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는 서희라는 한 여인을 중심으로 한국 근대사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요약이 맞을듯합니다. 스토리에 큰 맥락을 만들지는 않지만 등장 인물들의 소소한 이야기 속에 한국인의 정서가 베어나오면서 그 당시 시대상을 상상할수 있는것이 스토리와 상관없이 재미있습니다.
지금은 답답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여자들을 함부러 대하는 남성들의 태도, 상민이지만 남자는 역시 대우를 받는구나 하는 생각, 여자가 시집가는 것은 때되면 해치워버리는 느낌이라는 거, 남의 얘기를 쉽게 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산재해 있습니다. 불과 200년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지금 우리의 삶은 그때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우리 또래도 다 쫓아가지 못할 만큼 지금 젊은이들의 생각은 저만치 앞서가니 말입니다. 세상은 참 오래 살고 볼일이란 생각을 합니다.
'천재를 제신의 노여움으로 삼수하듯이 무자비한 수탈 속에서 가난도 이별도 견디어야만 하고 도리를 준열한 계율로 삼아온, 이 자각 없이 고행해온 무리가 조선의 백성이요 수구파의 넓은 들판이다. 조선 오백 년 동안 씨부려놓은 유교사상의 끈질긴 덩굴이며 무사한 열매인 것이다.'
그당시 조선인들의 상황을 잘 표현해놓은 말인듯 했습니다.
그만큼 유교 사상은 오래도록 우리 뿌리 깊숙히 자리하고 있었고 제가 교육 받은 당시만 해도 그런 사상이 여전히 깔려있어서 지금 세대와의 갭을 만들기도 하니까요. 안 그런척 해도 속으로는 나도 옛날 사람이 맞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결국 조선이 열강들 속에서 속수무책 당할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것은 정신문화만 붙잡고 있었던 무력함이 아니었을지. 비슷한 처지의 일본이 우리보다 일찍 개국할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무사도 정신이 제국주의를 받아들일수 있는 터전이 되었다고 생각할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족한건 무엇이었을까요. 좀 더 세상의 흐름을 타고 앞서 개방이라는 물꼬를 텄었다면 일본보다 더 먼저 선진국이 될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백성을 다스린다는 정치이념은 백성을 사냥 몰이꾼으로 내모는 정치적 힘 앞에서 무력하고, 착하게 백성을 가르친다는 유교사상은 무기를 쥐여주며 끝까지 싸워 이기라는 질타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일본이 조선땅에서 다른 나라들과 땅따먹기를 하는 동안 우리 백성들은 우리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나마 상황을 대충 알고 있는 김훈장이 조준구에게 의병장으로 나가볼것을 떠보지만 그가 재산과 목숨을 내놓는 항쟁 운동을 할 리 만무했습니다. 동네 사람 모아놓고 조선의 상황을 말해보지만 무지한 백성을 데리고 뭘 해보려는 시도가 무모해 보일 뿐입니다. 묻혀사는 유생을 설득하는 일도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보지만 김훈장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갈 뿐입니다. 그래서 김훈장은 홀로 산속에 파묻혀 지냈던것이 아닌가 합니다. 좀더 용기를 내어 나서봐야하는 거 아닌가 하는 말을 하기에도 너무 도와주는 무리가 없어 보이는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백성이 깨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래서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국민이 되어야하는것은 어쩌면 필수불가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환이가 돌아옵니다. 별당아씨의 죽음을 알리려 돌아왔습니다.
이제사 그들의 과거가 선명히 드러납니다. 동학당의 장수 김개주와 윤씨부인의 아들인 환이가 왜 최참판댁 머슴으로 들어왔는지, 그리고 왜 별당아씨와 도망을 쳤는지 말입니다.
환이가 여느 머슴과 다른 신분임을 알게 된 다음부터 그가 별당아씨와 도망을 친것이 단순한 사랑을 위한 도피가 아닐것같은 예감이 살짝 있었습니다. 아버지 김개주가 감영에서 죽었던 일이 어머니 윤씨부인의 탓이 아님에도 환이는 복수의 마음은 복수심으로 가득했습니다. 거기에는 최 참판댁 마님이라는 신분에 대한 증오, 자신의 어머니가 될수없었던 여인에 대한 원한.. 이 모든것을 생각하며 윤씨부인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고자 했던 도피였던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버지와 자신은 최참판댁에게 2대에 걸쳐 씻을수 없는 오욕을 남긴 셈이 되었죠.
'실은 내 속에는 원한도 진정 그게 원한인가 믿을 수 없구나. 불민한 너를 위한 아픔도 진정 그게 아픔인가 믿을 수 없구나.'
환이 아버지 김개주의 회한어린 이말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오래 마음에 두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곤 합니다. 아무리 깊은 원한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게 마련인 것을 한번 먹은 마음을 달리 먹는것이 스스로에게 배신이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겠죠. 그래서 다시 새로이 마음을 다잡는 작업을 수도 없이 하게 되겠죠.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그렇게 수없이 다잡는 동안 나의 마음은 피폐해집니다. 그래서 미워하는 마음은 일찍 지울수록 내게 좋은 일이라 생각해요. 전 그리 깊은 원한을 가진 적은 없지만 작은 일에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원한을 가졌던 그당시 마음은 그 상황도 그때의 나의 상황과 물려서 일어난 일이지요. 그래서 상황이 바뀌고 나의 마음도 바뀌면서 처음의 그마음도 조금씩 모양이 달라지게 됩니다.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전 그런 마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결국 한이라는 것도 내 마음이 만들어낸 상이기 때문입니다.
