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작성자 사진NoteBook

[독서 모임 3기]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회상하며..! (젊은 날의 초상 - 이문열)

최종 수정일: 2024년 1월 27일







안녕하세요! 노트북 입니다.


오늘은~ 제가 2기 독서 모임 때 소설에 대한 목마름으로 [젊은 날의 초상]을 꺼냈다가, 글이 길어 진다는 이유로 급하게 마무리 했던 이야기를 이어서 하겠습니다.


내 피로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은 역시 그 가을의 어떤 오후 텅 빈 강의실에서 만난 노(老) 교수님의 분석이다. 그날 무엇 때문인지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지쳐 빠진 나는 다음 강의 시간을 찾아갈 것도 잊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동장에는 수업이 없는 학생들이 소프트볼을 하고 있었는데, 까닭 없이 그들이 부러워져 울적해 있을 때 그분이 조용히 들어왔다. 
 "여기서 혼자 무얼 하나?"

평소 내게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던 분이어서 그랬는지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피로해서요."
그러자 한동안 나를 찬찬히 살피던 그분은 어딘가 측은함이 깃든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피로가 아니라 가난인 것 같군."
나는 왠지 부끄럽고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그분이 다시 부드럽게 덧붙였다.
"가끔씩 유망한 학생들을 잡아먹는 무서운 병이지. 이겨내야 해."


이 글을 읽으니, 제 대학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이 대목까지 소개하고 지난번 후기에서 괜스레 글이 길어진다는 마음의 부담으로 글을 마무리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 때 댓글에서 시랑맘님께서 남겨 주신 답글에 아래 내용도 있었습니다.


"고3 담임을 하다 보면, 아이들의 집안 경제 사정에 따라 대학교에 가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부유한 아이들과 대조적으로 자신의 꿈을 키우기 위해 공부하기 보다는 돈과 시간을 바꾸는 것이 안타까워 보였었어요."


말이 길어져 댓글로 자세히 말씀 드리지 못했지만, 부끄럽지만 이 모습이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시간을 활용하는 가치보다, 푼 돈을 모으는데 더 가치를 둔 어린 저의 모습과, 그렇지만 그 작은 돈들을 벌면서 우연이지만 인생에서 매우 소중한 추억을 가지게 된 저의 이야기를 써보겠습니다.)


쓰다 보니 내용이 길어졌습니다. 18 년이 넘도록 한번도 기록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떠올랐을 때 적어 두고 싶었습니다. 내용이 길지만 저 자신의 기록을 위해서 라도 줄이지 않고 초고를 보관 하려고 합니다.


 

저는 형제가 여러 명인 집에 큰딸이었고, 제 글에서 몇 번 언급을 했던 것 같은데 제가 빈부격차에 대해 잘 인지하지도 못할 어린 시절에는 저희 집은 항상 돈이 없는 집이었습니다. 제가 중학교를 진학할 때 쯤 아버지의 결단으로 시도하신 작은 사업들이 잘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집안 살림이 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던 시절 엄마가 항상 너무 많이 절제와 절약을 강조 하셨기 때문에 그 습관이 몸에 벤 것도 있었고, 저는 큰 딸이기 때문에 항상 자립을 준비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물론.. 대학 시절에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저만의 집을 얻어서 살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집중을 하려면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말도 못하게 열악한 환경에서 사셨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더 그렇게 해주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매달 용돈을 비교적 넉넉히 주셨고요.. 대학 입학 후 처음 반 학기는 "처음만 주고 니가 벌어서 해야 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 하셨어서 더 아르바이트에 목을 메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에는 매달 용돈을 보내 주셨습니다.


저는 참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같은데, 대학 시절의 주 수입원은 과외 였습니다. 중학생도 했었지만 주로 고2~고3 이과 수험생들을 상대로 수학 과외를 했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과외를 끊어야 할 정도 였고, 한번 하면 대학을 갈 때까지, 또는 제가 끊을 때까지 이어졌었습니다. 20년 전 당시에 주 2회에 한 집당 40~50만원을 받았던 것 같아요. 2~3집을 계속 했기 때문에. .참 피로 했지만, 부모님께서 매달 주시는 용돈과 아버지께서 특별히 따로 주시던 용돈에 과외비까지, 제 통장에 돈은 쓰고도 쌓이는 구조였고, 밥 사주는 것, 뭐 사는 것도 좋아하던 시절이지만 돈 이 없어서 무엇을 못 하는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자신을 위해 쏟는 시간 보다는 꼭 그렇게 많은 부분을.. 돈을 벌기 위한 시간으로 할애를 해놨다는 것이, 지금 보면 참 짧은 생각이었던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뇌가 활발할 시기에, 저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생각보다, 당장에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조금 안타깝네요.


