을 잘 유지할 수 있을까? 저는 세월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요즘도 어려움이 있을것이라 생각됩니다. 재벌가에 결혼한 연애인들을 볼때도 잘 사는 부부도 있으나 재벌가의 권세에 적응 못하고 이혼하는 사례들도 많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사랑만 갖고 하기에는 너무 큰 사건인것 같습니다. 서로 비등하게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 결혼을 유지할 확률이 많은것은 사실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이 미래에 결혼할때 차이가 나지 않게 서로 상대에게 자격지심 없는 결혼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강포수와 두메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강포수가 두메의 교육을 생각하는 마음이 애절합니다. 우리나라의 발전은 이런 교육관이 만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과도한 교육으로 아이들이 힘들지만... 그 당시에는 먹고 살기도 힘들지만, 아이들을 교육해야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 부모를 둔 자식은 행운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저의 친정엄마 생각도 또 간절히 나고요. 저희들 교육을 위해 주말부부를 자처해 가며 저희들 뒷바라지 해 주신 엄마가 계셨기에 오늘 날에 저희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늘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나옵니다. 나 라면 엄마처럼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좀 더 오래 사시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일 뿐입니다. 후반에 공노인이 조준구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부가 나라도 국민도 지킬수 있다고 생각한 공노인의 생각에 많이 공감이 가고 같은 민족끼리 서로 부를 쌓아 나갈 수 있게 돕는것이 나라를 좀더 굳건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조준구의 재산을 날렵하게 빼돌릴 수 있는 자질을 공노인이 보여주는듯 해서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까 기대가 됩니다. 이상 7권 후기였습니다. 3월 첫주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모두 새로움이 싹트는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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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5년 2월 16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길상과 서희의 결혼 이야기를 의논하기 위해 이동진과 김훈장이 나누는 이야기를 길상이 듣고 신분의 벽을 느낍니다. 서희는 길상과 결혼을 원하는데, 김훈장도 이동진도 결혼을 반기지는 못하고 김훈장은 '신발이란 발에 맞아야 한다'는 말로 대놓고 반대합니다. 길상도 서희와 결혼을 원하던 시점은 아니었으나 자신이 한낯 길가 나무나 돌 같은 의미없는 사람으로 전락된듯 하여 깊은 회의감에 빠지고 밤새 술을 마신후 월선에게 찾아갑니다. 무당의 딸인 월선과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를 자신의 처지가 비슷하여 동병상련의 마음에서 발길이 그곳을 향합니다. 길상과 월선의 아픔에는 닮은점이 있었네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무서운 심연을 본 충격이 가슴 바닥에 울렁거리고 그 충격은 실상은 두려움이라 깨닫게 되고, 그 두려움의 정체는 미움도 사랑도 없는 '비정' 그것이라 느낍니다. 이세상에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은 '정'  이란것을 알게 해 줍니다. 이 소설에서 내내 흐르고 있는 기조가 바로 서민들과 여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에는 서로간의 '정'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도 누군가의 따뜻한 정을 느끼는 순간에 행복을 느끼고 삶의 의미도 생기니까요. 요즘은 신분으로 인한 설움은 별로 없지만 보이지 않는 학력차이나 재력차이로 누군가는 차별이나 소외감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내가 가진 어떤 권력이나 힘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본시 사람은 태아나면서 부터 모두 존귀한 존재란 생각을 하고 편견과 차이를 두지 말고 살아야 하는데... 소설을 통해 이런 문제점들을 다시한번 새겨봅니다. 길상이 옥이네와 결혼할것 처럼 말하고 다녀서 서희가 옥이네를 보러 회령에 갑니다. 그곳에서 길상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봅니다. 자신은 이곳 간도까지 와서 왜놈과 싸우는 조선인들을 곁에서 얘기로 듣지만... 자신은 한낱 서희곁을 지켜야하나, 아니면 연민이 느껴지는 옥이네 한테 가야하나, 아니면 이도 저도 다뿌리치고 그 어디라도 떠나야 하나? 자신의 현재 처지가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떠내기같은 심정이 됩니다. 길상이 옥이네를 보여주지 않자 여관집 안주인에게 수소문해서 결국 서희는 옥이네를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옥이네를 본 순간 길상이 옥이네에게 느끼는 심정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연민'이었습니다. 서희가 질투를 낼 성질의 여인이 아니었지요. 이렇게 서희는 길상의 마음을 알게되고 혼자 돌아오는 길에 서희는 이세상에 혼자인듯한 외로움을 느낍니다. 서희도 길상도. 신분의 격차로 인한 거리감이 서로를 향한 마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차이 이상의 마음의 거리를 느끼게 합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젊고 창창한 청춘 남녀가 맘놓고 서로 사랑할 수 없는 이 신분제도가... 이어지는 3편에서는 기생 기화가 된 봉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상현이 봉순을 찾아가서 간도 소식을 전해줍니다. 봉순이 어린 시절 함께했던 길상과 서희를 추억하며 그리워하고 애달파합니다. 사람의 정에 약한 봉순은 누구라도 자신이 줄 수 있는것이 있으면 도와주는 정 많은 여인인데,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한없이 약하고 남에게 이용만 당할수 밖에 없는것이 슬픕니다. 봉순을 보면서 월선이 자꾸 생각나네요. 두 여인이 닮은 점이 많은것 같습니다. 자기것을 챙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부터 생각하는 심성도 그렇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기다리며 애타하는 마음도 그렇고요. 현실에서는 이런 심성을 가진 사람이 힘든 인생을 살 수 밖에 없구나 느껴지면서 오히려 서희처럼 강한 면을 가져야 할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타고난 심성을 갈아끼울 수도 없으니 봉순과 월선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6권 남은 부분들은 앞으로 펼쳐질 독립운동가들의 서막이 있을듯하게 윤도집과 혜관스님 석이 이야기가 잠시 비쳐집니다. 앞으로 석이가 어떤 인물로 성장할지 기대가 되는 대목입니다. 중간에 용운스님 이야기도 잠시 나오는데 만해 한용운 선생을 말하는것 같고, 천도교 교주 손병희 선생의 이야기도 잠시 나와서 실제 역사적 인물을 소설에서 접하니 그들이 또 궁금해 지네요. 이번에는 그 분들에 대해 알아보지 못하고 후기를 쓰게 되었는데, 다음에라도 그분들을 공부하게 되면 후기에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6권 후기를 마칩니다. 조금씩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니 야외 활동을 해도 될듯 합니다. 다음주도 활기찬 한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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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5년 2월 01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토지 5권에는 간도로 이주하고 낯선땅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삶이 그려집니다. 내 나라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떠나온 이들의 힘든 삶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작은 희망을 품고 고생을 달게 하는 이도 있고, 또 누구는 밀정이 되어 같은 조선인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이도 있고, 남의 땅에서라도 같은 조선인끼리는 서로 돕고 살아야겠다는 신념을 가진이도 있고, 서희는 고향에 가서 복수를 하겠다고 꿈꾸며 할머니가 숨겨주신 초기자본으로 부를 축척하며 자존심을 꼿꼿이 내세우고 강인하게 현실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5권에서 저는  '교육'과 '정' 이 두가지 키워드에 관심이 갑니다. '교육'은 아무리 나라가 없어져도 그 나라를 되찾을 인재가 있다면 언젠가 다시 나라는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낯선땅에서도 학교를 짓고 어린 학생들을 올바르게 지도하고자 했던 노력들이 있었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가 없어지지 않고 독립운동가를 길러낼 수 있었고, 나라를 되찾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물론 같은 교육을 받았어도  나라를 위하는 이가 있는 반면 개인의 이득만을 생각하는 이도 있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회의론자도 있지만, 결국에는 행동하는 지성인과 그 지성인을 믿고 돕고 따르는 선량한 백성이 있었기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정'은 서희가 아무리 가진것이 많아도 계속 베풀기만을 바라는 이들에게 반감이 드는 이유는 자기도 누군가에게는 보살핌을 받고 '정'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자신은 어려운 이웃을 돌보지 않으면 욕을 먹는 처지이고 보니, 조금은 속상했었나 봅니다. 그러나 서희는 할머니 윤씨부인처럼 속깊은 정을 표현할 수 있는 성숙함이 아직은 없는듯 합니다. 정을 나누기보다는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나봅니다. 첫정을 상현에게 받고 싶었으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여 그 속상함을 의남매를 맺어 길상과 혼인을 성사시켜 달라는 부탁으로 하는걸 보니 말입니다. 그리고 길상도 서희에게는 순수한 정을 주기에 너무나 큰 산이라고 생각하여 옥이네에게서 느끼는 정을 주지는 못합니다. 사람이 서로 순수하게 정을 주고 받으려면 어떤 조건들이 맞아 떨어져야만 하는걸까? 