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이어진 주말. 주부로서 이런 연휴가 좋기도 하고 별로이기도 합니다.
일년에 서너차례있는 명절과 가족 행사가 이제는 슬슬 귀찮아지기도 하는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친구가 그러더군요. 아이들이 결혼을 하면 내가 찾아갈 시댁보다 아이들을 집에서 맞이하게 되는 풍경이 된다구요.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더라구요.
언제나 난 며느리로만 있을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받는 입장이 될걸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몸과 마음의 부담은 적어질지 모르지만
그건 내가 나이를 들어간다는 의미가 되니까요.
가족들을 만나면 반가움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듣지않고 알 필요가 없는 얘기까지 듣게 되니 마음이 어수선할 때가 있습니다. 가족 이야기니까 모두 알아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전엔 물론 아니었죠. 가족이니까 모든 공유해야한다 생각해왔거든요.
이제는 지금의 안정된 생각의 루틴이 그로 인해 깨진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고요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편안하고 단순한 그래서 딱히 다른 생각이 내 머리에 들어오는것이 부담스럽다 느끼게 됩니다. 저만 그런가요. ㅎ
어쨌든 이런생각은 명절끝자락에 들곤하지만 어쩔수없이 다시 반복되긴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이런 루틴에 변화가 오겠죠. 뭐든 변하지 않는건 없을테니까요. 어쩌면 이런 루틴이 그때가서 그리워질지도 모르니 지금은 애써 즐겨보려 합니다.
이게 저의 명절 후 생각입니다.
책 얘기로 들어가서..
12권은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워집니다.
그 중,
-조용하, 김명희 그리고 홍성숙의 이야기가 머리에 남습니다.
시동생 조찬하를 사랑했던 명희(임명빈의 동생)의 남편 조용하가 홍성숙과 불륜을 저지르고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하고 동생 덕에 취직했던 명빈의 중학 교장 자리를 내놓게 되는 상황입니다.
남편의 불륜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여자들은 약자입니다.
그 시대에서 그런 일은 더욱 그랬겠지요.
처음부터 애정이 없었던 조용하와의 불행한 명희는 마음이 외롭습니다.
그 와중에 당당한 조용하가 얄밉기 그지 없습니다.
-이상현이 명희에게 보낸 편지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봉순이 상현의 아이를 갖게 된 일은 순전히 사고였다고 생각했었고 봉순이 죽고 그 아이(양현)를 서희가 데려다 키우고 있는 이 상황에서 상현이 봉순이를 사랑했었다는 고백은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랬구나... 이상현이 봉순이를 사랑했구나... 왜 봉순이 살아있었을때 그 말을 해주지 않았냐고 원망이 떠오릅니다.
상현도 그 당시엔 그 생각을 못했던것일까요. 아님 기생을 사랑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였을까요.
'.. 나는 그 여자에 대한 감정을 동정이라 생각했소. 나중에는 바람기라 생각했소. 더 나중에는 수치로 생각했고. 그는 남몰래 내 딸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곳으로 도망온 뒤 그 여자는 비참하게 세상을 떴고 내 딸은 지금 최 참판댁 부인이 거두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진실로 그아이에게 내 사랑을 전하고 싶소....'
그랬군요. 상현도 이제야 자신이 봉순이를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군요. 왜 더 빨리 알아채지 못했느냐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라 그럴 수 없습니다. 그저 둘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던걸로 이해해야할 거 같습니다.
사람의 인연이란 정해져 있는 것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 봉순과 상현의 아이, 양현을 키우고 있는 서희의 양현에 대한 애틋함.
학생 운동에 관심을 갖는 윤국이를 바로보는 서희의 마음.
맹장 수술로 흩어진 몸을 보약도 마다하던 서희는 이제 스스로 고추 세워보려합니다. 저 아이들을 그리고 멀리 있는 길상(감옥)을 생각하며 그래야한다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서희가 따스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서희. 그래서 좀 답답하다 생각했던 서희에게서 마음이 보이기 시작해서 참 좋았습니다.
해를 넘기고 토지에만 매달려 있다보니 다른 책이 막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읽어보려 들춰보기도 했는데 읽혀지지가 않습니다.
마음을 온통 토지에 빼앗겨버린 탓인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로 가슴을 쿵하며 때리는 것도 아닌데 중독성이 있습니다. 잔잔한 그들의 이야기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토지에 매여있는것이 행복일것 같습니다. 이 순간을 즐기려합니다.
연휴가 길다보니 여유시간도 많아지네요. 노트북님이 한주 쉰다고 하셨는데 그냥 읽혀져서 후기도 올리게 됩니다.