그 생각은 제가 호주로 어학 연수를 갈 때까지 이어 졌습니다. 말이 어학 연수지 '워킹 홀리데이' 였습니다.

저는 저의 영어 실력이 부족한 것에 조금 컴플렉스가 있었는데, 그때는 그 것을 어학 연수를 다녀 오면 실력이 많이 향상되고 좋아질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 (오늘은 부끄러운 과거 이야기가 계속 나옵니다.. ㅎㅎ)

처음 어학 연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아보면서, 현지에서 외국인들만 모아 놓은 어학원 보다는, 직접 호주인 들과 어울리며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ㅎㅎ 마케팅에 제가 홀렸던 것 같아요 ^^:) 학생 비자로 가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굳이 당시 유명한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연계 하는, 220만원 정도의 돈을 지불 하면 호주에서 3개월단위로 3번의 '호텔 인턴십' 연계해 주는 프로그램에 지원 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이야기 하겠지만, 당시 다른 친구들은 그 프로그램을 신청 할 금전 적 여유가 없었고, 저는 가능 했기 때문에 선택 했지만.. 결국 돈이 있어서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당시에 부모님 허락을 받지 않아도 호텔 연계 프로그램 비용, 어학원, 비행기, 현지 방 값 및 보증금, 가서 한동안 생활할 돈이 제 통장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걸 다 예약해서 준비하고 부모님께 통보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예상대로 엄마는 조금 어이 없으신 표정을 지시며 아버지를 바라 보셨지만, 아버지는 역시 예상대로 내심 저의 그런 모습을 좋아하시며 "가기로 했으면, 가셔야지요!"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항상 저의 무한 지지자 이셨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모든 걸 충당 하려는 딸을 대견하게 생각하시면서도, 중간 중간 비상금 조로 몇 번의 목돈을 또 붙여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호주를 가서, 인턴쉽을 위한 호텔 인터뷰를 보기 전에 어학원을 다니면서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호주의 한 리조트에 연계가 되어 떠났습니다. 하나의 섬이 리조트 이고, 직원들의 숙소와 모든 삶이 그 안에서 해결 되는 그런 섬이었습니다. 친환경이 컨셉이었던 그 리조트는 진심.. 진심.. 그림 같이 아름답고 이쁜 그런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노후화가 되었을 것 같긴 하나, 당시에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세계의 40곳으로 선정 되며, 꽤나 유명한 휴양지 였던 것 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험한 일을 해 본적이 없던 저로서는 이제 진짜 현지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일한다는 기쁨에 들떴었고, 그 첫 날의 기쁨도 잠시.. 곧 .. '내 돈 내고 내가 이렇게 중노동을 돈 내고 하고 있구나..' 하는 현타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영어를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 잡은 하우스 키퍼로 배정이 되었습니다. ^^ 그렇게 듣고도, 저는 청소가, 호텔 베딩 세팅이 얼마나 중노동인지도 몰랐던 것 같아요. 리조트에는 전체를 총괄하는 매니저, 그 아래 몇몇의 슈퍼 바이저, 그리고 인사팀 직원, 그 외는 실질적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리조트를 관리하는 너무나 다양한 Job의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멋진 호텔을 청소하는 일이었고, 당시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그 일이 제게 얼마나 도움이 되나 ,그런 걸 따지지 않고 그저 어학원에 있던.. 저와 비슷한 영어 수준의 한국,중국,일본,동남아, 가끔 유럽 친구들과는 다른 현지인들과 지내며 영어를 배울 생각에 혼자 신이 났던 것 같습니다. ^^:

그런데 막상 가 보니, 제 사수(?)가 하고 있던, 리조트 내의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을 제게 알려주고, 자신이 맡고 있던 그 일을 제게 넘기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수는 이제 그 일을 졸업하고 하우스키퍼 일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

저는 그 공공 화장실이 참 지저분하게 느껴지고 ㅜ 제가 들은 Job과 다르다며 항의를 했습니다.

매니저에게 찾아 갔지요. 당시 매니저는 그 섬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고등 교육을 받은 분처럼 보였습니다. 듣기로는 유명한 대학의 호텔 경영학을 전공하고 그룹에서 나오신 분인데, 그 분이 머무는 섬 안의 숙소는 매우 좋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정말 핸섬하고 젠틀한 분이셨지요. (그 분은 일할 때는 권위적이지 않게 함께 어울렸지만, 근무시간 외에는 섬의 직원들과 분리되어 생활을 하셨습니다.)

"나는 이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러 온 게 아니고, 하우스키퍼를 하러 왔다!!"