의문이 드는 시점입니다. 나보다는 조금 연민이 느껴지는 이에게 정을 줄 확률이 높은건가? 나 보다 처지가 나은 이를 보면 어쩌면 조금은 위축되고 나의 작고 순수한 마음이 잘 전달되기 힘들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소설을 읽으며 듭니다. 또 다른 한편에는 이 5권 말미에 길상이 윤씨 부인과 최치수에게서 느끼는 정이 나옵니다. 그들은 길상보다는 현실적인 부는 나을지언정 그들의 인간적 슬픔에서는 그들도 깊은 슬픔을 알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아량이 있었기에 그들에게서 만은 순수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윤씨 부인과 서희의 어떤점이 다른걸까? 아직 서희는 어려서 타인의 입장에서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서일까? 좀더 나이가 들고 서희도 이세상의 슬픔을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 슬픔과 타인의 슬픔을 함께 이해하는 날이 온다면 윤씨부인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서희의 성장과정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까 주목되는 시점입니다. (길상은 윤씨 부인에게서 정을 느꼈으나 아들 최치수는 모정을 느낄수 없었던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요? '선택적 정' 인가 아니면 '상황에 따른 정' 인가? 인간의 이해하기 힘든 깊은 내면을 접근하게 하는것 같습니다.) 토지를 읽다보면 드는 생각은 작가가 글을 너무나 서정적으로 쓰셔서 읽으면 읽을수록 박경리 작가의 글에 매료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스토리가 주는 힘도 있지만, 저는 문장들이 너무 아름다운것 같습니다. 천천히 읽어도, 연속적으로 읽지 않아 스토리가 끊겨도, 결코 지겹지 않고 문장들에 이끌려서 제가 토지를 읽으며 질리지 않고 계속 읽게 해 주는것 같습니다. 읽을수록 더 깊이가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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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5년 1월 17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토지 4권에는 일본의 을사늑약과 민영환의 자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민영환이 궁금해져서 'TVN 벌거벗은 한국사 7회'를 봤습니다. 여기에 민영환의 이야기가 나오기때문입니다. 소설 이야기는 딸기님과 노트북님이 이미 하셨기에 저는 소설보다는 소설속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해 주는 '벌거벗은 한국사'를 본 소감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일본의 만행 명성황후 시해사건 (을미사변)후 경복궁에 있는 고종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아관파천한 고종이 외교특사로 민영환외 조선사절단 5인을 러시아에 도움을 청하려고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여차 모스크바에 보냈습니다. 그당시 모스크바까지 가는 여정은 40일~50일이 소요되는 일정입니다. 지금처럼 비행기로 하루만에 갈 수 없었지요. 어렵게 도착한 그곳 모스크바에서는 강대국들의 외교의 장이 펼쳐집니다. 그곳에서 힘없는 약소국 조선의 민영환은 몇달간 각고의 노력끝에 러시아의 도움 문서를 받아내고 14명의 군사교관을 파병받아 궁궐호위병을 육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결과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을 나와 덕수궁으로 환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 이전에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또한 그들만의 외교를 같은장소에서 열심히 합니다. 러시아와의 모스크바의정서를 비밀리에 맺어 조선을 반반씩 나누려고 했었습니다. (6.25 전쟁때도 미국과 소련이 우리나라를 반반씩 통치했듯이 이미 그 이전부터 조선을 반씩 가지려 했던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강대국들의 외교에는 철저한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절대원칙'이 있습니다. 위로는 러시아와 아래로는 일본 열강 사이에서 조선은 적절히 힘을 키우면서 외교를 해야했으나 그렇지 못했지요. 민영환이 모스크바의정서를 뒤바꾸는 러시아의 공식 도움 문서를 받아서 귀국합니다. 이렇게 나라와 국왕을 생각하는 치열한 노력을 아끼지 않은 외교관이자 국방부 장관격인 민영환이 자결하면서 까지 을사조약을 막으려 했었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김훈장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수 없었던것이지요. 조준구라도 찾아가서 그의 힘이라도 빌려보려 했지만,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조준구에게는 어림없는 이야기들인것이죠. 일제가 통치하려던 시절의 외교이야기들을 보면서 저는 요즘의 한국의 외교가 너무 걱정스러워졌습니다. 힘없던 그시절에도 이러한 노력을 기울여왔고 그런 위인들이 있어서 우리 국가가 존재할 수 있었는데, 요즘의 우리 나라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서 미국 트럼프와 일본 중국 사이에서 외교를 어떻게 할지? 넘 걱정스럽습니다. 이 중요한 시점에 비상계엄과 내란으로 자국 정치인들끼리 서로 싸우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력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으니... 요즘 시국에 민영환 같은 인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정치인이 어딘가에 있는데 시절을 못만난걸까? 아니면 옛 선조들 처럼 위대한 인물은 없는걸까? 여러 생각이 듭니다. 토지를 읽으며 김훈장과 조준구의 대화에서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언급되면서 한국사 프로그램도 함께 보니 훨씬 이해도 잘되고 좋은것 같습니다. 딸기님이 토지를 읽으면서 역사 공부에도 관심이 간다고 하셨는데, 저 또한 소설속 역사적 사실들이 나오면 이제는 학창시절 시험공부하듯이 역사를 보는것이 아닌 현재를 견주어 과거를 돌아보게 되니 훨씬 마음에 와닿습니다. 남편에게도 토지와 벌거벗은 한국사 이야기를 하니 남편은 또 저에게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해 줍니다. (남편은 책을 많이 읽어서 여러가지 아는것이 많은것 같더라고요.) 일제시대 앞잡이 했던 인물들과 독립운동가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현재로 이어져 왔으며 그들의 후손들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그 역사인식들이 오늘날 각종 교과서와 외교에 어떤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까지 이야기가 전개되네요. 토지 소설을 읽으면서 남편과 이런 대화까지 나누게 될지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지요. 토지소설이 여러 역할을 해 주고있습니다. 자결한 민영환를 기리기 위해 고종이 시호를 내리는데 그 시호가 '충정'이고 지금의 충정로가 민영환의 시호를 따서 만든 지명이라고 합니다. 토지 4권을 통해 민영환을 좀더 잘 알게되어서 넘 기쁩니다. 민영환을 알게 되고서 또 궁금해지는 인물이 있습니다.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입니다. '벌거벗은 한국사 22회'가 이완용의 이야기 입니다. 내친김에 이완용편도 봤습니다. 이완용은 고종이 총애한 엘리트였고 친미파였다네요. 이랬던 이완용이 러일전쟁으로 일본이 승리하고 일본의 세력이 커지자 고종을 배신하고 나라를 일본에 갖다바치는 주동자가 됩니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권력과 재물 그리고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사람이 되면서 부터는 겉잡을 수 없는 일들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 생전에는 부귀를 누렸을지언정 역사는 그의 죄값을 단단히 치러게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트북님도 4권 후기에 교육의 중요성을 말씀 하셨지만 이런 올바른 역사교육이 있어야 미래의 이완용이 재생산 되지 않겠지? 생각해봅니다. 얼마전에 본 영화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한 역할이 얼마나 큰 일이었는지 다시 또 깨닫습니다. 이완용은 이토 히로부미에 충성을 갖다 바치는데, 안중근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지요. 나라를 살린것도 우리 국민이요 나라를 죽인것도 우리 국민입니다. 외세의 세력은 우리 국민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것 같습니다. 요즘에도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정치인과 법관련자 들이 있어도 그들이 자신의 이익만 챙길 위험인물이 되지않도록 국민이 두눈 부럽뜨고 그들을 감시하는 한 우리 나라는 잘못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섭니다. 비록 험한 길을 택하고 돌아갈수는 있어도 지금의 온전한 나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의 저력이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토지 소설을 읽으면서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줄 미처 예상치 못했는데요. 그래서 토지가 위대한 문학작품이란 생각도 듭니다. 평사리에서의 삶을 접고 간도로 향한 마을 일행들의 앞으로 전개될 많은 이야기들이 기대되면서 암울한 일제강점기의 역사에 조금씩 더 다가가 보는 느낌으로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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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5년 1월 04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3권에서는 너무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 많이 전개되네요. 마을에 괴정이 돌아 마을 사람들과 최참판댁 윤씨 부인과 그댁의 중요한 하인들이 많이 죽어서 어린 서희와 길상 수동 봉순이가 똘똘 뭉쳐서 조준구와 홍씨부인에 맞서서 살아가는것이 넘 안타까웠습니다. 그 과정에 서희가 자신의 엄마를 험담하는 삼수와 홍씨부인을 혼내는 장면은 정말 통쾌했습니다. 괴정이 휩쓸고 간 이듬해에는 흉년이 들어 마을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었을때 윤씨부인이 살았다면 곡식을 풀어 굶어 죽음을 면하게 도와주었을텐데, 잔꾀만 많은 조준구의 계략으로 조준구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에게만 곡식을 주고 나머지는 한톨도 주지 않아 마을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지금의 우리나라 정치현실이 잠시 떠오릅니다. 