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노트북 입니다.
이번주는 9권을 완독 하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권, 5권, 8권째가 특히 재미가 있었고, 마침내 8권을 읽은 후에는 이 책이 제 기준 '필독서'라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9권을 읽은 후에는 나관중 작가는 천재라는 생각과 함께, (작가의 진짜 의도는 알 길이 없지만,,!) 이 소설의 구도가 눈에 보이는 듯해, 작가의 의도를 주관적으로나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리가 읽는 이 삼국지연의는 정사와 다른 부분이 많고 작가의 의도가 들어갔기 때문에 진짜 역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실 역사를 통해 배울 점을 이 소설에서 똑같이 기대하는 것은 위험하다."(실제 어느 교수님의 말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 소설을 쓸 사람이라면 이미 인간의 내면 심리를 깊이 통찰할 정도로 천재적인 면이 있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실제로 작가가 쓴 허구인 다른 소설들을 읽으면서도 꽤나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낍니다. 하물며 삼국지가 정사와 다르다고 해서 배울 게 없을까 싶습니다.
(제가 소설을 읽는 이유도, 소설만큼 자연스럽게 사람을 이해시켜 주는 장르가 없는 것 같아서입니다. 그래서 소설에 크게 감동받게 되면 어김없이 그다음은, 심리학과 철학을 갈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
1. 자기 자신을 과대 평가한다.
2. 반간지계가 상당히 잘 통한다.
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물며 이런 조언을 이 방대한 역사와 소설을 엮어 전해주고, 반복하여 강조하기로는 더없이 잘 쓰인 책 같습니다.
저는 독자로서 제가 느낀 위와 같은 이야기들을 작가가 전해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그런데 9권을 읽으며 문득 그 교훈을 전하는 역사소설을 넘어, 이 책의 구도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뼈대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권에 이르러서 비로소
조조와 제갈공명이 어찌 보면 같은 능력을 가진 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조조가 등에 업은 헌제와 제갈공명이 등에 업은 선주와 후주가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지략이 있고, 능력이 같은 두 위인 조조와 제갈공명은 같은 상황에 있지만 다른 선택을 합니다.
조조는 스스로 헌제의 권력을 빼앗지만, 공명은 끝까지 유 씨를 일으켜 대한을 복귀시키려고 합니다.
조조는 사람을 이용하지만, 공명은 적임에도 불구하고 적을 몰살시키고 괴로워하며 유족과 영혼을 달래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 하나 다른 점은 똑같이 꾀 많고 대비하는 능력도 뛰어난 위인이나,
조조는 자만하면 반드시 패하고 당하여 뉘우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의아했던 점, (저의 판단이지만) 이 소설은 겸손을 가르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왜 유독 공명만은 자만하고 상대를 낮게 보고 조소하여도 당하지 아니하고, 뜻한 대로/ 내다본 대로 모두 이러우 질까?! 였습니다. (물론 사마의에 패해 한중으로 물러나는 일도 있었지만, 이마저도 정사에는 없는 이야기로 제갈량의 위신을 한껏 세워줍니다. 거기에 더하여 정사에는 없는 이야기로 제갈량을 신격화하는 이야기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9권에서야 조금은 그 의아함이 풀리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 나관중은 애초부터 소설의 주인공으로 '공명'을 생각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유비'가 아닌, 실제 나관중이 생각한 주인공은 '공명'이며 그것으로 전하려는 뜻이 두 가지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나는, 조조와 같이 나라의 모든 일을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해내는 능력을 가진 공명일지라도 한의 복위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본보기로 충의를 강조하는 것. (유 씨를 일으켜 한을 세워야 한다는 촉한 정통론도 함께 내세우는 의미)
두 번째는, 헌제, 선주, 후주의 무능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며, (조조가 아닌)공명과 같은 능력과 인격을 가진 영웅이라면, 새로운 왕조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심어주려는 의미.
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그간 생각하던 나관중의 의도와는 다른 이야기겠지만, 유비의 유명을 빌어 독자들에게 심어주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라면, 유비 또한 선견지명이 대단한 인물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조조의 아들 조비에게 헌제가 천자의 자리를 빼앗겨 생사도 기록되기 힘들 정도로 초라하게 쫓겨나는 것을 보고, 그와 비등한 능력을 지닌 공명이 눈에 차지 않는 자신의 아들 (후주 유선)과 후에 있을 갈등을 최소한으로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만약 자신의 아들이 무능하다면, 마땅히 제위에 오르라는 엄청난 말을 남기며, 후에 혹시라도 유선을 밀어낼 때 무력이나 죽음이 아닌, 아비와 같이 모시는 승상이 선주의 유언을 받들어 능력이라는 순리에 맞게 제위에 오르는 것임을 먼저 말로 남기어 후한을 없애려고 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작가의 의도이거나 유비의 통찰이거나 어느 쪽이든, 독자들에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 라는 복선을 깔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9권을 읽으며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 약간 억지스럽게 느껴진 부분이 마속의 죽음이었습니다.
간교하기로 유명한 조조 조차도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라고 말하며 매양 전장에서의 패배를 죄로 묻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이 소설에서 관우와 장비와 당연히 조금은 있었을 알력 다툼도 크게 드러내지 않고, '아마 있었을 것이다..!'라고 독자의 추측에 머무르게 하고, 적의 죽음에도 슬퍼하며 맹획을 마음으로 굽히려는 제갈량임에도 불구하고, 마속은 어찌 그리 쉽게 죽이나였습니다.
