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밀의 글이 좋았던 이유는,! 강력하게 나를 일깨워 주면서, 또 강력하게 공감되는 사상이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밀은 180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어릴 대부터 그에게 극도로 엄격한 조기 영재 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밀은 3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워서 8살에 헤로도토스와 플라톤의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고, 8살부터는 라틴어를 배워서 오비디우스 같은 라틴어 고전들도 읽었다고 한다. 12살부터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다. 13살 때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즈 리카도의 저작을 통해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4살 때는 프랑스에서 1년을 지내면서, 몬펠리에 대학에서 화학, 논리학, 고등수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고, 그 이후부터는 아버지를 따라 동인도회사에 입사해 조수로 일하기도 하고, 이후 35년을 더 재직하며 연구와 저술활동을 병행했다.
특히 부러웠던 것은, 밀은 자신의 아버지인 제임스 밀과 교분이 있었던 제러미 벤담이나 오귀스트 콩드 등과 같이 근대를 선도한 인물들을 어린 시절부터 접하고, 또 그들과 서로 산책하며 학문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멋진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밀의 삶은 내게 너무나 부러운 삶이자, (부 보다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적 향유를 즐기고 당시의 석학들과 직접 생각을 나누고 토론할 수 있었던 것.) 또 어린 시절 부모의 강압에 의한 교육을 받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접한 작은 일반화에서 보면) 이후 자아 성찰에 대한 트라우마로 극심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갖는다는 것을 밀의 삶에서 또한 볼 수 있었던 것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또 하나, 24살에 만난 유부녀 해리엇 테일러와 오랫동안 지적인 교류를 하며 친밀하게 지내다가 그녀가 남편과 사별을 하자, 교제한 지 21년 만에 그녀와 결혼하고 평생 그녀와 함께 연구하고 토록하고 글을 쓰다, 그녀가 죽자 함께 썼던 [자유론]을 더 이상 수정하지 못하고 출판하게 된다.
책의 맨 앞의 헌정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그녀의 무덤 속에 매장되어 버린 저 위대한 사상들과 고매한 감성들을 그 절반만이라도 이 세상에 해석해서 전달할 수 있다면, 나는 이 세상에 훨씬 더 큰 유익을 전해주는 자가 될 수 있으련만."
밀은 진정한 지식인으로서의 사랑을 한 것으로 보이고, 그녀가 갑자기 여행 중 사망함으로써 [자유론]을 더 이상 수정하지 못했다는 것은 시대의 아쉬움, 세상의 아쉬움으로 남는 느낌이었다.
헌정사를 읽는 동안 목이 메일 정도로 멋진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성 간의 사랑 중 가장 절정의 모습이, 서로의 지성에 빠져들고 오래도록 함께 토론하고 대화하며 그 지적 향유를 즐기며 영혼까지 빠져 드는 사랑이다. 그런 사랑을 한 밀이 너무나도 부럽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밀은 아내가 죽은 이후 15년을 더 살았지만, 마지막에 아내 옆에 묻힌다.
한 사람을 사랑했다고 해서 꼭 끝까지 사랑할 필요는 없지만, 틀에 박힌 관습에 의해서가 아닌, 영혼이 시키는 대로 끝까지 함께한 밀이 축복을 받은 듯하면서도 그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 그가 더 좋아졌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유와 통찰을 반복한 밀답게 그의 사상은 엄청나게 매력적이고, 명쾌하다.
내가 책을 읽을 때, 그 책과 저자가 좋아지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책이 도끼처럼 제 머리를 깨어주고, 강력한 생각의 전환을 안겨줄 때이다.
또 하나는 격하게 공감되는 말! 곧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저자 또한 강력하게 역설하는 경우 이다.
이런 천재 사상가 밀이 이 두 가지 기쁨을 내게 동시에 주어서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 역시, 최근에 읽었던 에리히 프롬, 막스 베버, 삐에르 부르디외의 책들처럼, 말하고자 하는 바가 매우 명확하고, 그것에 대해 무한히 반복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앞의 저자들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밀의 책도 전혀 그 과정이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해서 나의 생각과 논리 체계를 함께 정비하는 느낌이다. 그냥 같은 뜻을 반복해도 그 자체가 값지고, 그러므로 인해서 이 책 역시 어느 챕터나 하나만 제대로 읽어도 책 전체를 읽은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앞의 저자의 책들도 그러했다. ^^)
책과 저자에 대한 설명이 너무 길었다.