국민들을 갈라치기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국민들을 선동하는 정치인들을 보는듯 했습니다. 어디서나 자신의 이익에 눈먼자들은 항상 있는가 봅니다. 함안댁 둘째 한복이가 마을로 왔을때 마을사람들의 인심의 변화를 보는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살인자의 아들이라고 멀리하는 마음이 들다가 두만네가 먼저 어리고 불쌍한 한복이를 살갑게 대하니까 점차 사람들도 한복이를 조금씩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를 보고 '선한 영향력'이란 이런것인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누군가의 선한 마음을 보면 주변사람들도 비슷한 마음을 가지게 하나봅니다. 한복이 돈을 모아 엄마 산소에 비석 세우겠다는 마음을 먹는데, 어린 한복이지만 함안댁이 아주 잘키운듯 합니다. 그런데 같은 부모 아래에서 나고 컸지만 형 거복이와는 너무나 다른 형제네요. 나쁜짓만 하는 거복이라도 한복이는 아버지 평산 보다는 거복에게 더 혈육의 정이 있는가 봅니다. 아버지 평산은 지나다가 만난다 해도 아는채 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역겹다고 하고, 형 거복은 만난다면 붙잡고 울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니까요. 어리고 착하고 순수한 한복이를 보는것도 마음 아팠습니다. 마을을 떠나 힘들게 살다가 돌아온 임이네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마음의 변화도 재미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타지에서 거지꼴로 온 임이네를 애처러워 하다가 윤씨부인이 너그럽게 대하며 도움을 주면서 부터 행색이 나아지게 되니 마을사람들은 임이네를 미워하거나 질투의 감정까지 느끼게 됩니다. 누구나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 있을때는 연민의 마음이 들지만, 자신보다 나아지고 또 겸손도 없고 예의 없어 보이는 태도를 보이면 바로 좋게 보이지 않고 미움이 싹틉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형편이 좋든 안좋든 무례한 태도는 누구의 마음도 살 수가 없네요. 윤씨 부인이 서희를 데리고 최참판댁 농토를 둘러 보러 떠나는 장면이 있었는데, 오늘날 대기업 회장이 자녀를 데리고 경영수업을 하러 그룹사들을 방문하면 저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많은 땅을 소작농들을 거느리고 탈없이 경영하려면 윤씨 부인처럼 촉도 빠르고 사람을 보는 안목도 있어야할듯 싶습니다. 어린 서희도 할머니 윤씨부인의 이런 당찬 모습을 보고 커서 앞으로 힘겨운 삶을 잘 헤쳐나갈거란 기대가 됩니다. 용이도 무척 안타깝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월선이였는데,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사랑없는 강청댁과 정없이 결혼하여 의무감에서 무의미한 결혼생활을 하고 또 마음에도 없이 그냥 잠시 욕정을 참지 못하고 임이네에게 임신을 시켜서 임이네까지 거두고 사는 모습이 힘겨워 보였습니다. 용이도 월선이도 그냥 서로 마음이 향하는대로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무당의 딸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의 인생을 마음대로 살지 못한 두사람의 사랑이 마음 아픕니다. 3권은 읽는 내내 마음 아파하면서 읽었네요. 다음에 이어지는 4권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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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4년 12월 21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먼저 읽으신 분들은 토지 6권 후기를 쓰시는데 저는 이제야 2권 완독하고 후기를 올립니다. 다른분 진도와는 다르지만, 저는 그냥 제 일상을 보내며 제가 편하게 읽고 싶을때 읽고 후기를 쓰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늦은 후기지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토지가 긴 책이라서 처음에는 부담이 될수 있겠다 생각되었는데, 읽다 보니 조금씩 스며들게 되네요.^^ 윤씨부인이 두아들 최치수와 환이를 대하는 태도가 엄마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어느 편에도 기울 수 없는 양켠 먼 거리에 두 아들은 존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둘의 존재가 윤씨 부인에게는 버거운 존재로  인식되었을것 같지만...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 입니다. 배다른 자식이더라도 자식인데 말입니다. 체면과 체통을 중히 여기는 도도한 양반가여서 자신의 허물을 덮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일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윤씨부인이 두아들을 대했던 태도가 계속 마음 속에 머무르면서 일상에서도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윤씨부인의 죄책감에서 두아들 모두에게 어미로서의 정을 주지못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모정이 없지는 않았을텐데... 모정이 그리웠을 두 아들을 생각하니 안타깝습니다. 며칠전 국립중앙박물관의 비엔나 분리파예술가들 작품 전시회에서 에곤쉴레가 떠오릅니다. 모정을 받지 못한 예술가의 작품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표현된 작품들을 보며 같은 사물도 마음에 따라서 달리 보이고 표현되는구나 느꼈습니다. 그의 젊은 모습의 사진은 멋진데 그의 자화상 그림은 겉모습에 내면이 중첩되어 아프고 날카롭습니다. 치수도 구천도 그런 마음을 갖고 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결국 치수는 구천을 죽이고 싶어서 사냥을 빌미삼아 지리산 구석구석을 찾아 나섭니다. 치수는 구천의 출생의 비밀은 모른채 말입니다. 자신의 아내와 눈맞아 도망간 사람이 원수 같았겠지요. '18장.초록은 동색' 에서 같이 따라간 하인 수동이 구천이 잡히기 직전에 도망갈수 있게 도와줍니나. 수동의 구천에 대한 병적일 만큼의 연민과 숭배가 또다시 상전의 배신을 안하리라 장담 못하는 것을 치수도 알고 초록은 동색이라 느낍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보면 우리는 동병상련을 느끼듯이 말입니다. 귀녀와 평산의 음모. 그리고 그 음모에 가담한 칠성. 최치수의 아이를 가졌다 속이고 최참판댁 재산이라도 누려보려는 그들의 음모는 결국 무산되고 최치수만 평산에게 살해당합니다. 윤씨 부인은 아들이 아이를 가질수 없는 몸인것을 알아서 귀녀와 평산 칠성의 음모를 알고 관가에 신고 합니다. 이들이 붙잡히고 결국 살인죄로 평산은 죽음을 맞게 되는데... 평산의 아내 함안댁이 너무나 불쌍합니다. 평생 남편 잘못 만나 고생하고서 결국 살인자의 아내로 사느니 죽음을 택하고 자살하는 함안댁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두 아들을 남겨두고 자살을 하네요. 함안댁과 임이네의 상반된 모습이 너무 대조되어 보였습니다. 칠성이 살인을 직접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한몫 챙겨보려 한 나쁜 마음에서 가담한거는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야 했을텐데... 억울하다고만 하니 마을사람들도 동정의 마음조차 없어지고 말았지요. 2권 마지막 함안댁 무덤 장면은 눈물이 나고 슬프네요. 함안댁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자랄까? 걱정되면서 3권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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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4년 12월 08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이번주 저는 다낭 여행을 다녀왔어요. 월요일 출발해서 금요일 도착했지요. 근데 화요일 밤에 네이버 뉴스에서 비상계엄령 뉴스를 봤어요. 너무 놀랐지요. 전쟁 나는건가? 근데 대통령의 일방적인 계엄령이었고, 그날 밤 내내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며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제일 걱정인것은 아들의 군입대 문제였어요. 12월 3일 3시까지 입대 지원 마감이더군요. 아들은 내년 3월에 입대하려고 육군 의무병, 공군, 해군 세군데를 모두 지원한 상태입니다. 곧 1차 발표가 나고 화상 면접보면 최종 확정되어서 3월에 입대하는겁니다. 이런 시국에 군대 가도 되나? 걱정되어서 저는 취소방법을 급하게 찾아봤어요. 최종 발표가 나면 어렵지만, 1차발표후에는 취소가 가능한가 봅니다. 그래서 급히 아들한테 톡해서 취소가능하면 취소하자고 했습니다. 아들도 비상계엄이 뭔지 모르니까 '비상계엄이 뭐야' 묻는 겁니다. '서울의 봄' 영화 봤잖아. 거기서도 비상계엄상태였어. 군대 민간인들 다 위험한 국가 혼란상태에 내리는거야. 5.18을 책으로 영화로만 접해본 저도 무서웠지만, 아들은 그 마저도 더 모르지요. 얼마전 읽었던 '소년이 온다' 한강 소설도 떠오르더군요. 우리나라가 이지경이 되니 싱가폴 사는 언니도 톡으로 걱정이 한가득입니다. 주위에 군대보낸 엄마들 엄청 걱정하고 있다고... 다행히 비상계엄은 신속히 국회에서 움직여 조기종료 되었지만, 그 원인인 대통령탄핵이 되지 않고 있어서 언제 어떤일이 생길지 너무 불안합니다. 아들에게 군대 미뤄보자고 설득했는데, 아들은 이미 마음먹고 군대가려 했기에 번복하기 싫은가 봅니다. 군대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학교다니고 싶다는데... 이런 작은 바람도 마음 졸이며 군대를 보내야 하는 엄마 심정이 너무 안좋습니다. 어제는 싱가폴언니가 영상을 보내줬습니다. 군대보낸 아버지가 군에 있는 아들과 통화한거라고요. 언니는 그거 듣고 눈물 난다고 하는데, 저도 그 아들 음성이 꼭 철없는 우리 아들같아 눈물이 납니다. up https://youtube.com/shorts/4QS1iWZEVU8?si=rwkpooBhF5fJ55up 빨른시일에 불안한 시국이 안정될수 있길 바랍니다. 법과 질서는 국민만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자들이 더 지켜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을시는 국민이 권력을 주지 않는다는것을 알도록 해야겠습니다. 어제 오늘 내내 뉴스보면서 답답한 마음에 몇자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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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4년 11월 30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박경리 작가의 대하 소설 '토지'를 읽게 될줄 몰랐는데, 노트북님과 딸기님의 후기를 보며 자연스럽게 책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혼자서는 이렇게 긴 소설을 도전하지 못할것 같아서, 이번기회에 나도 한번 읽어보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는 한주에 한권을 읽지는 못할것 같고, 2주에 한권 읽는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처음엔 사투리 적응이 쉽지 않았는데,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구수한 사투리에 스며드는듯 했습니다. 1권에는 전체적으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들간에 많은 사연이 숨어 있는듯이 암시를 하고 있기도 하고요. 