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읽은 책을 나눠볼까 하다가, '독서'에 대한 제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자란 곳은 학교로 가는 길에 논두렁을 가로 지르는 지름길이 있을 정도로 시골인 동네였고, 특히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는 집안 환경이었습니다. 그나마 중학교 부터는 첫째여서 신경을 써 주신다고 학생수가 많았던 큰 학교로 옮겨주셨지만, 고등학교 졸업 할 때까지 사교육의 세계는 거의 모르고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 10개월을 빼면, 학창시절 다녔던 학원의 달 수를 다 합쳐도 채 몇 개월이 되지 않습니다.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된 계기도, 초등학교 4학년 당시 피아노를 아주 잘 치시는 젊은 여 선생님께서, 제가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는데, 반 친구들과 오르간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저희집에 전화를 하셔서 꼭 피아노를 가르쳐야 된다고 엄마를 설득해 주신 덕분이었습니다.
아이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피아노 학원을 선생님께서 직접 설득을 하실 때까지 한 달도 끊어주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이었고, 동생들도 많았기 때문에 학업에 관한 학원도 초등학교 때 딱 한 달, 중2, 중3 때 학원 두 달, 그마저도 고등학교 때 부터는 다닌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어린 시절에 제게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주었던 취미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독서 였습니다. 다른 친척들께 받은 전집이나 책들이 큰집과 저희 집에 쌓여 있었는데, 혼자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 책들에 흥미를 느껴서 계속 읽었습니다. 너무 재미가 있었지요. 기껏해야 한국과 세계의 위인전들과 역사 이야기, 전래 동화집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에 재미를 붙이면서 매년 '학급 도서'라는 책장에 쌓인 책을 다 읽었는데, 읽을 책이 없어서 몇 번씩 읽은 책들도 많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수업 중간 중간 주시는 문제 풀이 시간에는 최대한 빨리 풀면, 책을 더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더 집중해서 문제를 빨리 풀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책상 서랍에는 책을 보던채로 그대로 펴서 넣고, 빼고 할 공간이 항상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다시 그대로 빼서 읽다가, 종이 치고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수업을 정식으로 시작 하실 때까지 읽고 다시 서랍에 밀어 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거든요.(당시 부터 제가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진 못했을 텐데, 확실히 기억나는건.. 미리 책을 덮고 기다리는 그 시간은 아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과 비슷한걸 그때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도 독후감은 숙제로 나올 때만 의무감에 쓰는 분위기 였는데, 저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혼자서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 기억에 초등 3~4학년인데 ,독후감을 15~20장 정도씩 썼던 것 같아요. 의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환경의 저에게 하늘이 주신 선물이 있다면, 저의 그 독후감에 매일 매일 써져 있는 아버지의 편지같은 댓글이었습니다. 그런걸 바라고 쓴건 아니었는데, 아버지의 그 파란 만연필 글씨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제게 읽고 쓰는 즐거움을 선사해 준 첫 번째 선생님이시자, 자상한 아버지셨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꼭 운명 같이 느껴지네요. 그 때 부터 책에 대해 나누는 대화, 나의 글에 누군가 공감하고 회신을 보내주는 데에 대한 기쁨을 알 게 된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은 학급 도서 책들을 읽었어도 제 인생의 첫 책 다운 책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때 부터였습니다. 저의 독후감을 보시고 아버지 직장 동료 분께서 제게 편지와 함께 이 책을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이후에 논리시리즈 등 좋은 책을 몇 번 더 보내주셨습니다. 이토록 우연히 저의 글에 누군가가 회답해준다는 사실이 그 때도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저는 그 책의 주인공 제제에게 연민을 느끼고, 동생들을 사랑하는 제 마음을 투영시키면서 읽으니, 순간 순간 그 학대 속에서 동생을 보호하려는 어린 꼬마 제제를 보며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습니다. 동생을 위해서 무엇이든 참을 수 있다는 그 마음과, 동생을 가엽게 여기고 사랑하는 글로리아 누나, 그런 험난한 생활 속에서 뽀르뚜가 아저씨에게 제제가 느꼈을 그 감정은 또 제가 아버지께 느끼는 감정같이 느껴졌습니다. 너무나 감동 스러운 한편의 소설이었지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갓난 아이부터 어린 동생들을 키우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고달픈 삶이셨을까요..! 그나마 살림도 넉넉한 편도 아니어서 매 순간 무엇을 하시든 돈 걱정을 하셔야 했고, 집안에 편의를 위한 가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모든 집안 일을 몸으로 하시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엄마도 틈틈이 신문이나 엄마만의 책을 읽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엄마께 제 책도 너무 감동이라며 꼭 읽어보시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 엄마가 잘 보실 수 있는 곳에 놓을 테니 꼭 보시라고도 했고, 또 읽으셨는지 여러번 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엄마는 알겠다고 하셨지만 그 책을 보실 여유는 없으셨을 거에요! 그때의 그 기억이 아직도 제게 생생한걸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 채우지 못한 욕구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시절 엄마는 최선을 다 하셨고, 그런 사소한 감정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셨을 것 같아요..!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정리가 되지만, 저는 제가 느낀 것을 글로 옮기는 것도 좋아하고, 그걸 나누기도 무척이나 좋아했던 사람 같아요. 단지 너무 어려서 저의 성향을 저 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사소한 감정들의 조합이 한 인간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되는 걸까요..!
