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노트북 입니다.
이번 주는 토지 10권 300페이지 정도 읽고 후기를 남깁니다. 3부 제2편을 좀 넘겨 읽었네요.
(다음 주에 나머지 부분과 11권에 대한 후기를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글여행님의 후기에서 민영환 지사애 대한 글에 감명을 받아, 주갑이 아재가 스승님으로 모셨던 강우규 지사가 실존 인물이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역시.. 몇 권의 이전 이야기부터 중간중간 전개 되었던 한의사 강우규 선생님의 이야기가 모두 실재였습니다. 이 소설 속에 숨겨진 역사적 사실을 제가 너무 쉽게 넘기며 읽었던 것이 아닐까 10권에 이르러 또 아쉬워졌습니다. 의술에 밝아 많은 돈을 벌었지만 평생을 학교를 만들어 신학문을 전파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현장이 서의돈의 이야기와 함께 묘사되어 [소년이 온다]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분노와 함께 강우규 선생님 같은 분께 느껴지는 감사함과 숙연함은 말할 수가 없네요,,! 서울에서 스승의 재판을 기다리고, 사형이라는 소식에 눈물을 흘렸던 주갑이 아재의 마음이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10권에서는 서의돈과 홍이의 여성 혐오에 대한 부분이 인상 적이었습니다. 길게 논할 정도는 아니고, 짧게 느낀 점을 말하고, 이번 주 내내 토지를 생각하며 떠올린 한 분의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서의돈은 부모 자식 간의 효는 사랑이라는 인간 본연의 바탕 위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야 하는 꽃이라고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탐욕에는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효도이든 충성이든 의리든 그것을 이용하고 강요하는 것은 결국 철저한 착취라는 것입니다. 효를 강요하는 것과 그것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세뇌되어 있지만, 실제.. 그것은 진정 우러나는 마음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주변에서 효를 가장한 착취, 강요, 노골적 요구가 존재하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부모의 사랑의 크기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것은 진정으로 부모가 되어 보니 이해가 되는 말이기도 하네요. 또한 의리 없는 놈이다, 역적이다 역적이다 하는 것 역시 모두 방편을 위해 묶어 두려는 협박이다라고 하는데, 그것 역시 이해가 되었습니다. 요즘 같이 제가 정치적 유목민이 되어 보니 공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요즘 시대에도 언뜻 당연하다고 말하기 힘든 그런 말들을, 박경리 선생님이 소설을 집필할 당시의 정서에서 서의돈을 가장해했던 말이라는 것이 조금 놀랍습니다. 아무튼 저는 서의돈이 통찰력이 있는 인물이라 생각이 되었지만, 안타깝게 소설을 더 읽다 보니 서의돈은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 같네요.
저는 이전엔 사회주의가 무서워서 싫었는데, 지금은 당시 사회주의의 실체와 변절을 경험해 보지 못한 순수한 지식인이 사회주의를 추종했던 그 마음은 이해가 갑니다. 그건 책을 읽으면서 변했던 제 생각 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저는 이미 사회주의의 폐단을 너무나 잘 알게 된 시대의 사람이기 때문에 멀리할 수 있지만, 당시의 질문과 질문을 거듭하고 좀 더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선택은 쉽게 비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홍이가 왜 갑자기 최참판댁의 안방으로 뛰어들고 비수를 휘두르는 상상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임이네와 장이(홍이가 사모하는 여자), 최서희가 동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왜 나는 여자를 미워할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제가 페미니스트들에게 느꼈던 공통점 하나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 성향을 가지신 분들이 요구하는 여성의 지위라든가 제도가 조금은 역차별적이라는 생각을 이전부터 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결혼하기도 전이고, 당연히 아들을 낳기도 훨씬 전부터, 아주 어린 시절부터 느꼈던 감정입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논리이기도 하지만, 페미니스트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유독 여성을 피해자로 인식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근본에는 당사자들의 아버지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과 감정이 있다는 것이 현재까지 제가 느낀 공통점이었습니다. 부친과 모친의 삶으로 인해 남성 혐오 사상을 갖게 된 것 같고, 그것이 어느새 일반화가 되어 불쌍한 여성을 위한 사회 제도를 요구하는 듯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제가 접한 보고 들은 내용들의 결론일 뿐이기는 하지만, 모친에 대한 분노와 미움, 수치심을 가지고 있는 홍이의 마음에 제가 생각하는 그와 비슷한 로직으로 잠정적 여성 혐오라는 감정을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8권의 2/3, 그리고 9권을 완독 해서 인지 유독 토지에 빠져 사는 한 주였습니다.