특히 구천과 별당아씨의 이야기는 궁금증만 증폭된 상황입니다. 소설의 배경지 경남 하동 평사리에 최참판댁과 그에 소속된  노비들 그리고 마을 작인들과 향반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에서 작은 시골마을이 연상됩니다. 제가 가장 인상깊은던 것은 이시절이라 그런지 아니면 시골이라 그런지 식사때가 되었을때 이웃이 찾아오면 꼭 식사를 하도록 권하는 모습에서 훈훈한 인심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최참판댁에는 손이 귀한데, 그 많은 재산을 모두 남자들이 아닌 부인들이 일구었다는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재산을 일구는 과정이 흉작이 들었을때 주민들에게 쌀을 내어주는 대신 전답을 가져가는 방식이 좀 비겁하고 몰인정한 방식이기는 했으나, 돈없는 양반보다는 재력있는 양반가를 일구고 살아가려는 여인들의 의지가 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용이와 월선의 이야기는 이루어 질수 없는 첫사랑의 애틋함이 엿보였습니다. 아무리 무당의 딸이더라도 서로 좋아하는 사이를 갈라 놓은 월선엄마가 이해가 안가기도 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게된 월선도 용이도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고 힘들게 살게 되었고, 결국 피해자는 강청댁 같이 남편이 있어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는 상대 배우자들도 피해자가 되고 마니까요. 서희엄마 별당아씨의 이야기는 앞으로 나오겠지만, 1권에서는 자식(서희)이 있는데도 다른 남자를 따라 나섰다는 것이 이해가 안갔습니다. 앞으로 이야기에 제가 이해할만한 사연이 있을지? 궁금해 집니다. 그리고 윤씨부인이 아들 최치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도 의심이 됩니다. 아들이 바라는 어머니로서의 따뜻한 사랑으로 잘 대해주지 못한것 같거든요. 1권은 이처럼 궁금증을 자아내는 부분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내용들이 많으니까 기대하면서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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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4년 11월 15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한강의 채식주의자 책 안에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세편의 연속된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는 주인공 영혜의 남편시점에서,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시점, 그리고 나무불꽃은 영혜의 언니 인혜 시점에서 전개되는 소설입니다. 주인공 영혜의 시점이 없는 소설이다 보니 주변인들을 통해 영혜를 유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편 몽고반점에서 영혜의 형부와 영혜가 온몸에 꽃을 그리고 비디오 아트를 촬영합니다. 그 뒤 이야기가 나무불꽃에 연결 되는데요. 그 비디오 영상을 언니 인혜가 발견하고 영혜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고, 인혜 남편은 정신은 이상없었지만 인혜랑 헤어지게 됩니다. 이 스토리가 보통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상황입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처제와 형부의 불륜인가? 불륜으로 보기도 힘듭니다. 영혜는 형부와 어떤 정신적 교감도 없기때문입니다. 형부는 예술을 하는 사람인데, 이정도는 예술로서 허용이 된다는건가? 그러나 이런 예술이 타인에게 어떤 영감을 줄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는 채식주의자 인데 다른 사람의 말은 잘 듣지 않으면서 왜 형부의 꽃 페인팅한 육체를 통한 비디오아트 촬영은 허용했을까? 그리고 마지막에는 형부와 성교까지 담긴 영상을 만드는것 까지 하게 됩니다. 이게 예술이라고? 나중에 언니 인혜에게 이 영상을 들키고, 결국 119로 두사람은 실려갑니다. 저로서는 이 소설이 잘 이해가 안가지만 인혜만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인혜는 영혜랑 같은 부모아래에서 성장합니다. 가부장적이고 가끔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3형제는 맞고 큽니다. 아들은 아버지께 맞은 스트레스를 동네 친구들을 패는걸로 풀고, 언니 인혜는 어머니를 도우며 아버지 술국도 가끔 끓여 주어서 아버지가 인혜한테는 덜 폭력적인데, 눈치도 없고 살갑지도 않은 둘째딸 영혜는 아버지의 매를 고스란히 맞으며 어디 풀지도 못하고 큽니다. 아마 어린시절의 이러한 가정환경이 영혜의 정신세계를 힘들게 한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인혜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현실에 잘 적응하며 헌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동생 영혜가 입원한 정신병원에 가서 돌봐주고 있습니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외면하고 마는데도요.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p230 시간이 훌쩍 흐른 뒤에야 그녀는 그때의 영혜를 이해했다. 아버지의 손찌검은 유독 영혜를 향한 것이었다. 영호야 맞은 만큼 동네 아이들을 패주고 다니는 녀석이었으니 괴로움이 덜했을 것이고, 그녀 자신은 지친 어머니 대신 술국을 끓여주는 맏딸이었으니 아버지도 알게 모르게 그녀에게만은 조심스러워했다. 온순하나 고지식해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던 영혜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고, 다만 그 모든 것을 뼛속까지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안다. 그때 맏딸로서 실천했던 자신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비겁함이었다는 것을. 다만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 주인공 영혜는 이런 폭력적인 가정의 희생자였던겁니다. 그리고 인혜도 마찬가지이고요. 가해자는 아버지인데도 인혜는 본인도 저항하지 못하며 방관만 했다 생각하면서 영혜를 구해주지 못한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뉘우치기도 합니다. 결국 영혜는 정신병원에서 육식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몸이 말라가서 죽음을 맞고자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어떤 해로움도 끼치지 않는 나무가 되고 싶어합니다. 단지 물과 햇빛만 있으면 살수 있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이로움만 주는 나무와 자신을 동일시 합니다. 사람은 이렇게 살면 결국 죽을수 밖에 없는데... 이런 동생을 보면서 인혜는 자신이 이런상황을 바꾸고 싶지만 바꿀수가 없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을 바꾸었으면 상황이 달랐을까 스스로 자책하며 인혜도 세상살이에 점점 지쳐갑니다. 그러나 인혜는 영혜처럼 나락으로 떨어질수가 없습니다. 아들 지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책임지고 사랑해야하는 아들이 있기에 인혜는 모든 힘든 현실을 견디고 성실히 하루하루 버티어갑니다. 결국 이소설은 가정폭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같은 환경에 노출 되었더라도 개인의 위치나 성향에 따라 극복의 한계가 다르다는것도 제시합니다. 많은 TV프로그램들 중에서 오은영박사님이 진행하시는 부부관계나 자녀문제관련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그 뿌리에는 언제나 어린시절 부모로 부터 겪은 상처들이 발단이 되어서 결혼후 문제를 일으키거나 자녀양육 방식에 문제를  보이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저도 커오는 과정에서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서 겪은 부모님에 대한 약간의 불만들이 있었고, 이 불만을 표출하기 보다는 내가 좀 더 잘 해야하는 위치라는걸 스스로 깨닫고 잘 하려고 애써면서 살아온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주장보다는 주위를 살피는 성향이 내 안에 자리 잡았고, 자책하는 경향도 많아지고(인혜처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다다랐을때 다른사람의 의견을 먼저 묻게 되고 살아가며 주체적인 삶을 못살고 있구나 느낄때도 많습니다. 이런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내 가치관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 독서로 도움을 받고 있는것 같습니다. 같은 부모 아래에서 컸어도 위치가 다르다 보니 형제간에도 다들 다른 성향으로 클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러나 이런 상황은 어느 가정에서나 흔히 있지만, 가정폭력만은 예외인듯 합니다.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당한 아이들이 나중에 어떤 결말로 나타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기에 부모로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사회적인 폭력도 암시되어 있습니다. 채식주의자 라는 특이한 상황을 설정했지만, 그 외에도 특이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없는 사회환경임을 느낄수 있습니다. 모든것이 다 갖추어져야만 행복하고 그중 하나라도 빠지면 불행하다는 안나카레니나 법칙(행복한 가정은 모두 엊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 이유가 다르다)을 총균쇠에서도 언급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모든 조건이 만족할 수가 있을까요? 한두가지 부족하더라도 내가 가진것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작은 행복을 자주 느끼며 살아가는것이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더 낫게 사는게 아닐까 생각하며... 