(그때의 제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오기도 하면서.. 참 그 이후에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계속해서 무언가를 시도해 온 저의 등을 두들겨 주고 싶기도 하네요..^^..)


매니저는 저의 말을 듣더니, 매우 단호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말합니다. "No." 라고요!

제가 앞으로 할 일은 그 일이고, 해야만 한다. 딱 잘라서 말했습니다. 매우 우울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루 이틀? 안되어, 매니저가 다시 저를 불렀습니다. 하우스키퍼를 하고 싶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말했는데 이유는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 일 이후 유일하게 제게 공공 청소를 물려주려고 했던 그 사수(?)는 사람들이 전혀 눈치 못 채게 저를 은근 괴롭혔습니다. ^^: 하지만, 저는 그때만 해도 그런 걸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는 사람이 승리(?)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분을 제외한 그 섬의 모든 분들께서 너무나 친절하게 대해줬기 때문에 그건 매우 사소한 문제로 치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에 저는.. 작은 키에.. 당시 몸무게도 43kg정도 밖에 나가지 않는 여린 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수레에.. 업소용 청소기, 무거운 린넨 천들과, 수건들, 각종 청소 세재들과 도구들을 챙겨서 매일 그 넓은 리조트를 끌고 뛰어 다니며 까만 콩이 되어 갔습니다.1층 부터 2층까지 엘리베이터도 없던 그 리조트에서 매일 그 무거운 짐들을 들고 오르락 내리락 하며, 또 다음 코스 청소를 위해 뛰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육체의 고통은 정신력으로는 버티기 힘든 무서운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비싼 커미션에 사기 당했다는 생각은 저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 제 전과 후에 왔던 몇몇 한국의 언니나 동생들도 비슷한 생각을 한 분들이 계셨어요. 그런데, 그 때 제가 생각했던 것이 있습니다.

'만약 이곳에서 그런 한탄과 후회로 보낸 다면, 나는 진심으로 내 소중한 시간과 돈을 날리고 사기를 당한 것이다. 어차피 왔으니 이곳에서의 생활을 최대한 즐기고 가자.! ' 강하게 다짐 했습니다.

그리고 작게는, 항의하고 얻은 Job이 무척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뀐 잡에 불평을 보이는 모습은 보이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 Job에 출근하는 그 날부터 항상 웃고, 밝게 흥얼 거리며 지냈던 것 같은데, 매니저가 저를 불러서 물어보더라고요. 만족하냐고요? 그래서 "만족한다. 즐겁다. "했더니, 다행이라고 했던 것 같고, 그 이후 몇 번을 더 물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의 질문들은 제가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묻는 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일정 시간에 일어나서 공공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제 숙소 방의 베란다에서 책을 읽다가 정해진 시간에 출근 했습니다. 당연한 수순이었는데 당시 제 룸메이트가 그런 저를 보며 항상 " very desciplined" (훈련된, 학습된 사람) 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호주의 명문대를 다니는 친구였는데, 이름은 '헤나'였습니다.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위해 이 섬에 왔고,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리조트의 샵에 배정이 되었지만, 거의 아무 손님이 없다고 했습니다 .줄곧 책을 읽는 다고 했고, 가장 부러웠던 점은, 하루 종일 에어컨이 나온다는 것이었어요..! 그 섬은.. 친환경 컨셉이었기 때문에 천장에 큰 팬은 있었지만, 에어컨이 없던 곳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정해진 시간에 빠르게 청소를 해야 했던 저는 매일 땀이 비오듯이 흘렀거든요. 너무 부러웠습니다. (다른 호주 대학생들도 있었는데, 유독 좋은 곳으로 배정 받은 것은 이 친구가 엘리트여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을 혼자 해봤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헤나는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매우 즐거운 시간을 제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헤나는 유독 털털하고 정리를 안 하는 성격을 가졌었는데, 그 당시 저는 거의 결벽증 수준으로 깔끔한 걸 좋아했지만, 그런 저의 모습을 불편해 할 까봐 헤나의 생활 방식에 그대로 맞췄습니다. 혼자 있을 때와 다르게 더 이상 청소를 하지 않았고, 마음을 비우고 그냥 살았습니다. (어차피 바닥은 신발을 신고 다니니까요 ^^:)