8권에서 용이의 이야기가 감명 깊어서 완독 후기를 새로 썼었는데요.
제가 당시 용이의 그 말에 그렇게 감동을 받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는지, 유독 그 이후 계속 한 분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감사하는 분, 좋아하는 분, 아직도 중간중간 제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르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시지만, 그런 추억 말고 제 고등학교 시절 정말 인생에 언제라도 꼭 다시 뵙고 싶은 분을 찾으라면 (한 분은 아직 언제든 뵐 수 있기 때문에..) 두 분을 꼽을 것 같습니다.
한 분은 제 고 1 때 담임 선생님이셨고요, 제게는 잊을 수 없는 분이시고 작년 어느 시점에 제 독서 후기를 나누다가 댓글로라도 언급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분 역시.. 저희 반을 처음이자 마지막 담임으로 하시고, 저희가 졸업한 이후에 사부님을 따라 미국행을 하신 이후로 학교, 관공서, 하다 못해 sns를 하염없이 서칭해도 연락이 닿을 길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 아쉬움이 살면서 중간중간 유독 크게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또 한분은.. 당시 학교의 수위 아저씨 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얼굴은 선명히 기억하는데, 성함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중간에 잊은 것이 아니고 그때도 아마 성함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제 기억에요. 그분은 한국에 계시고, 언제든 학교에 가면 다시 뵐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졸업 후에는 학업 핑계, 이후에는 사회생활 핑계, 어느새 아이 엄마가 되어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중간중간 떠올랐지만 바로 찾아가는 실천을 하지 못했네요. 그리고 어느 시점 까지는.. 졸업한 지 꽤 되어도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제 마음이 젊었는지,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듯한 느낌이 드니, 언제든 그 자리에 계속 계실 거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정말 오랜만에.. 그분이 8권의 용이 이야기를 읽고 난 이후 계속 생각이 났는데, 이제는 더 늦기 전에 꼭 찾아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에도 연세가 어느 정도는 있으셨는데, 이제는 너무 많이 연세가 들어버리셨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이제는 제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안갯속에 까마득한 그런 느낌이 듭니다.
지난주 주중에 제 모교 행정실로 전화를 했습니다. 교무실이 아닌 행정실로 정한 이유는, 저희 은사님을 찾을 한참 전 당시에도 오히려 교무실에서는 더 제대로 된 소득을 얻지 못했습니다. 은사님을 애타게 찾는 제자의 마음에 공감이 가서라도 더 알아봐 주실 줄 알았던 전화받으신 선생님도 그렇고.. '모른다. 어떻게 아냐..'와 같은 그런 대답들을 듣고, 몇 번을 더 여쭤봐도 결국 항상 같은 결과였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은 경찰이셨던 지인께 여쭤봐도 알 수는 없는 거라 하더라고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다행히, 제가 재학할 당시의 연도 그 사이에 학교에서 근무하셨던 수위 아저씨를 찾는 다 고하니, 전화를 받으신 분이 다른 분을 바꿔 주시더라고요..! 그 받으신 분께서는 목소리로 추정해서는 50대는 되셨을 것 같은데, 자신이 당시에 저희 학교 전산실에 근무하시다가 딱 그 시점에 행정실로 옮겨서 지금까지 근무하셨던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제가 인상착의를 말씀드렸고, 언뜻 대화 중에 들었던 어느 지역에 사신다는 그 동네를 말씀드렸더니, 누군지 알 것 같긴 한데.. 본인도 헷갈리신다. 작은 체구의 마르셨던 분이 당시에 두 분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무슨 사연 때문에 찾으시는지,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고 하시는 건가요,,??"라고 물으시더라고요.