후기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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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4년 11월 10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채식주의자'는 지난번 제가 읽고 후기를 적었던 '몽고반점'의 앞편 이야기입니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세편이 주인공 영혜를 둘러싼 연속된 이야기였습니다. 아직 뒤편 '나무불꽃'은 읽지 못했습니다. 다음주에 읽고 나머지 후기를 쓰고 오늘은 일단 '채식주의자'를 쓰겠습니다.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제가 과연 주인공 영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의 시선에서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한강 작가는 왜 일반적이지 않아 보이는 영혜라는 인물을 설정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니 영혜라는 인물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영혜는 어느날 무서운 꿈을 꿉니다. 피가 가득한 고깃덩어리들 속에서 헤메다가 자신이 온몸에 핏투성이가 되고 본인이 먹었는것 같기도 한 핏덩어리 고기들을 꿈에서 봅니다. 그리고 그날 부터 영혜는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또 다른 꿈은 영혜가 어릴적  자신의 다리를 물은 개를 아버지가 오토바이에 묶어서 끌고 다니다가 핏투성이가 되어 죽게하고 그 개고기를 온가족이 나누어 먹습니다. 영혜도 먹었고요. 어린시절 강렬했던  충격 때문에 꿈을 꾼것인지 모르지만, 그 꿈 이후로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는 일명 채식주의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을 옭아매는 듯한 브레지어도 안하고, 남편과의 잠자리도 거부하고, 온통 그녀의 생활은 정상이 아닌듯 보입니다. 채식주의자 편은 영혜의 남편시점에서 소설이 전개됩니다.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남편은 영혜가 너무나 평범해서 편할것 같은 여자라 결혼을 합니다. 그럭저럭 평범한 결혼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아내가 변합니다. 집안의 고기를 온통 버리고 육식을 일체 하지 않고, 잠도 잘 못자서 여위어 가는 아내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영 불편합니다. 그래서 처가집 장모와 처형께 사실을 알립니다. 장모 생신날 온가족이 처형네에 모여 식사할 시점에 일이 벌어집니다. 영혜가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자, 설득도 하고 걱정도 하고 했지만... 끝내 먹지 않는 영혜에게 성질급한 아버지가 딸의 빰을 때리고, 탕수육을 손에 쥐고 영혜 입에 우겨넣습니다. 영혜는 거부의 몸짓 끝에 칼로 자신의 손목을 긋습니다. 남편은 이런 부인이 정말 많이 불편합니다. 여기까지는 영혜를 둘러싼 온 가족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서 가장 충격인것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태도입니다. 굳이 먹지 않겠다는 육식을 끝내 억지로 먹여야 했을까? 우리네 엄격하신 부모님 세대에는 자식은 무조건 부모님께 순종해야하는 유교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지요. 그래서 딸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는 가족들은 모두 자신들의 방식으로 딸을 설득하려했고요. 영혜도 조금은 과장된 면이 있어보이지만 작가는 왜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했을까? 생각해 보게되었습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한것들이 정말 정상이 맞나? 라는 의문을 품게 하려고 했을까? 왜 육식을 거부하면 안된다는걸까? 건강이 걱정이 된다면 좀더 건강한 채식을 권할수도 있는것인데... 우리가 갖고있는 가족간에 걱정이 되어서 한 충고나 당부들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압박이고 폭력이 될수도 있음을 시사해 주는것 같습니다. 사람은 다양하고 여러 모습으로 살 수도 있는데, 다르다는 이유로 삐딱하게 보고, 소외시키거나 강제로 바꾸려고 한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족중 어느누구도 영혜의 입장을 이해해 보려고 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서 영혜를 바꾸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영혜가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함에 구역질이 나서 육식을 거부한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얼마전 불교대학에서 배운 내용중에 싯다르타가 새가 벌레를 쪼는 모습을 보고 왜 하나가 살기위해서는 하나가 죽어야 하는지? 고뇌를 하며  출가를 하게 되는 모습을 봤습니다. 인간이 살기위해 그 많은 동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사육하고 죽여서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동물은? 초식동물도 풀과 식물을 먹고 살아갑니다. 자연의 생태계는 자신이 살기위해 어떤 다른 생명이 죽이고 맙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니 살기위해 죽이는 과정의 연속이 되네요. 그러나 살기위해 죽이는건 최소한이 되어야지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 낯선 소설로 비정상을 규정해 버리는 우리사회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정상 비정상을 규정할 수 없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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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4년 11월 04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1장 어린새'를 읽은후.... 이 소설은 '나'가 없고 '너'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2인칭입니다. 이 글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영화가 있습니다. '쉰들러리스트'. 유대인 학살 흑백영화인데, 모두가 흑백인데 작은 꼬마소녀가 빨간원피스를 입고 나옵니다. 꼬마소녀는 주인공이 아니지만, 주위에서 모든것을 관찰하고 있는듯 합니다. '소년이 온다'의 '너'도 비슷한 설정같기도 했고,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영화 장면을 떠오르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너는 친구 '정대'가 가까이에서 총에 맞는 장면을 목격하고 무서워서 피합니다. 친구곁에서 친구를 보살피면 너도 친구처럼 될까봐 두렵습니다. 친구처럼 다른 사람들도 총과 무기에 무차별 공격을 당합니다. 그래서 결국 시신이 되어 나란히 보호자를 기다립니다. 너는 시신들이 보호자 곁으로 갈수 있게 도움을 주며 친구를 찾습니다. 그러나 친구도 친구누나도 모두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2장 검은 숨'을 읽은 후... 처음에 '나'가 없는줄 알고 읽다가 2장에는 '나'가 나옵니다. '너'의 친구인 '나'는 죽은 영혼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이  죽은 영혼으로 나온다니... 기존에 보지 못했던 형식이라 새롭습니다. 5.18 광주사태로 희생된 시신들 가운데 한명인 '나'는 너무나 소박하고 평범한 소시민입니다. 이런 '나'에게 '왜?' 라고 밖에 질문할수 없는 현실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나'는 주위의 여러 시신들 사이에 층층이 끼어서 내가 아는 사람을 찾아봅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것 같아 외롭습니다. 이렇게 외로운 죽음을 맞은 나는. 왜 죽었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생명이 태어남에는 이유가 없지만, 죽음에는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당연히 모든 인간은 죽지만, 병으로든 사고로든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 나는 왜? 국가가 이런 평범한 소시민을 이렇게 비참한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3장 일곱개의 빰' 을 읽은 후 3장에는 그녀가 나옵니다. 그녀의 나이는 24세.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대학을 중퇴하고 소규모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론 규제가 심했던 전두환 정권시절. 81년부터 88년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이 인물은 그 기간 자신이 쿠테타로 잡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언론을 통제하고 문화예술인들을 통제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저지른 일들이 알려지면 안되니까요. 3장의 그녀도 그런 시절에 겪은 일들이 개인에게 어떤 상처들을 남겼는지 보여줍니다. 그녀는 왜 이유없이 일곱뺨을 맞고 고통속에서 하루하루 맞은 뺨들을 잊어려 애써야 했을까요? 잊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걸 알아서 그랬는지... 개인의 힘은 미약했지만, 끊임없이 민주화를 외치며 대학가에서 했던 데모들이 오늘날 우리가 조금은 언론의 자유를 획득한것인지? 아니면 지금도 여전히 현 정권에게 불리한 뉴스들이나 정보매체들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지? 그래도 이제는 여야가 분명 다른 목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이것이 진정 국가와 시민을 위한것인지 일개 정치인 개인의 이득을 위한것인지... 89학번인 제가 대학시절에 봤던 그 많은 대학현장에서의 구호와 외침들이 잠시 떠오르면서 저는 데모현장 그 뒤편 어딘가에서 '지켜보는 이' 였을뿐이었네요. '4장 쇠와 피'를 읽은 후 4장은 광주사태때 계엄군에 맞서 항거하던 대학생 시민 진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인간의 권력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희생의 댓가가 이렇게 잔인할 수 있는것인가? 진수는 충분히 당시 현장에서 도망갈 수 있었는데도 되돌아 왔습니다. 무엇이 그를 안전하지 않은 그곳 도청에 돌아오게 한것일까? "p116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진수는 보석 같은 양심의 소유자였기에 되돌아왔나 봅니다. 그리고 그해 감옥에서의 여름과 가을. 그들이 겪었던 몇달간의 학대가 그들의 인생을 어디로 몰고 갔는지. 