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노트북 입니다.
어제는 또 욕심내서 새벽까지 이 책을 읽고, 오늘 완독 후기를 써봅니다.
아침에 여운이 가시기 전에 쓰고 싶었는데, 어제 새벽에 이 책을 완독하고 아이가 고열인걸 알았어요..
아침부터 계속 함께 있느라, 이제 아이가 기절한 시간을 틈타서 쓰게 되었습니다.
우선, 제가 1권까지만 읽고 고한수를 보며, 저희 외할아버지가 떠올랐다는 이야기는 취소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한수가 야쿠자 인건 몰랐었네요..! )
스포를 하지 않는 후기를 써보고 싶은데 될지 모르겠습니다. ㅜ
1권에서 제 마음을 가장 아쉽게 한 사건이 이삭에 관한 것이었다면, 2권에서는 노아의 일입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감정을 느꼈어요. 진심으로 그 순간 공허한 감정, 상실감이 느껴지면서..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중대하고 안타까운 일을 전 후의 고조 없이 그냥 지나가는 일상의 한 줄로 표현하는지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1권에서 제가 가장 좋아한 인물은 선자의 아버지 훈이와 이삭이었습니다. 그리고 2권에서는 그런 이삭을 가장 많이 닮고, 제 2의 이삭이라고 생각이 된 노아였고요. 특히 노아의 일은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더 슬프고 허무하네요. 노아가 가족과 인연을 모두 끊고 일본인으로 사는 11년간, 매달 이삭을 찾아갔었다는 것이 마지막까지 가슴 아픈 여운을 남깁니다. 노아가 끝까지 자신이 이삭의 아들이라 믿고 살아갈 수 있게 한, 그 희망을 줬던 이삭을 뵈러 가며 느꼈을 다양한 감정이.. 그냥 생각만 해도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1권에서 마지막에 이삭과 노아가 함께 있는 장면들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때 보다도 훨씬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오네요.
이삭은 진심으로 노아를 자신의 아들로 생각했습니다.
"너를 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야."
이삭이 노아에게 해준 말입니다. 약한 몸으로 거의 바깥 생활을 하지 못했던 노아는 어떻게 아이가 힘들지, 그런 마음들을 헤아릴 수 있었을 까요.. 지금 다시 읽으니, 2년 동안 자신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일본 감옥에 갇혔다가 돌아온 이삭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ㅜ
마지막에 이삭이 "내 아가. 사랑하는 내 아들. 내 축복."이라고 하는데 다시 눈물이 났습니다.
저희 엄마가 제가 몸이 많이 아플 때마다 제 손을 꼭 잡고 꼭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아가! 내 아가!"라고 부르셨습니다. 항상 아픈 저를 쳐다보며, 이제는 성인인 저를, 이제는 아이도 있는 저를 "아가! 내 아가!"라고 부르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노아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 많이 느껴집니다. 노아가 그런 아버지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노아는 학교생활이 힘들게 느껴질 때면 아버지가 배운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곤 했다.
노아가 그렇게 클 수 있었던 것은 이삭의 영향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삭에 대한 자부심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만약 노아가 자신에 대한 비밀을 알지 못했다면, 돈 때문에 와세다 대학의 학업을 중단하고 똑같이 나가노에 가게 되었어도 절대 파친코에서 일하는 걸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더 고귀한 운명을 위해서 나아갔을 것 같아요.
선자는 노아에게 더 나은 삶을 주려고 고생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자신이 물을 마시듯 들이마시던 수치를 참아야 한다고 아들에게 가르쳤어야 했을까.?
노아의 그 일은 그런 잔인한 이상을 믿게 내버려 둔 선자의 잘못일지도 몰랐다."
노아는 자신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 더러운(?) 것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부모 밑에서 살았고, 이제 그 부모가 보호할 수 없는 세상에 놓인 노아는 결국 현실에 대한 증오를 이기지 못하고 이전 같으면 생각도 못할 업에 자신을 맡겼고, 모든 배경을 단절시켰으며, 결국 자신을 포기했습니다.
하나는 자신을 보호해야 할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자신은 더럽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 자신의 인생을 처음부터 하찮게 여기고 망가트렸습니다. 저는 노아의 사건 이후 하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에게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어쩌면, 하나는 그럴 용기가 있을 만큼 내면이 강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아에게는 분노의 소용돌이를 일으킬 만한 내면의 신념이 너무 커져있었고, 그에 반해 하나에게는 그런 신념이 자랄 시간조차 없이 너무 빨리 지신을 포기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부모님의) 사랑은, 언젠가는 그녀도 삶의 험난함과 세상의 추악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것들에 맞서야만 하리라는 필연적인 현실을 외면한 채, 긴 세월 동안 그것들을 그녀에게 감추려 들었다.
이전에 읽었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의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6살 난 아들을 키우는 평범한 삶임에도 불구하고, 각 시기마다 어느 정도까지의 현실을 알려줘야 할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이삭처럼 훌륭한 지식인이 되고 싶어 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미래를 준비한 노아와
이삭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이삭을 보고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가능성을 알지 못했던 모아수,
그리고 경멸과 무시로 채워졌던 아버지의 삶과는 다르게, 부와 존경을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키워졌던 솔로몬 모두
결국 파친코 사업을 하게 됩니다.
이삭, 모아수, 솔로몬이 결국 모두 한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왜 이렇게 안타깝고 슬픈지 모르겠네요.