당시에 그곳에 함께 계셨다는 반가움과, 제 이야기를 들으시면 누구신지 더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한,, 개인 정보이기 때문에 연락처를 찾더라도 바로 드릴 수 없기 때문에, 제가 제안드렸던.. "그분께 제 이야기를 전해 주시고, 제 이름과 연락처를 주시고 맞으시면 전화를 부탁드린다."라고 전해 달라 했기 때문에,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당시 50대처럼? 보이셨던 그 기사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셨습니다. 저희가 주말에도 학교에 공부하러 자주 가곤 했는데, 하루는 저희를 부르시더라고요. 공부하는 학생들이 너무 이쁘고 기특하니, 맛있는 걸 주고 싶다고 하셨는데, 당시에 그 기사님 말고 다른 기사님들도 같이 저녁을 드실 건데, 오징어 숙회(?)를 함께 먹자고 하셨습니다. 정말 순수하게 저희를 불러놓고 삶아서 건져서 그걸 썰어서 초고추장이랑 저희한테 주셨습니다. 당시에 그 마음이 너무 느껴져서, 함께 간 친구들이 인사를 하고 먹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그때 놀랐던 점이, 제가 생각하기에 그렇게까지 깔끔한 줄 몰랐던 친구는 기사님들의 손이 더러울 것 같다. 그 손으로 잡아서 넣고 하신 그런 거를 먹기가 싫어서 가지 않겠다는 말에 제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를 정말 좋아해 주는 친구였고, 저도 많이 좋아했던 친구였는데 매우 의아하고 의외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여고생답게 누구보다 깔끔(?)을 떨던 저였는데도 이상하게 그 기사님들께는 거부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친구가 매우 진중하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기사님들께서 우리를 생각해서 주시는 건데 어떻게 안 먹냐. 그래도 부르셨으니 가자. 그런 거였습니다. 그 친구는 제 기억에 가정 형편도 유독 여유롭고 많이 귀하게 자란 친구였는데요, 졸업 이후에 가업을 물려받아 경영을 하면서도 항상 어른에 대한 예의범절이 깍듯하고 정말 사람 됨됨이로는 이런 사람이 없다. 싶을 만한 친구였습니다. 당시에도 역시.. 이 친구는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하는 그런 흐뭇한 마음이 들게 했던 친구였습니다. 하여 그렇게 몇몇 친구들과 기사님께서 빨리 먹으라고 부르시는 바람에 가게 되었는데, 저희가 배가 고프거나 한건 아니었는데 모두 너무 순수하고 그랬던 친구들이었어서 가서 공손히 앉아서 인사하고 먹고, 인사하고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교에 복도 끝쪽에 있는 숙직실이었는데 거기가 기사님들의 대기 장소나 방이셨습니다. 밀폐된 그런 곳은 아니었고 항시 열어놓으셔서 지나다니면서도 보던 곳인데 막상 들어가 보니 쾌쾌한(?) 냄새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그런 걸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기사님과의 추억이 자세히 기억나는 두 가지 중에 하나였습니다. 저희한테 오징어 숙회를 주신적도 있다는 말씀을 그 행정실 담당자분께는 짧게 말씀을 드렸었네요.
그리고 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너무나 따듯하고 좋으신 분인 줄 알았기 때문에 저절로 뵙기만 하면 인사를 반갑게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저를 복도에서 부르셨는데, 차표를 5만 원어치 끊은 세트를 주셨습니다.
몰랐는데, 매달 월급에서 이렇게 끊어서 착실하고 착한(?) 친구들에게 자신이 주는 장학금조로 주고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당시에 학교에서는 전혀 모르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세상 물정을 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랐던 점은, 수위 아저씨 월급이 얼마 되지 않으실 것 같은데.. 그리고 그렇게 넉넉해 보이시지도 않았은데 ㅜ, 그런 중에 이걸 매 달 하고 계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표현할 수 없었지만, 아직까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이 사회에 어떻게 환원하면 좋을까.. 생각하시다가, 그냥 돈으로 주면 그러니 이렇게 차표를 끊어서 주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전에 중간중간 복도나 어디서 인사를 드리면 매번 막차 시간에 맞춰 가는 저를 보고 버스를 타고 다니냐고 물으셨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때 너무 민망하고 황송해서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기사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모범생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더 어렵고 필요한 친구들이 분명 있을 것 같다. 하고 손사례를 막 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결국 받아주었으면 좋겠다는 그렇게 말씀하셔서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리고 그 이후 아주 오랫동안 그분이 기억이 날 때면, 반드시 제가 받았던 10배, 100배가 되어 그분께 되돌려 드리겠다, 너무나 따듯하신 그 마음이 결국 시간이 지나 이렇게 돌아온다는 훈훈함을 그분께도 꼭 드리고 싶다, 그런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매번 떠오를 때마다 같은 마음이었는데, 왜 제가 그렇게 미뤘는지 지금은 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대화 중에 또 다른 인상적이었던 점이 있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녔던 지역은 당시 비평준화 학교였습니다. 여학교와 남학교 중에 각각 한 학교가 제일 상위권에 있었고, 모든 중학교에서 반에서 몇 등 안에 드는 학생들만 원서를 써주는 그런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학교의 입학시험과 합격 발표가 나면 그 이후 다른 학교들이 차례차례 모집을 받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 여학교가 제가 다닌 학교였는데요, 그분께서
'나도 사실 아들이 있고 (제 기억에 당시 저희 아버지보다는 얼굴에 주름이 있으셨던 기억이 나는데, 아드님의 학년이 거의 저와 같은 그런 기억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느 고등학교를 다닌다. 그런데 한참 공부할 때라서 참 환경이 중요한데 그걸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아무것도 신경 안 쓰고 공부만 했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을 털어놓으셨습니다.