진수와 영재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유리와 같아서 한번 금이 간 상태에서는 결코 그 전 상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희생이 뒤받침 되고서야 오늘이 있었구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역사는 과거부터 줄곧 반복됩니다.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반복되나 봅니다. 저는 어린 아가의 순수한 눈동자를 보며 인간의 '성선설'이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사회에서 살아 남으려고, 악하게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나 봅니다. 인간의 유전자 깊숙한 곳에 '성악설'이 박힌 채 태어나고... 어느 순간. 개인의 이익을 위한 그 순간에 그것이 발동되나 봅니다. "p134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작가는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5장 밤의 눈동자'를 읽은 후 5장에는 광주사태 이후 20년이 지난후 그날의 증언자들을 찾아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윤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증언자 10명중 2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8명의 증언자중 7명은 이미 인터뷰를 허락해서 진행중이고... 나머지 한명. 마지막 한 여자의 증언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날의 기억을 다시 되새겨서 증언한다는것이 너무나 힘듭니다. 그녀가 광주사태 이후 살아온 20년의 세월도 녹녹치 않습니다. 광주사태로 수감되고 그곳에서의 며칠간 겪었던 치욕적인 성고문으로 그녀는 정상인으로 살기에는 돌이킬수 없는 상처를 안고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여공이었고, 자신들도 존엄한 인간이기에 노조에서 잠시 활동한것이 다였지만, 광주사태때 시민의 한사람으로 참여한것이 빨갱이라는 누명을 받고 누군가의 감시를 받으며 살게됩니다. 그렇게 나마 살아난것이 그날 죽어서 희생된 사람들에게는 또 미안함을 느끼며 그날의 죽음들을 늘 생각하고 악몽으로 그들을 맞대하곤 합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한 여자의 일생을 국가가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국가는 이제는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를 해야합니다. 지금 사과한들 그녀들의 인생이 보상될 수는 없겠지만 미래의 또 다른 그녀들이 만들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무조건 권력자가 불리한 상황이 되면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워 한 사람의 일생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그런일들이 반복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의 현대사는 이런 일들의 연속이었고, 그것을 깨치기위한 희생들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는데,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 진다는것을 이 소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6장 꽃핀 쪽으로' 를 읽은 후 6장에는 동호 할머니와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문간방 삭월세를 사는 친구 정대와 즐겁게 살던 어린 중학생 동호. 광주 사태로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동호는 친구의 시신이라도 찾겠다고 도청에 남아 있다가 계엄군의 손에 총 맞아 죽고 맙니다. 동호를 데려 오려고 필사적으로 애썬 할머니와 작은형은 결국 동호를 못만나고, 데려올수도 없었고... 다음날 싸늘한 시신으로 동호를 대합니다. 무슨 잘못을 어린 학생이 했나요? 할머니는 또 무슨 잘못을 했길래 어리고 귀한 손주를 잃어야 했을까요? 광주시민들은 그것을 묻고 있습니다. 모두 비슷하고 슬픈 사연을 가슴에 안고서요. 그 가족들은 모두 같은 아픔을 품고서 오늘도 이곳저곳에서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아픔을 남긴 군부 독재자 전두환은 결국은 사과도 없이 잘 살다가 갔습니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우리는 이런 일을 또 다시 겪지 않기 위해 5.18 광주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를 읽은 후 에필로그를 보고 이 소설 속 인물들이 작가의 고향 집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였음을 알았습니다. 작가가 서울로 이사 온 후에 광주사태가 벌어진겁니다. 그러니까 작가의 집이 조금만 더 늦게 서울로 왔더라면, 작가가 광주에 그당시에 살았더라면, 이 소설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일 수 도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계엄군이 광주가 아닌 내가 사는 지역으로 왔었다면 내 이야기 일수도 있는거구요. 이처럼 작가는 우리 이웃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해줍니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되지만, 이 속에서 우리가 번복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알려줍니다. 한강 작가는 저랑 비슷한 연배에 동시대를 살아온 비슷한 정서의 사람입니다. 나와 다른점은 그녀는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나서 9살 까지 살았었고, 나는 경상도 어디쯤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1980년 5월 18일에 있었던 '광주 사태'를 저는 아무것도 모른채 자랐고, 대학을 다니면서 알게됩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이런일을 모르고 살아올수 있었다니... 우리가 살아온 시대가 이러한 시대였고, 지금은 내가 아는것이 얼마이고 또 모른것이 얼마인지 모른채 삼삼오오 곁에 있는 누군가들과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지난 과거의 사실을 소설로 접해도 용납이 되는 시기여서 다행이고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개인의 감성을 섬세히 묘사한 책이 세계인의 자랑인 노벨상에 이름을 올리고, 우리는 난해한 번역없이 작가의 감성을 고스란히 느끼며 어렵지 않게 노벨상 수상작을 읽을수 있어서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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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4년 10월 18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출발 1. 기대에 대하여 이 책에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요즘 저는 여행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 여행할까?' 를 생각하며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시작해 봅니다. 우리는 여행하면 항상 기대와 행복 낭만 등등 좋은것들을 떠 올립니다. 막연하게 상상할때와 실제 여행은 또 다르다는 것을 출발하고서야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많지요. 그래서 이책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p25 귀중한 요소들은 현실보다는 예술과 기대속에서 더 쉽게 경험하게 된다. 기대감에 찬 상상력과 예술의 상상력은 생략과 압축을 감행한다. 이런 상상력은 따분한 시간들을 잘라내고, 우리의 관점을 곧바로 핵심적인 순간으로 이끌고 간다.] 내가 기대한 여행지에서 찰나의 행복감을 위해 우리는 많은 수고를 하고 그 댓가를 치르고 가는 겁니다. 그렇게 간 여행지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에  대면했을때 걱정 불안 근심들은 여행의 행복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지요. 하지만 그 시간들은 여행을 다녀온후에는 다 잊혀지게 되고, 멋지고 아름다운 순간들로 우리의 기억속 자리를 차지하고 맙니다. 이런 순간들을 예술에서 표현했기에 우리는 현실과 예술의 간극을 느낄수 밖에 없는것이고요. 저는 여행을 몇년전부터 조금씩 다녀보면서 여행을 하는 순간 보다 가기 전 상상하고 기대하는 순간과 다녀온 후 여행을 돌아보며 사진 정리와 그곳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후기를 적는 순간들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왜 그를수 밖에 없었는지 깨닫게 되네요. 여행지에서는 내가 상상하는 이외에 많은 것들이 보이고 머릿속을 오가고 하니까 진짜 소중한것에만 집중할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것을 이책이 바로 지적해 주네요. 제가 결코 이상했던것이 아니어서 다행입니다.ㅎ 그래서 저는 최근에는 가족여행밴드나 개인밴드에 여행이나 기록하고 싶은 일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글로써 정리하면 제 경험이 제게 어떤 의미였는지가 명확해지고 또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도 깨닫게 되는 좋은 효과가 있더군요. 그리고 여행의 군더더기들은 모두 사라지고 액기스들만 남는 작업이 됩니다. 그래서 귀찮더라도 꼭 정리하는 습관은 길러두는것이 좋은것 같습니다. 이책에서 기억에 남는 다른 구절은 [p35 인간 종들 가운데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며 살아가는 집단은 먼 옛날 진화의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조상들은 순간순간의  경험을 제대로 음미하지는 못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살아남아 후손의 성격을 형성해주었다. 반면 이들보다 집중력이 강했던 동료들은 자신이 현재 속해 있는 시간과 장소에  몰입하는 바람에, 눈에 보이지 않는 들소의 뿔에 받혀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저는 가끔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고 걱정하고 계획하곤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하고 스스로 자책할때가 있었습니다. 일어날 확률도 크지 않은 미래의 일들에 마음과 정신을 빼앗길때가 많았는데, 이 또한 살아남은 우리 종족 조상들의 성격을 닮았다고 이 책이 말해주네요. 조금은 위안이 된다고 할까요? 하지만 이제는 현재의 순간들에 집중하고 즐기고 싶은 마음 커서 미래의 걱정들은 잠시 접고 싶을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유전자의 힘때문인지 그게 쉽지는 않네요. 알랭드 보통의 글을 읽으며 그의 통찰력이 대단해 보입니다. 2. 