고로, 모아수, 노아, 솔로몬 모두 파친코 사업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없애주는 인물들이었습니다.
"다이얼을 돌려서 조정할 수 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로 생긴 불확실성 또한 기대하는 파친코."
결국 돌고 돌아 일본에 사는 조선인이 그런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일이었습니다.
1편에서 이삭과 요셉에게서 저희 아버지에 대한 양가 적인 감정을 느끼는 그 점들을 보게 되었다면,
1편의 양진, 선자, 경희에게서 모두 저희 엄마를 느꼈듯이, 자식과 남편을 자랑스러워 한 유미의 모습에서도 엄마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희 엄마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유독 깊으셨는데, 제가 첫 출근을 시작한 그날부터 항상 제가 집을 나설 때면 제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엄지척을 높이 들어 제게 보여주셨어요. 백미러에서도 제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계시는 엄마셨습니다. 다른 자식에게도 모두 그렇게 하셨습니다. 평생을 가정을 위해서 헌신하셨는데 마치.. 그 빛이 꺼지면 안 된다는 간절한 염원 같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주요 등장인물은 아니었지만, 한국계 미국인 입양자 존 목사가 분명히 불행으로 치닫는 입양도 많이 있었지만, 존은 자신의 운명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운명보다 낫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이유를 궁금했었다는 부분에서도 저는 엄마를 떠올렸습니다.
저와 제 형제들이 살면서 느낀 이 감정, "무엇이 우리를 시골의 그 주변 환경과 다르게 만들었을까.?!"를 저는 유독 자식사랑과 마음속 포부가 남달랐던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그 무엇에서 찾게 됩니다. 아직은 그 인생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또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앞으로의 변수도 너무 많지만, 엄마의 굳은 심지를 높이 삽니다.
신기한 건 그렇게 열심히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셨어도, 요만큼도 바라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항상 엄마는 됐다. 엄마는 괜찮다." 하시는데, 특히 제가 결혼 후에는 항상 제가 돈을 부모님께 쓰는 걸 싫어하셨고, 대신 그만큼 더 모으고 저축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제 아들과 남편과 시부모님을 챙기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그런 희생정신이 자식이지만 너무 신기할 때가 있는데, 책 끝 편에 죽음을 앞둔 양진을 보면서, 우리 엄마도 속에 못다 하신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소설은 꼭 주인공이 아니어도,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대화가 사실 의미가 있습니다.
비록 외도를 들켜서 이혼을 당하고, 그로 인해 아이들이 동네에서 왕따를 당하게 한 엄마일지라도 에쓰코는 아이들 어린 시절을 몹시 그리워합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조금 더 오래 욕조에서 놀게 두고 자기 전에 이야기책을 하나 더 읽어주고 새우튀김을 한 접시 더 만들어 주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읽는데, 또다시 아들과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완독하고 다음날인 오늘은 아이가 아파서 하루종일 함께 하게 되었는데, 아이가 저와 함께 할 때 가장 좋아하는 클레이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아이는 무언가를 주문하고 제가 그걸 잘 만들어 주는걸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제가 만들 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다가, 제것을 보고 감탄(?!) 하는 그 시간을 무척 행복해하거든요..! 열심히 만들고, 또 물놀이도 하고 싶다고 해서 욕조에 물을 받아서 한 시간 넘게 함께 소꿉놀이도 하고 옆에서 찐 밤도 까서 먹여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한참 소중한 시기에 제가 회사와 다른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함께 쏟았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런데 왠지 지나고 보면 지금도 아이에게 같은 사랑과 놀이가 필요한 그 시기일 것 같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그리워하며 후회하고 싶지 않네요. 평소 같으면.. '일도 못하고.. ㅜ 아이가 이제는 좀 자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오늘은 맘 편히 실컷 즐겼습니다. 그냥 이 순간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더 하찮은 것들 때문에 망치고 싶지 않네요.
"이삭은 살면서 선자에게 바란 것이 거의 없었다."
제가 이삭에게서 저희 남편을 느끼는 부분입니다. 남편은 제게 자유를 주고, 할 수 있는 한 제 삶의 성취를 지원해 주려고 하지만, 제게 어떤 제약을 주거나, 바란 것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회사를 퇴직하고 저만의 삶을 다시 살지 않았다면, 남편의 진가를 더 늦게 깨달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이 점이 제가 남편에게 오래도록 갚아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감사함을 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는 제가 몇 안 되는 일본 작가들(무라카미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에게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합니다.
소재와 글이 큰 지식이 없어도 꼭 쓸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 지만(실제로는 꽤 오랜 시간 방대한 조사로 역사적 사실을 수집하였고), 스토리가 탄탄하고, 아주 사소한 감정도 이입이 되도록 잘 이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지식은 오랜 노력으로 쌓을 수 있겠지만 감정으로 독자의 공감을 얻는 능력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는 건지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아마 슬프지만 어쩌면 타고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항상 그렇듯 더 잘 표현할 수 없어서 아쉽지만,
오랜만에 재밌게 읽은 소설 《파친코》의 후기를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합니다.
노트북 드림.
《감사의 일기》
아이가 40도 넘는 고열이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해열제로 내려가고 그 덕에 하루 종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왜 나는 이렇게 행복한 일상을.. 아이가 아플 때만 만들 수 있는 걸까?!)
내일은 또 엄마 생신 파티로 친정 식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몇 년간 꾸준히 운동한 남편의 몸이 많이 좋아져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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