여기 다니는 학생들이 항상 대견하고 너무 이뻐 보인다.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 아드님께서 다니신다는 학교가 일반적으로 학업성취도가 높은 학교는 아니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의 학교를 말씀하시며 진중히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신다고 하신 말씀에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자식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느껴졌고, 비록 고등학교이지만 현재 학교가 어떠하든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먼저 떳떳이 말씀하시는 것이 감동적이었던 것이네요. 사실.. 목숨보다 소중한 자식인데, 학교의 순위가 뭐가 그렇게 중요했을까요,,! 지금 같아서는 저도 당연히 그럴 것 같은데, 왜 그때는 학교가 좋지 않으면 부끄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철없는 제가 이제와 보니 더 부끄럽네요. 아무튼 당시에 그분이 항상 매우 성실하시고 유독 착하시고 순수하신 분이셨던 기억은 나는데, 자식말씀을 하실 때 한참 학업성취도에 민감한 고등학생이었어서 그랬는지 그 마음에 특히 감동을 받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제가 학교를 다니는 중간에 눈 한쪽을 소곽장 폭발 사고로 실명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부탄가스를 구멍을 뚫지 않고 버려서 사고가 났다고 했습니다.. 그게 누구였을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소곽장은 매우 큰 편이었고.. 그걸 일일이 수위 아저씨들이 눈치채지 못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 사고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기억에 당시 다 시친 일 외에 피해가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았는데) 업무상 과실로 오히려 책임을 져야 하나.. 그동안의 성실함(?)으로 그냥 보상을 받지 않고 계속 근무하시는 조건으로 되어 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분의 평소 인격을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셨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ㅜ 저도 소문으로만 경위를 들었습니다. 한쪽 눈이 아예 없으신 그분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엄청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뭔가 죄송해서 위로의 말씀이나 티를 낼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그분의 인상착의로 한쪽 눈을 학교에서 당시 실명하셨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전화를 받으시는 분이 기억을 해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헷갈린다는 말씀을 하셨고, 알아봐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엄청 간절했는데,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는 안타깝지만, 당시에도 역시 용역을 썼기 때문에 전혀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만 하셨습니다. 그 용역 업체 이름도 모르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아쉽고.. 게다가 그분의 성함도 모르는지 저한테도 물으시더라고요,, 당시 근무하셨던 세 분의 수위 아저씨 성함을 말씀 주셨는데, 주소나 다른 연락처가 모두 학교 측에는 남아 있지 않고, 용역도 모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너무 오래전이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한주 역시 중간중간 왜 자꾸 용이와 그 기사님이 같이 떠오르는지 아쉬움이 유독 더 컸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정말 늦은 것 같은데.. 그런 아쉬움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개인적으로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부모님과 남동생이랑 저희 동네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그 수위 아저씨가 서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정말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너무 놀라서, 막 두근두근 했습니다. 아저씨!!라고 말해 버렸어요.
아니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계속 생각하면 이렇게 우연히도 만날 수 있는 건가?! 너무 놀랐습니다.
그 짧은 찰나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분께서 저희를 보시고 인사를 하시기 위해 따라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를 보시고 하시는 말씀은 "xx 어머님 맞으시지요?!" 하시는 거예요. 순간 제 눈앞이 캄캄해지고 엄청 혼란스러웠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정신이 나갔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할 정도예요.