나이 들어서 비로소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찌 보면 아주 어린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제 모습을 이제야 찾은 느낌 입니다.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자라서 더 큰 세상에 나와서 어느 시기에는 책을 좀 더 읽고, 어느 시기에는 또 거의 못 읽고 하면서 오랜 시간을 지냈습니다.
제가 대학 시절에 아버지께서 저희 오남매에게 보내주신 편지에서 부모가 열심히 살았던 기억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씀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대목에서 가슴 깊이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제가 물려 받은 소중한 자산이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입니다. 저희집은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점점 나아졌습니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의 배경 자체가 많이 열악하였고, 그것은 부모님의 노력으로 자식들에게 대물림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과도기에 저희의 성장 과정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오남매를 키우시며, 할머니도 돌아가실때 까지 집에서 모셨고, 목욕이나 대소변도 직접 다 받아 내시며 집에 붙어 있는 가게까지 운영을 하셨기에, 항상 제 기억속의 엄마 얼굴은 콧망울, 이마에 구슬땀이 맺히고 몹시 숨이 차고 상기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잠시 틈이 나시면 항상 서성이시는 채로 책을 읽으셨고, 어떤 구절인지 몰라도 엄마가 너무 감동을 받으시는 구절은 그 감동이 저까지 느껴질 정도로 기쁨의 미소가 보였습니다. 아버지와 엄마는 비슷하신 시기에 시리즈의 소설 책들을 많이 읽으셨는데, 하루가 정리되는 밤에 서로 자신의 감동을 전해주고 싶어 하시며 낮에 접어 놓은 책 페이지를 건네시는 모습이 그렇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엄마는 2016년 부터 22년도 까지 꾸준히 중국어 공부도 독학으로 하시고, 저의 하소연에 정말 감탄할 말씀을 중국어로 적어 주시거나, 여행에서 직접 통역을 하시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없던 시절에 열심히 일하시면서도 배움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셨던 엄마의 모습과, 어린 자식의 읽고 쓰는 기쁨을 함께 하신 아버지의 추억이 제가 물려 받은 것 중 가장 값진 정신적 자산입니다.
어린 시절 부터 가까이 지낸 친구들이 가끔씩 자신도 저처럼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초등 시절부터 함께 하는 친구들이 뭔가 다르다는 말을 할 때가 가끔씩 있었는데, 저는 무엇을 그렇게 느끼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말씀 드린 것처럼 저희집이 넉넉한 집도 아니었고, 제가 그리 어떤 면에서 특출난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혹시 그것은, '기죽지 않고 꿈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항상 꿈꿀 수 있었고, 그래서 성장 할 수 있었습니다. 따로 그렇게 유도된 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독서를 하시는 많은 분들이 느끼시는 부분일 것입니다. 독서는 제게 신앙와 같은 믿음을 주었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인생을 얼마나 더 즐겁게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넘어서 저를 한 층 더 성장 시켜 준 것은 오히려 저 자신에 대해 다시 알게 됨으로써 저의 자기 확신의 오만과 편견을 객관되게 바라볼 수 있는 것, 거기서 오는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이 한층 더 풍요로운 인생을 살게 해 주었습니다.
다만, 요즘 처럼 제 집 드나들 듯이 다니는 교보문고에서 수 많은 책들을 보며,
학급 도서를 몇 번씩 반복해서 읽던 그 어린 시절에 저의 집이 이 서점 근처에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제 아들과 교보문고 바로 옆에서 사는 것이 맹모 삼천 지교의 첫 번째라고 생각합니다.)
행운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빨리 아는데 있고, "당신은 볼 수 없는 것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제가 이 말을 처음 접한 것은 책 [아비투스]에서 였지만, 실은 이 말은 빈곤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다룬 한 신간의 제목 입니다.
저는 조금 더 뒤늦게 알았지만, 이제라도 책으로라도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성장 과정에서 엄마와 나누고 싶었던 그 감정,
그리고 아버지와 나누었던 그 기쁨,
세상에 나와 보니, 부모님의 독서 목록에서 무엇이 아쉬웠고, 무엇이 있어야 했는지..!
제가 느꼈던 모든 것을 제 아들과 더 많이 나누고 공유해 주고 싶네요..!
한 사람의 40여년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것이었지만, 누구도 뺏어 갈 수 없었던 것. '독서'에 대해 나눠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
한 권의 책을 본 것 같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