저희는 한국의 영어 강사 출신의 언니와 함께 퇴근 후 비치도 놀러 가고, 풀장에서도 놀고, 재밌게 지냈습니다. 헤나는 책을 상당히 많이 읽었는데, 항상 읽고서 매우 좋은 책이라며 제게 추천하고 선물로 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그 책들을 빠르게 읽고 음미하며 대화하지 못했다는 게 아쉽네요 .^^) , 바다에서 직접 낚시 해서 회도 쳐주는 등 매우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재밌던 기억이 많습니다. ㅎㅎ 영어 강사 언니는 너무나 착하고 바른 분이셨고, 저보다 두 살 정도 위였던 것 같은데, 가장 어린 헤나가 영어를 가장 잘하고 덩치와 키도 제일 컸기 때문에, 저와 그 언니를 동생처럼 보살펴(?) 주던 기억이 납니다. ^^:! 좋은 비치를 알아냈다며 저희를 데리고 다니곤 했었어요.. ㅎㅎ (헤어질 때 서로 부등켜 안고 엉엉 울었는데, 지금은 이름도 잊게 된 그 언니도 너무 궁금하네요..!)


헤나와의 생활처럼, 일에서도 매일 매일 힘들지만 항상 밝게 웃고, 진짜 열심히 청소했습니다. 저는 청소 속도가 느렸는데.. 일이 익숙치 않은 것도 있지만, 현지에서 그들이 청소하는 방식들이 제게는 놀라움과 조금은 걱정을 주었습니다. 제가 몸담은 그 리조트를 욕되게 할 맘은 없지만,, 당시 하우스키퍼들이 청소하는 방식은, 겉보기에는 깔끔하나.. ㅜ 손님들은 모르는 조금은 비위생적인 과정들이 있었습니다. (매우 깔끔한 여대생 시절이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결국 손님들이 쓰는 것이니, (커피잔 등을) 제가 하는 방식대로 설거지랑 청소를 했고, 모든 침구, 수건 등등을 그렇게 다뤘던 것 같아요. 창문, 베란다, 모든 가구의 먼지 등등 다 정석대로 하는데 정말 할 일이 너무 많고 오래 걸렸습니다.

청소가 늦어져서 손님이 도착할 시간이 머지 않아.. 슈퍼바이저가 급하게 와서 빨리 도와 준 적도 있었습니다. ㅜ 하지만 단 한번도.. 그들은 제게 짜증을 내거나, 아주 사소하게라도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너무 항상 칭찬을 해주고, "Jackie! 너는 항상 청소를 깔끔히 해서 그래." "열심히 해서 그래. 러블리!" 하면서 칭찬을 해줬던 것 같아요. 저는 호주에서 있는 내내 거기 사람들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가졌습니다 .너무나 여유 있고, 유독 밝고, 건강한 마음을 가졌다고 느껴졌습니다. 누구를 비난하거나 소외 시키지도 않았어요.! 특히 매니저는 항상 직접 제게 와서 체크 하는 날에는 역시! 매니저 답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제게 항상 격식 없이 재밌게 대하고 칭찬을 해줬습니다. '원래 여기 사람들, 그리고 매니저는 항상 이렇게 직원들을 격려하고 돌본다.' 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당시 저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을 아예 몰랐을 때 였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가 당시에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의 진리를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밝게 인사하고, 언제나 긍정적으로 밝게 지내려고 하니, 섬의 모든 사람이 아침 인사를 매우 기분 좋게 해주고, 영어를 못하는 저를 조금 귀여워(?)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영어를 잘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삼삼 오오 파티에 초대 되고, 전체 바베큐 파티에서도 참 .. 그들의 농담과 재밌는 이야기에 함께 웃으며 즐거워 했던 것 같아요. 당시 많은 분들이 제게 헤나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Jackie, 너는 한국에서 공부도 잘하고 엘리트 였을 것 같아! 너는 전공이 뭐야?" 등등 관심을 가져주고 저를 모범생(?) 처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영어 공부를 하고 있으면, say again, 하면서 발음을 교정해주는데 그 시간들도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바베큐 파티 하고 할 때는 가끔 그들은 거친 욕을 농담처럼 했는데 제가 그럴 때마다 매우! 반응을 격렬하게 보이는 것도 재밌어 했던 것 같습니다. 어디서나 있는, 상사에 대한 농담 섞인 그런 말도 있었지요.. ㅎㅎ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Oh..! No...! 하면서 제 입을 막으면,, 그들은 제게 웃으며, 힐튼(매니저) 에게는 우리가 이런 말 했다고 이르면 안된다고 웃으면서도 다들 악의 없는. .힘든 일과를 끝내고 스트레스 푸는 그런 시간으로 함께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그 섬에 와서 '속았다.'고 한탄하는 한국 언니에게 다른 동생이.. "Jackie 언니를 봐라. 아무리 힘들어도 밝게 지내니까 사람들도 모두 언니를 좋아하고 즐겁게 지내자나!" 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그 당시 대화를 기억하는 이유는, 왠지 모를 리조트에서의 생활이 잘 적응 되고, 특히 인관 관계가 매우 좋아지고 있다고 혼자서 느끼던 시기 였는데, 그걸 제 3자가 말하니 신기해서 기억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섬에 갔을 때는 job에 항의하는 모습에 누군가는 수근댔을 수도 있고(저의 사수와 친구 분들^^:), 꽤나 의아한 한국인이라고 맨 처음은 생각 했을 수 있는데, 다행히 그들의 생각이 저에게 미치기 전에 바로 제가 일찍 좋은 다짐을 했던 것 같고, 사람들도 그런 모습을 원래의 제 모습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시 제 사수(?)의 친구들 조차 저에게 매우 친절하고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리조트에서 일하던 하우스키퍼 친구들 중 그곳에서 오래 있던 친구가 저를 불렀습니다. "Jackie! 너 저기 가봤어?" "내가 저기 구경 시켜 줄까?!" 그 친구가 가리키는 그곳이 어디냐고 제가 물었습니다. 저는 그 때 까지는 그 리조트에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었네요. 매우 넓고 럭셔리한 방이었고, 그곳에 쓰일 어메니티까지 따로 관리되며, 그때 까지는 그 고참들이 그 방을 돌아가며 맡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갔는데, 그 섬의 모든 객실에서 유일하게 상쾌한 에어컨이 나오는 방이었습니다. (아무리 친 환경이어도.. ㅎㅎ 비싼 방은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 말로는 하루 밤에 몇 천불? 제가 계산하기로는 일박에 3~400만원짜리(?) 방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곳은 정말 넓고 럭셔리하고 쾌적했습니다. 에어컨이 선선하게 나오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저를 데리고 가서 룸 서비스를 한 것이었죠.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 방안에서 매우 고상한 자태로 책을 읽고 있던, 꼭 다이애나비와 너무나 닮았던 젊은 귀부인을요. 편안하지만 매우 하늘 하늘 아름답고 긴 원피스를 입고, 금발의 커트 같은 단발에, 책을 읽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 순간 다짐했습니다.