여행을 위한 장소들에 대하여 이 장에서는 여행을 하기 위해 거쳐가야만 하는 장소들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휴게소, 공항, 비행기, 기차, 호텔, 주유소 등등 그리고 이 장소를 이야기하기 위해 시인 샤를 보들레르와 화가 에드워드 호퍼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샤를 보들레르는 다섯살에 아버지를 잃고, 1년뒤 어머니는 그가 싫어하는 남자와 재혼해서 가정에서의 행복과 사랑을 느낄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항상 어딘가로 떠나려고 하고 다른곳에서 안정감을 찾으려 했나봅니다. [p48 삶은 모든환자가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는강박감에 사로잡힌 병원이다.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 마지않는다.] 이 문장을 읽으니 샤를 보들레르가 안스러워집니다.가정과 집은 안정된 보금자리이고 밖에서 지쳤을때 위안을 주는 곳이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는데, 보들레르는 그 반대였으니까요. 한 인간의 인생에서 부모와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비단 보들레르 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부분들이었습니다. 여행하기 위해 거쳐가는 곳들 즉 휴게소나 기차안 도로나 식당 호텔 등을 우리는 필히 거쳐가는데, 이곳 풍경들을 떠올리며 알랭드 보통은 화가 에드워드 호퍼를 거론합니다. [p68 집단적 외로움과 마주치자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유화 몇점이 떠올랐다. 그의 그림들은 황량함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황량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보는 사람이 자신의 슬픔의 메아리를 목격하게 함으로써 그 슬픔으로 인한 괴로움과 중압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준다. 어쩌면 우리가 슬플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안거나 사랑해줄 사람이 없을때 차를 몰고 가야 할 곳은 외로운 휴게소인지도 모른다.] 가끔 여럿 있는 공간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나를 온전히 공감해 줄 사람이 없을때 혹은 가족안에서도 혼자인 기분일때도 있고요. 그런데 그를때 문득 낯선곳으로 가서 나와 비슷해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그냥 곁에 그런 사람이 존재 한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때가 있습니다.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이것이 어쩌면 내가 피하고 싶은 것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그게 그리 큰것이 아니었다고 깨닫게 되는 경우와 비슷한것 같습니다. [p72 일반적으로 공동의 고립감은 혼자서 외로운 사람이 느끼는 압박감을 덜어주는 유익한 효과가 있다. 도로변의 식당이나 심야 카페테리아,  호텔의 로비나 역의 카페 같은 외로운 공공장소에서 우리는 고립의 느낌을 희석할 수 있고, 따라서 공동체에 대한 독특한 느낌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가정적인 분위기의 결여, 환한 불빛, 익명의 가구는 흔히 거짓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가정의 위안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통로로 여겨질 수도 있다.]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또 어쩔수 없이 혼자일수 밖에 없는. 외로움도 감수해야 하는. 부조리한 인간. 이기에... '불안과 고독'을 어떻게 극복할것인지 저마다의 방법을 강구해야 할것 같습니다. [p80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집은 아니다. 가구들은 자기들이 불변한다는 이유로 우리도 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가정적 환경은 우리를 일상생활 속의 나 라는 인간, 본질적으로는 내가 아닐 수도 있는 인간에게 계속 묶어두려고 한다. 호텔 방들 역시 정신의 습관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슷한 기회를 제공한다.] 매일 똑 같은 장소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하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자각하지 못한채 주어진 대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물론 나는 항상 변할 수 있고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닐수 있지만, 진정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하려면 낯선곳, 낯선 환경, 불편한 문제들에 봉착했을때 새로운 내가 더 잘 나오기 때문에 여행이 이런 모든 환경을 제공해 주는것 같습니다. 즐거움과 행복만을  추구하는것이 아니라 낯선곳에서 나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과정이 여행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올해 마지막 여행으로 12월 베트남 다낭을 계획하고  있어서 비행기와 호텔을 예약해 두었습니다. 베트남은 처음 가보는곳이라 설레임도 있고 가는 과정에서 준비할것 들도 있습니다. 함께 가는 이들이 남편과 이모 이모부 이렇게 네명이 가게되어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럿이 의견이 충돌할때 이따금 외로움이 몰려올수도 있고... 열심히 사는 베트남 사람들을 보고 저도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할수도 있고... 어떤 감정들이 들지? 저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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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4년 10월 12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이번주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전국민이 기뻤던 한주였지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이후 노벨상을 탈수 없었던 우리 나라에 대중 문화예술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이 된 것 같아서 저도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어 본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떤 글을 썼을까? 궁금했는데, 마침 집에 2005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있었고, 거기에 한강의 '몽고반점'이 대상  수상작으로 있다고 남편이 알려주었어요. '몽고반점'은 70페이지의 짧은 단편 소설입니다. 그래서 단번에 읽을 수 있었어요. 노벨문학상이나 다른 여러 수상작들을 보면, 읽고 바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몽고반점 역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것이 무엇일까? 바로 알기는 힘든 작품이었어요. 그렇지만 작가는 소외된 개인의 내면을 표현하고 싶었던 듯 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조금 난해할것 같고 작가에 대한 이해가 좀 더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는 연세대 국문학과 89학번인데, 아마도 마광수 교수님의 강의를 듣지 않았을까? 짐작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잠시 마광수 교수님도 떠오랐거든요. 너무 시대를 앞서가서 외설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 들며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었지요. 몽고반점에는 영혜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정체 모를 꿈으로 인해 육식을 거부하게 되고 이는 부모님과 주변사람들의 이해를 못받게 됩니다. 결국 채식주의자로 불리게 되지요. 아직 한강작가의 맨부커 상 수상작 '채식주의자'를 읽지 못했는데, 그 책에 영혜가 주인공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영혜는 또 아기들이 가지고 있는 몽고반점을 성인때까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생활도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정신이상자로 몰려서 정신병원에도 입원하고 자살시도도 합니다. 이렇게 한 인간이 타인에게 이해 받지 못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데, 그녀의 언니 인혜는 영혜를 도와주고 싶어 남편에게 부탁합니다. 비디오 아트 작업을 하는 남편은 생활력 있는 부인과 아들을 둔 평범한 가장이나 부인에게 권태감을 느끼고 자신의 작품에서도 본인의 외모에서도 모두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 그에게 아이같은 몽고반점이 있는 처제는 새로운 태고적 순수함의 상징으로 다가옵니다. 그렇게 다가온 처제에게 비디오 아트 작품의 모델을 제안하게 되고, 영혜는 형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작품을 찍습니다. 전라의 상태에서 온몸에 활짝핀 꽃을 그려서 자신이 진짜 활짝핀 꽃처럼 생기를 다시 얻게 되는데... 형부는 이속에서 자신의 욕망이 타오릅니다. 예술을 완성하는것인지 자신의 내면의 욕망을 채우는것인지? 알수는 없지만, 정신적으로 불안전한 처제에게는 이것이 어쩌면 자신을 가장 잘 꽃피우는 행위인듯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아내인 인혜가 알게 되고, 동생과 남편의 행위에 충격을 받지만, 침착함을 유지하고 정신병원 치료를 권유합니다. 한강 작가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아니라면 이 소설이 말하는 표면적인 내용을 보고 처제와 형부의 불륜 같은 내용이라 치부했을 터인데, 이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 속에 있는 욕망을 있는 그대로 다 실현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꾹 참고 욕망이 없는 듯이 살면 그것이 병적으로 우울감이나 정신병으로 힘겨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을 참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다 욕망을 이루고 살지도 않고 적당하게 욕망도 이루고 남들에게 상처도 안주고 살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시점이 있습니다.(남편시점) 그리고 세상의 잣대에 맞추어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적응하며 사는 사람들은 결코 알수 없는 소외되고 순수한 힘없는 개인은 어떻게 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이런 생각도 하게 하는 작품입니다.(영혜 시점) 그리고 성실히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다하고 개인보다는 사회나 가족에게 충실한 사람은 결국 자신의 행복을 잃고 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개인은 이기적으로 살아야만 행복할수 있는것인가?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인혜시점) 짧은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의 내면을 생각하며 내 마음과 내 삶도 돌아볼수 있게 해서 한강 작가가 여러 상을 수상할수 있었던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쨌든 우리나라도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는 강국이 되었음에  기쁘고 희망차지만, 지구 한편에는 전쟁으로 목숨을 잃는 이들이 있다는것을 상기시키고 축하잔치를 못하게 했다는 한강 작가의 인품을 느낄수 있어서 더 한강 작가가 위대해 보입니다. 온국민이 들썩임에도 차분함을 간직한 작가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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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4년 10월 06일