'이게 뭐지..?! 지금 왜 나한테 xx 엄마라고 하신 거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까지도 매우 혼란스러웠었는데, "저 xx 어린이집 관리사입니다." 하시며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왜냐면 제가 아저씨!! 한 이후에 뭔가 눈동자가.. 누구신지 혼란스러워하고 헷갈려하는걸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알고 보니.. 회사 어린이집 관리 선생님이셨던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 순간에도 너무 신기해서 그분의 얼굴을, 특히 눈을 계속 쳐다봤던 것이지요.
제 기억에 그 수위 아저씨께서 다치시기 전의 눈과 그 얼굴이 너무 똑같으셨던 거예요..!
그 말씀하시면서 특유의 깜박깜박 중간에 하시는 것도 정말 똑같으셨던 겁니다.
제가 얼떨결에 어벙벙.. 인사를 이어서 바로 못하고 눈만 쳐다보고 있으니, 인사를 하러 나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제야.. "정말 실례지만.. 혹시 xx 고등학교에 계신 적이 있으셨는지" 여쭤봤습니다.
전혀 없다고 하셨고, 혹시 일가친척 분들 중에서라도 학교 수위직을 하셨던 분이 계실지 여쭤봤는데 전혀 가까운 친척 중에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제야..' 하긴.. 그분께서 지금 눈앞에 계시다면, 훨씬 더 늙으셨을 거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분명 당시의 그 얼굴이랑은 너무 흡사하지만,
'그분이 실제 지금 계신다면 나도 못 알아보셨을 것 같고, 나도 알아 뵙기 힘들 정도로 변하셨을 거야.. 그리고 이 분은 두 눈 모두 멀쩡하시잖아..!'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너무 신기한 일이었는데.. 당시 그분께서 어린이집 관리 선생님으로 계실 때도 정말 저희가 좋아했던 분이셨거든요. 참 성실하시고 마음이 너무 좋으신 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유독 저희 모자만 보이면 정말 반갑게 불러서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추가로 추수하신 감자도 더 싸주실 정도로 암튼 잘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희를 불러서, 이제 여기는 안 온다. 오늘이 마지막이다라고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너무너무 아쉬웠는데, 어디를 가시는지 여쭤봤더니 용역 소속이라 다시 저희 회사 내부(이전에 다녔던 회사)로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다른 담당자가 파견이 될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날 그렇게 아쉬웠는데,, 계속 계셔달라고 떼를 쓸 수도 없는 거였으니까요,,! 저희가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마음도 제대로 못 전하고,,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는데, 다시 시간이 지나서 잠시 오셨었습니다. 또 담당자가 바뀌었다고 오셨다는데 얼마나 반가운 마음이었는지 몰라요. 유독 참 정이 가고 좋으신 분이셨는데, 이제서야.. 정말 신기할 정도로 좋으셨던 그 옛날의 수위 아저씨와 얼굴이 똑같이 생기셨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오랜만에 뵈었던 그 관리 선생님께 제대로 안부를 여쭙거나 인사도 하지 않고, 일부러 나와주신 분께 어벙벙 멍하니 바라보다가 엉뚱한 질문만 하고 보내드린 게 참 맘에 걸리고 죄송합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도 만나는구나! 했던 그분이 아니셨다는 것도 또 한 편으론 많이 아쉽습니다.
(당연한 것이겠지만요..)
왜 그런지.. 8권에서 길상에게 월선이 모아둔 800원을 독립군에게 기부한다는 용이에 대한 제 감정이, 그 수위 아저씨를 생각하면 느껴지는 그 마음과 같아서 2주째 울렁이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마 오래도록 8권에서의 그 용이에 대한 기억이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책 내용과 상관없는 이야기가 꽤 길어졌네요,,!
필터링 없이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이 공간이 너무 감사하네요.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
한편의 단편 소설을 읽은 기분이었어요. ㅎ 아니 소설에서도 잘 느낄수 없는 감동이 밀려와서 저또한 노트북님께 빙의되어 읽었던거 같습니다. 우선 소중한 그분을 다시 뵐수 없다니 그점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분은 충분히 노트북님의 마음을 아실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 티켓을 건네신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투박한 손으로 오징어 숙회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 기꺼이 누구랄것 없이 티켓을 노트북님에게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그 마음이 어떤것인지 전 잘 알것같아요.