"나는 꼭 성공해서 이 리조트의 이 방을 예약해서 오겠다.!" 꼭 와서 힐튼과 슈퍼바이저들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인사하러 오겠다고요!
"힐튼! 저 Jackie에요! 그 하우스키퍼가 다시 왔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꼭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제가 그것을 이룰 것 같았지만.. 아직도 못 가고 있네요..! 이제는 너무 늦어서, 그때의 힐튼과 그 외 동료들은 모두 없을 거라 예상합니다. 게다가. .저는 이제는 그 당시의 어떤 친구도 힐튼과, 제 두명의 룸메이트였던 사람들을 빼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해요..! 얼굴만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섬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법적으로 고용된 형태였기 때문에 법대로 3개월 이상을 한 곳에서 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섬에서의 생활은 즐겁지만, 정말 너무 힘든 육체 노동을 더 할 수 도 없을 것 같다. 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섬 자체가 생활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힘들다고 파트타임을 할 수 도 없었습니다. 섬에서는 모든 숙식을 제공하고, 모두가 풀 타임 근무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돌아가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힐튼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잘생긴 힐튼, 큰 눈과 말아 올린듯한 속눈썹을 가진 그가 말했습니다.

"Jackie..! You are my Number one girl! I don't wanna lose you. I'm really sad. really sad..!"

힐튼은 눈에 눈물이 고였었는데, 진심으로 슬퍼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왠일이지.. '섬에서 이제는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라고 생각했던 저도 그말을 듣는데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때 힐튼이 저에게 천천히 차근차근 말해 주었습니다.


"Jackie! 니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여기서 함께 할 수 있어! 여기서 계속 일하다가, 니가 한국에 가족을 보러 가거나 홀리데이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가서 그들과 있다가, 여기로 와서 일할 수 있어." 라고 설명해 줍니다. "나는 너를 읽고 싶지 않고, 계속 함께 하고 싶다. 니가 원한다면, 우리가 그렇게 해 줄 수 있다." 라고 말해줍니다. 그는 정식 고용 비자(?)를 제안했던 것입니다. (혹시 라도 남녀 간의 애정을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까봐 말씀 드립니다. 저는 낯선 서양 남자와 염문이 날 정도의 사람도 아니거니와, 그는 너무나 깔끔하고 젠틀한 동성애자 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제안을 받아 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어요..!' 라고 속으로 말하며 그냥 그 이별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가서도 원하면, 다시 올 수 있다."라고 말하고 끝이 납니다.