책 내용으로 돌아가서, 밀이 이 책에서 말하는 '자유'는 시민적 자유 또는 사회적 자유, 즉 사회가 개인에 대해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본질과 그 한계에 대한 것.이다. 자유를 철학적인 근거가 아닌 "효용" 또는 "공리"라는 근거 위에서 접근한다. 이미 밀이 이 책을 쓰는 당시 유럽은 진정한 개인의 자유를 위한 시행착오와 아픔을 많이 겪은 상태이지만, 이 책에서 강력하게 역설하는 그 오류를 근 120년 이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범한다. (5.18)
[자유론]에서는 인간 정신은 토론과 경험을 통해서 잘못을 시정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경우에는 개인의 행동은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 '다수의 전횡'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사상의 자유", "선택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강조했다. 나의 성향은 기본적으로 '자유'를 좋아하고, '강요'를 싫어한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강요하는 것도 왜 그럴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고, 그래서 더더욱 나 자신은 상대에게 누구라도,무엇이라도 강요할 순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누구보다 개인의 자유, 자발적 의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밀의 그러한 사상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밀이 말하는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 근거로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효용"이다.
밀이 평생의 가치로 삼았던 공리주의가 이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인간이 자유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곧 최대의 효용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가 주어졌을 때에 자신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모든 재능을 완전히 꽃 피워서 인간으로서의 성장과 발전을 최대한으로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라는 것도 결국에는 개개인의 집합이기 때문에, 개인의 최대의 성장을 이루어내는 환경을 조성해줄 때에만 가장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에리히 프롬이 말한 그 '개인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길'과 일치한다.
두 번째가 "인간의 불완전성을 보완하는 것으로서의 자유'이다.
아무리 옳은 것이라 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틀린 것이 있고, 아무리 틀린 것이라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옳은 것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개개인에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사상의 자유"와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토론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자유들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절대로 틀릴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고, 그것은 독단이자 독선이며 독재인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의견이 아무리 틀리고 사회의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의견을 표현하고 토론하는 자유를 막는 것보다는 허용하는 것이 사회에 더 큰 이득이 되는 것이다.
세 번째가 인간 자신과 인류 발전을 이끌 원동력으로서의 개개인의 "개성"이다.
사회나 국가는 일반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목표로 설정해서 시민들과 국민이 일치단결해 그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에는 그 목표가 아무리 좋고 참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속에는 여전히 독선의 요소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 부작용과 역작용으로 인해 결국에는 그런 개인과 사회와 나라의 발전은 가로막히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개성"은 겉보기에는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개성이 극대화될 때에만 개인과 사회는 그런 부작용을 제거하고 역동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밀은 말한다.
이런 통찰과 열린 사고가 너무나 멋지다.!
이 책을 읽으며, 곳곳에서 우리의 5.18이 정말 많이 떠올랐다.
(책장에 있던 이 책을 빼든 이유 역시,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의 5.18이기도 하지만.)
나는 아주 직전까지, 5.18 국가 유공자 제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설령 그것이 현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독재를 질타한다고 해서, 그 반대 세력이 선하거나 우월한 정책을 펼칠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 사건은, 우리에겐 누구나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있고, 그것을 억압하는 과정에 시민이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년이 온다.]를 읽을 당시만 해도 피해자들의 사례가 하도 가슴이 아파서, 꼭 그렇게 까지 서로가 극으로 갔어야 하는지?! 를 생각했다면, 곧이어 오는 그 아이러니. 그러하다면, 거기서 굴복했다면 그 이후에 우리는 과연 민주주의를 얼마나 빨리 맞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얼마나 더 힘들게 맞이하게 되었을까?! 를 생각하면 답을 알 수 없다.)
획일화가 사회발전에 있어서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현재의 공산국가들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꼭 사회주의가 아니어도, 금서를 만들어 사상적 자유를 갈망하는 지식인들을 정신적으로 억압하여 독재를 위한 획일화를 강재하고, 또 그 과정에서 국가가 국민에게 무력까지 사용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이전에 큰 관심이 없었던 시민단체 활동과 소수 정당의 존재의 의미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흔히들 보수 쪽에서 견제하는 그 시민단체 활동은 권력의 견제를 위해 유럽에서 도입된 필수 제도였던 것이다.
그리고, 다수의 횡포를 견제하고 소수의 다양한 생각과 형편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소수 정당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수 정당이 요구하는 그 획일화로 더 쉽게 가게 될 것이다.
정치 이야기를 이렇게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소년이 온다 후기 이후 며칠 더 생각하다 겨우 결론이 났는 시점에, 문득 이 책을 읽고 한번 정리해 보고 싶었다.
5.18에서 시민 단체의 민주화 행진(노래와 집회)이 있었고, 이후 무력 탄압이 1차례 있었고, 그것으로 시민군의 결성, 이후 무장 군 도시 투입과 같은 일이 벌어질 때, 당시의 군부와 정부가 어떠한 행위를 했던 것인지에 대해 [자유론]을 통해서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꼭 5.18 이 아니어도, 왜 개개인이 고귀하고 사상, 표현, 토론의 자유가 필요한지에 대해 설명하는데, 세상에 배어있는 독선과 독단과 독재를 조금이라도 깨닫고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라도 되도록 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우리 사회의 수준은 곧 우리 개인의 지적 역량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 이 글은 Wisdom flow. 독서 후기 모임을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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