다른 분들의 명절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즐거운 시간이셨길 바랍니다. ㅎ
딸기님 명절 후기를 읽으면서
부모님과 친척을 찾아가서 챙기는 위치에서
집에서 우리 아들을 기다리는 위치로
바뀔 저의 미래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렇게 상황을 바꾸어 생각해보니
예전의 부모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 이랬겠구나.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어떤이들은 명절 긴 연휴에 여행을 간다고
하지만, 저는 아들이 막상 여행가고 명절에
못온다고 한다면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직장생활 하는 이들에게는 긴연휴가
소중하기에 여행을 계획할 수도 있겠구나
이해해 줘야 한다는것도 알고요.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그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그 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것들을
잘 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2권 에서는 서희가 봉순의 딸을 키우는군요.
상현이 봉순을 사랑했었었군요.
그러나 봉순이 살아있을때 그 사랑을
확인시켜주지 못했다니 마음 아픈 이야기가
또 전개되겠네요.
서희가 좀더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말씀에
저도 언젠가 서희가 성숙된 사람이 될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앞으로 서희의 변화가
더욱 기대됩니다.
마음을 온통 토지에 빼앗겨 버리고
중독되셨다는 딸기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 또한 토지를 읽는 시간에 제가 어떤 느낌인지를
알게 되니, 토지 읽는 시간이 마치 시간여행을
가서 제가 그들의 마음이 되고 또 그들을
바라보며 묘사하는 박경리의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토지에 동화될 수 있는 시간이 행복한것 같습니다.
이런 소설을 추천 해 주시고
함께 읽도록 인도해 주신 딸기님께 감사합니다.
딸기님,,! 오늘 아침에 댓글을 쓰다가 폰이 꺼졌습니다.
왜 그런지 밤새 충전이 안되었는데, 챙겨간 보조 배터리가 방전이 되었더라고요;
꺼지는 찰나에 우선 저장을 눌렀는데, 이렇게 아래 마무리도 못한 채로 남아 있네요.
저는 화장터를 처음 경험 했는데, 들어갔던 관이 한 줌 재로 바뀌고 빗자루로 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오늘 하루는 제일 가슴 아픈 날이었네요,,
이번을 계기로 저희 부모님보다도 훨씬 연세가 많으신 시부님 생각, 또한 친정에 아들이 없어서 제사를 물려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걱정하시는 시모님의 마음, 설령 그것이 부질없는 의식이라 하더라도 그 시대 분들의 관념이나 걱정스런 그 마음이 다 이해가 가더라고요..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외가댁 사촌들도 모두 뭉치니 엄청나게 든든하고 힘이 된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고요.
왜 그렇게 부자고 힘이 있는 분들이 친인척을 챙기는지도 인지상정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혈연,지연,학연도 어찌 보면 그냥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감정이라는 것을요.
저희 오남매도 이번을 계기로 더 열심히 살아서 더 많이 챙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남편과 함께 양가 모두, 친인척 간 경조사는 더 열심히 챙기고, 평소에는 못하더라도 이런일이 생길때 만큼은 꼭 장지까지 다 같이 가야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정말 많은 걸 느끼게 되어, 슬프지만 서로에게 감사하는 날이었네요..
토지 후기에 댓글을 달고 싶었는데, 오늘 느꼈던 모든 감정을 아침 저녁으로 토해내고 있습니다;
후기도 너무나 잘 읽었습니다.
상현의 뒤늦은 깨달음이 참 아쉽고, 봉순이의 죽음이 안타깝네요,,
서희가 그 아이를 거두어 주었다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현 보다는 딸을 두고 가는 봉순이의 마음을 생각한 것이겠지요.
12권에 들어서 서희가 인간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더 잘 서술해 주셨나 봅니다.
서희도 사람인데요,, 티를 내냐 안내느냐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학생 운동을 하게 되는 아들을 바라보는 서희의 심경이 궁금하기도 하네요.
아들이 자신만의 생각이 생기면서 부모의 사상에서 벗어나는 그 경험을 실제 하게 되면 어떨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요,,! 서희의 글을 읽으며 저희 부모님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뜻밖의 연휴 마지막을 이렇게 보내게 되어,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남은 시간동안 열심히 읽어보고 싶네요,,!
저도 이제야 조금 다른 책들에 관심이 가고 뒤적 뒤적도 하지만, 역시 토지를 제대로 마무리 하고 싶은 마음 입니다.
항상 이렇게 솔선수범을 보여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남은 주말도 잘 보내시고요,,!
언제나 응원 드립니다.
노트북 드림.
명절 끝에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치매로 가족들을 못 알아보는 상황은 본인에게도 가족에게도 너무 슬픈일이죠. 삶을 그렇게 마무리 하고 싶지 않은것이 모든 사람의 바램이고 그건 결국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야하나 하는 무력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어머님을 보내드리는 노트북님의 어머니의 심정이 저도 가장 많이 신경이 쓰입니다. 그마음을 헤아려 주시려는 노트북님의 생각에도 많이 공감이 갑니다. 그렇게 보내드리고 싶지 않은것이 자식의 마음이니 어머님의 마음이 많이 헛헛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요. 우리 삶의 마지막을 포함해서 우리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삶은 저에게도 여전히 숙제입니다.