4권의 끝부분에 가서 평사리의 삶은 간도로 넘어갑니다.
더이상 조선 땅에서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서희를 모시고 간도 땅으로 넘어가는 모의를 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조준구가 최참판댁을 차지하고 앉은 다음부터 서희의 입지가 불안해지고 더불어 조선땅에 사는 일도 불안한 상황에서 김훈장을 비롯해 길상이, 용이, 이부사댁 상현, 영팔아재, 그리고 서희와 봉순이까지 몰래 사평리를 떠납니다.
이제 5권에서는 새로이 간도에서의 새로운 삶이 기다릴듯 합니다.
만주땅에 있는 간도는 지금의 북한과 맞닿아 있는 중국땅입니다.
그당시 간도는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미개척지 같은 땅이었다 합니다.
척박한 그곳에서 서희네의 삶은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합니다.
갈수록 토지에 빠져드는 자신을 봅니다. 다른 책을 간간히 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입니다.
2024년 겨울을 토지와 함께해서 너무 행복합니다. ㅎ
그럴수록 함께 하는 분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한 마음을 느끼며 전 5권으로 넘어갑니다. ㅎ
딸기님,,! 정성스러운 후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토지는 아직 큰 맥락이 느껴지진 않지만, 말씀 하신대로 한국인의 가슴 깊이 숨겨져 있던 그 정서를 자극하여 그냥 그 자체로 정감가고 빠져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저도 삼국지를 읽을 당시에는 다른 책들이 읽고 싶어져 몇 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정말 희안하게 토지를 읽을 때는 그런 생각이 안 드네요,, 틈만 나면 토지를 읽고 싶다는 생각만 듭니다.
"여자가 시집가는 것은 때 되면 해치워버리는 느낌이라는 거"
안타깝고 슬프지만, 이것이 저희 부모님들 세대까지만 해도.. 은연 중 과년한 딸이 결혼하지 않으면, 그냥 그 자체로 마음의 짐이라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짐작컨데.. 부모님 세대가 그런 강박을 가지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이 나라에 자신의 삶이 달라졌을 많은 여성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결혼과 출산이 나쁘다는것은 절대 아니고, 다만.. 그렇게 원치 않았지만 나이가 되서.. 그 은연중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혼을 선택한 여성의 삶들이 결국 출산 후에는 대부분 비슷한 수순으로 가는 것을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아래 딸기님의 댓글에서처럼 '사랑없는 결혼' 을 만드는 원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싶다가도.. 한 인간의 선택과 삶에 대한 부분에서 이제 더 이상 결혼이 필수라는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만큼 유교 사상은 오래도록 우리 뿌리 깊숙히 자리하고 있었고 제가 교육 받은 당시만 해도 그런 사상이 여전히 깔려있어서 지금 세대와의 갭을 만들기도 하니까요."
딸기님께서도 그러시군요,,^^,,! 저도 밖에서는 다 이해가 가고, 그냥 맞춰 드리게 되는데.. 오히려 집에서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왜 이토론 고리타분한 것들을 중시 여기실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신념 그런 것들이 모두 유교사상에서 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는 '유교' 라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고귀한 정신을 가르치는 면도 있지만, 인류의 발전을 돋우기 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겠다 싶었습니다. 그것이 내면에서 아버지와 저의 갭을 느끼게 한 원인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제 관점에서는 아버지 자신도 그 틀에 너무 깊숙히 얽매여서 인생 전체적으로 아버지께 결론적으로 좋지 못한 결정을 내리게 된 원인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물론 제가 이야기를 한 적도 없고 아버지도 그것을 미쳐 깨닫지 못하시는 느낌 입니다.
아무튼 시대가 변하니.. 저도 어린 시절 교육을 받을 때만 해도 정말 훌륭한 사랑인 줄 알았던 유교의 폐단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네요.
아주 어린 시절, 일제 시대에 대해 처음 배웠던 때가 생각납니다.
당시에 담임 선생님께서, '명성황후'에 대해 '시아버지와 싸운 며느리.' 라고 하셔서 저도 그것 자체로 잘 못된 줄 알고 다른게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나라의 운명이 걸리고.. '개화'가 맞다고 생각하는 신세대가 단지 아버님의 말씀이라고 해서 그걸 받아들였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지금 듭니다. 이후 성인이 되고 책을 읽으면서, 우리도 더 빨리 개방을 했어야 한다. 라는 생각이 명확해 진 이후에는.. 항상 변화를 대할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에서 판단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도, 등장 인물들의 한탄 처럼.. (물론 조준구의 말이 많이 차지해서 안타깝지만..) 우리나라가 그렇게 꽉막힌 수구파들을 빨리 몰아내고, 개화를 더 빨리 시작했다면 좋았을 것을.. 하며 많이 안타깝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에서의 보수와 진보는 '개화', '개방'의 관점에서의 보수와 진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요. (시간이 많이 지나봐야 제대로 된 평가가 되겠지만요~) 그래서 그 관점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정치'만을 놓고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난 주는 개인적으로 3가지 큰일이 있어서, 아예 책을 보지 못했습니다.
매번 책을 못봤다 이야기 하게 되지만,, 어제 오늘 다 읽고 딸기님의 후기에 답글을 달고 싶었는데,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서 댓글이라도 먼저 나누고 싶어서 왔네요!
매전 죄송하지만, 오늘 마져 읽고 남겨 보겠습니다.
후기 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