사람은 잠깐일지라도 상대의 눈빛을 보면 나에 대한 애정을 그리고 그 사람의 깊은 마음을 알아버릴때가 있는거 같아요. 그당시 뭔가를 특별히 하지 않으셨어도 아마도 노트북님의 표정과 몸짓과 말투에서 좋은 학생이라는 생각, 그리고 아저씨 당신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셨을수 있다 생각해요.
지금 애타게 찾는 노트북님의 마음을 이미 그분은 알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어디에 계신지 모르지만 다시 만나지 않아도 이미 두분의 마음은 충만한 사이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전 이런 얘기를 너무 좋아합니다. 사람의 진심이 통하는 세상, 따뜻함이 묻어나는 관계에 전 유독 집착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너무 애쓰며 그런 관계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아요. 이제는.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사람을 만났을때의 그 찡함을 전 너무 고대합니다.
이미 노트북님은 그런 관계를 가지셨군요. 어린이집 관리사 아저씨도 그렇고요.
이건 좋은 마음들이 만났을때만 가능한 얘기입니다. 노트북님이 그분들 못지 않게 무척 따뜻한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홍이의 마음에서 읽으셨다는 페미니스트에게서 느끼는 생각이 저와 같아서 놀랐습니다. 저 역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더랬습니다. 토지에서 읽히는 그리고 여전히 나이드신 분들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여성들이 받았던 부당함이 지금의 페미니스트를 낳았다는 생각입니다.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 이런 성 싸움이 잦은가를 생각해보면 오래전부터 받아왔던 여성으로서의 핍박이 가까이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머리속에서 읽히고 있고 그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분노가 그리 표출되는것이 아닌가 하구요.
우리 사회가 시간이 가면 이런 성차별도 적어지고 누구나 납득할수 있는 수준으로 자리를 잡아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노트북님 후기가 너무 감동적입니다.
여고시절 기사아저씨와 아이 어린이집 관리선생님
이 오버랩되는 한편의 영화같은 이야기네요.
이것이 노트북님 실제 이야기라는것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천사 같은 마음을 갖고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면서도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조용히
실천하고 계시는 분이 계셔서 얼마나 세상이
따뜻하고 살만한 곳인지 깨닫게 해 주는 수위아저씨가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잊지않고
찾으시는 노트북님도 그런 마음의 소유자인듯 합니다.
용이가 이런 분들의 모습과 비슷한가 봅니다.
저도 이런 분들을 존경합니다.
토지에 나오는 인물들이 실제 이 세상 사람들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역사적 실존 인물들도 있고,
또 소설속에 다양한 인간군상을 그렸지만,
주위에서 찾아보면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찾기가 어렵지 않으니까요.
작가가 살던 시절과 지금이 환경이 바뀐것도
많지만, 인간의 본질은 똑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트북님이 자신을 정치적 유목민이라 하셨는데,
저는 '중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쪽에 치우침 없는 공정한 잣대로 모든 진영을
바라보는 계층이지 않을까요?
저 또한 제가 중도라는 생각이구요.
정치적 성향이 중도인 분들이 많이 계셔서
우리네 정치가 양극으로 분리되지 않고
화합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길 바래봅니다.
저도 자란 정치적 환경이 보수적인 성향이라서
어려서 부터 사회주의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근현대역사에 이런 이데올로기적
대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왔던것도 사실이고, 이것은 현재도 양극으로 치닫는 정치적 선동도구가 되고 있네요.
사회주의가 이론은 좋지만,
실제 사회에 구현되는 과정에서 부조리가 있다는것이 이미 검증되었고 이제는 그 이론에
대한 환상을 쫒지는 않는 세상이 된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 반대개념인 민주주의가 다
좋은것은 아니겠지만,
그나마 여러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데는
이것이 최선이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법과 질서가 바로 서는 민주주의 기틀아래
소시민들의 따뜻한 배려를 느끼며 성실히
하루하루 살아가고,
서로 보듬어 주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요즘입니다.
토지 소설을 통해 이런 생각을 하고
서로의 생각을 또 공유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노트북님의 후기속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글 써주시고,
감동을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소설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또 하게될까
많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