저는 그 이후에도 한동안 힐튼과의 그 마지막 장면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좀 의아했습니다. 하우스키퍼의 일 대부분이 혼자서 하는 일이었는데, '힐튼은 나의 일하는 스타일을 어떻게 알고 나를 좋아해 주었던 걸까..?!' 초반의 그 단호한 눈빛과 표정 이후 언제부턴가 제게 너무나 친절하고 따듯하게 대해 주었는데, 저는 그 분의 매니징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말하지 않았지만, 힐튼이 저의 진심을 알아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동안 떠 올릴 때마다 제 마음이 훈훈해 졌습니다.


그리고, 그 섬에서 나와서 브리즈번이라는 도시에 다시 정착을 하고 나서 다른 한인들의 집에 초대도 받고, 그들의 이민 생활, 또는 이민 준비 생활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힐튼이 제게 제안한 그 기회가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것이었는지를요. 저는 호주에서 터를 잡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몰랐었지만, 한국에서 그곳의 영주권을 받을 목적으로 오시는 분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은 대부분 2년제 대학을 다니셨는데, 그 이유가 그 곳에서 영주권을 받을 수 있으려면 취업을 해야 하고, 그 취업에서 선호하는 전공들을 이수하고 취업을 하기 위해 그렇게 오랜 시간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보다도 나이가 훨씬 많았지만, 관심도 없는 분야를 전공하고 있다고 대부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도 졸업한 후에.. 취업을 하고, 비자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고용주에게 신뢰를 받아야 하고? 등의 절차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 힐튼한테 감사하고, '진실로 진심을 다 하면 인정을 받을 수 있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섬을 계기로 또 하나의 멋진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의 첫 번째 룸메이트 였던 헤나가 개강을 위해 떠나고, 두 번째 룸메이트가 왔습니다. 드니스(줄임말: 데지) 였습니다. 그리스계 호주인이었고, 그녀는 헤나와 거의 정 반대였습니다. 춤과 노래를 굉장히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는데, 참 정리 정돈을 좋아하고 깔끔했습니다. 저는 이번에는 또 새로운 룸메이트에 맞게 저의 생활 방식을 변경했습니다. 혹시나 정리를 좋아하는 드니스의 눈에 불편할까봐, 저의 물건도 항상 똑바로 정리하며 지냈습니다. 청소도 열심히 했고요.!

헤나와 처럼 드니스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 영어 실력은 별로 였지만, 어느 하나 제가 그런 걸 느끼게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대화를 재밌게 잘 이끌어 준 고마운 친구들이었습니다.)

저는 이 섬에 오게 된 계기가 "현지인과 직접 지내며 영어를 해보고 싶었다." 고 말했었습니다. 이후 데지가 떠날 때 제게 제안했습니다. "Jackie! 니가 원한다면 우리집에 와서 지내도 돼.! 한국 가기 전에 우리집으로 와,!" 라고 말해줍니다.!

그 이후 드니스와는 호주에 있는 동안 연락을 주고 받았고, 드니스는 항상 자신이 도울 일이 있는지, 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한국에 돌아 가기 전에 자신의 집으로 와서 지내다가 가라고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제가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 드니스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한달 반 정도.. 집세 없이 투숙을 했었네요..! 저는 그 집의 막내인 데지 보다도 어린 친구였고, 먼 나라에서 온 학생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그 가족들 모두 제게 돈이나 금전 적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진정. .드니스의 말처럼 저에게 아주 좋은 경험을 주고 싶어했습니다.

제게 현관 입구의 드니스 방이 분리된 작은 방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침대도 있고, 책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니스의 집은 외부보다 내부가 너무 이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집도 넓고, 실내 인테리어가 참 잘 되어 있었는데, 모두 살면서 가족들이 직접 계속 꾸민거라고 했습니다. 아치형 복도 들이며, 타일, 페인트 색도 넘 이뻤고, 호주는 모든 가정이 수영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것도 신기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잠시 일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드니스와 거의 항상 함께 다녔습니다. 드니스의 친구네 집들도 같이 놀러 다니고, 그 가족들과 매일 식사를 했습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신기한 문화 였던 것은, 집안에 발코니, 온실? , 주방 등 여기 저기 큰 테이블이 여러개 있었고, 끼니 마다 먹는 장소가 달랐던 게 신기했습니다. 저는 야외 발코니나 식물이 많은 발코니에서 브런치 겸 티타임을 하는 그 정경과 그 시간이 좋았습니다. 그 곳에서 커리어 우먼으로 능력이 있던 드니스의 언니가 독립해서 사는 시드니의 부촌 주택가의 언니 집도 자주 갔습니다. 드니스의 결혼하지 않은 형제 2명(오빠, 언니) 외에 드니스의 결혼한 가족들도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시간도 넘 재밌었습니다. 그들의 아이들은 저와 영어 수준이 딱 맞는,, 4~5살 꼬마였는데 제게 호기심을 보이며 매우 재밌게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드니스와 언니, 오빠와 함께 파티에 갔던 일입니다. 저는 옷도 없고 그런 게 없다고 했는데! 그들은 신나서 저를 꾸며 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디서? 였는지 파티복을 입히고, 제 머리와 화장을 해주고.. ㅎㅎ 그리고 꼭 드레스 가봉을 위한 신부처럼 커튼을 열어서 저를 소개 시켜 주며 언니, 오빠가 재밌어 하고 같이 기뻐했습니다. 그 때 파티에 참석할 자신감이 붙었던 것 같아요!

