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독서를 많이 못한 관계로, 한 주에 이어서 후기를 두 편 쓰기는 오래간 만이네요.
서희 일행이 평사리를 떠나 간도에 정착한 이야기가 2부라고 한다면, 3부는 다시 서희 일행이 진주에 정착해서의 이야기입니다. 1919년~ 1929년의 이야기이고요. 9권도 3.1 운동부터 시작을 합니다.
당시 일본으로 유학을 간 지식인 2세들과 국내외 독립운동, 동학 운동가들의 얽히고설킨 힘으로 3.1 운동이 시작되고, 그 사이에서 젊은 시식인으로서 상현과 서의돈의 감격스러운 대화들과 눈물이 시작입니다. 당시 지식인 집단이 3.1 운동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겪는 갈등과 혼란도 3부의 축을 이룬다고 합니다. 소설 속에서도 이상현의 지인들, 석이 까지도 모두 투옥 후 석방 되거나 만주로 피신을 갑니다. 임명빈의 아버지 임역관도 3.1 운동 중 사살되고요, 요즘 같으면 한 집안이 풍비박산 날 일들이 그 시대에는 곳곳에서 들리는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고된 삶과 정신적 고통들이 상상이 안 갈 정도이네요.. 문득.. 그러한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제가 너무 쉽게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서 죄책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9권에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상현과 기화의 애정선의 시작이었고요. 서로 정신적 사랑을 먼저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전주에 거처하는 기화에게 한 달 정도 신세를 지러 갔던 상현이 서러운 일을 당하고 우는 기화에게 순간적인 흥분을 느껴 벌어진 일 같습니다. 저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서희와 상현이 그토록 사랑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았고, 기화도 길상을 그렇게 사랑했고, 길상도 당시에 서희와 봉순을 두고 고민하다가 간도 가기 전 멀리서 청혼했지만 봉순은 떠나 버립니다.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 생각했던 거겠지요. 그리고 상현도 당시의 관례로 조혼을 한 상태였고, 시골 본가에 있는 본처와의 사이에서 아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상현을 사모했던 임명빈의 동생 임명희도 있었는데, (그렇게 실제로 오래도록 사모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왜 그때는 서로 엮이지 아니하고, 이렇게 우발적으로 남녀 사이가 엮여 버리는지 정말 아쉬웠습니다. 용이와 임이네도 그랬거든요. 용이도 오래도록, 아니 평생을 월선 하나만 사랑했었는데, 당시에 월선이 동네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더라도, 왜 평소 하나 마음에 없고 사랑도 하지 아니했던 상대에게 한순간 육체적 관계를 하며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리는 건지 정말 아쉬웠습니다.
9권에서 두만이와 이평, 두만네 부부의 갈등이 나옵니다. 막딸이는 시부모(두만네 부부)가 점지해 준 본처였고, 두만이는 윤보 아저씨를 따라 서울생활을 하다가 데리고 온 서울댁과 함께 삽니다. 사실 요즘 같으면 두만이는 서울댁이 첩이 아닌 진짜 부부 사이인 것이지요. 막딸이는 그냥 구시대 풍습의 희생양인 것입니다. 평생 남편한테 한번 찾아가지도 못하고 시부모와만 왕래하는 본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9권 끝에서 나오는 신여성에 대한 임명빈의 생각. 여동생 임명희가 신여성을 본떠 결혼하지 않는 것을 심히 염려하는 대화에서는 답답함도 느낍니다. 이광수의 소설들에서 일제 강점기 딱 그 당시에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한심하게 생각하는 부분(자유분방한 사고와 경제관념)에 대해 그냥 요즘의 신문기사라고 봐도 될 정도로 동일한 기조와 시각이었다는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광수 자신도 결혼에 대한 문제만큼은 기존의 조혼 풍습이 갖는 문제점을 꾸준히 비판하는 듯했습니다. 이 책에서도 매우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다시 한번, 세대 갈등은 역사 어느 시대에서도 계속되며, 결혼에 관해서도 그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결혼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소이기 때문에, 시기와 상대는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것일 텐데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무엇보다 제게 9권의 하이라이트는 홍이의 고뇌입니다.