떠나는 가족에 대해 마음을 못다한것에 대한 아쉬움은 언제나 남는거 같아요.
표현은 다 못했지만 마음이 있었다면 된거다 그러게 생각하기로 해요. 우리.
인생은 모든것은 모두가 다 공유하긴 어려운 법이니까요.
노트북님의 마음을 할머님도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외할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딸기님,,! 안그래도 궁금한 마음이 있었는데 넘 반갑습니다,,!
명절에 관한 딸기님 말씀을 읽는데, 너무 공감이 가네요,,!
물론 명절에만 뵙는건 아니지만, 유독 오랜 시간 한 곳에서 계속 시댁의 가풍과 가족들의 성향, 소식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요,, 이제는 많이 내려놓았고, 저도 스스로 주는 부담에서 내려왔지만, 아무튼 무슨 말씀인지는 너무 잘 알 것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명절 다음날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오늘은 발인식에 가는 중입니다. 장지가 경상도인데.. 생각해보니 저희가 경상도는 너무 오랫동안 못 갔던것 같고, 언제 또 자주 찾아뵙지도 못할텐데 산소 위치라도 제대로 봐두자는 마음으로 다녀올 생각입니다. 그곳에 있는 이종사촌들도 볼겸이요,, 어린 시절에 너무나 순수하고 착했던 동생들인데, 커서 이모께서 돌아가실 때 보고 몇년을 보지 못했네요..
영정 사진을 볼때마다 너무 죄스러워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할머니께서 치매를 걸리셔서 저희를 못알아보실때 저희집에 한번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했던 기억이 여러 몇해전인데 그게 마지막이었네요. 무슨 말이라도 할말이 없습니다..
엄마께서 집에서 모시다가 요양병원으로 모시고는 점점 더 아예 대화를 하거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하시는 말씀에 찾아뵙지 않게됐습니다. 마지막 사진은 제가 뵈던.. 저희를 못알아보시던 그때 사진인것 같아서 더 마음이 아팠고요. 솔직히 죄책감이 더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네요.. 마지막 가시는 길을 이렇게 따라다녀서 무슨 소용인가 자조같은 한탄이 나올뿐입니다..
편찮으시기 전에는 경상도에 사셔서 자주 못가고 몇년에 한번씩 뵈었던 기억입니다. 지금 제 아들과 부모님의 관계를 생각하면 너무나 가까운 사이인 것인데, 제가 어찌 그리 무심했를까 그냥 다 너무 죄송할 따름네여,,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경상도 갔을때랑 저희집에 몇번 오셔서 오래 계셨던 그 기억들만 있는데 그것도 지금은 엄청난 추억입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밝고 명랑하신 분이셨는데 어찌 그리 지고지순한 삶을 사셨을까 했어요.. 조선시대 양반 마님처럼 그렇게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실때까지는 내내 거의 바깥 출입을 못 하고 사셨거든요.. 요즘 같아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요. 당시에도 할머니 말씀을 듣는게 넘 재밌었습니다. 세도가에서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받고 사셨는데 정말 토지를 읽으며 전해들은 이야기가 떠오르는게 많습니다. 파친코를 읽으며 이민진 작가님에서 친가는 평양, 외가는 부산 영도(?) 에서 실제 집안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를 발판삼아 쓰신걸로 들었는데, 저 역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만으로도 정말 소설같이 쓸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던것 같습니다. 실제 소설을 위해 생각한게 아니고.. 이야기를 들으며 한편의 소설 같다고 생각을 했던거지요.
요양원 가까이 계셨던 막내이모, 어린 시절부터 제가 초등시절까지 저를 정말 말도 못하게 이뻐해주신 외삼촌,외숙모 그리고 외사촌 동생들, 이종사촌 오빠들까지 이렇게 모여서 한때 자주 시간을 보내던 그 때 이야기를 하며 보냈습니다. 외가도 대부분은 다 서울에 계시지만 각자의 삶을 살기 시작하거난 이후로는 가끔 4살,5살 기억까지도 선명히 나는데 왜 그때마다 숙모와 삼촌께 연락들 드리지 못했는지 이번 기회에 그냥 다 죄송하고 그랬습니다.
장지까지 가려고 하는건 엄마 때문이기도 하고요.. 슬퍼하시는 엄마를 보살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한편으론 있습니다. 너무 이기적이고 죄송한 말이지만.. 엄마의 마지막을 할머니처럼 보내고 싶진 않은 마음입니다. 마지막이 요양원일수밖에 없을까,, 이게 우리의 미래일까..그런 마음이 그런 와중에도들었습다니다.