가서 야경에 간단한 위스키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 오기도 하고, 참 재밌는 경험들 이었습니다. 어떨 때는 드니스의 언니가 단 둘이 저를 데리고 다니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가족이 제게 그렇게 따듯할 수 있었나.. 생각이 듭니다. 드니스의 어머니는 진정한 천사셨습니다. 존경이 우러 나올 정도로 인자한 미소를 가진 멋진 분이셨고, 저에게 너무나 따듯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드니스와의 연락은 제가 주소를 적은 수첩을 다른 사람(당시 제 친구)이 가져 가게 되면서 끊겼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데, 드니스와 그 가족들이 제 연락을 한동안 얼마나 궁금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맘이 아프네요..!


여담이지만, 저는 당시 시급으로 14~15달러의 정규 채용, 현지인과 차별이 전혀 없고, 정식으로 직원으로 등록되어 세금을 내고, 나중에 세금을 환급 받게 되었지만, 많은 워킹홀리데이 친구들이 정식 세금을 내지 않는 조건으로 5~6달러의 시급을 받으며 식당에서 불법 노동 형태로 일하거나, 조금 더 받으려면 강도 높은 농장일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이 역시 불법 고용 형태 였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그런데 실제 그 분들이 저와 같은 시급을 받는 정식 고용 Job을 구하는 것이 혼자의 힘으로는 매우 어렵다는 현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그 취업 알선 수수료 220만원이 사기 같긴 했지만, 완전히 쓸모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 보다, 그곳에서 크게 어려움 없이 일을 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현지 친구들을 사귀며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팁을 받는 사람의 기분을 알게 된 계기도, 팁문화가 없던 호주로 여행 온 미국인 고객들이 자신의 방 룸서비스를 맡았던 제 이름으로 팁을 남기고 가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서 부터 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가끔씩 어느 순간의 사소한 기쁨을 느꼈다면, 그 상대에게 팁을 줍니다. 한국은 팁 문화가 아니고, 서비스 차지까지 붙는 식당에서도 팁을 주는 것을, 남편은 초반에 좀 의아해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것은 한편으로는 지금의 제가 '그 때의 Jackie' 에게 주는 팁이기도 합니다. 제가 받았던 그 일상의 기쁨을 다시 돌려 주는 기분이에요!


당시에는 당연히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현지인과 어울리는 1석 2조라고 생각했지만, 이후에 그 때를 생각하면, "굳이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 같은데(아버지는 돈도 보내 주셨었는데..) 왜 나는 그렇게 돈 버는 것에 집착 했을까?!"

하며 거기까지 가서 공부 안하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 것을 뒤 늦게 아쉽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번 퇴직 하고 이틀 후에 혼자서 산책을 하는데, 마지막 제 동기가 말없이 함께 웃으면서 쳐다 보다가.. 갑자기 우는 눈으로 바뀐 그 장면이 떠오르더니, 정말 오랫 동안 잊고 살았던 그 옛날 힐튼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그 때의 그 눈물이 매우 뜨겁게 제 가슴속에 다시 남았습니다. 제가 2기 후기에도 썼던,

"한 때 네가 사랑했던 것들은 영원히 너의 것이 된다." 를 시간이 정말 많이 흐른 후에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저를 향해 보내준 그 신뢰, 그 애정은 생각 이상으로 제가 앞으로 나아갈 때 필요한 놀라운 힘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살면서 했던 대부분의 아르바이트, 호주, 사회생활에서 겪었던  그 대단한 가치를요!)

타인의 애정과 신뢰는 부모가 주는 그것 못지 않게 한 사람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 다는 것을 40이 넘어 비로소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우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을 지닌 편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부터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아버지께 그런 지지를 받았고,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우정, 그리고 이후에는 아르바이트 부터 경험한 사회 생활 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계속 받으며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감사한 부분 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을 줄 수 있는 입장일 때는 저도 그 누군가 에게라도 그것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듬뿍이요..!


