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이제는 몇일 안 남은 올해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모두들 무슨 생각으로 올 한해를 보내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좋은 일만 있었던건 아니지만 지금 좋으면 다 좋은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ㅎ
몸도 마음도 좋게 올해를 마무리할수있어 너무 다행이고 행복합니다.
이번 7권은 봉순이 얘기를 많이 들을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봉순이의 절절한 마음이 쿵 하며 내 마음에 들어온 것 같았어요. 그 마음을 볼수 있어 다행이었고 봉순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하며 읽었습니다.
'엄니, 나 지금 간도 가요. 애기씨 보러 가요. 엄니는 늘 말했지요? 니는 에미가 있인께. 그러던 엄니는 지금 어디 계시요. 엄니가 살아계셨더라면 봉순인 기생이 되지 않았을 것이요. 엄니가 살아서 지금 나를 본다면 잡아죽이려 했을 것이요. 그러나 이젠 혈혈단신이요. 잡아죽이려 드는 엄니도 없고 강짜가 심하던 그 노랑이 늙은이하고도 헤어졌으니까요. 하긴 그 늙은이랑 함께 살았을 적에도 혈혈단신이긴 매일반이었지만요. 외로웠어요. 외로워서 스님을 따라 간도로 가나부죠? 얼굴이라도 쳐다보면 갈증이 조금은 풀릴 것도 같소. 월선 아지맬 보면 엄마 본 듯 하겠지요? 애기씬 더욱더 아름답고... 이 부사댁 서방님 난 그분 마음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혜관 스님과 간도로 가는 기차에서 창밖을 보며 기화(봉순)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마음이 아렸습니다. 봉순이의 삶도 봉순이 스스로 선택한 삶이긴 하지만 서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고 그 삶이 또 행복했을까 싶기도 해요. 봉순이 엄마가 죽고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된 봉순이가 딱히 누군가에게 기댈만한 사람도 없이
소리를 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떠났던 건 어쩔수없는 최선이었을수 있어요. 삶은 누구도 의도한대로 흘러가지 않는 안개속이라 후회도 무의미한 게 인간의 삶인거 같아요. 다만 그렇게 떠난 봉순이가 어느 누구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외로이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팠습니다. 돈은 없어도, 소리를 못했어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제대로 가정을 이루었다면 이렇게 짠하진 않을텐데 말이죠.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저도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알고 있어요. 그건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었어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을 만드는 일.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삶이 있을까 싶어요.
'길상은 고독했다. 고독한 부부, 고독한 결혼이었다. 한 사나이로서의 자유는 날개죽지가 부러졌다. 사랑하면서, 살을 저미듯 짙은 애정이면서, 그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던 애기씨, 최서희가 지금 길상에게는 쓸쓸한 아내다. 피차가 다 쓸쓸하고 공허한가. 역설이며 이율배반이다. 인간이란 습관을 뛰어넘기 어려운 동물인지 모른다. 그 콧대 센 최서희는 어느 부인네 이상으로 공손했고, 지순하기만 하던 길상은 다분히 거칠어졌는데 그래도 서로 사이에 폭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군요. 이런 결혼이었어요. 옥이네를 다녀오던 서희의 마음을 보며 이들이 사랑으로 맺어지길 바랬는데 서희의 마음은 그렇다쳐도 길상은 아닌가봅니다. 서희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녀간의 사랑이기 보다는 애틋한 상전 애기씨에 대한 애정 그것이었나 봅니다. 그러니 그 결혼이 오붓할 리 없죠. 그럼 길상은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받아들인걸까요. 그리고 그렇게 한 결혼이 어떤 모양일지 생각은 했던 걸까요. 용이에게서도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았었죠. 애정없는 결혼이 어떤 결말을 낳는지 말입니다. 서희는 그걸 몰랐을리 없는데 말입니다. 자신은 다르다 생각했을지 모르죠. 자기가 가진 신분과 재력이면 길상도 고분고분해질줄 알았을지 모릅니다. 그냥 마음이 스산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길상의 마음도 달라질지도 모르죠. 길상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아비는 밭 갈고 지어미는 길쌈하고...어머님 나더러 그렇게 살기를 바랬다. 지아비는 밭 갈고 지어미는 길쌈하고.. 사람이 사는 이치가."
'나는 누굴 위해 비단옷을 입었나. 내 가장 내 자식 등을 덮기 위한 길쌈이라면 추야장천 긴긴 밤도 길지 않을 것을.'
...
"제술이 너는 석이한테 비하면 복이 많다. 어릴 적에는 무보 없는 설움이 젤 크지. 넌 최참판댁 애기씨보다 복이 많아."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아무리 그러까요."
"아니다. 그건 정말이야. 비단 금침보담 엄마의 팔이 더 따뜻하거든."
기화(봉순이)가 평사리 사람들을 만나고 회한에 젖어 한 말이었어요.
그런데 저 평범한 말이 왜이리 마음에 찡하게 오는 걸까요. 이 나이 되고 보니 그렇게 결혼해서 달콩달콩 자식 낳아 사는 평범한 일이 가장 어렵고 행복한 일이라는 걸 알겠더라구요.
기화는 그걸 안겁니다. 아직 어린 나이이긴 하지만 엄마가 없어지고 세상을 알아버린거겠죠.
