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9권에서는 아주 통쾌한 장면이 나옵니다.
조준구에게 빼앗긴 평사리의 집과 땅을 다시 사들이며 서희는 멋진 복수를 해냅니다.
하지만 조잡하지도 않았고 성급하지도 않았으며 끝까지 고고함을 잃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며 상대를 지긋이 눌러주는 그의 품새가 너무 멋있어서 혼자 쾌재를 불렀습니다.
조준구를 찾아온 관수는 조준구에게 모멸감을 주며 떠나는데 뻔뻔하기만 한 조준구가 스스로 잠깐이지만 한탄 섞인 말을 하는 부분에서 언젠가는 이 사람도 스스로 잘못을 깨달을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잘못을 하더라도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보는건 너무 불편합니다. 이 사람이 그만큼의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제발 사람답게 사는 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니 말입니다.
...어제 저녁 때 찾아왔던 사내가 마지막 던지고 간 말이 새삼스럽게 상기되어 전신이 으스스 떨려온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모멸에 익숙해진 조준구는 분하다는 생각은 잊었고, 실망하는 마음이 앞서 있었던 것이다.
'왜 내가 이 지경이 됐을까.'
서희를 찾아가 몇시간을 서희를 기다리며(서희가 일부러) 만난 서희에게서 느꼈던 모멸감에 조금이나마 잘못을 인식하는 인간이 되길 바랬습니다. 보통 이 정도면 자괴감이 들만도 한데 조준구는 그런 깨달음은 없어 보입니다. 소설 속 인물이지만 분명 현생에도 저런 인간상이 있겠죠?! 참 접촉하고 싶지 않은 인간상입니다.
조준구는 얼굴의 땀을 또 닦는다. 지폐에 손이 가면 사방에서 사람들이 쫓아나와 자신을 결박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눈앞에 돈을 보고 손을 뻗칠 수 없다. 상체는 앞으로 기우는데 팔은 천근 같아서 들어올릴 수가 없다. 전신을 누르느 중량을 들어올려야 한다. 조준구는 드디어 팔을 어 뻗어 지폐를 집어든다. 서희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오른다. 미소는 크게 확대되어 갔다. 하얀 이빨이 드러나면서 흔들린다. 웃음소리가 일정한 굴곡을 이루며, 톱날같이 조준구 마음을 썰어댄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나, 나, 그러면 가, 가야겠네."
저 같으면 저 정도로 수월하게 흔쾌히 돈을 줄수 없을것 같은데 무슨 마음이었는지 서희의 행동은 참 담대해 보입니다. 물론 마음이 그렇지는 않을것을 너무 잘 알지만..
역시 서희는 남다른 인물임이 맞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더한 복수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아님 조준구가 그렇게 맞상대할 인물에도 한참 모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구요. 살다보면 어처구니 없는 사람을 맞닥뜨릴때가 있습니다. 함께 같은 수준으로 상대하기에 스스로가 용납이 안되는 경우가 있긴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인생을 뭉터기로 바꾸어 놓은 인물이기에 이 정도로 놓아주기엔 너무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뭐 이게 시작일수도 있겠죠. 서희의 속마음을 헤아려 보게 됩니다.
동학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서도 여느 정치인들의 행태와 비슷한 모습이 보입니다.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싸움이 그 안에서도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정통 동학을 일으킨 사람들(김개주..)에 이어 그에 반하는 세력들이 분파를 만드는데 지식자들 사이에서는 동학을 종교로서 자리를 잡게 하고자 하는 윤도집 같은 사람이 있고 김환같은 왜적에 대항하는 싸움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며 몸으로 깨부시자는 지삼만 같은 무리들도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역시 김환의 움직임에 눈길이 가기는 합니다. 그것이 가장 정통이고 또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없다는게 문제입니다.