지금의 저는 제가 경험한 모든 것의 합이라는 아비투스의 말이 생각이 나네요!


오늘은 꽤 긴 이야기를 쓰게 되었네요.

지난 번 [젊은날의 초상]을 읽을 때, 돈을 벌기 위해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던 제가 생각이 났었는데, 어느덧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렀습니다.


처음에 혼자서 독서 후기를 쓸 때는 제 이야기가 이렇게 들어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쓰다 보니 어떤 날은 책 한 줄에 제 이야기를 한 페이지를 채우게 되네요. ^^:!


오늘도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


<< 감사의 일기>>

아이가 무척 밝아졌고, 최근 몇 달 사이에 점점 더 좋은 방향으로 달라져서 감사하다. 특히 나와 있을 때는 너무 까르르 많이 웃고, 재밌어 한다.. ㅎㅎ 아이가 나의 웃긴 모습을 좋아해 같이 공룡 놀이를 하거나 싸움 놀이를 할 때 많이 망가지는데 , ㅎㅎ

그 모습을 좋아해 주니 계속 내가 코미디언이 되어 가는 것 같다. ㅎㅎ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넘 감사하다!


회사 다닐 때 매우 똑똑하고 사람이 너무 괜찮은 후배가 있었는데, 후배 일 때는 회사에서의 진로에 대해 고민 상담을 한 적도 지만, 4년 전 VC 업계로 나가, 어느새 이제는 나에게 도움을 준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언제나 대화가 너무 즐겁다. 내가 모르는 것을 최대한 많이 알려주고, 내게 도움 될 사람들을 많이 소개 시켜주고 엮어 주려고 한다. 너무 감사하다.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되고, 참..! 인간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퓨처 셀프]를 통해서 지금 내가, 2024년이 가기 전까지 내가 장착해야 할 무기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멀리 봐야 하기 때문에 쉬운 길 보다는 이 방법을 택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정리가 되었다. 너무 깔끔하다.

6개월, 1년이 정체 되더라도, 이후 30년을 위해서 지금은 더 나를 갈고 닦아야 할 때이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해 줄 말을 생각해 보니, 지금 나의 이 선택과 용기를 잘했다고 격려해 주는 모습이 그려졌다.

생각이 정리 된 것이 너무 감사하다.


주변에서 바로 지켜 볼 수 있는 멋진 사업가가 있으신 게 참 감사하다. 내가 따라 할 수도 없는 압도적 스펙과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스펙을 예전의 자신의 기록으로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끊임 없이 자신을 갈고 닦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고 알리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탄력을 받는다. 법인을 설립하시고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리시는 시기가 나보다도 나이가 훨씬 많으시다는 것에 대해 나도 늦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갖게 한다.


시랑맘님의 오랜 감사 일기에 항상 감동을 받았었지만, 매번 감사 일기를 쓰는 것을 깜박 해서 실행에 못 옮겼었다. 이제는 촉촉 단비님의 감사 일기 까지 감동을 받으면서 꼭 써보려고 감사 일기를 먼저 써 놓는 변화 된 내 모습에 감사하다.



조회수 113회댓글 2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2 Comments


mona O
mona O
Dec 19, 2023

긴 글이지만 재미있게 술술 잘 읽었습니다. 노트북 님이 남자이신 줄 알았는데, 여자 분이셨군요! 저도 모르게 이렇게 열정적으로 온라인 독서모임을 주관하시는 모습에서 '남성일 것이다'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가 봅니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는 가보고 싶었지만 용기도, 돈도 없어 못 간 제가 인생에서 가지지 못했던 패라 아쉬웠는데 그에 대해 소중하고 빛났던 추억을 공유해 주시니 제가 그걸 한번 쥐어본 것 같은 느낌입니다.

Like
NoteBook
NoteBook
Dec 19, 2023
Replying to

ㅎㅎㅎㅎ 오모나님! ㅎㅎ 긴 글 이렇게 읽으시고 답글 까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제 글에서 당연히 여자라고 알줄 알았는데^^; 지난번에도 어떤 분께서..ㅋㅋ 제가 남자인줄 알았다고 하셔서 엄청 놀랬어요^^; ㅎㅎㅎ 그 분은 남자 분이셨어서.. 자연 스레 자신과 같은 '성' 으로 생각 하셨나 했는데.ㅎㅎ 오모나 님도 그렇게 생각 하셨네요^^;!

혹시 저희 회원님중에도 저를 '남자' 로 생각하시는 분이 또 계실지 갑자기 궁금해 졌습니다^^;;!! 😆

소중한 추억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Lik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