뭐든 있을땐 그게 소중한줄 모르죠. 없어봐야 안다는게 세상의 이치인걸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얼마전 유퀴즈에 고현정이 나왔었죠. 한때는 잘 나가는(지금도 그렇지만) 배우였고 재벌과 결혼하며 뭇 여성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사던 사람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자기 배 아파 낳은 금쪽같은 자식을 못보며 삽니다. 이보다 더한 고통이 있을까 싶게 이제는 고현정이 너무나 안쓰럽습니다. 유명하고 돈 많이 벌면 뭐할까요. 내 손안에 내 새끼 손한번 잡을 수 없는 삶이 얼마나 헛헛할지 말입니다.
기화의 쓸쓸한 저 말에 더욱 마음이 쓸쓸해졌습니다.
이 글(이부분)을 쓰고 있는 지금은 저녁시간입니다.
가족들이 먹을 삼계탕을 데우며 가족들을 기다리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 이 평범한 일상이 너무 소중해서 미치겠습니다. 별거 없는 루틴의 하루를 보내며 한때는 지겹다 입에 달고 살던 밥하기도 행복하고, 빨래 널기도 소중합니다.
그냥 이대로 이렇게 사는데 하나도 불만이 없습니다.
멋드러진 여행을 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고급스런 음식을 입에 넣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된장찌게에 밥 한술 먹는 게 이리도 행복한 일인줄 예전엔 왜 몰랐을까요.
지금이라도 알아 다행입니다.
"서양풍 얘기가 났으니 말인데 사실 우리 조선에서 소실 두는 풍습이 성한 것은 그럴 만한이유가 있는거요. 서양에서는칠거지악이 없어도 살다 정이 없어지면 이혼하는 것이 보통이고 재혼을 몇 번 하여도 흉허물이 없지만 조선에선 조강지처를 아니 버린다는 불문율 때문에 부득이 소실 두는 풍조가 생긴 모양인데 신여성뿐만 아니라 조선도 문명국이 되려면은 우리네 남자들도 생각해볼 만한 일인 성싶소."
소실을 둘이나 둔 조준구가 한 말입니다.
전 이말을 듣고 조선에서 소실을 두는 이유가 정이 없어진 본처를 내칠 수 없어서 라는 말에 너무 놀랐습니다. 마치 남자들이 본처에 대한 예우를 해주는듯 핑계를 만든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서양의 이혼이라는 제도를 또 자기들 식대로 해석하고 이용하려는 마음도 보여서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조준구가 한 말이어서 모두의 의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남자들이 많았을거라는 예상이 되거든요.
조선에서 여자들의 위상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지금 시대를 사는 젊은애들에게는 씨도 안 먹힐 일들이 횡횡했었던 시대였으니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야하는 건가 싶더라구요.
이들의 대화들을 보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상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자신이 의식하지 않아도 박혀있는 고정관념이 이래서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변하는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과 이런 생각들이 바뀌는 과정에서 상충되는 의견들 속에서 사회 인식이라는 것이 발전하는구나 생각해봤습니다.
작금의 정치 사태를 보며 민주주의 운운하는 얘기들을 들으면서 시민 의식이 많이도 변하고 단단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상이나 생각들이 드러나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일, 그 마음에 공감을 하게 되면서 우리나라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쓸려가지는 않겠구나 하는 뿌듯한마음이 들기도 하는 요즘이었습니다.
시대물을 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대가 변하듯 생각도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한차례 씩 확인하는 단계를 거치면서 시민의식이라는 것이 발돋음을 하고 굳건해진다는 생각을 해서 그렇습니다.
토지를 읽으면 우리의 예전 모습을 보는 일은 그래서 더욱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새록새록하게 됩니다.
간도로 넘어가 사는 사람들의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그들이 거기서 돈을 벌어 다시 조선땅을 밟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는 건 조선에 살아있는 의식을 보는것같아 뿌듯했습니다. 무엇보다 돈을 벌어야 독립운동도 할수있다는 말은 당연하지만 중요한 일이고 그것을 서희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직 서희의 본격적인 행보가 보이지는 않지만 여기저기서 독립에 투사하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서희도 동참하지 않을까 기대해보며 다음 8권으로 넘어갑니다. ㅎ
제가 항상 새벽에 올리는 루틴이 있다보니 그런 기대감을 드린거같네요. 이것도 재미있습니다. ㅎ
누군가 제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건 엄청 행복한 일이거든요.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도 이런 후기라 아니라 책 한권 읽고 수다로 풀면 더 많은 얘기를 할수있겠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애정하는 봉순이와 길상이의 마음이 드러나서 더욱 그랬던거 같습니다.
노트북님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지 말입니다. ㅎ
그래도 이렇게나마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일은 몇번이고 반복해서 말해도 모자랄만큼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마음은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람이 있을때 나누는 기쁨이 더해집니다.
그걸 제가 여기서 경험하고 있네요.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ㅎ
나의 삶에서 일정부분 아니 온전히 나의 전체를 쏟아 붓는 마음으로 키우게 되는 우리의 육아를 경험하는 일은 세상을 알아가는 너무 소중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다시 태어나도 전 아버지는 하기 싫어요. 다시 어머니를 하고 싶어요. ㅎ 나를 갈아넣어도 아깝지 않은 일이 있다는 건 어디에서도 경험할수없는 굉장한 일이니까요.
그런 경험을 우리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래서 여자는 남자보다 더 어른이 되는거 아닐까...혼자 생각해 봅니다. ㅋ
제가 쓴 글만으로도 제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시고 나누어주시는 노트북님과 여러분이 계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내년에도 꼭 행복하세요. 노트북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