그걸 아는 김환으로서도 달리 방도가 없고 물러설 수 없기에 가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하지만 그것에 미래가 보이지는 않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 없는 상황이지만 분명 그안에는 김환을 움직이게 하는 또다른 힘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과거의 미비했던 점을 보완하고 면밀하게 다져가며 후일을 기한다 하더라도 필경엔 우물 안의 개구리 싸움을 면치 못할 것이며 또 항일 투쟁은 결코 동학의 독점물도 아닐 것이오. 작년 삼일 만세운동의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 그것은 차치하고 야소교의 힘이크다는 것이 떠올려진 것은 사실이고. 설마 동학도 그리 해보자는 것은 아니겠지요. 과연 우리 지금의 동학이, 그나마 여러 쪼가리가 나 있는 동학이 떠올라본다 하여 야소교의 그 조직을 능가할 성싶지 않으니까 하는 말이외다....그러나 여전히 강한 힘과의 싸움에는 그들에게 우발의 불꽃 이상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오.'..
왠지 씁쓸함이 느껴지는 환이의 말이었습니다. 우리 힘이 뭔가를 이루기엔 부족하고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수는 없지 않는가 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대의를 위해서 한다는 명분이라지만 사람마다 그 마음 안에 숨어있는 개인적인 이유도 대의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환이의 마음에도 분명 대의만 있는건 아닐거라는 생각. 그래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분명 있을거라는 생각이 드는건 저만의 생각일수는 있지만 전 계속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9권에서는 홍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 용이는 풍으로 몸져 누워있고 어미라는 사람은 사랑을 느낄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불쌍합니다. 사랑을 주던 월선 어미가 암으로 죽고 무뚝뚝하기만 한 아버지 용이마져 아프게 되니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어 방황하는 홍이가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누구라도 의지할 만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야 모진 세상사를 헤쳐나갈 희망이 보이는 법인데 말이죠. 방황하는 홍이가 꿋꿋하게 잘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후반부에는 한복이가 형 김두수(거복)와의 재회가 나옵니다. 참 별볼일 없는 형임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모두 죽은 한복이로서는 연민을 가질수 밖에 없는 존재가 형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결혼도 해서 아이까지 셋을 낳아 잘 살고 있는 한복이를 길상은 독립운동의 자금책으로 끌어들입니다. 떳떳하지 못한 부모에 대한 사회적 죄책감이 깔려있던 한복은 길상을 만나면서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주체적인 삶에 대한 자각을 하면서 삶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됩니다. 일본 앞잡이인 형을 속이면서 자금책을 역할을 무사히 잘 해낼지 시작부터 제가 다 조마조마한 마음입니다.
결국 형에 대항하는 일을 하게 되는건데 형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아직 남아있는 한복이로서는 그게 과연 가능할까 싶긴하면서 그 역할을 한복이 말고는 누가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됩니다.
여러 등장인물들이 이야기가 전개되다보니 후기를 쓰는 일이 중구난방이 되는건 어쩔수가 없네요.
그러는 와중에 제 마음에 확 와 닿은 부분이 있습니다.
지식인인 임역관의 아들 명빈이 동생 명희를 걱정해서 해주는 말이 그 부분입니다.
나라가 개방이 되면서 외세 문물이 밀려들고 세상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여자들의 입지에 대한 의견을 말해주는 부분이었는데 결국 여자의 행복은 결혼이라는 결론이 나는 것 같아 좀 씁쓸하기는 했습니다.
생각은 앞서갔고 충분히 인지하고 명희 또한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 맞다고 해주면서 결국은 명희가 결혼을 해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이는 오빠 명빈.
저 또한 시대의 흐름에 맞게 내 딸들이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길 바라지만 가능하다면 좋은 사람 만나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길 바라는 근본적인 마음이 있다는 걸 발견할 때마다 나도 어쩔수없는 옛날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입으로는 니 돈 벌어 니가 쓰며 살아라라고 고등학교때까지 말해주었던 나였는데 살아보니 결국 남는건 내 곁의 사람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인생에 정답은 없는거겠죠. 자식의 소중함을 키워본 사람을 충분히 알지만 자식을 낳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그건 영원히 모르고 살다 죽게 될테니 각자의 삶에서 필요한것은 스스로가 택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게 어떤 형태이든 부모가 바라는 건 그저 자식의 행복. 그거 하나뿐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 말입니다.
조준구는끝까지참ㅎㅎ서희는배포가참큰거같아요
오랜만에블로그들어와 딸기님글을읽으니좋네요 열심히하시는데 못따라가서죄송합니다
명절잘보내세요!