In 주 1회 독서 후기 공유 모임
저는 요즘 이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은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갈지 작가의 바램을 적은 수필집입니다. 한번에 많이 읽지 않고 하루에 몇편씩 조금 읽습니다. 저의 하루를 어떤 모습으로 채워 나가야 할까 생각하며 읽게 되어서 좋습니다. 소노 아야코는 일본 작가이며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선천적 고도근시로 어둡고 폐쇄적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부조리는 소설가로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어주었습니다. 소설가의 편견이 심했던 시대에 반골기질의 소노 아야코는 망설임 없이 소설가의 길을 선택하고 평생 독신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문학 동인지 멤버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친정 어머니와 시부모님과 한집에 살면서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자연스러운 통찰을 담아 다수의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입니다. 작가의 이력에 비해 수필집은 아주 편안하게 읽히고 앞으로의 제가 어떻게 늙으면 좋을지 청사진을 보여줍니다. 나이가 들더라도 누군가의 도움을 청하지 말고 혼자서 독립적인 삶을 꾸려가라는 말씀이 있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일단 포기하라고도 합니다. 같은 연배끼리 사귀는 것이 노후를 충실하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글도 있습니다. 제가 50대가 되고 인생 2막이 시작 되는 시점에 늙음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 주위의 인간관계들도 돌아 보게 되고요. 젊을때와 중년시절 또 지금의 노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예전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써기 보다는 내가 만나고 나서 마음이 좋아지고 서로 부담이 안되는 관계를 좋아하게 됩니다. 그래서 속깊은 관계는 조금만 하고 '느슨한 연대'라는 말처럼 얕더라도 서로간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서 부담없이 취미며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관계가 여럿있는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들수록 단순한 생활이 좋은것 같습니다. 이 책도 한편이 짧고 단순하지만 제게 좋은 방향을 편안하게 제시해 주고 있어서 휴식 같은 책이 되고 있습니다.
[10월 1주 독서모임][독서중]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소노 아야코 지음 content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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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4년 9월 09일
In 삼국지 - 나관중 원작, 이문열 평역.
7월부터 시작한 삼국지 10권을 9월 시작 즈음에야 끝내게 되었습니다. 길다면 긴 시간 매주 한권씩 10권을 끝낸다는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함께 도모함으로써 힘을 얻어 끝을 보는군요. 10권에서는 제갈공명이 여섯번이나 기산으로 나가 싸우기를 거듭하며 천자를 도와 중원을 되찾고 한실을 다시 바로 세우고자 했으나 이는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고 목숨이 다해 죽음을 맞습니다. 공명이 신기가 있는 듯이 매번 그가 꾸미는 전략이 비범하여 사마의는 항상 그의 계책에 숨은 뜻이 있을까 의심하며 조심하게 되고 결국 공명이 죽어서도 사마의를 쫓을 수 있게 되기까지 이릅니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한사람의 영웅을 거의 신적인 존재로 만들다보니 읽는 이가 조금 흥미가 떨어지는 마음이 들때쯤에 54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공명이 신이 아니라 인간임을 죽음으로써 알게 되네요. 이런 나라의 중심을 잡던 공명이 죽은후의 혼란함은 가히 짐작할만 합니다. 이 또한 미리 예상하고 공명이 또 그 방책을 여럿에게 일러두었지요. 공명 아래에서 권력욕을 숨죽이고 있던 위연이 도발하게 되고 양의가 도발에 맞서게 되니, 공명 죽음 후의 촉의 정세가 서로가 또 서로를 잡아먹는 형국이 됩니다. 이런일은 촉 뿐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고 일어나는 일이겠지요. 이렇게 삼국지의 영웅들이 모두 죽음을 맞고 그 후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며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위 촉 오 삼국은 계속해서 싸움을 거듭하다가 사마염이 위를 어어받아 진으로 삼국을 통일하게 됩니다. 나라가 안정되지 않은 시점에 저마다 자신이 대권을 잡아야 한다고 명분을 세우며 싸움을 일으키고 있는 내용들을 읽다보니 저는 그 속에 숨은 지혜나 교훈을 찾기 보다는 왜 인간은 이토록 권력욕에 사로 잡혀 서로를 죽여야 하는가? 라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정치도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고 또 지금 일어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 전쟁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요즘 제가 관심을 가지는 내용은 싯다르타의 가르침에 대한 것이기에 인간의 욕망과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소설이 조금 불편하고 눈에 안들어오는것은 어쩔수가 없었나 봅니다. 제가 책을 읽는 방식이 한줄이라도 제 마음을 울리는 책읽기를 좋아하기에 긴 역사 전쟁 소설이 제게 지금 시점에서는 좀 힘든면이 있었나 봅니다. 인간이 긴세월을 살고 역사속에서 배움을 얻어 좀 더 향상된 모습을 가질것 같지만, 역사는 계속 반복된다는것을 이 소설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조조가 권력을 차지하는 모습이 조조의 후대가 권력을 빼앗기는 모습으로 재현되듯이 말이지요. 그리고 태평성대한 세상이 오면 잘 살것 같지만, 그 안에서는 또 인간의 게으름과 타락이 싹트게되고 결국 그 나라는 패망에 이르게됩니다. 난세에 영웅이 탄생하듯이 어려움을 이기는 과정에서 인간은 좀더 발전하고 나아가는듯 합니다. 그러하니 늘 평안하지도 늘 피폐하지도 않는 적당한 중도의 삶을 지향함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긴 호흡 함께 할수 있게 이끌어주신 노트북님 감사드리고 먼저 읽기를 끝내고 늘 응원의 댓글을 주신 딸기님께도 그리고 그외 다른 멤버분들도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자유독서로 후기나눔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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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여행
2024년 9월 01일
In 삼국지 - 나관중 원작, 이문열 평역.
9권에서는 유비가 죽음을 맞이 합니다. 유비가 죽으면서 공명에게 유비의 아들을 도와서 될 만한 인물이면 도와주고, 재주가 모자라 도와도 안될 인물같으면 공명이 성도의 주인이 되도록 하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유비는 공명에게 나라를 내놓음으로써 죽은 뒤까지 공명을 은혜와 의리로 묶어 놓습니다. 이에 반해 조조는 사마의가 남다른 재주를 지녔음을 알고 그를 무겁게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마의는 조조가 살아 있을때는 불우 했으나 끝내는 위를 찬탈하고 맙니다. 이것이 유비와 조조의 사람에 대한 투자에 있어서 차이점 입니다. 유비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희생시키는 법이 없다는 점이고 이것이 민중적 인기를 끈 요소이기도 합니다. 9권에서 또 다른 인상적인 부분은 공명이 강유를 얻게 된 경위입니다. 아무리 적이더라도 그 인물됨을 알아본 공명은 널리 어진 이를 얻어 평생 배운 바를 전하려 했는데, 강유가 그 적임자 임을 알리고 그를 인정해줌으로써 비록 적이더라도 자기의 사람으로 만들게 됩니다. 강유 또한 자신을 알아봐 준 공명에게 항복하지만 그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기쁨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다 바치는것이 사람의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저 또한 저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많이 가는것은 어쩔수 없네요. 그리고 저도 다른 사람의 가치를 알아봐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삼국지는 젊어서는 읽고 늙어서는 읽지 말라' 고 한다고요. 세상 사람들을 보는 관점에 있어서 젊어서는 많은 역경을 헤쳐나가야 하기에 여러 인물들의 심리와 그에 따른 처세나 전략등을 놓치지 않고  미리 알수있는 지혜를 갖추라는 뜻에서 젊어서 읽으라 한것 같은데.... 저는 젊어서 못읽고 늙어서 읽게 되네요. 늙어서 읽지 말라고 한것은 이미 많은 것을 경험했고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복잡하게 살지 말라는 뜻에서 읽지말라고 한걸까요? 어쨌든... 이제 삼국지 9권을 끝냈으니 다음주 마지막 10권이 남았습니다. 끝까지 힘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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