"맹획이 아우 맹우를 보내 금은보화를 올려 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공명이 마속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대는 맹우가 왜 왔는지 알겠는가?"
마속이 잠깐 생각하다 조용조용 말했다.
"감히 큰소리로 떠들 수가 없겠습니다. 제가 남몰래 종이에 써서 승상께 올릴 것이니 승상께서 헤아리신 바와 같은지 살펴주십시오"
공명이 그렇게 하기를 허락하자 마속은 종이에다 무언가를 써서 공명에게 바쳤다. 그걸 본 공명이 손바닥을 쓸며 크게 웃고 말했다.
"맹획을 사로잡을 계책을 내가 이미 세워두었다. 그대의 보는 바가 실로 나와 꼭 같구나!"
저는 이 대목에서 그 옛날 주유와 제갈공명이 한 자리에서 조조를 물리칠 병법으로 손바닥에 동시에 "火"를 써보인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주유는 공명을 질투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짐작처럼 진정 이 소설에서 높이고자 한 자가 유비가 아니고 '공명' 한 사람이라면, (그래서인지) 작가는 '공명'이 누군가를 능력으로 질투하는 것을 글로 표현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혹시나.. 공명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 옛날 주유처럼 마속이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에 꼭 기쁨의 놀람만 있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에 맹획은 7번 살려준 공명이, 마속은 군령을 강조하며 목을 벱니다.
어쩌면 공명이라면, 사마의는 그 판에서는 마속이 아닌 누구도 이기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속의 죽음이 왠지 안타까워 더 그런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항상 그 사실, 작가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9권까지의 이야기들을 조합해서 생각해 보는 묘미가 쏠쏠했습니다.
혼자서 상상하고 미루어 짐작한 일들이 사실(?)이라면, 정말 나관중은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드러내지 않고, 아주 교묘히..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거의 그 구도와 의도가 드러날 정도로 치밀하면서도 방대하게 서술한 것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9권에서 이 구도를 생각하고 머리에 바로 떠올랐던 소설이,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이었습니다.
결국, 주인공 안진진의 연애 상대인 두 남자는 엄마의 인생을 만든 아버지와, 이모의 인생을 만든 이모부를 대비해 만든 인물이었습니다. 모르고 읽었지만, 그 인물 구도가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결국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작가의 메시지도 더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 깨달음의 순간 무릎을 치는 듯한 느낌이, 이번 삼국지 9번에서 똑같이 느껴진 순간이었습니다.
더하여,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마지막에 간단히.. 맹획의 이야기만 조금 더 나누겠습니다.
이번주는 아들과 함께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인디언의 그 고귀한 영혼에 존경심을 느끼며 울렁거리는 감정으로 내내 감상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또한 그런 잔인한 식민통치를 받은 역사가 있기에 전시회 말미에 잠시 보여준 그 비극의 역사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항상 아메리칸 인디언을 떠올리면 저는 '고귀한 영혼', '자연을 사랑하는 지혜로웠던 민족'에 이어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저는 일제강점기 소설들을 읽으며 어린 시절부터 애국심과 국가와 민족을 위한 저의 역할 같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아주 아주 뜨거운 애국심을 심어준 글들이 모두 일제 강점기 소설이었습니다. 역시 전쟁이나 식민통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아들에게 우리는 몸과 마음, 머리 모두가 강해져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다시는 그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하기 때문에 강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더하여 한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강해져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서로 도와서 더 잘살게 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민족주의에 치닫는 것까지는 원치 않으나, 반드시 국가를 위한 소명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한 사람이 커가면서 얼마나 자신의 역할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뜨거운 가슴을 가지게 하는지 알기 때문에 이야기해 줍니다.
그런 감정들 때문인지, 목숨을 던져 나라를 지키는 애국지사의 마음으로 맹획을 보니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고 끝까지 굽히지 않는 그 마음이 이해가 갔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상대의 입장에서 공감하게 되면 자연히 이해되고 강요하지 못할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무조건 받아들일 순 없지만, 나이가 들 수록 그 '공감'의 힘과 중요성을 많이 느낍니다. 누구라도, 무슨 일이라도 강요하거나 함부로 행할 수 없게 되는 것이 '공감'의 힘 같습니다.
항상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글이 너무 길어져 선택적으로 하게 되네요,,!
저는 9권에 들어서 더더욱 이 책의 매력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같이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은 읽지 못했겠구나,,! 하면서 읽었습니다.
함께 해주시는 회원님들 감사드립니다.~~ (비록 점점 올리시는 회원님들이 적어지셨지만, 적어도 '약속'이 있기 때문에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한 주 더 남았네요.!
모두 모두 힘내시고, 후기는 남기지 못하셔도 꼭 끝까지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노투북 드림.
노트북님 후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삼국지에서 공명이 주인공이 아닌가? 라는
생각은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가 자신의 이상적인 인물을 설정하고
그를 통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가치관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지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유비의 유언이 혹시라도 있을 무력이나
죽음이 아닌 순리로 공명이 제위를 오를수 있게 해준거라는 아비의 마음이 있었겠다는 말씀을 듣고
저도 그제서야 그 생각이 듭니다.
같은 글을 통해 이토록 깊은 깨달음을 알게
해주신 노트북님 감사합니다.
아들과 인디언 전시를 다녀오셨군요.
인디언을 통해 느끼는 바도 크셨을듯 합니다.
노트북님의 아들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저도 많이 기대됩니다.
훌륭한 부모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것 같습니다.
저 또한 노트북님께 요즘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