딸기님~^^! 오늘 후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제가 읽고 지나친 부분들을 싹 다시 훑어 주신 느낌이 듭니다. 후기를 읽는 기쁨이 정말 크네요~^^!
사실, 9권의 메인 줄거리는 서희가 평사리의 최참판댁 집까지 되 찾고 조준구에 대한 복수를 끝내는 것이었을텐데요,,! 기대했던 만큼의 통쾌함도 아니었거니와, 소설 속 서희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겨우 순간의 인격적 우월성을 느끼며 상대를 비하하는 한낱 호기로 인해 5000원이란 거액을 조준구한테 쥐어준게 아쉬웠습니다. 그런걸로 인해 수치나 자괴감을 느낄 위인이 아니었을텐데요,, 그저 나쁜 사람 좋은 일 시킨 그런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습니다. 그리하여 제게 그렇게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한 것 같아요. 제 후기에서는 줄거리 조차 빠졌는데, 딸기님 후기를 보니 다시 생각났습니다.
저는 홍이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신이 임이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자신 조차도 사랑해주지 못하고, 냉랭했던 것까지 이해해 버리게 되는 것이 슬펐습니다. 누구보다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입니다.
따님들의 결혼에 대한 말씀에서 저희 엄마가 떠오르네요.
저희 엄마도 항상 저희가 (딸들이) 당당하고 멋진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ㅎㅎ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 역시.. 그 결혼의 시기라는 것 때문에 부모님께 결혼을 강요 받았었습니다.
지금의 제 결혼을 강요하신건 아닌데, 계속 그와 같은 스탠스가 있었지요.
저는 아주 솔직히 지금 이 삶도 감사하고 좋지만, 돌이켜 보면. .부모님 두 분께서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신 부분이 결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둘 다 할수도 있겠지만, 도움을 하나도 받지 않는다면, 또 거기에 상황에 따라서. 아무래도 여성이 일과 육아 모두에서 성취를 얻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그 두가지를 가져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결론이겠지만요. 참 신기하게도 .. ㅎㅎ 딸들이 자신만의 무대에서 멋지게 살길 바라셨는데, 왜 이렇게 결혼과 출산을 강요하셨던 걸지,,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물론 저는 그런 강요가 아니어도 언젠가 반드시 결혼은 했을 거에요. 왜냐면 저는 아이를 너무나 좋아하거든요,,! 제 아이를 꼭 낳고 기르고 싶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이라도 결혼은 했을 것 가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 받는 그런 행복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또 저는 그 당시에는 결혼과 출산이 이렇게 일과 양립이 안되는 건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시기를 잡지 못한 건. '사랑, 죽고 못사는 사랑.' 그런 것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 있어 결혼 =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동안 함께 하는 그런 것. 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저의 가정도 굳건하고 제게 많은 힘이 되어 줍니다. 아들과 저희 셋의 이 삶을 저는 평생동안 잘 지켜 나가고 싶습니다. 이 관계, 이 정신적 동지 같은 그런 것이요. 하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몰랐을 때) 보다는 좀 더 냉정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은밀한 이야기. 친한 사람. 가족에게도 잘 하지 못했던 그런 불만도 아니면서 그냥 언젠가부터 깨닫게 되는 저의 생각들을 여기에 적고 있네요. 참 신기한 공간 입니다.
ㅎㅎ
딸기님 후기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끝도 없는데, 오늘 후기는 제 후기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공감이 많이 되었네요.
정리를 대신 해주신 것 같아 감사합니다.
한 주 동안 또 열심히 즐기시고,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딸기님 9권 후기 잘 읽었습니다.
서희의 복수 이야기가 넘 통쾌할것 같습니다.
그리고 용이와 월선 그리고 홍이의 이야기는
너무나 가슴 절절해 지네요.
홍이의 인간적인 갈등이 아빠 용이 만큼
아플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복이와 형 거복의 이야기도
마음 아프고요.
토지는 일제시대 전후의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해서인지
읽으면서 마음 아픈시간들이 많을것 같네요.
저는 책읽는 속도도 느리고
한번에 많이 읽지 못해서
2주에 한권 읽고 있습니다.
저의 4권 후기는 담주에 올리겠습니다.
딸기님과 노트북님의 후기 읽는 재미가
좋습니다.
두분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