홍이는 친모인 임이네를 진심으로 벌레처럼 생각합니다. 자신의 몸에 임이네 피가 반이 흐른다는 것을 혐오합니다. 모친의 그 인성에 수치심을 느껴 자기 신뢰도 잃습니다. 중풍이 걸린 용이와 그나마 함께 사는 건 최서희가 주는 생활비 때문인 것 같습니다. 관수가 용이 약 다리는데 쓰라고 가지고 온 오골계를 홍이가 고아놨더니, 새벽에 임이네가 그 진국을 몰래 먹고, 솥에는 멀건 국물을 부어놨습니다. 그걸 들킨 임이네와 화가 난 홍이가 몸싸움을 벌이고, 쓰레기가 된 자신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생판 남인 석이조차 홍이가 요릿집에 장부 보는 일을 하게 된 것을 걱정하는데, 엄마는 돈 몇십 원 때문에 그렇게 구박을 하며 그 일을 하라고 시킵니다. 홍이가 고기를 사 오면 월급 축냈다고 난리난리를 치는데, 막상 점심도 굶고 저녁 한 끼 받는 용이의 국에는 국물만, 홍이의 국에는 비계 몇 첨만 떠 있습니다. (앞에서도 그랬든 언제나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웃으며 밥을 받는 (모든 것을 체념 한) 용이한테 화가 납니다. 아버지는 왜 안 죽노. 왜 안 죽냔 말이다. 죽기만 하면 나는 바로 떠날 텐데. 이놈의 집구석 바로 떠나버릴 텐데. 그냥 내가 가면 우리 아부지 불쌍해서 우쩌노. 가슴이 찢어집니다. 화가 난 홍이가 간장독을 다 깨부수고, 임이네는 아들의 그 분노, 아비를 막 대하는 어미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헤아릴 리 없지요.. 간장이 흘러내리는 것에 노발대발 또다시 둘은 밀고 밀치며 몸싸움을 벌입니다. 홍이는 괴로워합니다. 자기 몸속에도 그 벌레 같은 피가 반은 섞이었다, 자신이 살모사가 될까 봐 두렵다 합니다.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 읽어봅니다..!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을수록 아들을 어떻게 바꾸는 것이 아닌, 저 자신이 더 수양이 필요하고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냥 자연스레 보고 듣고 자란 것이 그것인 삶을 주고 싶은 것입니다. 어려운 것이지만 아들을 키우며 진정으로 제가 바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월선이가 키웠던 홍이를 처음 본 친구들이 본 홍이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월선의 그 선한 영향력이 그대로 홍이한테 갔던 것 같습니다. 임이네와 함께 하며 비로소 홍이는 왜 아버지가 자신이 어린 시절 그토록 분노하는 삶을 살았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분노하며 아버지가 그랬듯 망가져 버립니다. 홍이를 보며.. 부모에 대한 실망과 혐오가 자존감과 자기 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짧지만, 한복과 거복이가 상봉합니다. 그 장면에서 만큼은 한복이를 끌어안고 우는 거복이의 모습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소설 내내 역겨울 정도로 추악한 인성을 가진 거복이지만, 그나마 한 가지 희망을 거는 건.. 죽은 어머니가 묻히는 날 소나무 기둥에 머리를 박으며 울던 거복이, 그리고 동생을 만나서 울며 껴안는 거복이의 모습입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겠지만요,, ㅜ 핏줄의 소중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지요. 내일은 엄마 생신 파티로 친정 식구들이 모두 모이는데, 현재로서 저희 가족만 17명의 대 가족입니다. (항상 룸은 필수고요^^:) 그런 와중에 깜짝 파티로 동생의 (시험으로는) 마지막 승진 축하 파티도 준비했습니다. 5남매 중 나머지 네 명 이서만 따로 기념 선물을 샀는데, 오늘 함께 준비하고 너무나 뿌듯해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항상 동생들하고 있을 때면 10대 언저리의 그 감성 그대로입니다. 그 감성 그대로 너무 행복하거든요.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정말 시간이 갈수록 더더 많이 느낍니다. 그래서 그런지 거복이의 그런 모습은 저의 마음도 무척 짠하게 했습니다. 한쪽은 독립군을 돕고, 또 한쪽은 밀정으로 인정받는 희대의 악한인 두 형제인데, 현실적이지 않지만.. 그 둘의 애틋한 마음만은 유지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아마도 이루어질 수 없겠죠. 슬프지만요..!
아주 모처럼만에 먼저 후기를 남기니, 내일 다른 분들의 후기도 너무 궁금하고 기대가 되네요.
한 주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드림.
노트북님 9권 후기 잘 읽었습니다.
한복이와 거복이의 이야기와 함께
노트북님의 가족 이야기가 너무 훈훈합니다.
혈육의 정이 이런것이구나 싶었습니다.
노트북님 어머님 생신에 형제자매가 선물을
준비하고 대가족이 함께 오순도순 식사하시며
즐기시는 시간들이 그려집니다.
이러한 시간들 많이 만드시고 많은 추억
쌓길 바랍니다.
그런반면 홍이와 임이네의 이야기는
같은 혈육이고 모자지간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정말 놀랍습니다.
타고나는 인성이 달라서 인가?
아니면 사는 환경이 달라서 그런건가?
요즘은 사람이 이렇게 다를수 있는것이
무엇때문일까? 생각을 많이 해봅니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과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한 사람
그리고 같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변절하는
밀정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다르게 만들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얼마전에 아들과 함께 본 영화 '하얼빈'과
어제 남편과 집에서 본 영화 '소년들'이
생각납니다.
거거에서도 두가지 부류로 사람들이 나뉩니다.
나라과 국민 그리고 약자와 정의를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과
나 자신의 안위와 출세만을 생각하는 사람.
요즘 시국에서도 물론 적용이 되지요.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정치인과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
모두가 같은 시대를 살지만
차원이 다른 사람들 같습니다.
이번주 맹추위가 지나갔는데,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두번째 후기까지 잘 읽었습니다. ㅎ 등장인물이 많다보니 이야기가 마치 부페처럼 다양해서 읽는 분들의 후기의 내용도 다른것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읽다보면 '맞아' 나도 이때 이런 생각이었는데...'나 내가 이걸 쓰는 걸 놓쳤구나' 뭐 이런 생각도 하게 되구요.
노트북님의 충분한 후기는 읽다보면 빠져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내 마음이 충분히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길이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노트북님 글을 보면서 느끼게 됩니다. 전달력이 좋으시다는 말입니다. ㅋ
또 그런 글을 읽게 되어 즐겁다는 말입니다. ㅋ
이번 9권에서는 홍이 얘기와 한복이 얘기가 저와 겹쳐서 더 공감이 갔습니다.
토지를 시작하며 1세대의 인물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저물어가면서 그 2세대의 이야기가 하나씩 전개됩니다.
가끔 인물들이 생각이 나지 않을때는 토지 부록으로 나온 인물 사전을 뒤적이는데 이야기는 2세대를 넘어 3세대 얘기까지 이어지는 것 같더라구요. 세대를 넘어서고 시대를 넘어서는 토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우리네 어려웠던 시절을 모두 아우르는 느낌이 들것같아요. 역사에 관심을 두지 않을수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관심이 더 올라가는 역사 공부를 빨리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어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자꾸 미루어질것같아 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점점 토지에 빠지고 있는 자신을 봅니다.
요즘은 저절로 토지에 손이 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그 안에 우리의 모습이 보여서 그러는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 토지를 함께 읽어 너무 행복합니다. 함께 하는 모든 분들께 새삼 감사한 마음입니다.
또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